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서울의 마지막 연탄 공장 ‘추억 물씬’

입력 2011.01.06 (09:05) 수정 2011.01.0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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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시절, 겨울이면 집집마다 연탄을 떼고 음식도 연탄불에 만들곤했죠?

다 탄 연탄 가지고 놀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연탄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어딘가에 아직 연탄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남아있어서 연탄공장도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는데요.

정수영 기자, 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을 찾아가 봤다구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요즘은 연탄 구경하기도 쉽지 않죠?

이제 서울에 남은 연탄 공장은 단 두 곳뿐인데요.

43년 세월을 한결같이 연탄을 찍어낸 공장을 다녀왔습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연탄을 필요로 하는 손길이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연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사연도 취재했습니다.

1980년대, 연탄은 가장 대중적인 연료였습니다.

겨울철 집집마다 대문 밖엔 연탄재가 가득했는데요.

이런 기억도 이젠 추억 속 옛일이 돼버렸습니다.

서울 이문동. 옛날 호황을 누리던 연탄 공장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이제 서울에선 단 두 곳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종대(연탄 공장 직원) : "(요즘) 20만 장 정도(연탄이 생산)돼요. 각 화원에도 많이 가고, 지방으로도 많이 가고요. 가정집에 연탄불 떼는 곳에도 많이 (팔려)나가고 있어요."

찬바람이 부는 10월부터 이듬 해 3월까지가 성수긴데요.

배달업체들도 바빠집니다.

영하의 날씨지만 쉴 새 없이 연탄을 싣다보면 어느새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데요.

<인터뷰> 우종임(연탄 소매상인) : "어떡해요, 서민들 겨울에 연탄 떼야 하는데 할 사람은 없고, 배운 게 이것뿐이니까 서민들 위해서 봉사할 겸 갖다줘야죠."

이 공장이 첫 연탄을 찍어낸 이래 생산을 계속한지 올해로 43년째, 직원 스무 명도 수 십년 째 이곳에서 근무해 왔습니다.

<인터뷰> 한석만(연탄 공장 직원) :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고 결혼도 하고 그랬어요."

<인터뷰> 김두용(연탄 공장 직원) : "요즘은 아주 서민층에서 달동네 사람들 같은 저소득층에서 연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연탄 사용량이 많이 줄었고...연탄은 전국 각지로 배달이 되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 상계 4동 희망촌에도 연탄이 도착했습니다.

홍종록씨는 22년 째 이곳에서 연탄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소재남(서울 상계동) : "옛날 같으면 상노인인데...72살인데 저렇게(연탄배달)하는 거 보면 참 대단해요."

홍 씨네 가게는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연탄가겝니다.

희망촌 사람들도 이젠 다들 기름을 쓰다보니 벌이가 시원찮은데요.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연탄이) 많이 안 나가요. 오늘도 250장 정도 팔아야죠, 300장 정도 나가나 봐요. 지금 3일 만에(연탄 배달) 나가는 거예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연탄을 쓰다 보니 수입이 좋았습니다.

아들 딸 모두 연탄 배달 일을 해서 키워냈는데요.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다리가 불편한데 이것 (전동 리어카) 때문에 (연탄 배달)하는 거예요. 이것 없으면 하지도 못해요."

지난 해 5월에는 연탄 배달을 하다 발목이 리어카에 끼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배달을 멈출 순 없었는데요.

아직도 희망촌엔 홍 씨가 배달하는 연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고맙죠. 요즘 누가 연탄 배달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희망촌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연탄배달부 홍씨.

같은 동네 사람이라면 웬만한 집안 사정도 훤히 알고 있을 정도라는데요.

어딜 가든 홍 씨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내주는 인정이 아직 희망촌엔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보람될 게 뭐 있어요.(연탄) 갖다 주면 따뜻하게 지내시는 것, 그것같이 좋은 게 뭐 있어요? 보람될 게 뭐 있어요? 그것 밖에는."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인천의 한 식당. 매일 같이 연탄불을 떼우는 게 일입니다.

하루에 연탄 50장씩은 거뜬히 쓰고 있는 이 곳의 정체는 바로 생선 구이집입니다.

<인터뷰> 박인숙(연탄 생선구이 가게 주인) : "전자레인지나 프라이팬에 생선을 구우면 생선 제 맛이 안 나요."

벌써 45년 째, 한 자리에서 이렇게 연탄 맛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인천항에서 들여온 싱싱한 제철 생선을 연탄 불 위에 올리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데요.

<인터뷰> 김준구(인천 간석동) : "어렸을 때 연탄이 최고였잖아요. 어머니가 고등어자반 같은 거 구워주실 때(연탄이) 최고였어요."

넉넉지 않았던 옛 시절, 연탄 냄새 맡으며 생선 노릇노릇 구워 술잔 기울이던 추억.

나이 지긋한 손님들에겐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인터뷰> 오석진(인천 연수동) : "연탄에 구이 올리고, 소주 한 잔 하면서 애환과 추억이 담겨있어서 가끔 이곳을 찾아요."

추운 겨울 넉넉하지 못한 이웃들, 옛 시절 추억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 연탄 공장은 오늘도 변함 없이 연탄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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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1-06 09:05:06
    • 수정2011-01-06 09: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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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시절, 겨울이면 집집마다 연탄을 떼고 음식도 연탄불에 만들곤했죠? 다 탄 연탄 가지고 놀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연탄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어딘가에 아직 연탄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남아있어서 연탄공장도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는데요. 정수영 기자, 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을 찾아가 봤다구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요즘은 연탄 구경하기도 쉽지 않죠? 이제 서울에 남은 연탄 공장은 단 두 곳뿐인데요. 43년 세월을 한결같이 연탄을 찍어낸 공장을 다녀왔습니다.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연탄을 필요로 하는 손길이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연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사연도 취재했습니다. 1980년대, 연탄은 가장 대중적인 연료였습니다. 겨울철 집집마다 대문 밖엔 연탄재가 가득했는데요. 이런 기억도 이젠 추억 속 옛일이 돼버렸습니다. 서울 이문동. 옛날 호황을 누리던 연탄 공장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이제 서울에선 단 두 곳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종대(연탄 공장 직원) : "(요즘) 20만 장 정도(연탄이 생산)돼요. 각 화원에도 많이 가고, 지방으로도 많이 가고요. 가정집에 연탄불 떼는 곳에도 많이 (팔려)나가고 있어요." 찬바람이 부는 10월부터 이듬 해 3월까지가 성수긴데요. 배달업체들도 바빠집니다. 영하의 날씨지만 쉴 새 없이 연탄을 싣다보면 어느새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데요. <인터뷰> 우종임(연탄 소매상인) : "어떡해요, 서민들 겨울에 연탄 떼야 하는데 할 사람은 없고, 배운 게 이것뿐이니까 서민들 위해서 봉사할 겸 갖다줘야죠." 이 공장이 첫 연탄을 찍어낸 이래 생산을 계속한지 올해로 43년째, 직원 스무 명도 수 십년 째 이곳에서 근무해 왔습니다. <인터뷰> 한석만(연탄 공장 직원) :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고 결혼도 하고 그랬어요." <인터뷰> 김두용(연탄 공장 직원) : "요즘은 아주 서민층에서 달동네 사람들 같은 저소득층에서 연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연탄 사용량이 많이 줄었고...연탄은 전국 각지로 배달이 되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 상계 4동 희망촌에도 연탄이 도착했습니다. 홍종록씨는 22년 째 이곳에서 연탄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소재남(서울 상계동) : "옛날 같으면 상노인인데...72살인데 저렇게(연탄배달)하는 거 보면 참 대단해요." 홍 씨네 가게는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연탄가겝니다. 희망촌 사람들도 이젠 다들 기름을 쓰다보니 벌이가 시원찮은데요.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연탄이) 많이 안 나가요. 오늘도 250장 정도 팔아야죠, 300장 정도 나가나 봐요. 지금 3일 만에(연탄 배달) 나가는 거예요." 20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연탄을 쓰다 보니 수입이 좋았습니다. 아들 딸 모두 연탄 배달 일을 해서 키워냈는데요.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다리가 불편한데 이것 (전동 리어카) 때문에 (연탄 배달)하는 거예요. 이것 없으면 하지도 못해요." 지난 해 5월에는 연탄 배달을 하다 발목이 리어카에 끼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배달을 멈출 순 없었는데요. 아직도 희망촌엔 홍 씨가 배달하는 연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고맙죠. 요즘 누가 연탄 배달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희망촌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연탄배달부 홍씨. 같은 동네 사람이라면 웬만한 집안 사정도 훤히 알고 있을 정도라는데요. 어딜 가든 홍 씨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내주는 인정이 아직 희망촌엔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홍종록(연탄 배달부) : "보람될 게 뭐 있어요.(연탄) 갖다 주면 따뜻하게 지내시는 것, 그것같이 좋은 게 뭐 있어요? 보람될 게 뭐 있어요? 그것 밖에는."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인천의 한 식당. 매일 같이 연탄불을 떼우는 게 일입니다. 하루에 연탄 50장씩은 거뜬히 쓰고 있는 이 곳의 정체는 바로 생선 구이집입니다. <인터뷰> 박인숙(연탄 생선구이 가게 주인) : "전자레인지나 프라이팬에 생선을 구우면 생선 제 맛이 안 나요." 벌써 45년 째, 한 자리에서 이렇게 연탄 맛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인천항에서 들여온 싱싱한 제철 생선을 연탄 불 위에 올리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데요. <인터뷰> 김준구(인천 간석동) : "어렸을 때 연탄이 최고였잖아요. 어머니가 고등어자반 같은 거 구워주실 때(연탄이) 최고였어요." 넉넉지 않았던 옛 시절, 연탄 냄새 맡으며 생선 노릇노릇 구워 술잔 기울이던 추억. 나이 지긋한 손님들에겐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인터뷰> 오석진(인천 연수동) : "연탄에 구이 올리고, 소주 한 잔 하면서 애환과 추억이 담겨있어서 가끔 이곳을 찾아요." 추운 겨울 넉넉하지 못한 이웃들, 옛 시절 추억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 연탄 공장은 오늘도 변함 없이 연탄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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