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5번째 40대 총리’ 김태호, 세대교체 신호탄

입력 2010.08.08 (14:39) 수정 2010.08.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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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48)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변이 없는 한 대한민국 헌정 사상 다섯번째 `40대 총리'에 오르게 된다.

1971년 김종필 전 총리가 45살의 나이로 11대 총리에 오른 지 39년만에 40대 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된 것.

3공화국 이후 처음 있는 파격 인사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비견되며 `40대 기수론'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개편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통해 신호탄을 쏘아올린 여권의 세대교체가 김 후보자의 전격 발탁으로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파격 인사의 주인공 김 후보자는 이미 몇년 전부터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지난 1998년 고향 경남 거창에서 초대 도의원을 지낸 뒤 불혹을 막 지난 시점에서 과감하게 도전한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백(42세)'으로 당선되면서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남지사 시설 자신의 상징적 정책으로 추진한 '남해안 프로젝트'는 국가발전 계획으로 확정되는 등 성공한 도정 사례로 기록됐다.

신선한 사고와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 강단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잠룡'으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2008년 지방선거에서도 가볍게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의 정치적 모험을 건다.

'3선은 따논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 초 갑작스럽게 불출마 선언을 한 것.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입각을 제의받거나 여권에서 중용을 제안받았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 결국 40대 총리의 `깜짝 발탁'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처럼 정치 엘리트 코스를 빠르게 밟아왔지만 그의 시작은 미약했다.

1962년 경남 거창군의 벽촌에서 소를 키우던 빈농의 3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장학생으로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당시 장학생이 되면서 얻은 자신감은 이후 고비 때마다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을 이겨낸 성장 과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김 후보의 부친도 이 대통령의 모친과 비견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 후보의 부친은 교육열이 대단해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에야 소장수 일을 그만뒀다.

김 후보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된 배경은 서울대 농업교육과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는 후문이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는데, 김 후보는 정권의 감시를 피해 심부름도 하고 상도동계 정치인들을 따라 음식이 담긴 배낭을 지고 함께 산을 올랐다.

김 후보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사생활을 할 때만 해도 교수를 꿈꿨지만, 1992년 옥중에서 14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 당선에 기여하면서 인생의 대전기를 맞게 된다.

이 전 의원의 당선후 학교로 돌아갈 길이 여의치 않자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일했고, 1998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총리 후보자까지 이르는 밑거름이 됐다.

김 후보자는 이번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는 평가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보다 더 젊은 이미지를 무기로 여권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부상했고, 총리에 임명된 뒤 본인의 정치적 역량과 성과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김 후보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말끔히 씻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청와대가 오랜 기간 인사 검증을 하고 이 대통령도 심사숙고 끝에 결단한 만큼 인사청문회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후보자는 평소 누구에게나 90도로 허리를 기울여 깍듯이 인사하는 습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오래된 생활 철칙으로 군수 시절부터 지사직을 그만둘 때까지 관용차 뒷좌석에 '겸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이 같은 습관은 '시소 이론'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낮아지면 상대방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상대도 자신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는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첫 일정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백두산으로 관광을 다녀왔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경남 거창(48) ▲거창농림고 ▲서울대 농업교육과 ▲동 대학원(교육학 박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 친선대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경남도의원 ▲경남 거창군수 ▲경남도지사(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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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5번째 40대 총리’ 김태호, 세대교체 신호탄
    • 입력 2010-08-08 14:39:24
    • 수정2010-08-08 17: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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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48)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변이 없는 한 대한민국 헌정 사상 다섯번째 `40대 총리'에 오르게 된다. 1971년 김종필 전 총리가 45살의 나이로 11대 총리에 오른 지 39년만에 40대 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된 것. 3공화국 이후 처음 있는 파격 인사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비견되며 `40대 기수론'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개편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통해 신호탄을 쏘아올린 여권의 세대교체가 김 후보자의 전격 발탁으로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파격 인사의 주인공 김 후보자는 이미 몇년 전부터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지난 1998년 고향 경남 거창에서 초대 도의원을 지낸 뒤 불혹을 막 지난 시점에서 과감하게 도전한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백(42세)'으로 당선되면서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남지사 시설 자신의 상징적 정책으로 추진한 '남해안 프로젝트'는 국가발전 계획으로 확정되는 등 성공한 도정 사례로 기록됐다. 신선한 사고와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 강단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잠룡'으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2008년 지방선거에서도 가볍게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의 정치적 모험을 건다. '3선은 따논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 초 갑작스럽게 불출마 선언을 한 것.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입각을 제의받거나 여권에서 중용을 제안받았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 결국 40대 총리의 `깜짝 발탁'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처럼 정치 엘리트 코스를 빠르게 밟아왔지만 그의 시작은 미약했다. 1962년 경남 거창군의 벽촌에서 소를 키우던 빈농의 3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장학생으로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당시 장학생이 되면서 얻은 자신감은 이후 고비 때마다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을 이겨낸 성장 과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김 후보의 부친도 이 대통령의 모친과 비견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 후보의 부친은 교육열이 대단해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에야 소장수 일을 그만뒀다. 김 후보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된 배경은 서울대 농업교육과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는 후문이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는데, 김 후보는 정권의 감시를 피해 심부름도 하고 상도동계 정치인들을 따라 음식이 담긴 배낭을 지고 함께 산을 올랐다. 김 후보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사생활을 할 때만 해도 교수를 꿈꿨지만, 1992년 옥중에서 14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 당선에 기여하면서 인생의 대전기를 맞게 된다. 이 전 의원의 당선후 학교로 돌아갈 길이 여의치 않자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일했고, 1998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총리 후보자까지 이르는 밑거름이 됐다. 김 후보자는 이번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는 평가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보다 더 젊은 이미지를 무기로 여권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부상했고, 총리에 임명된 뒤 본인의 정치적 역량과 성과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김 후보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말끔히 씻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청와대가 오랜 기간 인사 검증을 하고 이 대통령도 심사숙고 끝에 결단한 만큼 인사청문회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후보자는 평소 누구에게나 90도로 허리를 기울여 깍듯이 인사하는 습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오래된 생활 철칙으로 군수 시절부터 지사직을 그만둘 때까지 관용차 뒷좌석에 '겸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이 같은 습관은 '시소 이론'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낮아지면 상대방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상대도 자신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는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첫 일정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백두산으로 관광을 다녀왔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경남 거창(48) ▲거창농림고 ▲서울대 농업교육과 ▲동 대학원(교육학 박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 친선대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경남도의원 ▲경남 거창군수 ▲경남도지사(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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