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 “형제복지원, 형제도 복지도 없었다”
입력 2014.03.31 (15:37)
수정 2014.03.3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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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형제복지원 사건 지난 75년부터 12년동안 3천여명의 수용자중 상당수가 불법 감금과 인권 유린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 당시 수사 검사와 피해자의 증언을 들어봤는데요.
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진선미 의원 그리고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영선변호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조영선 변호사 : "반갑습니다."
앵커 :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 검찰이 수사를 했고 원장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나고 다시 이슈화되는 이유가 뭘까요? 조영선 변호사님."
조영선 변호사 : " 사건이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마는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 8살이랄지 40세의 젊은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배움이 부족했거나 빈곤한 상태. 또 그리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능력이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27년 동안 사실 한 차례도 이 부분에 대한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고요. 다행히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만천하에 이런 극악한 상황에서의 인권침해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이슈를 만들었다. 대책위는 몇 년도에 꾸려졌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대책위가 꾸려진 것은 작년 2013년 3월에 준비를 거쳤고요. 그래서 11월달에 본격적으로 대책위가 출범을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앵커 : "그동안에 의원님, 삼청교육대 이런 문제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은 피해자가 3000여 명입니다, 당시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아마 크고 작은 피해를 봤을 텐데 그동안 왜 이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진선미 의원 : "일단은 조금 전에 조영선 변호사께서도 지적을 했듯이 이 대상자들이 그 당시에 대부분이 아동이나 청소년이었고요. 또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폭행이나 성폭행이나 또 심지어 살인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후유증이나 장애에 시달리는 그런 분들이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이 문제의 시작이 곧 또 다른 문제인 건데요. 그러니까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내몰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데 또 그렇게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런 사건에서 얼마나 희생을 당하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조차도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지가 않았던 거죠."
앵커 : "자신들의 피해를 우리 사회에 호소할 여력조차 없었다 이 말이죠?"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해에 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했다는데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 문제는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발생한 지 1년 정도 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지금 27년이 넘은 거라서."
앵커 : "당시 형제복지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선미 의원 : "그래서 사실상의 조사는 할 수 없되 다만 그 문제를 정책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해서 인권정책과로 넘겨졌다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 "뚜렷한 결과는 없군요, 아직."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 여야의원 54명이 참여해서 특별법이 발의가 됐습니다. 이게 어떤 내용이 포함이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사실은 옆에 계신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해서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대책위를 꾸려서 지금까지도 민간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이런 부분들을 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필요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어서 너무나 문제가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거거든요."
앵커 : "진짜 필요한 자료란 뭘까요?"
진선미 의원 : "진짜 필요한 자료는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실제로 형제복지원 재단에서 가지고 있었던 자료들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수사가 진행이 됐고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수사관련 자료들, 재판기록들 이런 부분들은 민간영역에서 그것을 입수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가 마련한 법안 안에는 국무총리 산하의 특별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게 기한을 한 2년 정도로 해서요. 그래서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밝혀진다고 하면 그 희생자들이나 피해자들에 대해서 일정한 의료지원비라든가 생활지원금이라든가 그리고 또 그것에 대한 기본적으로 기념사업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근거규정을 저희가 마련하는 거죠."
앵커 : "이 법안이 통과가 돼야 할 텐데 사실 많은 법안들이 발목이 잡히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전망이 되고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지금 제가 책도 가져왔는데요."
앵커 : "피해자가 쓴 책이죠?"
진선미 의원 : "네. 이 책이 2012년 11월에 밝간이 되면서부터 국회에서 이렇게 몇 차례 기회를 가졌었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데 저희가 짧게 발의를 시작했는데도 54분이 의견을 모아주셨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은 무슨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부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빠르게 저는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앵커 : "당시 피해상황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분이 피해자들 증언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 성폭행까지.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요. 두 분이 직접 많은 피해자들 만나봤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조영선 변호사: 구체적인 사례들은 사망자가 있었는데요. 피해자 가족들이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쪽에 가서 보니까 온몸이 멍이 든 상태에서 사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심부전증."
앵커 : "누가 봐도 구타에 의한 사망인데."
조영선 변호사 : "구타에 의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있음에도 조사되지 않은 그런 사례들이 많이 지금도 현재까지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앵커 : "진 의원님도 책도 읽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미 의원 : "저는 한종선 씨가 아마 지난주에도 통화를 하셨다고 그렇게 들었는데요. 저는 그분의 책에 보면 실제로 그림까지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본인의 기억에 힘입어서 이렇게 쭉 썼는데요."
앵커 : "당시 9살이었죠."
진선미 의원 : "본인의 사례가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한종선 씨가 자기 누나 12살, 3살 많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거거든요. 그리고 한참 뒤에 그 아버지도 그 복지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다 정신이 말짱했거든요. 그런데 그 누나도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되면서 정신이상자가 되셔서 지금은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고요. 그 아버지도 역시 똑같이 그런 폭행이나 이런 것들을 당하고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여전히 또 정신병동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도 엄청난 폭행과 굶주림과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겪어내고.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 불을 끈 상태로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지금도 불을 켜고."
앵커 : "제가 보니까 찬물도 목욕도 못하고 본인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하셨어요, 9살인데."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여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렇게 성폭행을 당하고요. 또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게 문제가 될까 봐 그 임신한 아이들을 계단에서 밀어뜨린다거나 폭행해서 강제로 낙태를 시키는 거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거죠."
앵커 : "살아 있는 지옥이었군요. 문제가 지금 증거는 적고 피해자들의 단순 구두진술뿐인 것이 가장 문제 아니겠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 사망자 같은 경우는 86년, 85년 자료밖에 없습니다. 전체의 명단들을 갖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나 저희가 만남을 피해자들의 증언에 있어서의 어떤 구체성, 굉장히 사실적인 부분입니다. 그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내용들 상당 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 "거짓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조영선 변호사 : "너무나도 적나라하기 때문에. 실상 그러한 본인의 증언만으로도 사실관계는 저희가 조사할 수 있지 않나."
앵커 : "앞서 저희가 성폭행이라든지 만연했던 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 구조가 물론 직원들에 의한 것도 있지만 1소대, 2소대처럼 군다같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중대장을 수용자 중에서 선임을 했어요. 수용자들끼리 위계질서를 만들고."
앵커 : "수용자들끼리 학대가 일어나고."
조영선 변호사 : "그게 박인근이라는 원장이란 분이 특무상사 출신입니다. 군 특수상사 출신이다 보니까 군대문화라는 게 자연스럽게 통솔이 되는 거죠. 조장이 있고 그다음에 소대장이 있고 중대장이 있는 구조에서 1차적인 것은 그들이 피해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 위치에서."
앵커 : "그런 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피해자면서 가해자이지 않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들은 당장의 생존의 문제였죠. 만약에 소대장에 의해서 강등된다면 그들은 죽음입니다."
진선미 의원 :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정말 피자인 거죠, 큰 면으로는. 제가 자료 사망자 수를 가져와봤는데요. 이게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점점 81년도부터 인원이 늘었는데 마지막에는 해에 3000명의 수용인원 중에 89명이 한 해에 사망을 합니다."
앵커 : "판넬을 고정시켜서 시청자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85년이죠. 그러니까 10년째 되던 해에 89명이 갑작스럽게 죽습니까?"
앵커 : "80년대 들어서 사망자가 부쩍 더 늘었군요."
진선미 의원 : "부쩍 늘었습니다. 이게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전적으로 88올림픽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특별지시를 편지로 보냅니다. 그래서 부랑아들을 단속시키라고. 그런데 그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수용을 하게 되면 수용인원 수에 맞춰서 그 복지원에 자금이 지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한 해 20억이니까 한 사람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지원금이 늘어나고 또 그걸 통해서 강제노역을 시켜서 또 돈을 벌고. 이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 아직도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시체들이 암매장되거나 또 시험 해부용으로 그렇게 팔려나가고. 그런 의혹들이 있는 정도입니다."
앵커 : "말씀하신 부분이 시신을 암매장했다면 암매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주위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 아파트 공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유골들이 발굴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그런 것을 추론할 수 있고 또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암매장했었다라고 하는 위치가 교회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가끔 가다 새로운 봉분들이 나오면 이분들이 또 누구한테 맞았서 죽었구나라는 증언들이 꽤 많이 있는 상태입니다."
앵커 : "해부용으로 판 시체들은 증거가 있습니까? 정황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때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 대체적으로 있습니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하루라도 특별법안이 통과가 돼서 국가 차원에서 위원회가 꾸려지고 그것에 의해서 수사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된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번에는 다행히 여러 관계 부서들이 특별대책위 회의를 한번 했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없어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식절차가 진행이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피해 정도 알아봤고요.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좀더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도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년 만이죠. 87년에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박 모원장이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해마다 한 20억 가까운, 지금으로 말하면 해마다 수백억원 지원받은 건데 횡령혐의만 적용이 됐습니다. 일절 가혹행위라든지 폭행 이런 것은 적용이 안 된 겁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러니까 당시에 수사기소되었던 건 일단 개인 횡령에 의해서 85년도, 86년도에 횡령금액이 6억 8000 정도가 기소가 됐고요."
앵커 : "85, 86년도 횡령금액만 기소가 됐고."
조영선 변호사 : "그다음에 형제복지원 자체 내에서의 폭력이나 감금행위가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울주작업장이라고 해서 170여 명 정도가 이송돼서 거기에서 감금당한 상태에서 노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발생한 한 명의 폭행치사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폭행사건에서는 그때 가해자였던 소대장과 중대장만 처벌받았던 겁니다."
앵커 : "그럼 나머지 폭행이나 연합 가혹행위들은 공소장에 아예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소됐는데 무죄났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아예 없습니다."
앵커 : "조사가 안 된 거군요. 수사가 안 된 거군요."
조영선 변호사 : "실제로 말씀 들어보면 수용자끼리 싸우거나 학대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박 원장이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그렇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조영선 변호사 : "직접적인 행위는 안 하지만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지시를 한다든지 분대장을 불러서 조인트를 깐다든지 이런 형태로 해서 상부에서 아래로 향한 폭력이 있었다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네티즌들이 가해자 처벌해라,여론이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증거나 설령 어느 한쪽에서는 이미 어떤 증거도 없는데 가해자로 지목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주장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조영선 변호사 :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그 당시에 특수감금이란 부분도 죄명으로 포함돼 있었지만 그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게 된 배경이 결국은 그렇게 감금을 하게 된 것은 국가에서 정한 내무부 훈령에 의해서, 기준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니까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또 여러 가지의 외압에 의해서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파견된 경찰들이 소환돼서 다시 조사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사례도 있었다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씀드렸지만 공식절차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일단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죄도 2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나면 되기가 어려운 부분이죠. 그래서 형사처벌은 어떨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관련해서 사실상의 손해배상이나 또 국가에 대한 구상권이나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 "말씀하신 것처럼 수사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예상되는 게 수사가 시작되면서 한 30여 명이 일제히 탈출해서 경찰서 가서 이 사건을 신고했더니 다시 잡혀갔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서도 실제로 부랑아라는 게 아니고 억지로 강제로 들어갔을 때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편지를 전달해 달라거나 했는데도 그런 것들이 차단됐다라는 그런 증언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정말 전방위적으로 그 당시에 관련된 공권력, 여러 권력 기관들에게 어떻게 이 사건이 이렇게 감춰질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밝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결국에는 그 당시 정권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살아 있는 지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제는 많은 분들이 공분을 하고 계신 게 박 모원장이 그 당시에도 물론 훈장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마는 그 뒤로도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박 원장 일가가 지금도 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죠?"
조영선 변호사 : "현재까지도. 86년도에 2년 6개월형을 마치고 복귀를 바로 원장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 뒤로 형제복지원 재단 이름이 몇 차례 바뀌어지면서 형제복지원 지원재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최근에도 바뀌었고요. 그래서 현재까지 추산되어지는 그 일가의 재산이 약 1000억대."
앵커 : "1000억원대."
조영선 변호사 : "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운영하는 복지법인도 수사 당하고 있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맞습니다."
앵커 : "횡령 혐의입니까?"
조영선 변호사 : "부산저축은행을 불법대출을 받았다라는 의혹도 있고요. 또 재단 내에서 공금에 대한 횡령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설립허가를 취소까지도 검토한다라는 거죠. 물론 그게 이 사건 때문은 아니고요. 지금 현재 그분들이 하신 행위에 대해서."
앵커 : "지금 복지행위에 대한 비위행위가 포착돼서 부산시가 복지법인 반려를 검토하고 있다."
조영선 변호사 :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마는..."
앵커 : "당시 현장을 급습했던 검사가 금고를 열어보니까 가득 쌓여있었다, 현찰이."
앵커 : "20억원 예금증서가 있었다."
조영선 변호사 : "네."
앵커 : "끝으로 특별법 발의가 됐고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요. 이 사건 제대로 좀 검증이 되려면 진상이라도 좀 밝혀지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진선미 의원 : "맞습니다. 사실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비롯해서 다 문명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과거에 있을 수 없는 일들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건들이 많았죠.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상으로 그걸 어떻게 정리해내느냐가 그 사회의 발전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사건은 사실 한 장소에서 500명이 넘는 공식적 사망자가 나온 엄청난 인권유린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들의 진상규명과 또 피해자 보상과 또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책임규명 이게 필요하다고 보여지고요."
앵커 : "혹시 이슈가 되면서 제보가 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저희가 접수한 숫자가 150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작년에 한 70여 명 정도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저희가 민간인 수준이다 보니까 조사하는 데 한계는 있습니다마는 계속적으로 접수는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해결방법 찾아봤습니다. 진선미 의원 그리고 조영선 변호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 "고맙습니다."
진선미 의원 : "고맙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지난 75년부터 12년동안 3천여명의 수용자중 상당수가 불법 감금과 인권 유린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 당시 수사 검사와 피해자의 증언을 들어봤는데요.
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진선미 의원 그리고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영선변호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조영선 변호사 : "반갑습니다."
앵커 :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 검찰이 수사를 했고 원장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나고 다시 이슈화되는 이유가 뭘까요? 조영선 변호사님."
조영선 변호사 : " 사건이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마는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 8살이랄지 40세의 젊은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배움이 부족했거나 빈곤한 상태. 또 그리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능력이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27년 동안 사실 한 차례도 이 부분에 대한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고요. 다행히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만천하에 이런 극악한 상황에서의 인권침해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이슈를 만들었다. 대책위는 몇 년도에 꾸려졌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대책위가 꾸려진 것은 작년 2013년 3월에 준비를 거쳤고요. 그래서 11월달에 본격적으로 대책위가 출범을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앵커 : "그동안에 의원님, 삼청교육대 이런 문제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은 피해자가 3000여 명입니다, 당시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아마 크고 작은 피해를 봤을 텐데 그동안 왜 이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진선미 의원 : "일단은 조금 전에 조영선 변호사께서도 지적을 했듯이 이 대상자들이 그 당시에 대부분이 아동이나 청소년이었고요. 또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폭행이나 성폭행이나 또 심지어 살인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후유증이나 장애에 시달리는 그런 분들이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이 문제의 시작이 곧 또 다른 문제인 건데요. 그러니까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내몰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데 또 그렇게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런 사건에서 얼마나 희생을 당하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조차도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지가 않았던 거죠."
앵커 : "자신들의 피해를 우리 사회에 호소할 여력조차 없었다 이 말이죠?"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해에 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했다는데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 문제는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발생한 지 1년 정도 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지금 27년이 넘은 거라서."
앵커 : "당시 형제복지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선미 의원 : "그래서 사실상의 조사는 할 수 없되 다만 그 문제를 정책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해서 인권정책과로 넘겨졌다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 "뚜렷한 결과는 없군요, 아직."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 여야의원 54명이 참여해서 특별법이 발의가 됐습니다. 이게 어떤 내용이 포함이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사실은 옆에 계신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해서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대책위를 꾸려서 지금까지도 민간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이런 부분들을 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필요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어서 너무나 문제가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거거든요."
앵커 : "진짜 필요한 자료란 뭘까요?"
진선미 의원 : "진짜 필요한 자료는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실제로 형제복지원 재단에서 가지고 있었던 자료들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수사가 진행이 됐고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수사관련 자료들, 재판기록들 이런 부분들은 민간영역에서 그것을 입수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가 마련한 법안 안에는 국무총리 산하의 특별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게 기한을 한 2년 정도로 해서요. 그래서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밝혀진다고 하면 그 희생자들이나 피해자들에 대해서 일정한 의료지원비라든가 생활지원금이라든가 그리고 또 그것에 대한 기본적으로 기념사업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근거규정을 저희가 마련하는 거죠."
앵커 : "이 법안이 통과가 돼야 할 텐데 사실 많은 법안들이 발목이 잡히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전망이 되고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지금 제가 책도 가져왔는데요."
앵커 : "피해자가 쓴 책이죠?"
진선미 의원 : "네. 이 책이 2012년 11월에 밝간이 되면서부터 국회에서 이렇게 몇 차례 기회를 가졌었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데 저희가 짧게 발의를 시작했는데도 54분이 의견을 모아주셨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은 무슨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부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빠르게 저는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앵커 : "당시 피해상황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분이 피해자들 증언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 성폭행까지.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요. 두 분이 직접 많은 피해자들 만나봤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조영선 변호사: 구체적인 사례들은 사망자가 있었는데요. 피해자 가족들이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쪽에 가서 보니까 온몸이 멍이 든 상태에서 사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심부전증."
앵커 : "누가 봐도 구타에 의한 사망인데."
조영선 변호사 : "구타에 의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있음에도 조사되지 않은 그런 사례들이 많이 지금도 현재까지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앵커 : "진 의원님도 책도 읽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미 의원 : "저는 한종선 씨가 아마 지난주에도 통화를 하셨다고 그렇게 들었는데요. 저는 그분의 책에 보면 실제로 그림까지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본인의 기억에 힘입어서 이렇게 쭉 썼는데요."
앵커 : "당시 9살이었죠."
진선미 의원 : "본인의 사례가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한종선 씨가 자기 누나 12살, 3살 많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거거든요. 그리고 한참 뒤에 그 아버지도 그 복지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다 정신이 말짱했거든요. 그런데 그 누나도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되면서 정신이상자가 되셔서 지금은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고요. 그 아버지도 역시 똑같이 그런 폭행이나 이런 것들을 당하고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여전히 또 정신병동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도 엄청난 폭행과 굶주림과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겪어내고.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 불을 끈 상태로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지금도 불을 켜고."
앵커 : "제가 보니까 찬물도 목욕도 못하고 본인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하셨어요, 9살인데."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여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렇게 성폭행을 당하고요. 또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게 문제가 될까 봐 그 임신한 아이들을 계단에서 밀어뜨린다거나 폭행해서 강제로 낙태를 시키는 거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거죠."
앵커 : "살아 있는 지옥이었군요. 문제가 지금 증거는 적고 피해자들의 단순 구두진술뿐인 것이 가장 문제 아니겠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 사망자 같은 경우는 86년, 85년 자료밖에 없습니다. 전체의 명단들을 갖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나 저희가 만남을 피해자들의 증언에 있어서의 어떤 구체성, 굉장히 사실적인 부분입니다. 그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내용들 상당 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 "거짓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조영선 변호사 : "너무나도 적나라하기 때문에. 실상 그러한 본인의 증언만으로도 사실관계는 저희가 조사할 수 있지 않나."
앵커 : "앞서 저희가 성폭행이라든지 만연했던 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 구조가 물론 직원들에 의한 것도 있지만 1소대, 2소대처럼 군다같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중대장을 수용자 중에서 선임을 했어요. 수용자들끼리 위계질서를 만들고."
앵커 : "수용자들끼리 학대가 일어나고."
조영선 변호사 : "그게 박인근이라는 원장이란 분이 특무상사 출신입니다. 군 특수상사 출신이다 보니까 군대문화라는 게 자연스럽게 통솔이 되는 거죠. 조장이 있고 그다음에 소대장이 있고 중대장이 있는 구조에서 1차적인 것은 그들이 피해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 위치에서."
앵커 : "그런 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피해자면서 가해자이지 않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들은 당장의 생존의 문제였죠. 만약에 소대장에 의해서 강등된다면 그들은 죽음입니다."
진선미 의원 :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정말 피자인 거죠, 큰 면으로는. 제가 자료 사망자 수를 가져와봤는데요. 이게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점점 81년도부터 인원이 늘었는데 마지막에는 해에 3000명의 수용인원 중에 89명이 한 해에 사망을 합니다."
앵커 : "판넬을 고정시켜서 시청자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85년이죠. 그러니까 10년째 되던 해에 89명이 갑작스럽게 죽습니까?"
앵커 : "80년대 들어서 사망자가 부쩍 더 늘었군요."
진선미 의원 : "부쩍 늘었습니다. 이게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전적으로 88올림픽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특별지시를 편지로 보냅니다. 그래서 부랑아들을 단속시키라고. 그런데 그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수용을 하게 되면 수용인원 수에 맞춰서 그 복지원에 자금이 지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한 해 20억이니까 한 사람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지원금이 늘어나고 또 그걸 통해서 강제노역을 시켜서 또 돈을 벌고. 이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 아직도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시체들이 암매장되거나 또 시험 해부용으로 그렇게 팔려나가고. 그런 의혹들이 있는 정도입니다."
앵커 : "말씀하신 부분이 시신을 암매장했다면 암매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주위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 아파트 공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유골들이 발굴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그런 것을 추론할 수 있고 또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암매장했었다라고 하는 위치가 교회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가끔 가다 새로운 봉분들이 나오면 이분들이 또 누구한테 맞았서 죽었구나라는 증언들이 꽤 많이 있는 상태입니다."
앵커 : "해부용으로 판 시체들은 증거가 있습니까? 정황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때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 대체적으로 있습니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하루라도 특별법안이 통과가 돼서 국가 차원에서 위원회가 꾸려지고 그것에 의해서 수사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된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번에는 다행히 여러 관계 부서들이 특별대책위 회의를 한번 했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없어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식절차가 진행이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피해 정도 알아봤고요.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좀더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도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년 만이죠. 87년에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박 모원장이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해마다 한 20억 가까운, 지금으로 말하면 해마다 수백억원 지원받은 건데 횡령혐의만 적용이 됐습니다. 일절 가혹행위라든지 폭행 이런 것은 적용이 안 된 겁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러니까 당시에 수사기소되었던 건 일단 개인 횡령에 의해서 85년도, 86년도에 횡령금액이 6억 8000 정도가 기소가 됐고요."
앵커 : "85, 86년도 횡령금액만 기소가 됐고."
조영선 변호사 : "그다음에 형제복지원 자체 내에서의 폭력이나 감금행위가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울주작업장이라고 해서 170여 명 정도가 이송돼서 거기에서 감금당한 상태에서 노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발생한 한 명의 폭행치사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폭행사건에서는 그때 가해자였던 소대장과 중대장만 처벌받았던 겁니다."
앵커 : "그럼 나머지 폭행이나 연합 가혹행위들은 공소장에 아예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소됐는데 무죄났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아예 없습니다."
앵커 : "조사가 안 된 거군요. 수사가 안 된 거군요."
조영선 변호사 : "실제로 말씀 들어보면 수용자끼리 싸우거나 학대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박 원장이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그렇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조영선 변호사 : "직접적인 행위는 안 하지만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지시를 한다든지 분대장을 불러서 조인트를 깐다든지 이런 형태로 해서 상부에서 아래로 향한 폭력이 있었다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네티즌들이 가해자 처벌해라,여론이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증거나 설령 어느 한쪽에서는 이미 어떤 증거도 없는데 가해자로 지목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주장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조영선 변호사 :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그 당시에 특수감금이란 부분도 죄명으로 포함돼 있었지만 그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게 된 배경이 결국은 그렇게 감금을 하게 된 것은 국가에서 정한 내무부 훈령에 의해서, 기준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니까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또 여러 가지의 외압에 의해서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파견된 경찰들이 소환돼서 다시 조사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사례도 있었다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씀드렸지만 공식절차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일단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죄도 2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나면 되기가 어려운 부분이죠. 그래서 형사처벌은 어떨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관련해서 사실상의 손해배상이나 또 국가에 대한 구상권이나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 "말씀하신 것처럼 수사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예상되는 게 수사가 시작되면서 한 30여 명이 일제히 탈출해서 경찰서 가서 이 사건을 신고했더니 다시 잡혀갔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서도 실제로 부랑아라는 게 아니고 억지로 강제로 들어갔을 때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편지를 전달해 달라거나 했는데도 그런 것들이 차단됐다라는 그런 증언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정말 전방위적으로 그 당시에 관련된 공권력, 여러 권력 기관들에게 어떻게 이 사건이 이렇게 감춰질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밝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결국에는 그 당시 정권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살아 있는 지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제는 많은 분들이 공분을 하고 계신 게 박 모원장이 그 당시에도 물론 훈장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마는 그 뒤로도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박 원장 일가가 지금도 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죠?"
조영선 변호사 : "현재까지도. 86년도에 2년 6개월형을 마치고 복귀를 바로 원장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 뒤로 형제복지원 재단 이름이 몇 차례 바뀌어지면서 형제복지원 지원재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최근에도 바뀌었고요. 그래서 현재까지 추산되어지는 그 일가의 재산이 약 1000억대."
앵커 : "1000억원대."
조영선 변호사 : "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운영하는 복지법인도 수사 당하고 있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맞습니다."
앵커 : "횡령 혐의입니까?"
조영선 변호사 : "부산저축은행을 불법대출을 받았다라는 의혹도 있고요. 또 재단 내에서 공금에 대한 횡령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설립허가를 취소까지도 검토한다라는 거죠. 물론 그게 이 사건 때문은 아니고요. 지금 현재 그분들이 하신 행위에 대해서."
앵커 : "지금 복지행위에 대한 비위행위가 포착돼서 부산시가 복지법인 반려를 검토하고 있다."
조영선 변호사 :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마는..."
앵커 : "당시 현장을 급습했던 검사가 금고를 열어보니까 가득 쌓여있었다, 현찰이."
앵커 : "20억원 예금증서가 있었다."
조영선 변호사 : "네."
앵커 : "끝으로 특별법 발의가 됐고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요. 이 사건 제대로 좀 검증이 되려면 진상이라도 좀 밝혀지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진선미 의원 : "맞습니다. 사실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비롯해서 다 문명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과거에 있을 수 없는 일들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건들이 많았죠.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상으로 그걸 어떻게 정리해내느냐가 그 사회의 발전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사건은 사실 한 장소에서 500명이 넘는 공식적 사망자가 나온 엄청난 인권유린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들의 진상규명과 또 피해자 보상과 또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책임규명 이게 필요하다고 보여지고요."
앵커 : "혹시 이슈가 되면서 제보가 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저희가 접수한 숫자가 150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작년에 한 70여 명 정도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저희가 민간인 수준이다 보니까 조사하는 데 한계는 있습니다마는 계속적으로 접수는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해결방법 찾아봤습니다. 진선미 의원 그리고 조영선 변호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 "고맙습니다."
진선미 의원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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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이슈] “형제복지원, 형제도 복지도 없었다”
-
- 입력 2014-03-31 15:39:32
- 수정2014-03-31 17:57:07
<앵커 멘트>
형제복지원 사건 지난 75년부터 12년동안 3천여명의 수용자중 상당수가 불법 감금과 인권 유린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 당시 수사 검사와 피해자의 증언을 들어봤는데요.
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진선미 의원 그리고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영선변호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조영선 변호사 : "반갑습니다."
앵커 :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 검찰이 수사를 했고 원장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나고 다시 이슈화되는 이유가 뭘까요? 조영선 변호사님."
조영선 변호사 : " 사건이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마는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 8살이랄지 40세의 젊은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배움이 부족했거나 빈곤한 상태. 또 그리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능력이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27년 동안 사실 한 차례도 이 부분에 대한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고요. 다행히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만천하에 이런 극악한 상황에서의 인권침해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이슈를 만들었다. 대책위는 몇 년도에 꾸려졌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대책위가 꾸려진 것은 작년 2013년 3월에 준비를 거쳤고요. 그래서 11월달에 본격적으로 대책위가 출범을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앵커 : "그동안에 의원님, 삼청교육대 이런 문제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은 피해자가 3000여 명입니다, 당시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아마 크고 작은 피해를 봤을 텐데 그동안 왜 이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진선미 의원 : "일단은 조금 전에 조영선 변호사께서도 지적을 했듯이 이 대상자들이 그 당시에 대부분이 아동이나 청소년이었고요. 또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폭행이나 성폭행이나 또 심지어 살인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후유증이나 장애에 시달리는 그런 분들이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이 문제의 시작이 곧 또 다른 문제인 건데요. 그러니까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내몰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데 또 그렇게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런 사건에서 얼마나 희생을 당하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조차도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지가 않았던 거죠."
앵커 : "자신들의 피해를 우리 사회에 호소할 여력조차 없었다 이 말이죠?"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해에 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했다는데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 문제는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발생한 지 1년 정도 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지금 27년이 넘은 거라서."
앵커 : "당시 형제복지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선미 의원 : "그래서 사실상의 조사는 할 수 없되 다만 그 문제를 정책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해서 인권정책과로 넘겨졌다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 "뚜렷한 결과는 없군요, 아직."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 여야의원 54명이 참여해서 특별법이 발의가 됐습니다. 이게 어떤 내용이 포함이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사실은 옆에 계신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해서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대책위를 꾸려서 지금까지도 민간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이런 부분들을 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필요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어서 너무나 문제가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거거든요."
앵커 : "진짜 필요한 자료란 뭘까요?"
진선미 의원 : "진짜 필요한 자료는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실제로 형제복지원 재단에서 가지고 있었던 자료들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수사가 진행이 됐고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수사관련 자료들, 재판기록들 이런 부분들은 민간영역에서 그것을 입수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가 마련한 법안 안에는 국무총리 산하의 특별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게 기한을 한 2년 정도로 해서요. 그래서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밝혀진다고 하면 그 희생자들이나 피해자들에 대해서 일정한 의료지원비라든가 생활지원금이라든가 그리고 또 그것에 대한 기본적으로 기념사업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근거규정을 저희가 마련하는 거죠."
앵커 : "이 법안이 통과가 돼야 할 텐데 사실 많은 법안들이 발목이 잡히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전망이 되고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지금 제가 책도 가져왔는데요."
앵커 : "피해자가 쓴 책이죠?"
진선미 의원 : "네. 이 책이 2012년 11월에 밝간이 되면서부터 국회에서 이렇게 몇 차례 기회를 가졌었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데 저희가 짧게 발의를 시작했는데도 54분이 의견을 모아주셨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은 무슨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부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빠르게 저는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앵커 : "당시 피해상황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분이 피해자들 증언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 성폭행까지.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요. 두 분이 직접 많은 피해자들 만나봤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조영선 변호사: 구체적인 사례들은 사망자가 있었는데요. 피해자 가족들이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쪽에 가서 보니까 온몸이 멍이 든 상태에서 사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심부전증."
앵커 : "누가 봐도 구타에 의한 사망인데."
조영선 변호사 : "구타에 의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있음에도 조사되지 않은 그런 사례들이 많이 지금도 현재까지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앵커 : "진 의원님도 책도 읽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미 의원 : "저는 한종선 씨가 아마 지난주에도 통화를 하셨다고 그렇게 들었는데요. 저는 그분의 책에 보면 실제로 그림까지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본인의 기억에 힘입어서 이렇게 쭉 썼는데요."
앵커 : "당시 9살이었죠."
진선미 의원 : "본인의 사례가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한종선 씨가 자기 누나 12살, 3살 많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거거든요. 그리고 한참 뒤에 그 아버지도 그 복지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다 정신이 말짱했거든요. 그런데 그 누나도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되면서 정신이상자가 되셔서 지금은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고요. 그 아버지도 역시 똑같이 그런 폭행이나 이런 것들을 당하고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여전히 또 정신병동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도 엄청난 폭행과 굶주림과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겪어내고.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 불을 끈 상태로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지금도 불을 켜고."
앵커 : "제가 보니까 찬물도 목욕도 못하고 본인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하셨어요, 9살인데."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여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렇게 성폭행을 당하고요. 또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게 문제가 될까 봐 그 임신한 아이들을 계단에서 밀어뜨린다거나 폭행해서 강제로 낙태를 시키는 거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거죠."
앵커 : "살아 있는 지옥이었군요. 문제가 지금 증거는 적고 피해자들의 단순 구두진술뿐인 것이 가장 문제 아니겠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 사망자 같은 경우는 86년, 85년 자료밖에 없습니다. 전체의 명단들을 갖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나 저희가 만남을 피해자들의 증언에 있어서의 어떤 구체성, 굉장히 사실적인 부분입니다. 그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내용들 상당 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 "거짓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조영선 변호사 : "너무나도 적나라하기 때문에. 실상 그러한 본인의 증언만으로도 사실관계는 저희가 조사할 수 있지 않나."
앵커 : "앞서 저희가 성폭행이라든지 만연했던 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 구조가 물론 직원들에 의한 것도 있지만 1소대, 2소대처럼 군다같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중대장을 수용자 중에서 선임을 했어요. 수용자들끼리 위계질서를 만들고."
앵커 : "수용자들끼리 학대가 일어나고."
조영선 변호사 : "그게 박인근이라는 원장이란 분이 특무상사 출신입니다. 군 특수상사 출신이다 보니까 군대문화라는 게 자연스럽게 통솔이 되는 거죠. 조장이 있고 그다음에 소대장이 있고 중대장이 있는 구조에서 1차적인 것은 그들이 피해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 위치에서."
앵커 : "그런 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피해자면서 가해자이지 않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들은 당장의 생존의 문제였죠. 만약에 소대장에 의해서 강등된다면 그들은 죽음입니다."
진선미 의원 :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정말 피자인 거죠, 큰 면으로는. 제가 자료 사망자 수를 가져와봤는데요. 이게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점점 81년도부터 인원이 늘었는데 마지막에는 해에 3000명의 수용인원 중에 89명이 한 해에 사망을 합니다."
앵커 : "판넬을 고정시켜서 시청자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85년이죠. 그러니까 10년째 되던 해에 89명이 갑작스럽게 죽습니까?"
앵커 : "80년대 들어서 사망자가 부쩍 더 늘었군요."
진선미 의원 : "부쩍 늘었습니다. 이게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전적으로 88올림픽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특별지시를 편지로 보냅니다. 그래서 부랑아들을 단속시키라고. 그런데 그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수용을 하게 되면 수용인원 수에 맞춰서 그 복지원에 자금이 지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한 해 20억이니까 한 사람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지원금이 늘어나고 또 그걸 통해서 강제노역을 시켜서 또 돈을 벌고. 이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 아직도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시체들이 암매장되거나 또 시험 해부용으로 그렇게 팔려나가고. 그런 의혹들이 있는 정도입니다."
앵커 : "말씀하신 부분이 시신을 암매장했다면 암매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주위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 아파트 공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유골들이 발굴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그런 것을 추론할 수 있고 또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암매장했었다라고 하는 위치가 교회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가끔 가다 새로운 봉분들이 나오면 이분들이 또 누구한테 맞았서 죽었구나라는 증언들이 꽤 많이 있는 상태입니다."
앵커 : "해부용으로 판 시체들은 증거가 있습니까? 정황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때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 대체적으로 있습니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하루라도 특별법안이 통과가 돼서 국가 차원에서 위원회가 꾸려지고 그것에 의해서 수사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된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번에는 다행히 여러 관계 부서들이 특별대책위 회의를 한번 했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없어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식절차가 진행이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피해 정도 알아봤고요.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좀더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도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년 만이죠. 87년에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박 모원장이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해마다 한 20억 가까운, 지금으로 말하면 해마다 수백억원 지원받은 건데 횡령혐의만 적용이 됐습니다. 일절 가혹행위라든지 폭행 이런 것은 적용이 안 된 겁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러니까 당시에 수사기소되었던 건 일단 개인 횡령에 의해서 85년도, 86년도에 횡령금액이 6억 8000 정도가 기소가 됐고요."
앵커 : "85, 86년도 횡령금액만 기소가 됐고."
조영선 변호사 : "그다음에 형제복지원 자체 내에서의 폭력이나 감금행위가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울주작업장이라고 해서 170여 명 정도가 이송돼서 거기에서 감금당한 상태에서 노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발생한 한 명의 폭행치사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폭행사건에서는 그때 가해자였던 소대장과 중대장만 처벌받았던 겁니다."
앵커 : "그럼 나머지 폭행이나 연합 가혹행위들은 공소장에 아예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소됐는데 무죄났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아예 없습니다."
앵커 : "조사가 안 된 거군요. 수사가 안 된 거군요."
조영선 변호사 : "실제로 말씀 들어보면 수용자끼리 싸우거나 학대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박 원장이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그렇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조영선 변호사 : "직접적인 행위는 안 하지만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지시를 한다든지 분대장을 불러서 조인트를 깐다든지 이런 형태로 해서 상부에서 아래로 향한 폭력이 있었다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네티즌들이 가해자 처벌해라,여론이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증거나 설령 어느 한쪽에서는 이미 어떤 증거도 없는데 가해자로 지목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주장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조영선 변호사 :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그 당시에 특수감금이란 부분도 죄명으로 포함돼 있었지만 그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게 된 배경이 결국은 그렇게 감금을 하게 된 것은 국가에서 정한 내무부 훈령에 의해서, 기준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니까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또 여러 가지의 외압에 의해서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파견된 경찰들이 소환돼서 다시 조사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사례도 있었다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씀드렸지만 공식절차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일단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죄도 2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나면 되기가 어려운 부분이죠. 그래서 형사처벌은 어떨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관련해서 사실상의 손해배상이나 또 국가에 대한 구상권이나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 "말씀하신 것처럼 수사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예상되는 게 수사가 시작되면서 한 30여 명이 일제히 탈출해서 경찰서 가서 이 사건을 신고했더니 다시 잡혀갔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서도 실제로 부랑아라는 게 아니고 억지로 강제로 들어갔을 때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편지를 전달해 달라거나 했는데도 그런 것들이 차단됐다라는 그런 증언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정말 전방위적으로 그 당시에 관련된 공권력, 여러 권력 기관들에게 어떻게 이 사건이 이렇게 감춰질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밝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결국에는 그 당시 정권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살아 있는 지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제는 많은 분들이 공분을 하고 계신 게 박 모원장이 그 당시에도 물론 훈장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마는 그 뒤로도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박 원장 일가가 지금도 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죠?"
조영선 변호사 : "현재까지도. 86년도에 2년 6개월형을 마치고 복귀를 바로 원장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 뒤로 형제복지원 재단 이름이 몇 차례 바뀌어지면서 형제복지원 지원재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최근에도 바뀌었고요. 그래서 현재까지 추산되어지는 그 일가의 재산이 약 1000억대."
앵커 : "1000억원대."
조영선 변호사 : "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운영하는 복지법인도 수사 당하고 있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맞습니다."
앵커 : "횡령 혐의입니까?"
조영선 변호사 : "부산저축은행을 불법대출을 받았다라는 의혹도 있고요. 또 재단 내에서 공금에 대한 횡령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설립허가를 취소까지도 검토한다라는 거죠. 물론 그게 이 사건 때문은 아니고요. 지금 현재 그분들이 하신 행위에 대해서."
앵커 : "지금 복지행위에 대한 비위행위가 포착돼서 부산시가 복지법인 반려를 검토하고 있다."
조영선 변호사 :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마는..."
앵커 : "당시 현장을 급습했던 검사가 금고를 열어보니까 가득 쌓여있었다, 현찰이."
앵커 : "20억원 예금증서가 있었다."
조영선 변호사 : "네."
앵커 : "끝으로 특별법 발의가 됐고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요. 이 사건 제대로 좀 검증이 되려면 진상이라도 좀 밝혀지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진선미 의원 : "맞습니다. 사실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비롯해서 다 문명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과거에 있을 수 없는 일들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건들이 많았죠.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상으로 그걸 어떻게 정리해내느냐가 그 사회의 발전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사건은 사실 한 장소에서 500명이 넘는 공식적 사망자가 나온 엄청난 인권유린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들의 진상규명과 또 피해자 보상과 또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책임규명 이게 필요하다고 보여지고요."
앵커 : "혹시 이슈가 되면서 제보가 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저희가 접수한 숫자가 150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작년에 한 70여 명 정도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저희가 민간인 수준이다 보니까 조사하는 데 한계는 있습니다마는 계속적으로 접수는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해결방법 찾아봤습니다. 진선미 의원 그리고 조영선 변호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 "고맙습니다."
진선미 의원 : "고맙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지난 75년부터 12년동안 3천여명의 수용자중 상당수가 불법 감금과 인권 유린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 당시 수사 검사와 피해자의 증언을 들어봤는데요.
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진선미 의원 그리고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영선변호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앵커 : "어서 오세요."
조영선 변호사 : "반갑습니다."
앵커 :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 검찰이 수사를 했고 원장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나고 다시 이슈화되는 이유가 뭘까요? 조영선 변호사님."
조영선 변호사 : " 사건이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마는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 8살이랄지 40세의 젊은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배움이 부족했거나 빈곤한 상태. 또 그리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방어능력이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27년 동안 사실 한 차례도 이 부분에 대한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고요. 다행히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만천하에 이런 극악한 상황에서의 인권침해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이슈를 만들었다. 대책위는 몇 년도에 꾸려졌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대책위가 꾸려진 것은 작년 2013년 3월에 준비를 거쳤고요. 그래서 11월달에 본격적으로 대책위가 출범을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앵커 : "그동안에 의원님, 삼청교육대 이런 문제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은 피해자가 3000여 명입니다, 당시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아마 크고 작은 피해를 봤을 텐데 그동안 왜 이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진선미 의원 : "일단은 조금 전에 조영선 변호사께서도 지적을 했듯이 이 대상자들이 그 당시에 대부분이 아동이나 청소년이었고요. 또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폭행이나 성폭행이나 또 심지어 살인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후유증이나 장애에 시달리는 그런 분들이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이 문제의 시작이 곧 또 다른 문제인 건데요. 그러니까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내몰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데 또 그렇게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런 사건에서 얼마나 희생을 당하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조차도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지가 않았던 거죠."
앵커 : "자신들의 피해를 우리 사회에 호소할 여력조차 없었다 이 말이죠?"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해에 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했다는데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 문제는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발생한 지 1년 정도 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지금 27년이 넘은 거라서."
앵커 : "당시 형제복지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선미 의원 : "그래서 사실상의 조사는 할 수 없되 다만 그 문제를 정책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해서 인권정책과로 넘겨졌다라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 "뚜렷한 결과는 없군요, 아직."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앵커 : "지난 여야의원 54명이 참여해서 특별법이 발의가 됐습니다. 이게 어떤 내용이 포함이 됐습니까?"
진선미 의원 : "사실은 옆에 계신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해서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대책위를 꾸려서 지금까지도 민간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이런 부분들을 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필요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어서 너무나 문제가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거거든요."
앵커 : "진짜 필요한 자료란 뭘까요?"
진선미 의원 : "진짜 필요한 자료는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실제로 형제복지원 재단에서 가지고 있었던 자료들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서 수사가 진행이 됐고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루어졌는데 그 모든 수사관련 자료들, 재판기록들 이런 부분들은 민간영역에서 그것을 입수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가 마련한 법안 안에는 국무총리 산하의 특별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게 기한을 한 2년 정도로 해서요. 그래서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밝혀진다고 하면 그 희생자들이나 피해자들에 대해서 일정한 의료지원비라든가 생활지원금이라든가 그리고 또 그것에 대한 기본적으로 기념사업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게 근거규정을 저희가 마련하는 거죠."
앵커 : "이 법안이 통과가 돼야 할 텐데 사실 많은 법안들이 발목이 잡히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전망이 되고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렇습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지금 제가 책도 가져왔는데요."
앵커 : "피해자가 쓴 책이죠?"
진선미 의원 : "네. 이 책이 2012년 11월에 밝간이 되면서부터 국회에서 이렇게 몇 차례 기회를 가졌었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데 저희가 짧게 발의를 시작했는데도 54분이 의견을 모아주셨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은 무슨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부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빠르게 저는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앵커 : "당시 피해상황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분이 피해자들 증언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 성폭행까지.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요. 두 분이 직접 많은 피해자들 만나봤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조영선 변호사: 구체적인 사례들은 사망자가 있었는데요. 피해자 가족들이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쪽에 가서 보니까 온몸이 멍이 든 상태에서 사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심부전증."
앵커 : "누가 봐도 구타에 의한 사망인데."
조영선 변호사 : "구타에 의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있음에도 조사되지 않은 그런 사례들이 많이 지금도 현재까지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앵커 : "진 의원님도 책도 읽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미 의원 : "저는 한종선 씨가 아마 지난주에도 통화를 하셨다고 그렇게 들었는데요. 저는 그분의 책에 보면 실제로 그림까지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본인의 기억에 힘입어서 이렇게 쭉 썼는데요."
앵커 : "당시 9살이었죠."
진선미 의원 : "본인의 사례가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한종선 씨가 자기 누나 12살, 3살 많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거거든요. 그리고 한참 뒤에 그 아버지도 그 복지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다 정신이 말짱했거든요. 그런데 그 누나도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되면서 정신이상자가 되셔서 지금은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고요. 그 아버지도 역시 똑같이 그런 폭행이나 이런 것들을 당하고 정신이 이상해지셔서 여전히 또 정신병동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본인도 엄청난 폭행과 굶주림과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겪어내고.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 불을 끈 상태로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지금도 불을 켜고."
앵커 : "제가 보니까 찬물도 목욕도 못하고 본인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하셨어요, 9살인데."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여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렇게 성폭행을 당하고요. 또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게 문제가 될까 봐 그 임신한 아이들을 계단에서 밀어뜨린다거나 폭행해서 강제로 낙태를 시키는 거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거죠."
앵커 : "살아 있는 지옥이었군요. 문제가 지금 증거는 적고 피해자들의 단순 구두진술뿐인 것이 가장 문제 아니겠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 사망자 같은 경우는 86년, 85년 자료밖에 없습니다. 전체의 명단들을 갖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나 저희가 만남을 피해자들의 증언에 있어서의 어떤 구체성, 굉장히 사실적인 부분입니다. 그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내용들 상당 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 "거짓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조영선 변호사 : "너무나도 적나라하기 때문에. 실상 그러한 본인의 증언만으로도 사실관계는 저희가 조사할 수 있지 않나."
앵커 : "앞서 저희가 성폭행이라든지 만연했던 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 구조가 물론 직원들에 의한 것도 있지만 1소대, 2소대처럼 군다같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중대장을 수용자 중에서 선임을 했어요. 수용자들끼리 위계질서를 만들고."
앵커 : "수용자들끼리 학대가 일어나고."
조영선 변호사 : "그게 박인근이라는 원장이란 분이 특무상사 출신입니다. 군 특수상사 출신이다 보니까 군대문화라는 게 자연스럽게 통솔이 되는 거죠. 조장이 있고 그다음에 소대장이 있고 중대장이 있는 구조에서 1차적인 것은 그들이 피해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 위치에서."
앵커 : "그런 분들은 어떻게 봐야 됩니까? 피해자면서 가해자이지 않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들은 당장의 생존의 문제였죠. 만약에 소대장에 의해서 강등된다면 그들은 죽음입니다."
진선미 의원 :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정말 피자인 거죠, 큰 면으로는. 제가 자료 사망자 수를 가져와봤는데요. 이게 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점점 81년도부터 인원이 늘었는데 마지막에는 해에 3000명의 수용인원 중에 89명이 한 해에 사망을 합니다."
앵커 : "판넬을 고정시켜서 시청자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85년이죠. 그러니까 10년째 되던 해에 89명이 갑작스럽게 죽습니까?"
앵커 : "80년대 들어서 사망자가 부쩍 더 늘었군요."
진선미 의원 : "부쩍 늘었습니다. 이게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전적으로 88올림픽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특별지시를 편지로 보냅니다. 그래서 부랑아들을 단속시키라고. 그런데 그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수용을 하게 되면 수용인원 수에 맞춰서 그 복지원에 자금이 지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한 해 20억이니까 한 사람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지원금이 늘어나고 또 그걸 통해서 강제노역을 시켜서 또 돈을 벌고. 이렇게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 아직도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시체들이 암매장되거나 또 시험 해부용으로 그렇게 팔려나가고. 그런 의혹들이 있는 정도입니다."
앵커 : "말씀하신 부분이 시신을 암매장했다면 암매장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주위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 아파트 공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유골들이 발굴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그런 것을 추론할 수 있고 또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암매장했었다라고 하는 위치가 교회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가끔 가다 새로운 봉분들이 나오면 이분들이 또 누구한테 맞았서 죽었구나라는 증언들이 꽤 많이 있는 상태입니다."
앵커 : "해부용으로 판 시체들은 증거가 있습니까? 정황이 있습니까?"
진선미 의원 : "그때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 대체적으로 있습니다, 그 부분들에 대해서."
진선미 의원 :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하루라도 특별법안이 통과가 돼서 국가 차원에서 위원회가 꾸려지고 그것에 의해서 수사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된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이번에는 다행히 여러 관계 부서들이 특별대책위 회의를 한번 했지만 관련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없어지기 전에 모든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식절차가 진행이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피해 정도 알아봤고요.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좀더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도 있을 거 아닙니까? 가해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년 만이죠. 87년에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박 모원장이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해마다 한 20억 가까운, 지금으로 말하면 해마다 수백억원 지원받은 건데 횡령혐의만 적용이 됐습니다. 일절 가혹행위라든지 폭행 이런 것은 적용이 안 된 겁니까?"
조영선 변호사 : "그러니까 당시에 수사기소되었던 건 일단 개인 횡령에 의해서 85년도, 86년도에 횡령금액이 6억 8000 정도가 기소가 됐고요."
앵커 : "85, 86년도 횡령금액만 기소가 됐고."
조영선 변호사 : "그다음에 형제복지원 자체 내에서의 폭력이나 감금행위가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울주작업장이라고 해서 170여 명 정도가 이송돼서 거기에서 감금당한 상태에서 노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발생한 한 명의 폭행치사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폭행사건에서는 그때 가해자였던 소대장과 중대장만 처벌받았던 겁니다."
앵커 : "그럼 나머지 폭행이나 연합 가혹행위들은 공소장에 아예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소됐는데 무죄났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아예 없습니다."
앵커 : "조사가 안 된 거군요. 수사가 안 된 거군요."
조영선 변호사 : "실제로 말씀 들어보면 수용자끼리 싸우거나 학대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고 박 원장이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그렇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조영선 변호사 : "직접적인 행위는 안 하지만 위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지시를 한다든지 분대장을 불러서 조인트를 깐다든지 이런 형태로 해서 상부에서 아래로 향한 폭력이 있었다고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네티즌들이 가해자 처벌해라,여론이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증거나 설령 어느 한쪽에서는 이미 어떤 증거도 없는데 가해자로 지목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주장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조영선 변호사 :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로 그 당시에 특수감금이란 부분도 죄명으로 포함돼 있었지만 그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게 된 배경이 결국은 그렇게 감금을 하게 된 것은 국가에서 정한 내무부 훈령에 의해서, 기준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니까 불법이 아니라는 식이 있었던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 또 여러 가지의 외압에 의해서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파견된 경찰들이 소환돼서 다시 조사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사례도 있었다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씀드렸지만 공식절차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일단 우리나라는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죄도 2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나면 되기가 어려운 부분이죠. 그래서 형사처벌은 어떨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관련해서 사실상의 손해배상이나 또 국가에 대한 구상권이나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 "말씀하신 것처럼 수사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예상되는 게 수사가 시작되면서 한 30여 명이 일제히 탈출해서 경찰서 가서 이 사건을 신고했더니 다시 잡혀갔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조영선 변호사 : "그렇습니다.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서도 실제로 부랑아라는 게 아니고 억지로 강제로 들어갔을 때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편지를 전달해 달라거나 했는데도 그런 것들이 차단됐다라는 그런 증언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정말 전방위적으로 그 당시에 관련된 공권력, 여러 권력 기관들에게 어떻게 이 사건이 이렇게 감춰질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밝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 "결국에는 그 당시 정권이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살아 있는 지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제는 많은 분들이 공분을 하고 계신 게 박 모원장이 그 당시에도 물론 훈장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마는 그 뒤로도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박 원장 일가가 지금도 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죠?"
조영선 변호사 : "현재까지도. 86년도에 2년 6개월형을 마치고 복귀를 바로 원장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 뒤로 형제복지원 재단 이름이 몇 차례 바뀌어지면서 형제복지원 지원재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최근에도 바뀌었고요. 그래서 현재까지 추산되어지는 그 일가의 재산이 약 1000억대."
앵커 : "1000억원대."
조영선 변호사 : "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 "지금 운영하는 복지법인도 수사 당하고 있다면서요?"
조영선 변호사 : "맞습니다."
앵커 : "횡령 혐의입니까?"
조영선 변호사 : "부산저축은행을 불법대출을 받았다라는 의혹도 있고요. 또 재단 내에서 공금에 대한 횡령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설립허가를 취소까지도 검토한다라는 거죠. 물론 그게 이 사건 때문은 아니고요. 지금 현재 그분들이 하신 행위에 대해서."
앵커 : "지금 복지행위에 대한 비위행위가 포착돼서 부산시가 복지법인 반려를 검토하고 있다."
조영선 변호사 :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마는..."
앵커 : "당시 현장을 급습했던 검사가 금고를 열어보니까 가득 쌓여있었다, 현찰이."
앵커 : "20억원 예금증서가 있었다."
조영선 변호사 : "네."
앵커 : "끝으로 특별법 발의가 됐고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믿고요. 이 사건 제대로 좀 검증이 되려면 진상이라도 좀 밝혀지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진선미 의원 : "맞습니다. 사실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비롯해서 다 문명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과거에 있을 수 없는 일들 여러 가지 인권침해 사건들이 많았죠.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상으로 그걸 어떻게 정리해내느냐가 그 사회의 발전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사건은 사실 한 장소에서 500명이 넘는 공식적 사망자가 나온 엄청난 인권유린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들의 진상규명과 또 피해자 보상과 또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책임규명 이게 필요하다고 보여지고요."
앵커 : "혹시 이슈가 되면서 제보가 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조영선 변호사 : "저희가 접수한 숫자가 150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작년에 한 70여 명 정도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저희가 민간인 수준이다 보니까 조사하는 데 한계는 있습니다마는 계속적으로 접수는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과 해결방법 찾아봤습니다. 진선미 의원 그리고 조영선 변호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 "고맙습니다."
진선미 의원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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