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의 멈춰버린 시간’…강제동원 인정 언제쯤?
입력 2016.11.24 (07:39)
수정 2016.11.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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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있었던 인천 부평일대에서 대규모 강제 동원이 이뤄졌단 사실이 또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은 아직도 국내 징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보도에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다닥다닥 붙은 채 낡아 스러져가는 집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던 한국인들의 사택입니다.
미쓰비시(三菱)의 한자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삼릉',
당시 인천 부평 일대는 일본 육군의 무기공장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 최대 군수 단지가 조성돼 수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송백진(미쓰비시 제강 근무/94세) : "조선 사람은 주로 힘든 거 (전쟁동원단체) 임전보국단 안 가니까, 끌려가지 않으니까..."
도심 흉물이 된 사택의 환경 개선 사업을 앞두고 올해 내내 꼼꼼히 조사한 기록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되는 대신 공장으로 끌려왔던 증언과,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학대받았던 기억들까지...
그동안 속으로만 삼켰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 김정아(인천부평역사박물관 팀장) : "국내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찌됐든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 역시도 피해자..."
미쓰비시는 지난해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역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당시 식민지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는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일제 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있었던 인천 부평일대에서 대규모 강제 동원이 이뤄졌단 사실이 또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은 아직도 국내 징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보도에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다닥다닥 붙은 채 낡아 스러져가는 집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던 한국인들의 사택입니다.
미쓰비시(三菱)의 한자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삼릉',
당시 인천 부평 일대는 일본 육군의 무기공장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 최대 군수 단지가 조성돼 수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송백진(미쓰비시 제강 근무/94세) : "조선 사람은 주로 힘든 거 (전쟁동원단체) 임전보국단 안 가니까, 끌려가지 않으니까..."
도심 흉물이 된 사택의 환경 개선 사업을 앞두고 올해 내내 꼼꼼히 조사한 기록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되는 대신 공장으로 끌려왔던 증언과,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학대받았던 기억들까지...
그동안 속으로만 삼켰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 김정아(인천부평역사박물관 팀장) : "국내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찌됐든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 역시도 피해자..."
미쓰비시는 지난해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역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당시 식민지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는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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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있었던 인천 부평일대에서 대규모 강제 동원이 이뤄졌단 사실이 또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은 아직도 국내 징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보도에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다닥다닥 붙은 채 낡아 스러져가는 집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던 한국인들의 사택입니다.
미쓰비시(三菱)의 한자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삼릉',
당시 인천 부평 일대는 일본 육군의 무기공장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 최대 군수 단지가 조성돼 수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송백진(미쓰비시 제강 근무/94세) : "조선 사람은 주로 힘든 거 (전쟁동원단체) 임전보국단 안 가니까, 끌려가지 않으니까..."
도심 흉물이 된 사택의 환경 개선 사업을 앞두고 올해 내내 꼼꼼히 조사한 기록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되는 대신 공장으로 끌려왔던 증언과,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학대받았던 기억들까지...
그동안 속으로만 삼켰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 김정아(인천부평역사박물관 팀장) : "국내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찌됐든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 역시도 피해자..."
미쓰비시는 지난해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역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당시 식민지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는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일제 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있었던 인천 부평일대에서 대규모 강제 동원이 이뤄졌단 사실이 또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은 아직도 국내 징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보도에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다닥다닥 붙은 채 낡아 스러져가는 집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던 한국인들의 사택입니다.
미쓰비시(三菱)의 한자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삼릉',
당시 인천 부평 일대는 일본 육군의 무기공장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 최대 군수 단지가 조성돼 수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송백진(미쓰비시 제강 근무/94세) : "조선 사람은 주로 힘든 거 (전쟁동원단체) 임전보국단 안 가니까, 끌려가지 않으니까..."
도심 흉물이 된 사택의 환경 개선 사업을 앞두고 올해 내내 꼼꼼히 조사한 기록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되는 대신 공장으로 끌려왔던 증언과,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학대받았던 기억들까지...
그동안 속으로만 삼켰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뷰> 김정아(인천부평역사박물관 팀장) : "국내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찌됐든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 역시도 피해자..."
미쓰비시는 지난해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역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당시 식민지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는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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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향 기자 nausik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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