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학교 대신 빈집…두 달새 난장판

입력 2011.12.28 (09:01) 수정 2011.12.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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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주인이 해외로 나가 빈집이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이 청소년들, 그냥 집만 드나든 게 아니었는데요.

집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망가지고, 없어진 금품도 수천만 원 어치나 됐습니다.

두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주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랑 기자, 그냥 일반 주택도 아니고 아파트인데, 어떻게 이 청소년들이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던 거죠?

<기자 멘트>

네, 저도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무려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밤낮으로 드나들 수 있었던 비결, 바로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현관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간 친구 집에 오면서 어깨 너머로 비밀번호를 기억해 뒀다가 친구가족이 해외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간 겁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집이 어떻게 됐는지 현장부터 함께 보시죠.

<리포트>

황당한 사건의 현장인 피해자의 집, 현관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평온해 보이기만 한데요,

하지만 집안은 지난 8월부터 이렇게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이 바로 거실입니다.

먹다 남은 컵라면에 정체 모를 음식물들..

누가 마신건지 양주병은 뚜껑이 열린 채 수 십 병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닥에서 불을 피운 흔적까지! 쑥대밭이 따로 없는데요.

방 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죠?

어지럽게 널려있는 옷가지와 이불로 이미 발을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한 눈에 봐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으시죠?

현장을 최초 발견했던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당시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아랫집 000호에서 신고가 들어온 거죠.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살겠다 민원이 들어오니까 확인하러 간 거죠.”

정작 집 주인은 교환 교수로 출국해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지 두 달여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119 구조대하고 112 다 불렀죠. 그런 후에 창문 열고 들어갔어요. 베란다 문 열려 있는 지 안 열려 있는지 보고 올라가서 집안으로 들어갔지. 집안이 전쟁터야. 방 안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제야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한 집주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 했습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경악을 금치 못했고 한국에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다 가셨는데 그 일주일 동안 병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해서...”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요?

지난 8월 29일. 피해자의 집 앞에 설치된 CCTV에 포착된 모습입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10대 여학생 2명과 남학생 1명이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요.

그 날 이후 , 더 자주, 더 많은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이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 애초에 세 명이 들어갔었고 그 세 명 중에 한 명이 그 집에 있던 컴퓨터를 이용해서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해서 다른 애들에게 ‘야, 빈 집 있다. 와라’ 이런 식으로 불러들였던 겁니다.”

두 달에 걸친 CCTV 분석과 피의자 조사 결과 , 이 집을 드나든 아이들은 무려 스무 명! 모두 10대 청소년이었는데요.

그 중의 한 명이 놀랍게도 피해자 집 막내딸의 친구, 황 양 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 황 모 양이 본 건 발생 이전에 그 집에 한 번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피해자의 딸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일가족이 외국으로 간 후에 비밀번호를 이용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

부모님을 따라 2년간 원치 않는 러시아 생활을 하게 된 사정을 친구 황 양 에게 하소연 한 것이 화근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집 드나들 듯 아이들이 맘대로 집을 다닐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별 다른 확인절차 없이도 입구 출입문이 열리기 때문이었는데요.

제작진이 한 번 출입을 시도해 봤습니다.

<녹취> “301호요 -”

<녹취> “열어 드릴까요?(네 문 좀 열어주세요.)”

쉽게 열리죠?

관리사무소에서는 일일이 제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그걸 해 놔도 서 있다가 사람이 들어가잖아요. 카드 찍든 비밀번호 찍든 따라 들어가면 끝이에요..”

이웃 주민들도 점차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요.

<녹취> 이웃 주민 (음성 변조) : "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해서 처음에 그냥 과외 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인터뷰> 이웃 주민 (음성 변조) : "너무 아이들이 많이 들락거려서 저희가 반상회를 했었거든요. 못 보던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고 많은 아이들이 가기에 그 집의 아이 만나러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가출한 아이들 부모들이 찾아오고 했었거든요.”

아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점차 심해졌습니다.

돈이 될 만한 값 나가는 집안 물건이나 귀금속 등은 내다 팔거나 손상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입은 피해액만 무려 3천 만 원!

경찰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품들로 피해를 추정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였습니다.

한마디로 빈 집은 그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죠.

<인터뷰> 김정근 (경사/ 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대부분이 집을 나와서 가출한 상태였고 그렇다보니까 오갈 때도 없고
배도 고프고 그러다가 인터넷 메신저와 전화로 친구들에게 연락이 전파가 되면서 20여명에 달하는 애들이 그 집에 모이게 된 거죠. ”

하지만 대부분은 죄책감이 커녕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는 기색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제가 한 20년간 경찰 생활에 몸담아 오면서 이렇게 남의 집을 마치 전쟁터 또는 쓰레기장처럼 훼손 한 것은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아마 집을 그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

두 달동안이나 10대들의 아지트로 활용된 빈집!

20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하고 밥을 먹고 현금이 필요할 때는 금품을 내다팔았습니다.

이런 청소년들의 행동을 조금만이라도 더 관심있게 했더라면 좀 더 빨리 막을 수 있진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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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학교 대신 빈집…두 달새 난장판
    • 입력 2011-12-28 09:01:38
    • 수정2011-12-28 09: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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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주인이 해외로 나가 빈집이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이 청소년들, 그냥 집만 드나든 게 아니었는데요. 집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망가지고, 없어진 금품도 수천만 원 어치나 됐습니다. 두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주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랑 기자, 그냥 일반 주택도 아니고 아파트인데, 어떻게 이 청소년들이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던 거죠? <기자 멘트> 네, 저도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무려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밤낮으로 드나들 수 있었던 비결, 바로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현관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간 친구 집에 오면서 어깨 너머로 비밀번호를 기억해 뒀다가 친구가족이 해외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간 겁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집이 어떻게 됐는지 현장부터 함께 보시죠. <리포트> 황당한 사건의 현장인 피해자의 집, 현관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평온해 보이기만 한데요, 하지만 집안은 지난 8월부터 이렇게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이 바로 거실입니다. 먹다 남은 컵라면에 정체 모를 음식물들.. 누가 마신건지 양주병은 뚜껑이 열린 채 수 십 병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닥에서 불을 피운 흔적까지! 쑥대밭이 따로 없는데요. 방 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죠? 어지럽게 널려있는 옷가지와 이불로 이미 발을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한 눈에 봐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으시죠? 현장을 최초 발견했던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당시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아랫집 000호에서 신고가 들어온 거죠.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살겠다 민원이 들어오니까 확인하러 간 거죠.” 정작 집 주인은 교환 교수로 출국해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지 두 달여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119 구조대하고 112 다 불렀죠. 그런 후에 창문 열고 들어갔어요. 베란다 문 열려 있는 지 안 열려 있는지 보고 올라가서 집안으로 들어갔지. 집안이 전쟁터야. 방 안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제야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한 집주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 했습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경악을 금치 못했고 한국에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다 가셨는데 그 일주일 동안 병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해서...”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요? 지난 8월 29일. 피해자의 집 앞에 설치된 CCTV에 포착된 모습입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10대 여학생 2명과 남학생 1명이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요. 그 날 이후 , 더 자주, 더 많은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이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합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 애초에 세 명이 들어갔었고 그 세 명 중에 한 명이 그 집에 있던 컴퓨터를 이용해서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해서 다른 애들에게 ‘야, 빈 집 있다. 와라’ 이런 식으로 불러들였던 겁니다.” 두 달에 걸친 CCTV 분석과 피의자 조사 결과 , 이 집을 드나든 아이들은 무려 스무 명! 모두 10대 청소년이었는데요. 그 중의 한 명이 놀랍게도 피해자 집 막내딸의 친구, 황 양 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 황 모 양이 본 건 발생 이전에 그 집에 한 번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피해자의 딸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일가족이 외국으로 간 후에 비밀번호를 이용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 부모님을 따라 2년간 원치 않는 러시아 생활을 하게 된 사정을 친구 황 양 에게 하소연 한 것이 화근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집 드나들 듯 아이들이 맘대로 집을 다닐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별 다른 확인절차 없이도 입구 출입문이 열리기 때문이었는데요. 제작진이 한 번 출입을 시도해 봤습니다. <녹취> “301호요 -” <녹취> “열어 드릴까요?(네 문 좀 열어주세요.)” 쉽게 열리죠? 관리사무소에서는 일일이 제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인터뷰> 관리사무소 직원 (음성 변조) : "그걸 해 놔도 서 있다가 사람이 들어가잖아요. 카드 찍든 비밀번호 찍든 따라 들어가면 끝이에요..” 이웃 주민들도 점차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요. <녹취> 이웃 주민 (음성 변조) : "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해서 처음에 그냥 과외 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인터뷰> 이웃 주민 (음성 변조) : "너무 아이들이 많이 들락거려서 저희가 반상회를 했었거든요. 못 보던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고 많은 아이들이 가기에 그 집의 아이 만나러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가출한 아이들 부모들이 찾아오고 했었거든요.” 아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점차 심해졌습니다. 돈이 될 만한 값 나가는 집안 물건이나 귀금속 등은 내다 팔거나 손상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입은 피해액만 무려 3천 만 원! 경찰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품들로 피해를 추정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였습니다. 한마디로 빈 집은 그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죠. <인터뷰> 김정근 (경사/ 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대부분이 집을 나와서 가출한 상태였고 그렇다보니까 오갈 때도 없고 배도 고프고 그러다가 인터넷 메신저와 전화로 친구들에게 연락이 전파가 되면서 20여명에 달하는 애들이 그 집에 모이게 된 거죠. ” 하지만 대부분은 죄책감이 커녕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는 기색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정근 경사(해운대경찰서 형사5팀) : "제가 한 20년간 경찰 생활에 몸담아 오면서 이렇게 남의 집을 마치 전쟁터 또는 쓰레기장처럼 훼손 한 것은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아마 집을 그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 두 달동안이나 10대들의 아지트로 활용된 빈집! 20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하고 밥을 먹고 현금이 필요할 때는 금품을 내다팔았습니다. 이런 청소년들의 행동을 조금만이라도 더 관심있게 했더라면 좀 더 빨리 막을 수 있진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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