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 빠지다

입력 2011.05.0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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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러분들은 우리 땅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이름도 모양도 독특한 우리 야생화에 폭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갖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봄날,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꽃 사랑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돋보기 너머 노 화가의 붓끝이 스치는 순간 들에 피는 감국의 풋풋함이 화폭에 살아납니다.

은은히 스며 나오는 깊고 오묘한 색채를 얻으려면 수백, 수천 번의 꼼꼼한 덧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가 송훈씨는 항상 족제비 털로 만든 가는 동양화 붓만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작업 과정을 매 단계마다 사진으로 남겨 관리하는 것도 송훈 화백만의 습관입니다.

이렇다보니 꽃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데 길게는 6달 가까이 걸리기도 합니다.

지난 10여년을 오로지 우리 꽃 그리기에 바쳐 왔다는 송 화백은 꽃 동호회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야사모" 회원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우리 꽃이 화려한 서양 꽃에 비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는 송 화백은 지금은 한국적인 야생화 그림을 남기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송훈(야생화 세밀화가/72살) : "요란하지가 않아요. 은은해. 꼭 어떤 때 보면 꼭 색을 칠하다 만 것 같은 그런 색이라든지. 그리고 향 있죠? 그게 그렇게 멋있어요."

성형외과 의사 박정일 씨가 환자에게 쌍꺼풀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강남의 요지에 병원을 개업한 의사 박정일 씨는 환자 상담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틈틈이 우리 야생화에 대해 공부하는 열성 꽃 애호가입니다.

역시 야사모 회원인 박정일 씨는 주말로 예정된 현장 탐방 행사에 참가할 생각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인터뷰> 박정일(성형외과 의사/야사모 회원) : "기다려지죠. 국민학교 때 소풍가는 것 기다리는 기분이죠. 병원에서 사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이고 수술하다보면 늘 피를 보고 긴장의 연속입니다. 이걸 풀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

모처럼 화창한 봄기운이 감도는 날씨 회원들이 정담을 나눕니다.

직접 기른 꽃을 들고 나온 한 여성회원은 자식 자랑하듯 꽃 자랑에 바쁩니다.

<녹취> "굉장히 향이 좋고 꽃이 예뻐요. (직접 기르시는 거예요?) 네 제가 15년 째 기르고 있어요."

그간 병원 이전 문제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성형외과 의사 박정일씨 부부도 오랜 만에 산을 찾았습니다.

송훈 화백 일가족도 역시 화가인 아들 송교성씨와 어린 손녀를 데리고 봄 소풍을 나왔습니다.

삼대가 모여 야생화를 스케치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손녀사이 정은 더 깊어 갑니다.

송 화백은 7년 전 심장수술까지 받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산과 들을 찾아 자료도 수집하고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송자(송훈 화백 부인) : "의사 친구가 있는데 전화를 했어요. '네가 산에 가면 지금 안 돼. 심장수술 옛날에 했잖아요. 너를 다시 살려준 거는 그림 많이 그리라는 이야기지 누가 산에 가라고 살려준 줄 알아' 이렇게 전화를 하셨다니까."

경기도 축령산은 야생화 식생이 다양하고 개체수도 많아 봄 꽃 구경의 명소로 통합니다.

야사모 회원들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한껏 젖혀진 꽃잎이 특징인 얼레지, 봄의 전령사로 매력적인 황금빛의 복수초, 독성이 강해 소가 먹으면 미쳐 날 뛴다고 해서 미치광이 풀이라는 재미난 이름도 있습니다.

바위틈에 작은 군락을 이룬 푸른빛의 현호색입니다.

꿩의 바람꽃은 5월의 신부와도 같은 청초함을 느끼게 합니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앉은 부채는 잎 속에 방망이 모양의 꽃을 숨기고 있습니다.

앙증맞은 개별꽃...노랑 제비꽃은 물가 주변에서 귀여움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야사모 회원들은 주먹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대신하는 동안에도 즐거운 꽃 이야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줄이고 줄여 20 킬로그램 어치 촬영 장비만 가지고 나왔다는 노년의 야사모 회원 가방을 들여다봤습니다.

<녹취> "무겁다고 꾀부린다고 하나라도 빼먹고 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필요한 때를 만나게 돼서..."

'야사모'는 지난 2001년 인터넷을 통해 첫 출발을 한 이후 수도권과 강원 호남 등 전국 5개 지부에 약 5천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회원들이 찍어 사이트에 올린 30만장이 넘는 야생화 사진을 정리해 언젠가는 웹 식물도감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한다는 꿈을 갖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경기도 화도 초등학교 교장 박상선씨는 야사모 회원 가운데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열성회원입니다.

지금까지 천 여 종이 넘는 우리 자생식물을 사진 자료로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백두산도 일곱 차례나 다녀왔다고 합니다.

박 교장의 노력으로 이른바 녹색선도 학교로 지정된 화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부모들과 꽃을 심고 가꾸면서 자연사랑, 꽃 사랑을 몸소 체험합니다.

<녹취> "이 야생화는 꽃이 가을에 핍니다."

박상선 교장이 모처럼 주말을 맞아 어린이들과 함께 들꽃 탐방을 나왔습니다.

<녹취> "선생님 이 꽃은 왜 이렇죠."

<녹취> "얼레지 꽃은 땅 속에서 7년 이상 지나야 꽃을 피워요 뿌리도 아주 길지요."

<인터뷰> 박상선(경기도 화도초등학교 교장) :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이 되면 꽃에 대해서 정말로 많이 알고 꽃을 아는 만큼 더 맑고 밝은 아이들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한국의 자생식물은 약 4천여 종 그 중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 식물은 약 19 % 가량인 750 여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화가 잘 보존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개발과 일부 탐방객들의 식물 채취로 서식지 훼손 등의 소식이 종종 들리고 있습니다.

야사모 회원들은 야생화는 산에 그대로 둬야 살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인터뷰> 이재경(야사모 대표) : "완전히 싹쓸이 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그 속상함은 말도 못해요. 웬만한 건 가지고 가면 못 살려요 거의 일 년 안에 죽어요. 그게 식물 생태를 몰라도 너무 몰라요."

수도권 또 다른 야생화의 보고 천마산 산행을 시작한 지 세 시간 째 정상 부근에 이르자 갑자기 야사모 회원들이 술렁입니다.

<녹취> "여기 노루귀 밭이에요 어서 올라오세요. 많아요. 네, 힘이 날 것 같아요."

좀처럼 찾기 힘든 청노루귀 꽃이 한꺼번에 발견되자 모두들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녹취> "저게 내 첫사랑입니다. 저거 보고 꽃에 미쳤죠."

철따라 산과 들을 수놓는 들꽃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 그리고 인생의 기쁨을 맛본다는 야사모 회원들은 그저 꽃만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지천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들로, 산으로 나서서 조금만 고개 숙여 관찰해 보면 이 땅의 아름다운 꽃 야생화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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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화에 빠지다
    • 입력 2011-05-02 07:29:56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여러분들은 우리 땅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이름도 모양도 독특한 우리 야생화에 폭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갖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봄날,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꽃 사랑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돋보기 너머 노 화가의 붓끝이 스치는 순간 들에 피는 감국의 풋풋함이 화폭에 살아납니다. 은은히 스며 나오는 깊고 오묘한 색채를 얻으려면 수백, 수천 번의 꼼꼼한 덧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가 송훈씨는 항상 족제비 털로 만든 가는 동양화 붓만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작업 과정을 매 단계마다 사진으로 남겨 관리하는 것도 송훈 화백만의 습관입니다. 이렇다보니 꽃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데 길게는 6달 가까이 걸리기도 합니다. 지난 10여년을 오로지 우리 꽃 그리기에 바쳐 왔다는 송 화백은 꽃 동호회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야사모" 회원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우리 꽃이 화려한 서양 꽃에 비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는 송 화백은 지금은 한국적인 야생화 그림을 남기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송훈(야생화 세밀화가/72살) : "요란하지가 않아요. 은은해. 꼭 어떤 때 보면 꼭 색을 칠하다 만 것 같은 그런 색이라든지. 그리고 향 있죠? 그게 그렇게 멋있어요." 성형외과 의사 박정일 씨가 환자에게 쌍꺼풀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강남의 요지에 병원을 개업한 의사 박정일 씨는 환자 상담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틈틈이 우리 야생화에 대해 공부하는 열성 꽃 애호가입니다. 역시 야사모 회원인 박정일 씨는 주말로 예정된 현장 탐방 행사에 참가할 생각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인터뷰> 박정일(성형외과 의사/야사모 회원) : "기다려지죠. 국민학교 때 소풍가는 것 기다리는 기분이죠. 병원에서 사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이고 수술하다보면 늘 피를 보고 긴장의 연속입니다. 이걸 풀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 모처럼 화창한 봄기운이 감도는 날씨 회원들이 정담을 나눕니다. 직접 기른 꽃을 들고 나온 한 여성회원은 자식 자랑하듯 꽃 자랑에 바쁩니다. <녹취> "굉장히 향이 좋고 꽃이 예뻐요. (직접 기르시는 거예요?) 네 제가 15년 째 기르고 있어요." 그간 병원 이전 문제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성형외과 의사 박정일씨 부부도 오랜 만에 산을 찾았습니다. 송훈 화백 일가족도 역시 화가인 아들 송교성씨와 어린 손녀를 데리고 봄 소풍을 나왔습니다. 삼대가 모여 야생화를 스케치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손녀사이 정은 더 깊어 갑니다. 송 화백은 7년 전 심장수술까지 받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산과 들을 찾아 자료도 수집하고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송자(송훈 화백 부인) : "의사 친구가 있는데 전화를 했어요. '네가 산에 가면 지금 안 돼. 심장수술 옛날에 했잖아요. 너를 다시 살려준 거는 그림 많이 그리라는 이야기지 누가 산에 가라고 살려준 줄 알아' 이렇게 전화를 하셨다니까." 경기도 축령산은 야생화 식생이 다양하고 개체수도 많아 봄 꽃 구경의 명소로 통합니다. 야사모 회원들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한껏 젖혀진 꽃잎이 특징인 얼레지, 봄의 전령사로 매력적인 황금빛의 복수초, 독성이 강해 소가 먹으면 미쳐 날 뛴다고 해서 미치광이 풀이라는 재미난 이름도 있습니다. 바위틈에 작은 군락을 이룬 푸른빛의 현호색입니다. 꿩의 바람꽃은 5월의 신부와도 같은 청초함을 느끼게 합니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앉은 부채는 잎 속에 방망이 모양의 꽃을 숨기고 있습니다. 앙증맞은 개별꽃...노랑 제비꽃은 물가 주변에서 귀여움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야사모 회원들은 주먹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대신하는 동안에도 즐거운 꽃 이야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줄이고 줄여 20 킬로그램 어치 촬영 장비만 가지고 나왔다는 노년의 야사모 회원 가방을 들여다봤습니다. <녹취> "무겁다고 꾀부린다고 하나라도 빼먹고 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필요한 때를 만나게 돼서..." '야사모'는 지난 2001년 인터넷을 통해 첫 출발을 한 이후 수도권과 강원 호남 등 전국 5개 지부에 약 5천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회원들이 찍어 사이트에 올린 30만장이 넘는 야생화 사진을 정리해 언젠가는 웹 식물도감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한다는 꿈을 갖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경기도 화도 초등학교 교장 박상선씨는 야사모 회원 가운데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열성회원입니다. 지금까지 천 여 종이 넘는 우리 자생식물을 사진 자료로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백두산도 일곱 차례나 다녀왔다고 합니다. 박 교장의 노력으로 이른바 녹색선도 학교로 지정된 화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부모들과 꽃을 심고 가꾸면서 자연사랑, 꽃 사랑을 몸소 체험합니다. <녹취> "이 야생화는 꽃이 가을에 핍니다." 박상선 교장이 모처럼 주말을 맞아 어린이들과 함께 들꽃 탐방을 나왔습니다. <녹취> "선생님 이 꽃은 왜 이렇죠." <녹취> "얼레지 꽃은 땅 속에서 7년 이상 지나야 꽃을 피워요 뿌리도 아주 길지요." <인터뷰> 박상선(경기도 화도초등학교 교장) :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이 되면 꽃에 대해서 정말로 많이 알고 꽃을 아는 만큼 더 맑고 밝은 아이들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한국의 자생식물은 약 4천여 종 그 중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 식물은 약 19 % 가량인 750 여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화가 잘 보존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개발과 일부 탐방객들의 식물 채취로 서식지 훼손 등의 소식이 종종 들리고 있습니다. 야사모 회원들은 야생화는 산에 그대로 둬야 살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인터뷰> 이재경(야사모 대표) : "완전히 싹쓸이 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그 속상함은 말도 못해요. 웬만한 건 가지고 가면 못 살려요 거의 일 년 안에 죽어요. 그게 식물 생태를 몰라도 너무 몰라요." 수도권 또 다른 야생화의 보고 천마산 산행을 시작한 지 세 시간 째 정상 부근에 이르자 갑자기 야사모 회원들이 술렁입니다. <녹취> "여기 노루귀 밭이에요 어서 올라오세요. 많아요. 네, 힘이 날 것 같아요." 좀처럼 찾기 힘든 청노루귀 꽃이 한꺼번에 발견되자 모두들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녹취> "저게 내 첫사랑입니다. 저거 보고 꽃에 미쳤죠." 철따라 산과 들을 수놓는 들꽃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 그리고 인생의 기쁨을 맛본다는 야사모 회원들은 그저 꽃만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지천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들로, 산으로 나서서 조금만 고개 숙여 관찰해 보면 이 땅의 아름다운 꽃 야생화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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