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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14 인천아시안게임
레슬링 이유미 ‘하늘에 계신 감독님 위해서’
입력 2014.09.11 (16:18) 수정 2014.09.11 (18:18) 연합뉴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향한 준비 작업에 막 박차를 가하려던 올해 2월, 레슬링 여자 자유형 대표팀은 뜻하지 않은 비극을 겪었다.

여자 자유형 대표팀을 이끌던 김의곤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다가 태릉선수촌에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에도 태릉에서 훈련이 한창이던 이유미(27·칠곡군청)는 현장에서 그 비극을 겪었다.

레슬링 대표팀 미디어데이가 열린 11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이유미는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들 각자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그러셨어요. 제가 전화기를 붙잡고 119에 신고하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던 기억만 나네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떠올리는 이유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유미는 "다들 서로 말조차 하지 못했고, 우는 선수도 있었다"며 선수들의 동요가 심했다고 했다.

이어 "평소 호랑이처럼 혼내고 몰아붙이시던 감독님이 웬일인지 그날따라 '넌 할 수 있다'며 격려를 해주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씻기 어려운 충격을 이겨낸 여자 자유형 대표팀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유미는 "떠나가신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꼭 이번에 금메달을 따내자고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만을 따낸 여자 레슬링에서 첫 금맥을 캘 선수로 가장 기대받는 '에이스'가 바로 이유미다.

2012년과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2위와 3위에 오르는 등 최근 들어 꾸준히 정상권에 노크해 왔다.

이유미가 처음 레슬링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이전까지는 아예 체육과는 관계없는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부터 기초를 다졌거나, 다른 종목에서 전향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매우 늦은 출발이다.

이유미는 "대학에 가려고 입시 체육으로 시작했는데, 레슬링에 재미를 느꼈다"면서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로 시작했는데, 계속 지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고 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유를 밝혔다.

3년 가까이 패배만 거듭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유미는 빠르게 성장해 마침내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철저히 훈련 규칙을 따르는 생활 태도와 성실함이 이런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 준 스승은 2012년 대표팀을 맡았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이나래 코치였다.

이유미는 "당시에도 훈련 파트너 선수이던 내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시며 다듬어 주셨다"면서 "그 때 잠재력이 실력으로 바뀌면서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이 코치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돌아가신 스승과, 자신의 기량을 꽃피워 준 스승의 뜻을 인천에서 잇는 일이 이제 이유미의 과제다.

이유미는 "시상대에 올라서는 장면이나, 경기 도중 반드시 찾아올 힘든 고비를 이겨냈을 때의 희열을 자주 상상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 레슬링 이유미 ‘하늘에 계신 감독님 위해서’
    • 입력 2014-09-11 16:18:28
    • 수정2014-09-11 18:18:09
    연합뉴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향한 준비 작업에 막 박차를 가하려던 올해 2월, 레슬링 여자 자유형 대표팀은 뜻하지 않은 비극을 겪었다.

여자 자유형 대표팀을 이끌던 김의곤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다가 태릉선수촌에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에도 태릉에서 훈련이 한창이던 이유미(27·칠곡군청)는 현장에서 그 비극을 겪었다.

레슬링 대표팀 미디어데이가 열린 11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이유미는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들 각자 개인 운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그러셨어요. 제가 전화기를 붙잡고 119에 신고하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던 기억만 나네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떠올리는 이유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유미는 "다들 서로 말조차 하지 못했고, 우는 선수도 있었다"며 선수들의 동요가 심했다고 했다.

이어 "평소 호랑이처럼 혼내고 몰아붙이시던 감독님이 웬일인지 그날따라 '넌 할 수 있다'며 격려를 해주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씻기 어려운 충격을 이겨낸 여자 자유형 대표팀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유미는 "떠나가신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꼭 이번에 금메달을 따내자고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만을 따낸 여자 레슬링에서 첫 금맥을 캘 선수로 가장 기대받는 '에이스'가 바로 이유미다.

2012년과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2위와 3위에 오르는 등 최근 들어 꾸준히 정상권에 노크해 왔다.

이유미가 처음 레슬링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이전까지는 아예 체육과는 관계없는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부터 기초를 다졌거나, 다른 종목에서 전향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매우 늦은 출발이다.

이유미는 "대학에 가려고 입시 체육으로 시작했는데, 레슬링에 재미를 느꼈다"면서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로 시작했는데, 계속 지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고 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유를 밝혔다.

3년 가까이 패배만 거듭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유미는 빠르게 성장해 마침내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철저히 훈련 규칙을 따르는 생활 태도와 성실함이 이런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 준 스승은 2012년 대표팀을 맡았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이나래 코치였다.

이유미는 "당시에도 훈련 파트너 선수이던 내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시며 다듬어 주셨다"면서 "그 때 잠재력이 실력으로 바뀌면서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이 코치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돌아가신 스승과, 자신의 기량을 꽃피워 준 스승의 뜻을 인천에서 잇는 일이 이제 이유미의 과제다.

이유미는 "시상대에 올라서는 장면이나, 경기 도중 반드시 찾아올 힘든 고비를 이겨냈을 때의 희열을 자주 상상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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