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69년 정찰기 피격 당시 북한 공격 검토
입력 2010.05.05 (22:01)
수정 2010.05.0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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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그런가하면 지난 1969년, 미국이 북한 공격을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북한이 미국 정찰기를 피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 대통령도 당시 ’응징’을 요청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이춘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69년 4월 14일, 북한 청진 근처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찰기가 북한에 격추돼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오늘 공개된 미 외교문서는 당시 닉슨 미 행정부가 군사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비행장 공습과 원산항 봉쇄·기뢰부설, 북 함정에 대한 잠수함 어뢰공격 등 4가지 구체적인 작전 방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 대사에 전화를 걸어 강력 응징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미 국방 장관은 전면전 확전 가능성과, 베트남전 와중임을 들어 군사대응 철회를 건의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대북 경고와 무력시위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인터뷰> 이흥환(미 외교문서 전문가) : "군사적 보복 옵션을 포기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한 정책을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이 외교문서에는 또 김일성 주석이 1972년 대북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1.21 청와대 습격사건은 북한의 극좌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명한 내용도 기록돼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 1969년, 미국이 북한 공격을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북한이 미국 정찰기를 피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 대통령도 당시 ’응징’을 요청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이춘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69년 4월 14일, 북한 청진 근처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찰기가 북한에 격추돼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오늘 공개된 미 외교문서는 당시 닉슨 미 행정부가 군사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비행장 공습과 원산항 봉쇄·기뢰부설, 북 함정에 대한 잠수함 어뢰공격 등 4가지 구체적인 작전 방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 대사에 전화를 걸어 강력 응징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미 국방 장관은 전면전 확전 가능성과, 베트남전 와중임을 들어 군사대응 철회를 건의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대북 경고와 무력시위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인터뷰> 이흥환(미 외교문서 전문가) : "군사적 보복 옵션을 포기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한 정책을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이 외교문서에는 또 김일성 주석이 1972년 대북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1.21 청와대 습격사건은 북한의 극좌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명한 내용도 기록돼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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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69년 정찰기 피격 당시 북한 공격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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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5-05 22:01:28
- 수정2010-05-05 22:45:13

<앵커 멘트>
그런가하면 지난 1969년, 미국이 북한 공격을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북한이 미국 정찰기를 피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 대통령도 당시 ’응징’을 요청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이춘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69년 4월 14일, 북한 청진 근처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찰기가 북한에 격추돼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오늘 공개된 미 외교문서는 당시 닉슨 미 행정부가 군사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비행장 공습과 원산항 봉쇄·기뢰부설, 북 함정에 대한 잠수함 어뢰공격 등 4가지 구체적인 작전 방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 대사에 전화를 걸어 강력 응징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미 국방 장관은 전면전 확전 가능성과, 베트남전 와중임을 들어 군사대응 철회를 건의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대북 경고와 무력시위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인터뷰> 이흥환(미 외교문서 전문가) : "군사적 보복 옵션을 포기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한 정책을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이 외교문서에는 또 김일성 주석이 1972년 대북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1.21 청와대 습격사건은 북한의 극좌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명한 내용도 기록돼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 1969년, 미국이 북한 공격을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북한이 미국 정찰기를 피격했기 때문인데 박정희 대통령도 당시 ’응징’을 요청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이춘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69년 4월 14일, 북한 청진 근처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찰기가 북한에 격추돼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습니다.
오늘 공개된 미 외교문서는 당시 닉슨 미 행정부가 군사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비행장 공습과 원산항 봉쇄·기뢰부설, 북 함정에 대한 잠수함 어뢰공격 등 4가지 구체적인 작전 방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 대사에 전화를 걸어 강력 응징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미 국방 장관은 전면전 확전 가능성과, 베트남전 와중임을 들어 군사대응 철회를 건의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대북 경고와 무력시위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인터뷰> 이흥환(미 외교문서 전문가) : "군사적 보복 옵션을 포기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한 정책을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이 외교문서에는 또 김일성 주석이 1972년 대북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정보부장에게 1.21 청와대 습격사건은 북한의 극좌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명한 내용도 기록돼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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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 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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