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中 쓰촨, 아물지 않는 대지진의 상처

입력 2012.05.13 (08:33) 수정 2012.05.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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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이 뚜렷하실텐데요, 바로 ‘4년 전 오늘’ 일어났던 중국 쓰촨성 대지진은 무려 9만 명의 희생자를 낸 그야말로 대재앙이었습니다.

예, 4년이 지나면서 주민들의 새 생활터전이 마련됐고, 학교며 관공서도 복구되긴 했는데, 그 대지진의 공포와 죽음의 악몽을 겪었던 사람들의 슬픔,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 치유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손관수 특파원이 쓰촨 대지진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4년전 오늘...중국 쓰촨성 청뚜 인근의 원촨, 베이촨, 미앤양, 두장옌 등을 덮친 규모 8의 대지진...사망 6만 9천..실종 만 7천 9백명..중상자만도 37만명이 넘는 대참사였습니다.

4년전 오늘 오후 2시 28분에 멈춘 시계..원촨 지진 참사 현장 기념비가 마치 '그날을 기억하느냐'고 묻는 듯 여행객들을 맞습니다. 오후 수업시간 중 닥쳐온 대재앙..티비에선 많이 봤지만 막상 현장을 보니 말을 잇기 어렵습니다.

<인터뷰>린즈민 (추모 여행객):“직접 와서 보니까,그동안 TV에서 많이 본 장면인데도 막상 딱 보니 마음....”

인근 지역 병원의 간호사들도 이곳을 찾아 새 각오를 다지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인터뷰>왕차오 (쯔공현의원 간호사):“2008년 대지진을 겪고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가족만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쓰촨성 지진이 원촨 대지진으로도 불리는 것은 진앙지가 바로 이곳 원촨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가파른 협곡이었으나 크게 넓어진 이계곡이 바로 대지진의 진앙지입니다.

쓰촨 대지진이 대참사로 이어진 것은 지진의 규모도 규모지만 지표에서 불과 19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근접거리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핵폭탄을 그냥 얻어맞은 셈입니다.

산세수려한 명승지였던 이곳 베이촨 창족 자치현은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입니다. 지진과 함께 험준한 산이 무너져 내리며 야채 시장 부근에서만 4천 여명이 그대로 매몰되는 등 도시는 그야말로 폐허가 됐습니다.

<인터뷰>양왕 (베이촨 지진유적관리소):“지진전에 이 현정부청사 6층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지진으로 아래 3층이 붕괴돼 묻히고 남은 3층도 기울었습니다. 현정부 간부 70여명이 숨졌습니다.”

두부로 지었느냐며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했던 학교 건물의 붕괴 현장에선 아직도 아이들의 고통이 묻어납니다. 학교가 있던 곳에 내걸린 한 어머니의 편지..

"영원히 사랑한다, 너무 보고 싶다"

편지 끝에 적힌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대지진으로 명을 달리한 동포들을 위해 3번 절을 하겠습니다.”

노란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며 망자들의 한을 달래보지만..다들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터뷰>쳔띠(추모여행객):“마음이 매우 아프네요. 대자연 앞에서 인간들이 이렇게 약하구나 그런 것도 느끼구요.”

<인터뷰>완리핑 (추모여행객):“마음이 진정이 안되네요. 진정이 안되요. 이전에 업무차 새로 조성된 신베이촨에 가본적이 있어서 여기 와보고는 싶었는데..”

언뜻 보기에 보통의 언덕 같은 이곳에도 큰 슬픔이 묻혀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이 지역 수재들이 다 모였다는 베이촨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곳엔 베이촨 고등학생 무려 7백명이 묻혀있습니다. 워낙 큰 대참사에 시신 발굴마저 어렵자 아예 이곳을 그들이 영면하는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베이촨 주민들을 위해 새로 건설된 신베이촨 지역입니다..옛 고향에서 50여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마련한 새 보금자리. 반듯하게 뻥뚫린 도로에 새로운 정부청사에, 새로운 주택 등 모든게 새것입니다. 창족 자치현인 만큼 전통 양식을 세심하게 반영했습니다.

<인터뷰>쉬장파 (신베이촨현 부현장):“재건 계획은 투자 등등을 포함해서 이미 99% 달성된 상태입니다. 생태환경이나 또 문화,유물 방면 등등은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이것들 말고는 다 됐습니다.”

재건과 빠른 복구에는 자매 도시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큰 몫을 했습니다. 신베이촨은 산동성의 후원을 받았고, 이곳 두장옌의 신농촌 건설에는 상하이시가 적극 후원을 했습니다. 또 이곳 쉐이마오전은 광둥성의 적극 지원하에 창족과 장족, 한족의 문화가 어울리는 말끔한 여행지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재건 과정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차이다이민 (쉐이마오전 전장):“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 잃었죠, 토지도 없죠. 그렇다고 뭘 생산할 자원이 있나요? 따라서 재건 이후에도 이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도 이전보다는 좀 낫게 말이죠. 이게 정말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새 터전이 마련된 것은 그러나 재건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이와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부모 등 더 많은 가족을 잃은 탕쉬애씨..이제는 가족의 안녕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인터뷰>탕쉬애 (신베이촨 주민):“저 혼자 이렇게 말하곤 해요. 무탈한게 복이라구..말씀하셨듯이 그런 뭐 큰 희망, 기대? 그런것 이제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그래요 안그래요.”

아픔을 걷어내고 말끔하게 재건축된 학교..아이들도 해맑음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한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에선 새로운 희망이 싹틉니다. 그러나 죽음의 충격이 잠재된 아이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 기법이 필요합니다.

<인터뷰>동쉬애펑 (잉시우소학교 부교장):“지진 이후에는 학생들의 생명에 대한 교육, 그리고 심리 방면에 대한 관심을 두는게 더 많아졌죠..”

사회적 충격이 워낙 컸던 만큼 아이든 어른이든 심리 치료가 필수적이 된 것입니다. 현재 베이촨에만 32곳의 학교, 22곳의 병원 6곳의 사회시설 등 모두 60곳에 전문 심리 치료시설이 설치돼 운영중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자괴감..어렵게 다시 가정을 꾸려도 인간적 번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런쉬애메이 (베이촨 심리진료센터 부주임):“다시 결혼하고, 또 임신하고 하다보면 지진중에 숨진 이전 아내가 생각나는거죠. 그때 아내는 아낄려고 얼마나 애썼는데..하다보면 지금 아내는 뭐가 어떻고 어떻고 이렇게되고..”

쓰촨은 지진 다발 지역입니다. 지진 관측소를 방문한 바로 그날 아침에도 작은 지진이 있었습니다. 어떤 징후가 있는 것인지 분석해 내는게 중요합니다.

<인터뷰>정쏭린 (청뚜 지진관측센터):“지금으로는 지진이 쇠퇴하는,갈수록 감소하는 주기로 판단됩니다. 강력한 지진은 갈수록 적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간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3년에 1.5회 정도 발생했다는 통계 하나만으로도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핵폭탄보다 자연재해로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지진과 쓰나미, 홍수로 인한 피해.. 쓰촨 대지진 참사는 개발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들에게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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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리포트] 中 쓰촨, 아물지 않는 대지진의 상처
    • 입력 2012-05-13 08:33:24
    • 수정2012-05-13 08:57:2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1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이 뚜렷하실텐데요, 바로 ‘4년 전 오늘’ 일어났던 중국 쓰촨성 대지진은 무려 9만 명의 희생자를 낸 그야말로 대재앙이었습니다. 예, 4년이 지나면서 주민들의 새 생활터전이 마련됐고, 학교며 관공서도 복구되긴 했는데, 그 대지진의 공포와 죽음의 악몽을 겪었던 사람들의 슬픔,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 치유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손관수 특파원이 쓰촨 대지진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4년전 오늘...중국 쓰촨성 청뚜 인근의 원촨, 베이촨, 미앤양, 두장옌 등을 덮친 규모 8의 대지진...사망 6만 9천..실종 만 7천 9백명..중상자만도 37만명이 넘는 대참사였습니다. 4년전 오늘 오후 2시 28분에 멈춘 시계..원촨 지진 참사 현장 기념비가 마치 '그날을 기억하느냐'고 묻는 듯 여행객들을 맞습니다. 오후 수업시간 중 닥쳐온 대재앙..티비에선 많이 봤지만 막상 현장을 보니 말을 잇기 어렵습니다. <인터뷰>린즈민 (추모 여행객):“직접 와서 보니까,그동안 TV에서 많이 본 장면인데도 막상 딱 보니 마음....” 인근 지역 병원의 간호사들도 이곳을 찾아 새 각오를 다지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인터뷰>왕차오 (쯔공현의원 간호사):“2008년 대지진을 겪고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가족만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쓰촨성 지진이 원촨 대지진으로도 불리는 것은 진앙지가 바로 이곳 원촨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가파른 협곡이었으나 크게 넓어진 이계곡이 바로 대지진의 진앙지입니다. 쓰촨 대지진이 대참사로 이어진 것은 지진의 규모도 규모지만 지표에서 불과 19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근접거리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핵폭탄을 그냥 얻어맞은 셈입니다. 산세수려한 명승지였던 이곳 베이촨 창족 자치현은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입니다. 지진과 함께 험준한 산이 무너져 내리며 야채 시장 부근에서만 4천 여명이 그대로 매몰되는 등 도시는 그야말로 폐허가 됐습니다. <인터뷰>양왕 (베이촨 지진유적관리소):“지진전에 이 현정부청사 6층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지진으로 아래 3층이 붕괴돼 묻히고 남은 3층도 기울었습니다. 현정부 간부 70여명이 숨졌습니다.” 두부로 지었느냐며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했던 학교 건물의 붕괴 현장에선 아직도 아이들의 고통이 묻어납니다. 학교가 있던 곳에 내걸린 한 어머니의 편지.. "영원히 사랑한다, 너무 보고 싶다" 편지 끝에 적힌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대지진으로 명을 달리한 동포들을 위해 3번 절을 하겠습니다.” 노란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며 망자들의 한을 달래보지만..다들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터뷰>쳔띠(추모여행객):“마음이 매우 아프네요. 대자연 앞에서 인간들이 이렇게 약하구나 그런 것도 느끼구요.” <인터뷰>완리핑 (추모여행객):“마음이 진정이 안되네요. 진정이 안되요. 이전에 업무차 새로 조성된 신베이촨에 가본적이 있어서 여기 와보고는 싶었는데..” 언뜻 보기에 보통의 언덕 같은 이곳에도 큰 슬픔이 묻혀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이 지역 수재들이 다 모였다는 베이촨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곳엔 베이촨 고등학생 무려 7백명이 묻혀있습니다. 워낙 큰 대참사에 시신 발굴마저 어렵자 아예 이곳을 그들이 영면하는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베이촨 주민들을 위해 새로 건설된 신베이촨 지역입니다..옛 고향에서 50여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마련한 새 보금자리. 반듯하게 뻥뚫린 도로에 새로운 정부청사에, 새로운 주택 등 모든게 새것입니다. 창족 자치현인 만큼 전통 양식을 세심하게 반영했습니다. <인터뷰>쉬장파 (신베이촨현 부현장):“재건 계획은 투자 등등을 포함해서 이미 99% 달성된 상태입니다. 생태환경이나 또 문화,유물 방면 등등은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이것들 말고는 다 됐습니다.” 재건과 빠른 복구에는 자매 도시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큰 몫을 했습니다. 신베이촨은 산동성의 후원을 받았고, 이곳 두장옌의 신농촌 건설에는 상하이시가 적극 후원을 했습니다. 또 이곳 쉐이마오전은 광둥성의 적극 지원하에 창족과 장족, 한족의 문화가 어울리는 말끔한 여행지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재건 과정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뷰>차이다이민 (쉐이마오전 전장):“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 잃었죠, 토지도 없죠. 그렇다고 뭘 생산할 자원이 있나요? 따라서 재건 이후에도 이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도 이전보다는 좀 낫게 말이죠. 이게 정말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새 터전이 마련된 것은 그러나 재건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이와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나 부모 등 더 많은 가족을 잃은 탕쉬애씨..이제는 가족의 안녕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인터뷰>탕쉬애 (신베이촨 주민):“저 혼자 이렇게 말하곤 해요. 무탈한게 복이라구..말씀하셨듯이 그런 뭐 큰 희망, 기대? 그런것 이제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그래요 안그래요.” 아픔을 걷어내고 말끔하게 재건축된 학교..아이들도 해맑음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한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에선 새로운 희망이 싹틉니다. 그러나 죽음의 충격이 잠재된 아이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 기법이 필요합니다. <인터뷰>동쉬애펑 (잉시우소학교 부교장):“지진 이후에는 학생들의 생명에 대한 교육, 그리고 심리 방면에 대한 관심을 두는게 더 많아졌죠..” 사회적 충격이 워낙 컸던 만큼 아이든 어른이든 심리 치료가 필수적이 된 것입니다. 현재 베이촨에만 32곳의 학교, 22곳의 병원 6곳의 사회시설 등 모두 60곳에 전문 심리 치료시설이 설치돼 운영중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자괴감..어렵게 다시 가정을 꾸려도 인간적 번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런쉬애메이 (베이촨 심리진료센터 부주임):“다시 결혼하고, 또 임신하고 하다보면 지진중에 숨진 이전 아내가 생각나는거죠. 그때 아내는 아낄려고 얼마나 애썼는데..하다보면 지금 아내는 뭐가 어떻고 어떻고 이렇게되고..” 쓰촨은 지진 다발 지역입니다. 지진 관측소를 방문한 바로 그날 아침에도 작은 지진이 있었습니다. 어떤 징후가 있는 것인지 분석해 내는게 중요합니다. <인터뷰>정쏭린 (청뚜 지진관측센터):“지금으로는 지진이 쇠퇴하는,갈수록 감소하는 주기로 판단됩니다. 강력한 지진은 갈수록 적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간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3년에 1.5회 정도 발생했다는 통계 하나만으로도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핵폭탄보다 자연재해로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지진과 쓰나미, 홍수로 인한 피해.. 쓰촨 대지진 참사는 개발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들에게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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