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식생 조사도 엉터리”

입력 2016.11.20 (12:01) 수정 2016.11.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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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으로 물든 설악산입니다. 상록침엽수림과 갖가지 활엽수가 어우러져 한반도 생태 다양성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해발 1,000m가 넘는 아고산 지대의 식생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합니다. 이런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경우에는 수목이 상당수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같은 훼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됩니다. 그렇다면 환경영향평가서의 수목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을까요?


환경영향평가서에 제출된 케이블카 2번 지주 예정지역의 수목 분포도입니다. 가로세로 40m, 즉 1,600㎡의 면적을 조사했습니다. 소나무와 굴참나무, 음나무 등 수목별로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이렇게 조사된 지역이 케이블카 지주와 상하부 정류장 등 11곳에 이릅니다.

언뜻 보기에 자세히 조사된 것 같지만,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나무가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나무가 골고루 분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설악산처럼 경사가 심하고 굴곡이 많은 곳은 더욱 그렇습니다. 11월 13일, 환경단체가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 등 8명의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와 환경단체의 현장 조사 결과는 한눈에도 크게 차이 납니다. 무엇보다 분포 형태가 다릅니다. 환경단체 조사에서는 나무가 밀집한 곳과 성긴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마치 골고루 점을 찍은 듯 수목이 펼쳐져 있습니다.

수종도 다릅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오른쪽 위에 보라색 음나무가 있다고 했지만, 환경단체 조사에는 없습니다. 반대로 환경단체 조사서에는 왼쪽 아래에 잣나무가 있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습니다.

나무 숫자도 다릅니다. 환경단체는 343그루의 나무를 찾아냈지만, 환경영향평가서는 23%인 80그루가량이 적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작성됐을까요?


나무 분포도는 현장에서 작성한 조사표, 이른바 '야장'을 근거로 만듭니다. 위 사진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자들이 손으로 직접 작성한 현장조사서(야장)와 환경영향평가서의 나무 분포도를 겹쳐본 그림입니다. 야장에 동그라게 표시한 나무 위치와 환경영향평가서의 붉은색 표시가 크게 어긋납니다. 환경영향평가서 나무 분포도가 현장의 야장과도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환경영향평가서의 나무 조사가 실제 이뤄지긴 한 걸까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업체가 제시한 당시 현장조사 일정입니다. 2014년 10월 이틀 동안 케이블카 노선을 따라 설악산 상부와 하부까지 총 7곳을 조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 곳이 가로세로 40m 구간인데 이틀 동안 7곳 조사가 가능할까요?

환경단체 현장 조사에서는 한 곳을 조사하는 데도 10명이 2시간 걸렸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는 4명이 2시간에 한 곳꼴로 조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조사가 가능했다면 거의 '슈퍼맨' 수준이라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입니다.

환경단체의 케이블카 예정지 현장 수목 조사환경단체의 케이블카 예정지 현장 수목 조사

지난 11월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현장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그리고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 조사원들이 나와 2번 지주 구간에 대한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틀 동안 7곳 조사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업체 직원 두 명이 가로세로 40m 같은 지역에 대한 식생 조사를 벌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1/3 면적을 조사하는 데 불과했습니다. 네 명이 하더라도 이틀 동안 7곳을 제대로 조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결과가 이러한데도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 연구원은 실제로 이틀 동안 7곳을 조사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나무 위치에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조사가 수종 분포 현황을 보는 표본조사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나무 위치에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업체 측도 나무 위치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서의 정확성에 대한 원주지방환경청의 입장은 업체 측과 달랐습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한 검토 의견에서 '훼손되는 식생을 보다 정확히 제시'하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은 여전히 나무 위치뿐만 아니라 수종도 부정확한 겁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미 멸종위기종인 산양에 대한 조사도 국책기관으로부터 '심하게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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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상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희귀 자원의 서식지라는 점을 인정받은 겁니다. 그런 설악산에 인위적 간섭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설픈 조사, 성급한 훼손은 설악산에 대한 모욕입니다.

사진 제공: 설악산지키기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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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 케이블카 “식생 조사도 엉터리”
    • 입력 2016-11-20 12:01:21
    • 수정2016-11-20 13:17:14
    취재K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입니다. 상록침엽수림과 갖가지 활엽수가 어우러져 한반도 생태 다양성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해발 1,000m가 넘는 아고산 지대의 식생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합니다. 이런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설 경우에는 수목이 상당수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같은 훼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됩니다. 그렇다면 환경영향평가서의 수목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을까요?


환경영향평가서에 제출된 케이블카 2번 지주 예정지역의 수목 분포도입니다. 가로세로 40m, 즉 1,600㎡의 면적을 조사했습니다. 소나무와 굴참나무, 음나무 등 수목별로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이렇게 조사된 지역이 케이블카 지주와 상하부 정류장 등 11곳에 이릅니다.

언뜻 보기에 자세히 조사된 것 같지만,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나무가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나무가 골고루 분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설악산처럼 경사가 심하고 굴곡이 많은 곳은 더욱 그렇습니다. 11월 13일, 환경단체가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 등 8명의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와 환경단체의 현장 조사 결과는 한눈에도 크게 차이 납니다. 무엇보다 분포 형태가 다릅니다. 환경단체 조사에서는 나무가 밀집한 곳과 성긴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마치 골고루 점을 찍은 듯 수목이 펼쳐져 있습니다.

수종도 다릅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오른쪽 위에 보라색 음나무가 있다고 했지만, 환경단체 조사에는 없습니다. 반대로 환경단체 조사서에는 왼쪽 아래에 잣나무가 있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습니다.

나무 숫자도 다릅니다. 환경단체는 343그루의 나무를 찾아냈지만, 환경영향평가서는 23%인 80그루가량이 적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작성됐을까요?


나무 분포도는 현장에서 작성한 조사표, 이른바 '야장'을 근거로 만듭니다. 위 사진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자들이 손으로 직접 작성한 현장조사서(야장)와 환경영향평가서의 나무 분포도를 겹쳐본 그림입니다. 야장에 동그라게 표시한 나무 위치와 환경영향평가서의 붉은색 표시가 크게 어긋납니다. 환경영향평가서 나무 분포도가 현장의 야장과도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환경영향평가서의 나무 조사가 실제 이뤄지긴 한 걸까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업체가 제시한 당시 현장조사 일정입니다. 2014년 10월 이틀 동안 케이블카 노선을 따라 설악산 상부와 하부까지 총 7곳을 조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 곳이 가로세로 40m 구간인데 이틀 동안 7곳 조사가 가능할까요?

환경단체 현장 조사에서는 한 곳을 조사하는 데도 10명이 2시간 걸렸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는 4명이 2시간에 한 곳꼴로 조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조사가 가능했다면 거의 '슈퍼맨' 수준이라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입니다.

환경단체의 케이블카 예정지 현장 수목 조사
지난 11월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현장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그리고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 조사원들이 나와 2번 지주 구간에 대한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틀 동안 7곳 조사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업체 직원 두 명이 가로세로 40m 같은 지역에 대한 식생 조사를 벌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1/3 면적을 조사하는 데 불과했습니다. 네 명이 하더라도 이틀 동안 7곳을 제대로 조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결과가 이러한데도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업체 연구원은 실제로 이틀 동안 7곳을 조사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나무 위치에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조사가 수종 분포 현황을 보는 표본조사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나무 위치에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업체 측도 나무 위치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서의 정확성에 대한 원주지방환경청의 입장은 업체 측과 달랐습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한 검토 의견에서 '훼손되는 식생을 보다 정확히 제시'하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은 여전히 나무 위치뿐만 아니라 수종도 부정확한 겁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미 멸종위기종인 산양에 대한 조사도 국책기관으로부터 '심하게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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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상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희귀 자원의 서식지라는 점을 인정받은 겁니다. 그런 설악산에 인위적 간섭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설픈 조사, 성급한 훼손은 설악산에 대한 모욕입니다.

사진 제공: 설악산지키기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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