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독일, 가짜뉴스와의 전쟁

입력 2017.05.13 (21:45) 수정 2017.05.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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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급기야 독일 정부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가짜뉴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는데요.

베를린 이민우 특파원이 가짜 뉴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베를린 외곽에 자리 잡은 한적한 주택가.

지난해부터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습니다.

13살 러시아계 소녀가 인근 난민들에 의해 납치된 뒤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리사, 실제로 이 동네에 사는 소녀였습니다.

<인터뷰> 동네 주민 : "러시아계 독일인들 사이에서 실종된 아이가 난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동네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난민에 대한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어린이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인터뷰> 동네 어린이 : "무척 겁이 났어요. 혼자 다니지 않고 항상 부모님과 함께 다녔어요. 더는 혼자 다니지 않아요. 친구들도 다 무서워했어요."

사건은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됐습니다.

독일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며, 러시아 정부가 항의한 것입니다.

<녹취> 라브로프(러시아 외교장관/지난해) : "러시아 시민이 관련된 사건이라면 마땅히 통보를 받아야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난민 포용 정책을 펼쳤던 메르켈 총리에게는 몹시 당혹스런 악재였습니다.

하지만 리사의 납치는 가짜뉴스였습니다. 누구도 납치된 사실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꾸지람이 무서워 친구 집에서 외박을 했던 리사의 소식이 와전된 것이었습니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가짜뉴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가리나 라트벨(동네 주민) : "이 뉴스가 가짜이고 거짓이라는 얘기는 믿지 않아요. 난민들이 독일에 들어와서 몹시 나쁜 행동만 일삼고 있어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리투아니아.

올해 초 끔찍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나토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독일군이 현지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것입니다.

나토와 독일 국방부까지 조사에 나섰지만 사실무근이었습니다.

역시 가짜뉴스, 배후로는 국경 지대 파병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가 지목됐습니다.

<인터뷰> 폰 데어 라이언(독일 국방 장관) :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가짜 뉴스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와 한 소녀가 다정히 앉아있습니다.

한쪽엔 메르켈 총리의 얼굴도 있습니다.

메르켈이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히틀러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메르켈을 비방하기 위한 가짜뉴스였습니다.

이런 가짜 뉴스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등장했습니다.

이미 지난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입증된 바 있죠.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이렇듯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는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최근 독일 공영방송 기자들이 페이스북에 가공 인물의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한스 마이어.

극우 성향의 30대 남성입니다.

<인터뷰> 플로리안 노이한(ZDF 기자) : "이 실험을 통해 어떤 소식들이 우선적으로 전달되는지, 어떻게 가짜 뉴스가 등장하는지 직접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극우 정당과 극우 단체의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고 난민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자, 곧바로 극우 성향 사용자들로부터 친구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심지어 비밀 극우 단체에서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다비드 겝하르트(ZDF 기자) : "비밀 그룹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아 그 그룹으로 들어갔더니 그들은 더욱 격하게 위협과 비방을 일삼았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스 마이어는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가짜 뉴스를 앞장서 퍼나른 것입니다.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면 자녀의 양육권을 박탈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가짜뉴스였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더 많은 극우주의자들이 몰려왔고, 자신들이 원하던 내용을 보자 열광했습니다.

더 이상의 실험은 무의미했습니다.

한스마이어는 마지막 실험을 했습니다.

가짜 뉴스가 아닌, 실제 통계에 기반한 '진짜 뉴스'를 올린 것입니다.

"난민 수는 늘었지만, 범죄는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극우 성향과는 정 반대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인터뷰> 플로리안 노이한 : "실제 통계를 제시하며 우파 성향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믿는 대로 현실은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고 하자, 한스 마이어는 욕을 먹거나 무시당했습니다."

친구 관계도 순식간에 죄다 끊겼습니다.

비밀 극우단체 회원이 됐다가 정치적으로 매장당하기까지, 3주에 걸친 한스 마이어의 페이스북 실험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가짜 뉴스의 유력한 생산자로 독일은 러시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메르켈의 총리 연임을 막기 위해 가짜뉴스를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총선이 임박한 올 여름쯤, 러시아발 가짜 뉴스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녹취> 마르틴 쉐퍼(독일 외무부 대변인) : "러시아 매체가 매우 활발히 러시아 국경너머로 가짜 뉴스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거짓말은 곧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자 독일 정부도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가짜 뉴스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SNS 기업들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입법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게시된 지 24시간 이내에 불법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최고 5천만 유로, 우리 돈 약 6백억 원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내용입니다.

<녹취> 하이코 마스(독일 법무부 장관) :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SNS 속에서도 범죄적 선동행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몇 건의 가짜 뉴스 적발만으로도 해당 기업이 휘청거릴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벌금입니다.

그만큼 가짜 뉴스의 폐해를 무겁게 여기고, 강력 단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이런 굳은 의지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숩니다.

SNS에서의 정보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 가짜 뉴스의 내용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서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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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독일, 가짜뉴스와의 전쟁
    • 입력 2017-05-13 22:26:40
    • 수정2017-05-13 22:38:27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멘트>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급기야 독일 정부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가짜뉴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는데요.

베를린 이민우 특파원이 가짜 뉴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베를린 외곽에 자리 잡은 한적한 주택가.

지난해부터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습니다.

13살 러시아계 소녀가 인근 난민들에 의해 납치된 뒤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리사, 실제로 이 동네에 사는 소녀였습니다.

<인터뷰> 동네 주민 : "러시아계 독일인들 사이에서 실종된 아이가 난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동네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난민에 대한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어린이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인터뷰> 동네 어린이 : "무척 겁이 났어요. 혼자 다니지 않고 항상 부모님과 함께 다녔어요. 더는 혼자 다니지 않아요. 친구들도 다 무서워했어요."

사건은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됐습니다.

독일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며, 러시아 정부가 항의한 것입니다.

<녹취> 라브로프(러시아 외교장관/지난해) : "러시아 시민이 관련된 사건이라면 마땅히 통보를 받아야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난민 포용 정책을 펼쳤던 메르켈 총리에게는 몹시 당혹스런 악재였습니다.

하지만 리사의 납치는 가짜뉴스였습니다. 누구도 납치된 사실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꾸지람이 무서워 친구 집에서 외박을 했던 리사의 소식이 와전된 것이었습니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가짜뉴스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가리나 라트벨(동네 주민) : "이 뉴스가 가짜이고 거짓이라는 얘기는 믿지 않아요. 난민들이 독일에 들어와서 몹시 나쁜 행동만 일삼고 있어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리투아니아.

올해 초 끔찍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나토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독일군이 현지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것입니다.

나토와 독일 국방부까지 조사에 나섰지만 사실무근이었습니다.

역시 가짜뉴스, 배후로는 국경 지대 파병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가 지목됐습니다.

<인터뷰> 폰 데어 라이언(독일 국방 장관) :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가짜 뉴스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와 한 소녀가 다정히 앉아있습니다.

한쪽엔 메르켈 총리의 얼굴도 있습니다.

메르켈이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히틀러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메르켈을 비방하기 위한 가짜뉴스였습니다.

이런 가짜 뉴스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등장했습니다.

이미 지난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입증된 바 있죠.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이렇듯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는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최근 독일 공영방송 기자들이 페이스북에 가공 인물의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한스 마이어.

극우 성향의 30대 남성입니다.

<인터뷰> 플로리안 노이한(ZDF 기자) : "이 실험을 통해 어떤 소식들이 우선적으로 전달되는지, 어떻게 가짜 뉴스가 등장하는지 직접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극우 정당과 극우 단체의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고 난민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자, 곧바로 극우 성향 사용자들로부터 친구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심지어 비밀 극우 단체에서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다비드 겝하르트(ZDF 기자) : "비밀 그룹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아 그 그룹으로 들어갔더니 그들은 더욱 격하게 위협과 비방을 일삼았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스 마이어는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가짜 뉴스를 앞장서 퍼나른 것입니다.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면 자녀의 양육권을 박탈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가짜뉴스였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더 많은 극우주의자들이 몰려왔고, 자신들이 원하던 내용을 보자 열광했습니다.

더 이상의 실험은 무의미했습니다.

한스마이어는 마지막 실험을 했습니다.

가짜 뉴스가 아닌, 실제 통계에 기반한 '진짜 뉴스'를 올린 것입니다.

"난민 수는 늘었지만, 범죄는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극우 성향과는 정 반대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인터뷰> 플로리안 노이한 : "실제 통계를 제시하며 우파 성향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믿는 대로 현실은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고 하자, 한스 마이어는 욕을 먹거나 무시당했습니다."

친구 관계도 순식간에 죄다 끊겼습니다.

비밀 극우단체 회원이 됐다가 정치적으로 매장당하기까지, 3주에 걸친 한스 마이어의 페이스북 실험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가짜 뉴스의 유력한 생산자로 독일은 러시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메르켈의 총리 연임을 막기 위해 가짜뉴스를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총선이 임박한 올 여름쯤, 러시아발 가짜 뉴스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녹취> 마르틴 쉐퍼(독일 외무부 대변인) : "러시아 매체가 매우 활발히 러시아 국경너머로 가짜 뉴스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거짓말은 곧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자 독일 정부도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가짜 뉴스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SNS 기업들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입법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게시된 지 24시간 이내에 불법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최고 5천만 유로, 우리 돈 약 6백억 원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내용입니다.

<녹취> 하이코 마스(독일 법무부 장관) :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SNS 속에서도 범죄적 선동행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몇 건의 가짜 뉴스 적발만으로도 해당 기업이 휘청거릴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벌금입니다.

그만큼 가짜 뉴스의 폐해를 무겁게 여기고, 강력 단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이런 굳은 의지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숩니다.

SNS에서의 정보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 가짜 뉴스의 내용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서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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