[통일을 여는 발걸음] 탈북자 발목 잡는 브로커

입력 2010.02.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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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주민들이 남쪽으로 오기까지의 탈북과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유린에 노출돼 있는데다 제3국 불법 체류를 하면서 북송의 두려움까지 시달려야하는 그야말로 목숨 건 탈출인데요.



이처럼 남쪽 입국까지 경로가 험난해 민간지원단체나 브로커의 도움과 개입 없이 탈북자 독자적으로 입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찾기 위해 받은 이 브로커의 도움은 곧 남쪽으로 오자마자 많은 탈북자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아 필요악이 되고 있습니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 속, 얼음장 같은 학교 복도와 화장실이 탈북자 김미선(가명)씨의 소중한 일터입니다.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치면서 건강이 쇠약해진 김미선씨.



이렇게 밤낮으로 일하며 차근차근 돈을 모은 덕에 탈북 브로커에서 수 백만원을 주고 2년 전 북쪽에 남은 아들을 남쪽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들을 찾은 후 북에 남은 여동생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마침 한동네에 사는 탈북여성이 가족들을 찾아주겠다며 접근해왔습니다.



이 여성 또한 탈북 브로커였습니다.



북쪽 여동생과 전화통화를 연결해주는 조건으로 현금 10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녹취>김미선(가명/탈북자) : "어머니 어머니하고 따르고 했기 때문에 가깝게 지내게 됐어요. 전화로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연락이 안오는 거에요.”



브로커는 기다리라는 말뿐이었습니다.



8개월을 그렇게 기다리다 지난해에는 그 브로커와 연락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집으로 찾아가 봤지만 벌써 떠난 뒤였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만 들려왔습니다.



<녹취>김미선(가명/탈북자) : "저는 100만원이지만 그때 당시 왔던 사람들 중에는 1억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돈을 건넨 이후 브로커가 가족들을 접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의 생사확인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돈까지 잃고 나니 절망감이 밀려듭니다.



브로커 사기에 당한 탈북자는 김 씨 뿐만 아닙니다.



탈북자 이경심(가명) 씨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두 아들이 아사직전까지 이르자 돈벌이를 위해 지난 98년 중국으로 나왔습니다.



숨어살던 이씨는 급기야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의 시골마을에 팔려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북한으로도 돌아가기도 힘들어져 지난 2005년 남쪽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 받은 정착지원금은 자신의 탈북 브로커 비용으로 몽땅 써야했고 두 아들을 남쪽으로 데려오기위해 이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녹취>이경심(가명/탈북자) : "북한에서 남편하고 자식 다 같이 온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저 혼자 살겠다고 자식 버리고 온 나 같은 사람들은 기가 막힌 거지."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같은 고향 출신의 탈북자를 남쪽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큰아들은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습니다.



한 줄기 희망으로 이 씨는 지난해 한 탈북여성브로커를 통해 아들을 찾기로 했습니다.



브로커는 먼저 돈을 요구했고 아들을 당장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150만원을 부쳤습니다.



하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아들이 행방 불명이라며 사진 한 장도 받지도 전화 한통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같은 탈북자끼리 사기를 쳤다는 생각에 더 울분이 터지지만 따지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녹취>이경심(가명/탈북자) : "정말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 사람(브로커) 친척들은 다 거기 한 자리들 하는데 괜히 내 자식만 당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쩌지 못하고 있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씨는 우울증이 심해져 매일 약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아들을 찾는 일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들을 북쪽에 두고 온 많은 탈북자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씁니다.



4년 전 입국한 탈북자 박선희 씨는 북쪽에 혼자 두고 온 딸에게 생활비를 보냅니다.



적을 경우 몇십만원에서 많을 경우 300만원까지 부칩니다.



얼마전에는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자금을 남쪽에서 보냈습니다.



<녹취>박선희(가명/탈북자) : "300만원 부쳐줘서 걔(딸)가 돈 자기 손에 쥐어 봤다는게 5만원 정도죠. 뭐. 그 정도 밖에 못 받았단 소리에요. 그러면 그 나머지 돈을 다 브로커가 먹는거죠.”



폭리입니다.



박씨가 한국에있는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면 이 돈은 중국 브로커에게 전해지고 다시 중국을 오가는 북한 브로커를 거쳐 북한 내 전달자를 통해 딸에게 돈이 보내집니다.



총 4명의 브로커를 거치는 겁니다.



그나마도 화폐개혁이후 물가가 올라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고 최 씨는 호소합니다.



브로커의 폭리가 야속하지만 탈북자들에게 브로커는 현재로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녹취>박선희(가명/탈북자) : "그 사람(브로커)들도 생명 내 놓고 하는 일이니까 그런 속에서 그야말로 내 집안에 몇 푼이 들어가더라도 들어가서 하루라도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브로커는 탈북자 사정을 배려한 제도의 부재 속에서 탈북자들에게 필요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해 남한땅을 밟는 3천명 안팎의 탈북자들 중 4분의 3 정도가 이같은 탈북브로커를 통해 입국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단체들은 이같은 탈북 브로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대책 마련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창권(탈북인단체총연합 대표) : "남북협력기금에서 일정부분을 떼서 탈북자 일인당 얼마씩 구출하는 데 쓴다 이런 법적 조항을 만들어 놓으면 브로커 활동도 많이 위축될 것이고 어떤 명분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제 정착금을 브로커한테 뗀다거나 이런 부분에서 많이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리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에게 북에 남은 가족은 마음에서 떨칠 수 없는 짐이자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분단의 비극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을 겪고 있는 탈북자들이 더 이상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남쪽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도적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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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을 여는 발걸음] 탈북자 발목 잡는 브로커
    • 입력 2010-02-06 13:48:22
    남북의 창
북 주민들이 남쪽으로 오기까지의 탈북과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유린에 노출돼 있는데다 제3국 불법 체류를 하면서 북송의 두려움까지 시달려야하는 그야말로 목숨 건 탈출인데요.

이처럼 남쪽 입국까지 경로가 험난해 민간지원단체나 브로커의 도움과 개입 없이 탈북자 독자적으로 입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찾기 위해 받은 이 브로커의 도움은 곧 남쪽으로 오자마자 많은 탈북자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아 필요악이 되고 있습니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 속, 얼음장 같은 학교 복도와 화장실이 탈북자 김미선(가명)씨의 소중한 일터입니다.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치면서 건강이 쇠약해진 김미선씨.

이렇게 밤낮으로 일하며 차근차근 돈을 모은 덕에 탈북 브로커에서 수 백만원을 주고 2년 전 북쪽에 남은 아들을 남쪽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들을 찾은 후 북에 남은 여동생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마침 한동네에 사는 탈북여성이 가족들을 찾아주겠다며 접근해왔습니다.

이 여성 또한 탈북 브로커였습니다.

북쪽 여동생과 전화통화를 연결해주는 조건으로 현금 10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녹취>김미선(가명/탈북자) : "어머니 어머니하고 따르고 했기 때문에 가깝게 지내게 됐어요. 전화로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연락이 안오는 거에요.”

브로커는 기다리라는 말뿐이었습니다.

8개월을 그렇게 기다리다 지난해에는 그 브로커와 연락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집으로 찾아가 봤지만 벌써 떠난 뒤였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만 들려왔습니다.

<녹취>김미선(가명/탈북자) : "저는 100만원이지만 그때 당시 왔던 사람들 중에는 1억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돈을 건넨 이후 브로커가 가족들을 접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의 생사확인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돈까지 잃고 나니 절망감이 밀려듭니다.

브로커 사기에 당한 탈북자는 김 씨 뿐만 아닙니다.

탈북자 이경심(가명) 씨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두 아들이 아사직전까지 이르자 돈벌이를 위해 지난 98년 중국으로 나왔습니다.

숨어살던 이씨는 급기야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의 시골마을에 팔려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북한으로도 돌아가기도 힘들어져 지난 2005년 남쪽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 받은 정착지원금은 자신의 탈북 브로커 비용으로 몽땅 써야했고 두 아들을 남쪽으로 데려오기위해 이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녹취>이경심(가명/탈북자) : "북한에서 남편하고 자식 다 같이 온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저 혼자 살겠다고 자식 버리고 온 나 같은 사람들은 기가 막힌 거지."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같은 고향 출신의 탈북자를 남쪽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큰아들은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습니다.

한 줄기 희망으로 이 씨는 지난해 한 탈북여성브로커를 통해 아들을 찾기로 했습니다.

브로커는 먼저 돈을 요구했고 아들을 당장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150만원을 부쳤습니다.

하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아들이 행방 불명이라며 사진 한 장도 받지도 전화 한통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같은 탈북자끼리 사기를 쳤다는 생각에 더 울분이 터지지만 따지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녹취>이경심(가명/탈북자) : "정말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 사람(브로커) 친척들은 다 거기 한 자리들 하는데 괜히 내 자식만 당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쩌지 못하고 있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씨는 우울증이 심해져 매일 약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아들을 찾는 일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들을 북쪽에 두고 온 많은 탈북자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씁니다.

4년 전 입국한 탈북자 박선희 씨는 북쪽에 혼자 두고 온 딸에게 생활비를 보냅니다.

적을 경우 몇십만원에서 많을 경우 300만원까지 부칩니다.

얼마전에는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자금을 남쪽에서 보냈습니다.

<녹취>박선희(가명/탈북자) : "300만원 부쳐줘서 걔(딸)가 돈 자기 손에 쥐어 봤다는게 5만원 정도죠. 뭐. 그 정도 밖에 못 받았단 소리에요. 그러면 그 나머지 돈을 다 브로커가 먹는거죠.”

폭리입니다.

박씨가 한국에있는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면 이 돈은 중국 브로커에게 전해지고 다시 중국을 오가는 북한 브로커를 거쳐 북한 내 전달자를 통해 딸에게 돈이 보내집니다.

총 4명의 브로커를 거치는 겁니다.

그나마도 화폐개혁이후 물가가 올라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고 최 씨는 호소합니다.

브로커의 폭리가 야속하지만 탈북자들에게 브로커는 현재로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녹취>박선희(가명/탈북자) : "그 사람(브로커)들도 생명 내 놓고 하는 일이니까 그런 속에서 그야말로 내 집안에 몇 푼이 들어가더라도 들어가서 하루라도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브로커는 탈북자 사정을 배려한 제도의 부재 속에서 탈북자들에게 필요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해 남한땅을 밟는 3천명 안팎의 탈북자들 중 4분의 3 정도가 이같은 탈북브로커를 통해 입국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단체들은 이같은 탈북 브로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대책 마련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창권(탈북인단체총연합 대표) : "남북협력기금에서 일정부분을 떼서 탈북자 일인당 얼마씩 구출하는 데 쓴다 이런 법적 조항을 만들어 놓으면 브로커 활동도 많이 위축될 것이고 어떤 명분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제 정착금을 브로커한테 뗀다거나 이런 부분에서 많이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리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에게 북에 남은 가족은 마음에서 떨칠 수 없는 짐이자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분단의 비극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을 겪고 있는 탈북자들이 더 이상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남쪽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도적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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