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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반성합니다
입력 2013.01.06 (09:18) 수정 2013.01.06 (09:37)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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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독일 정부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의 피해자 가운데 보상을 받지 못한 유대인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끊임없이 과거사 반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러한 독일의 모습은 침략 전쟁과 위안부 역사 등을 부인하는 일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김영인 순회 특파원이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사를 청산하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독일 사회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히틀러는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녹취> 히틀러

히틀러는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고, 유대인을 그 제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 국민들도 동조한 반유대주의 광풍으로, 유대인 6백만 명이 학살됐습니다.

5만 6천여 명의 유대인과 정치범 등이 죽음을 맞았던 독일 중부 부헨발트 수용소.

1945년 나치 정권의 항복 시점까지 생체실험과 무자비한 살육 등으로 악명 높았던 곳입니다.

<인터뷰> 오토마 로트만(1943~45년 수용) : "(아침 소집 때) 간수가 아무 이유없이 한 동료를 수용소 간부들 앞으로 끌고 가더니, 내 눈 앞에서 때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이 곳은 인간 도살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역사 교육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독일 당국은 시체 소각장 등 과거 시설들을 복원해 나치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산 교실로 만들었습니다.

<녹취> 학생 인솔 교사 : "이곳은 사람을 화장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시체를 소멸시키기 위한 곳이었어요."

관람객들은 충격적인 시설과 자료들을 보며 부끄럽고 어두웠던 독일의 역사를 되새깁니다.

수용소 재단 측은 현재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크니게(부헨발트 수용소 재단장) : "수용소가 의미하는 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 평화와 정의, 이런 가치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 중심인,,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 각국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공화국 광장 부근, 유독 시선을 끄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비석 2711개가 파도 물결처럼 들어서 있는 유대인 기념소입니다.

유럽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을 추모하는 곳으로, 면적이 만 9천 제곱미터, 축구장 2개 반 크기입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지 중의 요지입니다.

독일 정부는 이렇게 넓고 중요한 땅을 부끄러운 과거사 반성의 장으로 조성했습니다.

지난 2005년 조성된 이래, 해마다 50만 명의 관람객이 기념소를 찾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리온 슈료어(베를린 시민) : "우리 아이는 나이가 어려서 나치 시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가르쳐줘야하고 이해시켜줘야 할 의무를 느낍니다."

유대인 기념소가 베를린의 중심부에 있다 보니 유럽 수학 여행단이나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습니다.

이 곳을 둘러본 사람들은 독일의 과거사 반성 노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인터뷰> 존 힐데브란트(미국)

1980년 대 말 한 언론인과 역사학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념소 건립 사업은 20년 가까운 토론과 논쟁 끝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인터뷰> 우베 노이메르커(유대인 기념소 재단장) : "물론 저희 젊은 세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지라도,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통일된 독일 국가의 당연한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의 이같은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은 생활 공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카데베 백화점 앞, 유동 인구가 많은 이 곳에는 특이한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다카우, 모두, 나치 시절 악명 높았던 강제 수용소들입니다.

수용소 이름 위쪽에는 '독일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경악의 장소'라고 써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철저하고 진지한 자기 반성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반성은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집권한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나치 시절 유대인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이후, 슈뢰더 전 총리가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기념식에서 유대인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재정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변국과의 화해는 물론 독일의 미래도 없다는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독일은 사과와 반성 외에도 1990년 대 후반부터는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단체가 '기억, 책임, 미래' 재단입니다.

이 재단은 지난 2000년 52억 유로, 우리 돈 9조 원에 이르는 기금으로 출범했습니다.

재단 기금의 절반은 기업이, 절반은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인터뷰> 마르틴 잘름('기억,책임,미래' 재단장) : "독일 사회 모든 분야가 외국인의 강제 노동을 통해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이 반반씩 부담한 겁니다."

독일 정부는 이 재단을 통해 100개 국에 거주하는 2차 대전 강제 징용 노동자와 희생자, 유가족 170만 명에게 47억 유로를 보상했습니다.

2007년을 끝으로 보상금 지급은 마무리된 상태지만,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해 11월,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 피해자 가운데 아직도 보상을 받지 못한 유대인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볼프강 쇼이블레(독일 재무장관)

독일에서 이렇게 과거사 정리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해자인 독일의 책임 의식과 함께, 피해자인 유대인들의 기억, 기록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 '야드바솀'에 나와 있는데요.

독일을 방문하기 앞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인들은 이와 같은 기념관과 연구소 등을 설립해서 지금도 과거 독일의 만행을 꼼꼼하게 수집하고 있습니다.

'야드바솀'은 600만 유대인 학살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나치 패망 시점인 1945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찾아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질버크랑('야드바솀' 선임 역사학자)

피해자들이 상흔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가해자에겐 부담이요, 압박이나 다름 없습니다.

현재, 독일의 GDP 규모는 세계 4위, 유로존 경제위기를 진정시키고 해결하는 데 맏형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독일의 경제력도 큰 영향을 줬지만 주변국들과의 과거 청산을 말끔히 하며 우정과 신뢰를 쌓아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패전국', '악랄한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썼던 독일은 이제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과거사! 반성합니다
    • 입력 2013-01-06 09:18:31
    • 수정2013-01-06 09:37:2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최근, 독일 정부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의 피해자 가운데 보상을 받지 못한 유대인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끊임없이 과거사 반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러한 독일의 모습은 침략 전쟁과 위안부 역사 등을 부인하는 일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김영인 순회 특파원이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사를 청산하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독일 사회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히틀러는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녹취> 히틀러

히틀러는 국민을 결집시키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고, 유대인을 그 제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 국민들도 동조한 반유대주의 광풍으로, 유대인 6백만 명이 학살됐습니다.

5만 6천여 명의 유대인과 정치범 등이 죽음을 맞았던 독일 중부 부헨발트 수용소.

1945년 나치 정권의 항복 시점까지 생체실험과 무자비한 살육 등으로 악명 높았던 곳입니다.

<인터뷰> 오토마 로트만(1943~45년 수용) : "(아침 소집 때) 간수가 아무 이유없이 한 동료를 수용소 간부들 앞으로 끌고 가더니, 내 눈 앞에서 때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이 곳은 인간 도살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역사 교육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독일 당국은 시체 소각장 등 과거 시설들을 복원해 나치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산 교실로 만들었습니다.

<녹취> 학생 인솔 교사 : "이곳은 사람을 화장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시체를 소멸시키기 위한 곳이었어요."

관람객들은 충격적인 시설과 자료들을 보며 부끄럽고 어두웠던 독일의 역사를 되새깁니다.

수용소 재단 측은 현재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크니게(부헨발트 수용소 재단장) : "수용소가 의미하는 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 평화와 정의, 이런 가치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 중심인,,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 각국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공화국 광장 부근, 유독 시선을 끄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비석 2711개가 파도 물결처럼 들어서 있는 유대인 기념소입니다.

유럽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을 추모하는 곳으로, 면적이 만 9천 제곱미터, 축구장 2개 반 크기입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지 중의 요지입니다.

독일 정부는 이렇게 넓고 중요한 땅을 부끄러운 과거사 반성의 장으로 조성했습니다.

지난 2005년 조성된 이래, 해마다 50만 명의 관람객이 기념소를 찾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리온 슈료어(베를린 시민) : "우리 아이는 나이가 어려서 나치 시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가르쳐줘야하고 이해시켜줘야 할 의무를 느낍니다."

유대인 기념소가 베를린의 중심부에 있다 보니 유럽 수학 여행단이나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습니다.

이 곳을 둘러본 사람들은 독일의 과거사 반성 노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인터뷰> 존 힐데브란트(미국)

1980년 대 말 한 언론인과 역사학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념소 건립 사업은 20년 가까운 토론과 논쟁 끝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인터뷰> 우베 노이메르커(유대인 기념소 재단장) : "물론 저희 젊은 세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지라도,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통일된 독일 국가의 당연한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의 이같은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은 생활 공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카데베 백화점 앞, 유동 인구가 많은 이 곳에는 특이한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다카우, 모두, 나치 시절 악명 높았던 강제 수용소들입니다.

수용소 이름 위쪽에는 '독일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경악의 장소'라고 써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철저하고 진지한 자기 반성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반성은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집권한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나치 시절 유대인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이후, 슈뢰더 전 총리가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기념식에서 유대인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재정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변국과의 화해는 물론 독일의 미래도 없다는 인식을 공유했습니다.

독일은 사과와 반성 외에도 1990년 대 후반부터는 전쟁 범죄에 대한 보상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단체가 '기억, 책임, 미래' 재단입니다.

이 재단은 지난 2000년 52억 유로, 우리 돈 9조 원에 이르는 기금으로 출범했습니다.

재단 기금의 절반은 기업이, 절반은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인터뷰> 마르틴 잘름('기억,책임,미래' 재단장) : "독일 사회 모든 분야가 외국인의 강제 노동을 통해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이 반반씩 부담한 겁니다."

독일 정부는 이 재단을 통해 100개 국에 거주하는 2차 대전 강제 징용 노동자와 희생자, 유가족 170만 명에게 47억 유로를 보상했습니다.

2007년을 끝으로 보상금 지급은 마무리된 상태지만,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해 11월,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 피해자 가운데 아직도 보상을 받지 못한 유대인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볼프강 쇼이블레(독일 재무장관)

독일에서 이렇게 과거사 정리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해자인 독일의 책임 의식과 함께, 피해자인 유대인들의 기억, 기록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 '야드바솀'에 나와 있는데요.

독일을 방문하기 앞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인들은 이와 같은 기념관과 연구소 등을 설립해서 지금도 과거 독일의 만행을 꼼꼼하게 수집하고 있습니다.

'야드바솀'은 600만 유대인 학살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나치 패망 시점인 1945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찾아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질버크랑('야드바솀' 선임 역사학자)

피해자들이 상흔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가해자에겐 부담이요, 압박이나 다름 없습니다.

현재, 독일의 GDP 규모는 세계 4위, 유로존 경제위기를 진정시키고 해결하는 데 맏형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독일의 경제력도 큰 영향을 줬지만 주변국들과의 과거 청산을 말끔히 하며 우정과 신뢰를 쌓아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패전국', '악랄한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썼던 독일은 이제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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