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크메르 루즈를 단죄하라”

입력 2010.11.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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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70년대 말 전국민의 4분의 1인 250만 명을 학살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의 만행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데요.

당시 학살 주모자들에 대한 단죄가 지금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킬링필드의 비극을 씻어내려는 캄보디아의 노력을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한켠에 낡은 3층 건물 네 개 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 때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며 꿈을 키우던 학교였습니다. 35년 전. 이 곳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악명 높은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한 집단 살육이었습니다.

학교를 감옥으로 개조해 붙들려 온 사람들을 미국 스파이로 몰아 끔찍한 고문을 가한 뒤 처형했습니다. 갓난 아기부터 노인까지 남녀 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번 들어오면 결코 살아나갈 수 없다는 이 죽음의 감옥에서 4년 동안 무려 만 4천여명의 선량한 시민들이 희생됐습니다. 생존자는 어른 7명과 어린이 5명 등 모두 12명뿐이었습니다.

처형된 사람들은 모두 프놈펜 외곽에 집단으로 암매장됐습니다. 매장지에서도 4년에 걸쳐 집단 살육이 계속됐습니다. 지난 81년 이 매장지에서 만 여구의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희생된 사람들은 지식인과 그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식인들이 사라져야 가난한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천국이 실현될 것이라고 폴포트는 믿었습니다. 그가 집권했던 75년 4월부터 79년 1월까지 전국 129개 감옥과 처형장에서 250만 명이 학살됐습니다. 국민의 4분의 1입니다.

<인터뷰>파스칼(스위스 인) : "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춤 메이씨는 1평도 안되는 어두컴컴한 안되는 이 방에 갇혀 하루 2끼 몇 숟가락의 죽을 먹고 모진 고문에 시달렸습니다.

<인터뷰>춤 메이(감옥 생존자) : "고문실로 끌고 가서 펜치로 손톱을 뽑고 전기 고문을 했어요. 탈출하려다 발각돼 채찍으로 200대씩 맞았습니다."

벌써 일흔이 다된 부멩씨도 이 감옥에서 죽음보다 더한 2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구타와 심문. 전기 고문도 일상이었습니다.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그림 재능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폴포트의 대형초상화를 실물과 똑같이 그려냈고 크메르루즈는 우상화를 위해 그를 살려뒀습니다.

<인터뷰>부멩(감옥 생존자) : "폴 포트가 초상화 하나 그리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길래 석달 걸린다고 했죠. 석 달 안에 못 그리면 죽인다고 하더군요."

잔혹한 인간 살육은 79년 1월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접수하고 나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생존자 12명도 베트남군이 감옥을 급습했을 때 구출됐습니다. 이 악명 높은 투올슬랭 감옥의 교도소장은 올해 나이 67의 카잉 구엑 에아브. '두익'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지난 2007년 체포돼 살인과 고문,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프놈펜 외곽에 자리잡은 전범특별재판소. 크메르루즈 핵심 인물들을 기소한 재판부로 유엔의 지원을 받습니다.

<인터뷰>크란 토니(전범특별재판소장) : "인간성을 말살한 잔학한 전범들을 법으로 엄단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기위해 이 재판소가 설립됐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모두 5명. 투올슬랭 교도소장 두익(67)을 비롯해 정권의 2인자였던 누온 체아(83), 외무장관 이엥사리 (84), 그의 아내이자 사회부장관을 지낸 이엥 티리드(77), 주석 키에우 삼판(79)입니다.

이 가운데 두익에게 지난 7월 26일 가장 먼저 형이 선고됐습니다. 캄보디아엔 사형제가 없어 검사측이 무기 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재판에 협조한 점 등을 들어 35년 형으로 낮췄습니다. 그러나 실제 형기는 군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 등을 빼면 19년에 불과합니다.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인터뷰>홍 세바스(희생자 유가족) : "두익은 종신형을 받아 마땅해요."

두익은 이 형량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습니다. 검사측도 즉시 항소장을 냈습니다.

<인터뷰>챈 달라라스미(검사) : "극악한 전범에게 35년 형은 너무 가볍습니다. 두익은 아무리 적어도 40년 형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소를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내년 초에 열립니다. 기소돼 있는 다른 4명에 대한 재판도 함께 진행됩니다.

프놈펜 외곽에 있는 한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설명회가 한창입니다. 크메르루즈 재판과정을 소개하고 처참했던 역사를 알리려는 전범재판소의 교육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의 입에서 거침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왓타나(초등학교 3학년) : "사람을 1명만 살해해도 최소 15년 형을 받는 데 10,000명을 넘게 죽인 사람한테 왜 35년형만 내리죠?"

현재 전범재판소의 경비는 일본 등 외국에서 보내온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재판소 직원이 350여 명. 직원 월급만 한 달에 50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재판소가 설립된 지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7천 8백만 달러가 사용됐습니다. 형의 선고를 받은 사람은 투올슬랭 감옥 소장 두익 한사람 뿐입니다.

재판소는 내년 재판을 위해 추가로 9천 2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아놓은 상탭니다. 재판은 더디고 돈은 많이 들어가는 전범재판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그래서 나옵니다.

<인터뷰>펫커다이(희생자 유가족) :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기소된 5명을 엄정하게 심판하고 죄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캄보디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훈센 총리는 최근, "내년 초 2차 재판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며 더 이상의 재판은 용납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캄보디아 국민 대부분이 크메르르주에 대한 악몽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인터뷰>트랑소콘(희생자 유가족) : "우리 가족도 7명이 희생됐어요. 죽은 사람들 사진을 보면 내 가족 같아서 너무 안타깝고 비통해요."

전범 재판소가 진행중인 역사 단죄가 국민들의 절규와 기대를 과연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 지..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이 안고 있는 황토빛 메콩강은 오늘도 말없이 프놈펜을 휘감아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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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크메르 루즈를 단죄하라”
    • 입력 2010-11-21 08:31:1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 70년대 말 전국민의 4분의 1인 250만 명을 학살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의 만행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데요. 당시 학살 주모자들에 대한 단죄가 지금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킬링필드의 비극을 씻어내려는 캄보디아의 노력을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한켠에 낡은 3층 건물 네 개 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 때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며 꿈을 키우던 학교였습니다. 35년 전. 이 곳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악명 높은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한 집단 살육이었습니다. 학교를 감옥으로 개조해 붙들려 온 사람들을 미국 스파이로 몰아 끔찍한 고문을 가한 뒤 처형했습니다. 갓난 아기부터 노인까지 남녀 노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번 들어오면 결코 살아나갈 수 없다는 이 죽음의 감옥에서 4년 동안 무려 만 4천여명의 선량한 시민들이 희생됐습니다. 생존자는 어른 7명과 어린이 5명 등 모두 12명뿐이었습니다. 처형된 사람들은 모두 프놈펜 외곽에 집단으로 암매장됐습니다. 매장지에서도 4년에 걸쳐 집단 살육이 계속됐습니다. 지난 81년 이 매장지에서 만 여구의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희생된 사람들은 지식인과 그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식인들이 사라져야 가난한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천국이 실현될 것이라고 폴포트는 믿었습니다. 그가 집권했던 75년 4월부터 79년 1월까지 전국 129개 감옥과 처형장에서 250만 명이 학살됐습니다. 국민의 4분의 1입니다. <인터뷰>파스칼(스위스 인) : "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춤 메이씨는 1평도 안되는 어두컴컴한 안되는 이 방에 갇혀 하루 2끼 몇 숟가락의 죽을 먹고 모진 고문에 시달렸습니다. <인터뷰>춤 메이(감옥 생존자) : "고문실로 끌고 가서 펜치로 손톱을 뽑고 전기 고문을 했어요. 탈출하려다 발각돼 채찍으로 200대씩 맞았습니다." 벌써 일흔이 다된 부멩씨도 이 감옥에서 죽음보다 더한 2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구타와 심문. 전기 고문도 일상이었습니다.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그림 재능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폴포트의 대형초상화를 실물과 똑같이 그려냈고 크메르루즈는 우상화를 위해 그를 살려뒀습니다. <인터뷰>부멩(감옥 생존자) : "폴 포트가 초상화 하나 그리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길래 석달 걸린다고 했죠. 석 달 안에 못 그리면 죽인다고 하더군요." 잔혹한 인간 살육은 79년 1월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접수하고 나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생존자 12명도 베트남군이 감옥을 급습했을 때 구출됐습니다. 이 악명 높은 투올슬랭 감옥의 교도소장은 올해 나이 67의 카잉 구엑 에아브. '두익'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지난 2007년 체포돼 살인과 고문,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프놈펜 외곽에 자리잡은 전범특별재판소. 크메르루즈 핵심 인물들을 기소한 재판부로 유엔의 지원을 받습니다. <인터뷰>크란 토니(전범특별재판소장) : "인간성을 말살한 잔학한 전범들을 법으로 엄단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기위해 이 재판소가 설립됐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모두 5명. 투올슬랭 교도소장 두익(67)을 비롯해 정권의 2인자였던 누온 체아(83), 외무장관 이엥사리 (84), 그의 아내이자 사회부장관을 지낸 이엥 티리드(77), 주석 키에우 삼판(79)입니다. 이 가운데 두익에게 지난 7월 26일 가장 먼저 형이 선고됐습니다. 캄보디아엔 사형제가 없어 검사측이 무기 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재판에 협조한 점 등을 들어 35년 형으로 낮췄습니다. 그러나 실제 형기는 군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 등을 빼면 19년에 불과합니다.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인터뷰>홍 세바스(희생자 유가족) : "두익은 종신형을 받아 마땅해요." 두익은 이 형량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습니다. 검사측도 즉시 항소장을 냈습니다. <인터뷰>챈 달라라스미(검사) : "극악한 전범에게 35년 형은 너무 가볍습니다. 두익은 아무리 적어도 40년 형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소를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내년 초에 열립니다. 기소돼 있는 다른 4명에 대한 재판도 함께 진행됩니다. 프놈펜 외곽에 있는 한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설명회가 한창입니다. 크메르루즈 재판과정을 소개하고 처참했던 역사를 알리려는 전범재판소의 교육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의 입에서 거침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왓타나(초등학교 3학년) : "사람을 1명만 살해해도 최소 15년 형을 받는 데 10,000명을 넘게 죽인 사람한테 왜 35년형만 내리죠?" 현재 전범재판소의 경비는 일본 등 외국에서 보내온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재판소 직원이 350여 명. 직원 월급만 한 달에 50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재판소가 설립된 지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7천 8백만 달러가 사용됐습니다. 형의 선고를 받은 사람은 투올슬랭 감옥 소장 두익 한사람 뿐입니다. 재판소는 내년 재판을 위해 추가로 9천 2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아놓은 상탭니다. 재판은 더디고 돈은 많이 들어가는 전범재판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그래서 나옵니다. <인터뷰>펫커다이(희생자 유가족) :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기소된 5명을 엄정하게 심판하고 죄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캄보디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훈센 총리는 최근, "내년 초 2차 재판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며 더 이상의 재판은 용납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캄보디아 국민 대부분이 크메르르주에 대한 악몽과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인터뷰>트랑소콘(희생자 유가족) : "우리 가족도 7명이 희생됐어요. 죽은 사람들 사진을 보면 내 가족 같아서 너무 안타깝고 비통해요." 전범 재판소가 진행중인 역사 단죄가 국민들의 절규와 기대를 과연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 지..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이 안고 있는 황토빛 메콩강은 오늘도 말없이 프놈펜을 휘감아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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