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공동시집 낸 시 짓는 농촌 마을

입력 2012.07.11 (09:06) 수정 2012.07.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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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주부들 학창 시절 기억해보면요, 저마다 좋아하는 시 한 편씩 외우고 다니거나, 서툴지만 시도 직접 지어본 기억 있으시죠.

네,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이런 낭만은 다 잊고, 마음도 좀 팍팍해지는 느낌인데요, 이 마을에 가면 누구나 시를 사랑하던 낭만적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시를 짓는 농촌 시인 마을인데요,

조빛나 기자, 어떻게 평범한 농부들이 시의 세계에 빠져든 건가요?

<기자 멘트>

마을 도서관이 큰 역할을 했다는데요.

이 마을에선 대화를 하던 중에도 잠깐 멈춰서 종이에 뭔가를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시인이라면 갑자기 떠오른 시상을 흘려버릴 순 없겠죠.

한손에는 호미를 한 손에 수첩을 갖고 다니는 분들이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까지, 백여 명의 주민들이 공동 시집까지 냈는데요.

이 특별한 마을의 시인들이 얼마전에 서울나들이를 했습니다.

<리포트>

시를 통해 인생의 희망을 찾았던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시 속에 삶을 담아내는 농부 시인들이 있습니다.

전남 곡성에서 서울 나들이에 나선 이분들이 주인공입니다.

<녹취> “촌놈이 서울 오는데 얼마나 좋겠어요!”

첫 번째 일정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것입니다.

정계순 할머니와 최태석 할아버지가 생방송 출연자.

<녹취> DJ :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올라온 특별한 시인들입니다.”

<녹취> 정계순(전남 곡성군) : “시골에서 농사짓는 정계순입니다.”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하는데요.

<녹취> 정계순 : “조랑조랑 많이 열려서 기분 좋아요. 매실이 잘... 자란다.”

<인터뷰> 김송이(피디) : “뭔가 멋을 내려고 하지 않고 꾸미려고 하지 않고 담백하게 쓴 것이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두 번째 일정은 공동시집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 독자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독자 : “반갑습니다. 이따 낭송회 기대합니다.”

은은한 촛불이 켜지고, 독자들 앞에서 담담하게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녹취> “허수아비야 하루 종일 팔 벌리고 우리 콩밭 지켜줘서 참 고맙다.”

<녹취> “시험 보기 2주일 전 애들은 시험공부에 바쁘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나 사 먹고 있다.”

<녹취> “장구배미 삿갓배미 많기도 하다. 논이 도망칠까 봐 세어보고 또 세어보네. 땅과 흙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 농부의 마음이 아니면 어찌 세어보리오.”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에 사는 7살부터 88살까지 주민 105명이 힘을 모아 시집을 낸 것인데요.

114편의 시에선 농부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습니다.

모두가 시인인 마을 참 궁금했습니다. 찾아가 봤는데요.

이른 아침, 논에서 만난 이분. 라디오 생방송에서 뵙던 최태석 할아버지인데요.

<녹취> 최태석 : “쌀, 88번 논에 왔다 갔다 하고 한 톨의 쌀을 얻었도다.”

일을 하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이렇게 바로 적어둡니다.

이렇게 쓴 시가 90여 편. 죽곡 마을 최고의 한시 시인이라고요.

<인터뷰> 최태석 (농민) :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한문은 여태 잊고 살았는데 이 시를 쓰는 계기로 한문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공동시집의 표지모델이 된 최태석 할아버지의 소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녹취> 최태석 : “소, 너를 길러온지 몇 해이던고. 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할 일 없는 소, 나만 쳐다보니. 적재함에 있는 풀 언제 주려는가.”

손자는 먹을 갈고 할아버지는 시를 씁니다.

가족들에게도 시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데요.

<녹취> 최태석 : “반딧불이 같은 핸드폰이 산길을 인도하여.”

<인터뷰> 이향재 (아내) : “시를 쓴다고 하시면서 우리보고도 자꾸 시를 쓰라고 해요. 귀찮게. 혼자만 쓰시면 되지”

한번 쓰다 보니까 계속 쓰게 되었다는 시, 왜 이렇게 시를 쓰는 걸까요?

<인터뷰> 최태석 (농민) : “이 글자는 영원히 있는 것이잖아요 오래도록... 마음만 먹은 (생각은) 금방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된 것이죠.”

마을 어디서나 시 짓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밭 매던 손으로 한자 한자 시 한 구절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갑니다.

콩밭이네요, 시 이름이.

<녹취> “밭을 매니 돌도 자갈 자갈...”

<인터뷰> 김봉순 (농민) : “밭을 매다 생각하니까 시가 한 편 쓰고 싶어서요”

이 마을에서는 일상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마을 회관에서 한글을 공부하면서부터입니다.

단어를 적절하게 쓰는 건 바로 시의 시작이죠.

< 녹취> “공부, 여기다 공부 (쓰세요)” “'앞'자 할 때는 ‘피읖’이죠 ‘피읖’” “즐겁다 할 때 즐겁게”

<인터뷰> 이정일(전남 곡성군 용정리 문예학교 강사) : “(한글) 공부하는 과정 중에 지금처럼 이렇게 시를 써요. 생활 속에서 농사를 짓거나 살아오면서 느끼셨던 것으로 짧게 시를 쓰기도 해요.”

<인터뷰> 신추자 (농민) : “한글도 배우면서 시도 쓰니까 한글 공부가 더 재밌어요.”

그리고 2007년, 죽곡열린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시 쓰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해부턴 마을 자체 시 문학상까지 만들어져서 더많은 농부들의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데요.

<녹취>죽곡열린도서관장 : “조랑조랑 많이 열려서 기분 좋았다. 그런데다가 매실 금이 자꾸 자란다.”

관장님이 이렇게 교정을 봐주세요.

농부들의 삶이 묻어난 시를 만나러 도서관을 찾는 도시인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광란 (광주시 운남동) : “어머니가 농사지으시면서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까. (매실의) 가격이 올라서 (기뻐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것을 단 4줄로 표현한 것이 놀라워요. 시를 듣는데 울컥하는 거에요. 그게 시의 힘인 것 같아요.”

오롯이 땅과 흙에 의지해 정직하게 살아온 삶.

죽곡마을 사람들은 시를 쓰면서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독자들은 시를 보면서 부모님과 고향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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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2-07-11 13: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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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주부들 학창 시절 기억해보면요, 저마다 좋아하는 시 한 편씩 외우고 다니거나, 서툴지만 시도 직접 지어본 기억 있으시죠. 네,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이런 낭만은 다 잊고, 마음도 좀 팍팍해지는 느낌인데요, 이 마을에 가면 누구나 시를 사랑하던 낭만적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시를 짓는 농촌 시인 마을인데요, 조빛나 기자, 어떻게 평범한 농부들이 시의 세계에 빠져든 건가요? <기자 멘트> 마을 도서관이 큰 역할을 했다는데요. 이 마을에선 대화를 하던 중에도 잠깐 멈춰서 종이에 뭔가를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시인이라면 갑자기 떠오른 시상을 흘려버릴 순 없겠죠. 한손에는 호미를 한 손에 수첩을 갖고 다니는 분들이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까지, 백여 명의 주민들이 공동 시집까지 냈는데요. 이 특별한 마을의 시인들이 얼마전에 서울나들이를 했습니다. <리포트> 시를 통해 인생의 희망을 찾았던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시 속에 삶을 담아내는 농부 시인들이 있습니다. 전남 곡성에서 서울 나들이에 나선 이분들이 주인공입니다. <녹취> “촌놈이 서울 오는데 얼마나 좋겠어요!” 첫 번째 일정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것입니다. 정계순 할머니와 최태석 할아버지가 생방송 출연자. <녹취> DJ :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올라온 특별한 시인들입니다.” <녹취> 정계순(전남 곡성군) : “시골에서 농사짓는 정계순입니다.”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하는데요. <녹취> 정계순 : “조랑조랑 많이 열려서 기분 좋아요. 매실이 잘... 자란다.” <인터뷰> 김송이(피디) : “뭔가 멋을 내려고 하지 않고 꾸미려고 하지 않고 담백하게 쓴 것이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두 번째 일정은 공동시집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 독자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독자 : “반갑습니다. 이따 낭송회 기대합니다.” 은은한 촛불이 켜지고, 독자들 앞에서 담담하게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녹취> “허수아비야 하루 종일 팔 벌리고 우리 콩밭 지켜줘서 참 고맙다.” <녹취> “시험 보기 2주일 전 애들은 시험공부에 바쁘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나 사 먹고 있다.” <녹취> “장구배미 삿갓배미 많기도 하다. 논이 도망칠까 봐 세어보고 또 세어보네. 땅과 흙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 농부의 마음이 아니면 어찌 세어보리오.”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에 사는 7살부터 88살까지 주민 105명이 힘을 모아 시집을 낸 것인데요. 114편의 시에선 농부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습니다. 모두가 시인인 마을 참 궁금했습니다. 찾아가 봤는데요. 이른 아침, 논에서 만난 이분. 라디오 생방송에서 뵙던 최태석 할아버지인데요. <녹취> 최태석 : “쌀, 88번 논에 왔다 갔다 하고 한 톨의 쌀을 얻었도다.” 일을 하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이렇게 바로 적어둡니다. 이렇게 쓴 시가 90여 편. 죽곡 마을 최고의 한시 시인이라고요. <인터뷰> 최태석 (농민) :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한문은 여태 잊고 살았는데 이 시를 쓰는 계기로 한문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공동시집의 표지모델이 된 최태석 할아버지의 소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녹취> 최태석 : “소, 너를 길러온지 몇 해이던고. 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할 일 없는 소, 나만 쳐다보니. 적재함에 있는 풀 언제 주려는가.” 손자는 먹을 갈고 할아버지는 시를 씁니다. 가족들에게도 시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데요. <녹취> 최태석 : “반딧불이 같은 핸드폰이 산길을 인도하여.” <인터뷰> 이향재 (아내) : “시를 쓴다고 하시면서 우리보고도 자꾸 시를 쓰라고 해요. 귀찮게. 혼자만 쓰시면 되지” 한번 쓰다 보니까 계속 쓰게 되었다는 시, 왜 이렇게 시를 쓰는 걸까요? <인터뷰> 최태석 (농민) : “이 글자는 영원히 있는 것이잖아요 오래도록... 마음만 먹은 (생각은) 금방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된 것이죠.” 마을 어디서나 시 짓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밭 매던 손으로 한자 한자 시 한 구절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갑니다. 콩밭이네요, 시 이름이. <녹취> “밭을 매니 돌도 자갈 자갈...” <인터뷰> 김봉순 (농민) : “밭을 매다 생각하니까 시가 한 편 쓰고 싶어서요” 이 마을에서는 일상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마을 회관에서 한글을 공부하면서부터입니다. 단어를 적절하게 쓰는 건 바로 시의 시작이죠. < 녹취> “공부, 여기다 공부 (쓰세요)” “'앞'자 할 때는 ‘피읖’이죠 ‘피읖’” “즐겁다 할 때 즐겁게” <인터뷰> 이정일(전남 곡성군 용정리 문예학교 강사) : “(한글) 공부하는 과정 중에 지금처럼 이렇게 시를 써요. 생활 속에서 농사를 짓거나 살아오면서 느끼셨던 것으로 짧게 시를 쓰기도 해요.” <인터뷰> 신추자 (농민) : “한글도 배우면서 시도 쓰니까 한글 공부가 더 재밌어요.” 그리고 2007년, 죽곡열린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시 쓰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해부턴 마을 자체 시 문학상까지 만들어져서 더많은 농부들의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데요. <녹취>죽곡열린도서관장 : “조랑조랑 많이 열려서 기분 좋았다. 그런데다가 매실 금이 자꾸 자란다.” 관장님이 이렇게 교정을 봐주세요. 농부들의 삶이 묻어난 시를 만나러 도서관을 찾는 도시인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광란 (광주시 운남동) : “어머니가 농사지으시면서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까. (매실의) 가격이 올라서 (기뻐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것을 단 4줄로 표현한 것이 놀라워요. 시를 듣는데 울컥하는 거에요. 그게 시의 힘인 것 같아요.” 오롯이 땅과 흙에 의지해 정직하게 살아온 삶. 죽곡마을 사람들은 시를 쓰면서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독자들은 시를 보면서 부모님과 고향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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