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6.25 전사자 유해 발굴 15년…성과와 과제

입력 2015.06.25 (23:26) 수정 2015.06.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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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앵커 : 6·25 전쟁에서 전사한 참전 용사들 가운데 13만 명이 아직도 산야에 그대로 남겨진 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용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오늘 6.25 65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발굴사업의 산증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용석 조사과장 나오셨습니다.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안녕하세요.

▷ 앵커 : 오늘도 현장 다녀오셨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네. 오늘 연천 천덕산 일대에서 돌아왔습니다.

▷ 앵커 :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된 지 15년이 흘렀죠. 그동안의 성과를 먼저 좀 들어볼까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6·25 전쟁 당시 전사, 실종 인원이 16만 2천여 명 중에 2만 9천 명이 수습됐고요. 찾지 못한 유해가 13만 3천입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에 걸쳐서 8,400여 구가 발굴되었습니다.

▷ 앵커 : 우리 국군만 포함된 수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북한군이나 중공군은 제외하고요.

▷ 앵커 : 그런데 15년이란 시간에 비해 발굴 성과가 좀 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가장 큰 어려움은 저희가 어디를 발굴할 것인가를 알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15년이란 세월, 특히 지금이 휴전 65주년입니다.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참전용사나 그 지역을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나이가 대부분 연로해서 기억력 자체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어려운 것은 어디를 발굴할 것인가를 찾지 못한다는 겁니다.

▷ 앵커 : 제보를 받아야 하는 거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그런데 2012년을 기점으로 현격하게 제보 건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 앵커 : 제보를 받으면 감식단 같은 경우, 어떤 단계로 발굴합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발굴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발굴할 것인지 조사하는 탐사 단계, 그걸 수습하는 발굴 단계, 발굴된 유해를 감식해서 유가족에게 인계하는 단계로 구분합니다.

▷ 앵커 : 지금 금속탐지기를 갖고 나오셨는데요. 실제 제보를 받고서 이런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시는 거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저희가 활용하는 금속탐지기인데요. 이 장비가 현재까지 유일한 저희의 과학적인 장비입니다. 통상 200군데를 발굴해야 1구를 찾게 되는데요. 대한민국 전체를 다 발굴할 수도 없고, 그러나 전사자를 총을 맞았다든지 포탄에 파편을 몸에 안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금속탐지기를 대면 소리가 나게 됩니다. 그곳을 발굴하면 유해가 나오든 유품이 나오든 한 가지는 찾을 수 있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제보가 안 들어온다면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장비로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갈림길에 있다고 봐도 됩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15년이 흐른 시점에서 참전 용사나 지역 주민들, 그 당시를 알고 있는 분들, 그 부모 형제가 이제는 잊혀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 앵커 : 특히 유가족들의 DNA 시료 채취 현황을 보더라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거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유가족 DNA 시료 채취 역시 2012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고 있는데요. DNA 시료 채취는 과학이 발전해서 부계, 모계, 8촌까지 가능합니다. 13만 3천여 명을 찾지 못했으면 26만 6천 명의 시료 확보가 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3만여 명 밖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 앵커 : 그러니까 유해를 찾아도 돌려드릴 방법이 없다는 거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8,400여 구를 찾았는데, 현재까지 신원 확인된 분은 107명에 불과합니다. 정말 유가족분들이 나서서, 또 지역 주민들이, 또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참전 사실이 있다면 저희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 앵커 : 그러니까 한계 상황, 고비를 맞았다는 말씀은 발굴 사업단으로서 역부족인 상황이 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정점에 왔다. 앞으로 2, 3년 이내에 특단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 앵커 : 그 특단의 조치는 뭐라고 보십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저희가 2000년에 이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쭉 해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렇다면 결국 방송국이 나서서 방송을 해줘야 합니다. 모든 방송 매체들이 국민들이 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는데요. 우리가 1980년대에 이산가족찾기운동을 함으로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가족을 찾았죠. 저희도 이 업무를 정말로 이 시점에서 그런 방송사들이 참가해서 해준다면, 지금은 연간 170건밖에 제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 앵커 : 170건이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면 한순간에 5천 건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희의 인력과 장비는 준비돼 있으니 많은 제보가 온다면, 정부나 국방부에서도 조처를 하게 될 것입니다.

▷ 앵커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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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6·25 전쟁에서 전사한 참전 용사들 가운데 13만 명이 아직도 산야에 그대로 남겨진 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용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오늘 6.25 65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발굴사업의 산증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용석 조사과장 나오셨습니다.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안녕하세요.

▷ 앵커 : 오늘도 현장 다녀오셨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네. 오늘 연천 천덕산 일대에서 돌아왔습니다.

▷ 앵커 :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된 지 15년이 흘렀죠. 그동안의 성과를 먼저 좀 들어볼까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6·25 전쟁 당시 전사, 실종 인원이 16만 2천여 명 중에 2만 9천 명이 수습됐고요. 찾지 못한 유해가 13만 3천입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에 걸쳐서 8,400여 구가 발굴되었습니다.

▷ 앵커 : 우리 국군만 포함된 수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북한군이나 중공군은 제외하고요.

▷ 앵커 : 그런데 15년이란 시간에 비해 발굴 성과가 좀 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가장 큰 어려움은 저희가 어디를 발굴할 것인가를 알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15년이란 세월, 특히 지금이 휴전 65주년입니다.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참전용사나 그 지역을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나이가 대부분 연로해서 기억력 자체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어려운 것은 어디를 발굴할 것인가를 찾지 못한다는 겁니다.

▷ 앵커 : 제보를 받아야 하는 거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그런데 2012년을 기점으로 현격하게 제보 건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 앵커 : 제보를 받으면 감식단 같은 경우, 어떤 단계로 발굴합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발굴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발굴할 것인지 조사하는 탐사 단계, 그걸 수습하는 발굴 단계, 발굴된 유해를 감식해서 유가족에게 인계하는 단계로 구분합니다.

▷ 앵커 : 지금 금속탐지기를 갖고 나오셨는데요. 실제 제보를 받고서 이런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시는 거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저희가 활용하는 금속탐지기인데요. 이 장비가 현재까지 유일한 저희의 과학적인 장비입니다. 통상 200군데를 발굴해야 1구를 찾게 되는데요. 대한민국 전체를 다 발굴할 수도 없고, 그러나 전사자를 총을 맞았다든지 포탄에 파편을 몸에 안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금속탐지기를 대면 소리가 나게 됩니다. 그곳을 발굴하면 유해가 나오든 유품이 나오든 한 가지는 찾을 수 있습니다.

▷ 앵커 : 그런데 제보가 안 들어온다면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장비로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갈림길에 있다고 봐도 됩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15년이 흐른 시점에서 참전 용사나 지역 주민들, 그 당시를 알고 있는 분들, 그 부모 형제가 이제는 잊혀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 앵커 : 특히 유가족들의 DNA 시료 채취 현황을 보더라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거죠?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유가족 DNA 시료 채취 역시 2012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고 있는데요. DNA 시료 채취는 과학이 발전해서 부계, 모계, 8촌까지 가능합니다. 13만 3천여 명을 찾지 못했으면 26만 6천 명의 시료 확보가 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3만여 명 밖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 앵커 : 그러니까 유해를 찾아도 돌려드릴 방법이 없다는 거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8,400여 구를 찾았는데, 현재까지 신원 확인된 분은 107명에 불과합니다. 정말 유가족분들이 나서서, 또 지역 주민들이, 또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참전 사실이 있다면 저희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 앵커 : 그러니까 한계 상황, 고비를 맞았다는 말씀은 발굴 사업단으로서 역부족인 상황이 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정점에 왔다. 앞으로 2, 3년 이내에 특단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 앵커 : 그 특단의 조치는 뭐라고 보십니까?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저희가 2000년에 이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쭉 해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렇다면 결국 방송국이 나서서 방송을 해줘야 합니다. 모든 방송 매체들이 국민들이 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는데요. 우리가 1980년대에 이산가족찾기운동을 함으로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가족을 찾았죠. 저희도 이 업무를 정말로 이 시점에서 그런 방송사들이 참가해서 해준다면, 지금은 연간 170건밖에 제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 앵커 : 170건이요?

▶ 이용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조사과장 :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면 한순간에 5천 건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희의 인력과 장비는 준비돼 있으니 많은 제보가 온다면, 정부나 국방부에서도 조처를 하게 될 것입니다.

▷ 앵커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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