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연기로 떠나다…
입력 2010.03.14 (07:41)
수정 2010.03.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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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어제 다비식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생전에 말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실천하며 떠났기에 그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허전한 것 같습니다.
박진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다.
법 정.
무소유의 구도자 법정은 그 자신도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가 출가했던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봉행 됐습니다.
법구가 인화대위로 옮겨졌고 다시 참나무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9명이 장작에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진행됐습니다.
장례절차도 무소유의 또 다른 실천이었습니다.
화려한 상여도 없었고 만장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석구 스님(자은사 주지) : "다른 스님에 비해 매우 검소하게 했었다."
오늘 정오쯤에는 다비가 끝나고 유골을 수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리를 찾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수습된 유골은 곧바로 빻는 절차인 쇄골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송광사와 강원도 산골 오두막 주변에 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님의 삶은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
스스로 팬 장작과 방석 하나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으로 떠난 것도 바로 무소유의 실천이었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즐겨 읽던 책마저 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마지막에도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실천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발길은 입적 뒤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2일 길상사를 떠날 때, 그리고 어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봉행할 때 수많은 인파가 스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인터뷰> 서희원(추모객) :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너무 초라하고 빈 손이신 것 같은데, 가시면서도 무소유의 깨우침을 주고 가시는 게 아닌가…."
오는 17일 초재와 21일 추모법회가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뒤 49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치러집니다.
KBS 뉴스 박진현입니다.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어제 다비식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생전에 말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실천하며 떠났기에 그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허전한 것 같습니다.
박진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다.
법 정.
무소유의 구도자 법정은 그 자신도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가 출가했던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봉행 됐습니다.
법구가 인화대위로 옮겨졌고 다시 참나무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9명이 장작에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진행됐습니다.
장례절차도 무소유의 또 다른 실천이었습니다.
화려한 상여도 없었고 만장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석구 스님(자은사 주지) : "다른 스님에 비해 매우 검소하게 했었다."
오늘 정오쯤에는 다비가 끝나고 유골을 수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리를 찾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수습된 유골은 곧바로 빻는 절차인 쇄골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송광사와 강원도 산골 오두막 주변에 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님의 삶은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
스스로 팬 장작과 방석 하나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으로 떠난 것도 바로 무소유의 실천이었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즐겨 읽던 책마저 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마지막에도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실천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발길은 입적 뒤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2일 길상사를 떠날 때, 그리고 어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봉행할 때 수많은 인파가 스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인터뷰> 서희원(추모객) :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너무 초라하고 빈 손이신 것 같은데, 가시면서도 무소유의 깨우침을 주고 가시는 게 아닌가…."
오는 17일 초재와 21일 추모법회가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뒤 49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치러집니다.
KBS 뉴스 박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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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0-03-14 09: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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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어제 다비식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생전에 말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실천하며 떠났기에 그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허전한 것 같습니다.
박진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다.
법 정.
무소유의 구도자 법정은 그 자신도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가 출가했던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봉행 됐습니다.
법구가 인화대위로 옮겨졌고 다시 참나무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9명이 장작에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진행됐습니다.
장례절차도 무소유의 또 다른 실천이었습니다.
화려한 상여도 없었고 만장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석구 스님(자은사 주지) : "다른 스님에 비해 매우 검소하게 했었다."
오늘 정오쯤에는 다비가 끝나고 유골을 수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리를 찾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수습된 유골은 곧바로 빻는 절차인 쇄골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송광사와 강원도 산골 오두막 주변에 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님의 삶은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
스스로 팬 장작과 방석 하나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으로 떠난 것도 바로 무소유의 실천이었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즐겨 읽던 책마저 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마지막에도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실천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발길은 입적 뒤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2일 길상사를 떠날 때, 그리고 어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봉행할 때 수많은 인파가 스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인터뷰> 서희원(추모객) :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너무 초라하고 빈 손이신 것 같은데, 가시면서도 무소유의 깨우침을 주고 가시는 게 아닌가…."
오는 17일 초재와 21일 추모법회가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뒤 49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치러집니다.
KBS 뉴스 박진현입니다.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어제 다비식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생전에 말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실천하며 떠났기에 그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허전한 것 같습니다.
박진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다.
법 정.
무소유의 구도자 법정은 그 자신도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그가 출가했던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봉행 됐습니다.
법구가 인화대위로 옮겨졌고 다시 참나무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9명이 장작에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진행됐습니다.
장례절차도 무소유의 또 다른 실천이었습니다.
화려한 상여도 없었고 만장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석구 스님(자은사 주지) : "다른 스님에 비해 매우 검소하게 했었다."
오늘 정오쯤에는 다비가 끝나고 유골을 수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리를 찾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수습된 유골은 곧바로 빻는 절차인 쇄골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송광사와 강원도 산골 오두막 주변에 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님의 삶은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
스스로 팬 장작과 방석 하나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산문집 ’무소유’를 낸 뒤 유명세에 시달리자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으로 떠난 것도 바로 무소유의 실천이었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즐겨 읽던 책마저 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법정 스님 :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마지막에도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실천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발길은 입적 뒤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2일 길상사를 떠날 때, 그리고 어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봉행할 때 수많은 인파가 스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인터뷰> 서희원(추모객) :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너무 초라하고 빈 손이신 것 같은데, 가시면서도 무소유의 깨우침을 주고 가시는 게 아닌가…."
오는 17일 초재와 21일 추모법회가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뒤 49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치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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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기자 parkj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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