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북한 소재 영화 잇단 개봉
입력 2011.03.05 (09:21)
수정 2011.03.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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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3일, 북송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영화 <굿바이, 평양>이 개봉됐습니다.
재일교포 감독은 13년 동안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북한의 일상이 영화에 생생히 담겨 있어 개봉 전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리포트>
북한은 1959년부터 재일동포 귀환사업을 벌였고, 25년 동안 모두 9만 여명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70년대 초, 오빠들은 당시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북한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민족차별로 진학과 취직이 어려웠던 오빠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시 오빠들의 나이는 18살, 16살, 14살이었다. 6살이었던 나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남았다.
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달랐습니다.
일본의 가족들이 생활비와 생필품을 보내주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소포는 북한의 가족들에겐 생명줄이었다.
가끔 일본의 가족들이 평양의 가족들을 만나러 갈 기회가 생겨도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평양의 가족들은 아예 일본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감독은 지난 95년부터 북한의 가족들을 소형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제가 여섯 살 때 헤어진 오빠하고 같이 있는 제 분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조카딸의 성장과정을 찍어보자고 평양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녹취> "미키마우스~학교에서 그 양말 압수 안 해?"
<녹취> 선화 : "다들 뭔지 몰라."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선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녹취> "안녕하시오~"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식당에선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짜증날 정전도 북한의 가족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입니다.
<녹취> "정전이 된 이 집은 정말 멋있습니다. 아 정전됐습니다. 아 영광스럽게 정전되었습니다. "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정전 그 장면이 우리 가족의 지금 상태고 북한의 지금 상태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카맣고 어둡고 빛이 없는데 사람들은 웃고 있어요. 물론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 거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살아가자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세 아들을 북한에 보낸 부모님의 마음은 늘 애틋했습니다.
늘 오빠들을 보고 싶다던 아버지는 막상 오빠들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이 산책이 큰 오빠와의 마지막 산책이 될 줄 꿈에도 모르셨다.
<녹취> "우리가 가야 되는데 갈 수도 없고 하니까… "
<녹취> "정세가 갑자기 좋아지면 비행기로 금방 가겠지."
첫째 건오 오빠는 북한으로 건너간 후에 우울증으로 힘겨워했다. 아들인 운신에게 음악의 꿈을 남겨둔 채 2009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북한 내부를 촬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찍은 후 그 테이프를 일본에 가져갈 때 세관에서 다 검사를 해요. 1초도 빠짐없이 왜 이렇게 많이 찍느냐 하시니까 좀 가끔은 다투기도 하면서 저의 일기장이다, 가족기록이다 하면서…."
지금은 평양의 가족들을 만날 수 없게 돼 감독의 영상기록은 13년 만에 끝을 맺었습니다.
2007년 전작인 <디어평양>을 개봉했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령이 떨어졌다. 이것이 선화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감독은 언젠가 평양의 가족들과 함께 <굿바이 평양>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창원(‘굿바이 평양’ 관객) : "북한이 되게 고립돼있고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니까 이웃 같고 사촌 같은 사람들인데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확 와 닿는 것 같아요.
<인터뷰> 강유정(영화평론가) : "혈연이 찍은 다큐멘터리기 때문에 감정의 농도가 좀 더 짙고요. 내부자의 시선에서 본 또 다른 북한의 모습, 우리가 궁금해 하고 혹은 보내준 자료 안에서 봤던 것과 달리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점도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좀 더 새로운 흥미를 주지 않나 생각됩니다."
<굿바이, 평양>을 시작으로 북한 어린이들의 일상을 담은 <양강도 아이들>과 조선족과 북한 어린이의 우정을 담은 <두만강>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종수는 어느 날, 남한에서 풍선에 실려 날아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줍습니다.
종수는 로봇 덕분에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녹취> 여자아이 : "메주 가져온 애는 어떻게 하니?"
<녹취> 남자아이 : "이제 메주 같은 거 안 받아~"
<녹취> "할아버지, 오늘은 강변에서 얼어 죽은 사람을 셋이나 발견했다고 합니다. "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중국 동포와 탈북자 소년의 우정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녹취> "우리 오느라고 굶었다. 먹을 것 좀 없나?"
<녹취> "너네 좀 기다려라. 내 먹을 거 얻어올게. 근데 조건이 하나 있다. 볼 시합 하자."
<녹취> "살려주세요. 군대들에게 쫓겨 왔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
북한 관련 영화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데요.
영화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재일교포, 탈북자, 중국동포로 다양하지만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결같았는데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자,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3일, 북송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영화 <굿바이, 평양>이 개봉됐습니다.
재일교포 감독은 13년 동안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북한의 일상이 영화에 생생히 담겨 있어 개봉 전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리포트>
북한은 1959년부터 재일동포 귀환사업을 벌였고, 25년 동안 모두 9만 여명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70년대 초, 오빠들은 당시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북한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민족차별로 진학과 취직이 어려웠던 오빠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시 오빠들의 나이는 18살, 16살, 14살이었다. 6살이었던 나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남았다.
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달랐습니다.
일본의 가족들이 생활비와 생필품을 보내주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소포는 북한의 가족들에겐 생명줄이었다.
가끔 일본의 가족들이 평양의 가족들을 만나러 갈 기회가 생겨도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평양의 가족들은 아예 일본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감독은 지난 95년부터 북한의 가족들을 소형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제가 여섯 살 때 헤어진 오빠하고 같이 있는 제 분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조카딸의 성장과정을 찍어보자고 평양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녹취> "미키마우스~학교에서 그 양말 압수 안 해?"
<녹취> 선화 : "다들 뭔지 몰라."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선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녹취> "안녕하시오~"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식당에선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짜증날 정전도 북한의 가족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입니다.
<녹취> "정전이 된 이 집은 정말 멋있습니다. 아 정전됐습니다. 아 영광스럽게 정전되었습니다. "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정전 그 장면이 우리 가족의 지금 상태고 북한의 지금 상태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카맣고 어둡고 빛이 없는데 사람들은 웃고 있어요. 물론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 거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살아가자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세 아들을 북한에 보낸 부모님의 마음은 늘 애틋했습니다.
늘 오빠들을 보고 싶다던 아버지는 막상 오빠들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이 산책이 큰 오빠와의 마지막 산책이 될 줄 꿈에도 모르셨다.
<녹취> "우리가 가야 되는데 갈 수도 없고 하니까… "
<녹취> "정세가 갑자기 좋아지면 비행기로 금방 가겠지."
첫째 건오 오빠는 북한으로 건너간 후에 우울증으로 힘겨워했다. 아들인 운신에게 음악의 꿈을 남겨둔 채 2009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북한 내부를 촬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찍은 후 그 테이프를 일본에 가져갈 때 세관에서 다 검사를 해요. 1초도 빠짐없이 왜 이렇게 많이 찍느냐 하시니까 좀 가끔은 다투기도 하면서 저의 일기장이다, 가족기록이다 하면서…."
지금은 평양의 가족들을 만날 수 없게 돼 감독의 영상기록은 13년 만에 끝을 맺었습니다.
2007년 전작인 <디어평양>을 개봉했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령이 떨어졌다. 이것이 선화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감독은 언젠가 평양의 가족들과 함께 <굿바이 평양>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창원(‘굿바이 평양’ 관객) : "북한이 되게 고립돼있고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니까 이웃 같고 사촌 같은 사람들인데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확 와 닿는 것 같아요.
<인터뷰> 강유정(영화평론가) : "혈연이 찍은 다큐멘터리기 때문에 감정의 농도가 좀 더 짙고요. 내부자의 시선에서 본 또 다른 북한의 모습, 우리가 궁금해 하고 혹은 보내준 자료 안에서 봤던 것과 달리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점도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좀 더 새로운 흥미를 주지 않나 생각됩니다."
<굿바이, 평양>을 시작으로 북한 어린이들의 일상을 담은 <양강도 아이들>과 조선족과 북한 어린이의 우정을 담은 <두만강>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종수는 어느 날, 남한에서 풍선에 실려 날아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줍습니다.
종수는 로봇 덕분에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녹취> 여자아이 : "메주 가져온 애는 어떻게 하니?"
<녹취> 남자아이 : "이제 메주 같은 거 안 받아~"
<녹취> "할아버지, 오늘은 강변에서 얼어 죽은 사람을 셋이나 발견했다고 합니다. "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중국 동포와 탈북자 소년의 우정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녹취> "우리 오느라고 굶었다. 먹을 것 좀 없나?"
<녹취> "너네 좀 기다려라. 내 먹을 거 얻어올게. 근데 조건이 하나 있다. 볼 시합 하자."
<녹취> "살려주세요. 군대들에게 쫓겨 왔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
북한 관련 영화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데요.
영화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재일교포, 탈북자, 중국동포로 다양하지만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결같았는데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자,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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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3-05 09:21:55
- 수정2011-03-08 08:35:40
<앵커 멘트>
지난 3일, 북송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 영화 <굿바이, 평양>이 개봉됐습니다.
재일교포 감독은 13년 동안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북한의 일상이 영화에 생생히 담겨 있어 개봉 전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리포트>
북한은 1959년부터 재일동포 귀환사업을 벌였고, 25년 동안 모두 9만 여명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70년대 초, 오빠들은 당시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북한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민족차별로 진학과 취직이 어려웠던 오빠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시 오빠들의 나이는 18살, 16살, 14살이었다. 6살이었던 나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남았다.
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달랐습니다.
일본의 가족들이 생활비와 생필품을 보내주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소포는 북한의 가족들에겐 생명줄이었다.
가끔 일본의 가족들이 평양의 가족들을 만나러 갈 기회가 생겨도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평양의 가족들은 아예 일본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감독은 지난 95년부터 북한의 가족들을 소형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제가 여섯 살 때 헤어진 오빠하고 같이 있는 제 분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조카딸의 성장과정을 찍어보자고 평양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녹취> "미키마우스~학교에서 그 양말 압수 안 해?"
<녹취> 선화 : "다들 뭔지 몰라."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선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녹취> "안녕하시오~"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식당에선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짜증날 정전도 북한의 가족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입니다.
<녹취> "정전이 된 이 집은 정말 멋있습니다. 아 정전됐습니다. 아 영광스럽게 정전되었습니다. "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정전 그 장면이 우리 가족의 지금 상태고 북한의 지금 상태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카맣고 어둡고 빛이 없는데 사람들은 웃고 있어요. 물론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 거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살아가자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세 아들을 북한에 보낸 부모님의 마음은 늘 애틋했습니다.
늘 오빠들을 보고 싶다던 아버지는 막상 오빠들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이 산책이 큰 오빠와의 마지막 산책이 될 줄 꿈에도 모르셨다.
<녹취> "우리가 가야 되는데 갈 수도 없고 하니까… "
<녹취> "정세가 갑자기 좋아지면 비행기로 금방 가겠지."
첫째 건오 오빠는 북한으로 건너간 후에 우울증으로 힘겨워했다. 아들인 운신에게 음악의 꿈을 남겨둔 채 2009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북한 내부를 촬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양영희(‘굿바이, 평양’ 감독) : "찍은 후 그 테이프를 일본에 가져갈 때 세관에서 다 검사를 해요. 1초도 빠짐없이 왜 이렇게 많이 찍느냐 하시니까 좀 가끔은 다투기도 하면서 저의 일기장이다, 가족기록이다 하면서…."
지금은 평양의 가족들을 만날 수 없게 돼 감독의 영상기록은 13년 만에 끝을 맺었습니다.
2007년 전작인 <디어평양>을 개봉했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령이 떨어졌다. 이것이 선화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감독은 언젠가 평양의 가족들과 함께 <굿바이 평양>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창원(‘굿바이 평양’ 관객) : "북한이 되게 고립돼있고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니까 이웃 같고 사촌 같은 사람들인데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확 와 닿는 것 같아요.
<인터뷰> 강유정(영화평론가) : "혈연이 찍은 다큐멘터리기 때문에 감정의 농도가 좀 더 짙고요. 내부자의 시선에서 본 또 다른 북한의 모습, 우리가 궁금해 하고 혹은 보내준 자료 안에서 봤던 것과 달리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점도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좀 더 새로운 흥미를 주지 않나 생각됩니다."
<굿바이, 평양>을 시작으로 북한 어린이들의 일상을 담은 <양강도 아이들>과 조선족과 북한 어린이의 우정을 담은 <두만강>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종수는 어느 날, 남한에서 풍선에 실려 날아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줍습니다.
종수는 로봇 덕분에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녹취> 여자아이 : "메주 가져온 애는 어떻게 하니?"
<녹취> 남자아이 : "이제 메주 같은 거 안 받아~"
<녹취> "할아버지, 오늘은 강변에서 얼어 죽은 사람을 셋이나 발견했다고 합니다. "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중국 동포와 탈북자 소년의 우정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녹취> "우리 오느라고 굶었다. 먹을 것 좀 없나?"
<녹취> "너네 좀 기다려라. 내 먹을 거 얻어올게. 근데 조건이 하나 있다. 볼 시합 하자."
<녹취> "살려주세요. 군대들에게 쫓겨 왔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
북한 관련 영화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데요.
영화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재일교포, 탈북자, 중국동포로 다양하지만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결같았는데요.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자,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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