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트럼프와 함께한 샹그릴라 2박3일 숙박 취재기

입력 2018.06.15 (15:55) 수정 2018.06.16 (15:4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KBS 취재진 숙소에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숙소 건물KBS 취재진 숙소에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숙소 건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협상단이 묵은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저희 KBS 취재진도 이 호텔 타워윙(tower wing) 22층에 방을 잡았습니다. 숙박객이 아니면 취재원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저렴한 방이라 좁긴 했지만,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별도의 건물인 밸리윙(valley wing)이 제법 잘 보였습니다.

1일째: D-2 철통 경호 속 협상단을 만나라!

철통 경호 중인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철통 경호 중인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는 날. 그가 묵는 별도의 건물 밸리윙은 내부가 텅텅 비워진 채 접근이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숙박객이라고 말했지만, 무장 경호원들이 출입을 막았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협상단은 제가 묵던 타워윙 한 층 아래인 21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경호 인력이 지키고 있어서 접근은 불가능했습니다. 하루 종일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협상단을 찾았습니다.

KBS 취재진이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KBS 취재진이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호텔을 헤집고 다닌지 5시간째, 드디어 북한과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를 만났습니다. 김 대사는 라운지 가장 끝쪽 자리에 등을 돌린 채 앉아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놓여있던 두꺼운 국무부 파일이 아니었다면 성 김 대사인지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김 대사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표정이 아주 밝았습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다만 협상 상황을 묻는 질문에 "오늘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않았어요."라고 짧게 답변했습니다. 내일은 만날 거란 얘기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미 협상은 제법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2일째: D-1 롤러코스터 협상…핵심 관계자를 만나다

협상을 하루 앞둔 6월 11일 새벽 5시. 뉴스 중계에 참여 하려고 로비로 내려왔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로비 바깥쪽 끝에서 등 돌린 채 담배를 태우는 한 사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 시각까지 잠들지 못하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라면 협상단일 거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누군지 살펴보고는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미국 측 협상을 주도하는 핵심 관계자였습니다.

전날엔 마주쳐도 경호원이 따라다니며 취재를 막았었는데, 새벽 시간이라서인지 혼자였습니다. 재빨리 다가가서 KBS 기자라고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강경하게 거부했지만, 끝까지 쫓아가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약 10분, 저는 그에게서 북미 간 협상의 속사정을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마친 뒤, 자신의 실명과 영상, 녹취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단독] “북한 체제보장·비핵화 시간표 오늘 최종 결론” (2018.06.11.)
[뉴스9/단독] 합의문 윤곽…북미 정상 결단만 남았다 (2018.06.11.)
[뉴스9] ‘완전한 비핵화’ 명문화 의견 접근…난제 풀릴까? (2018.06.11.)
[뉴스9] “北, 지원보다 관계 개선이 우선”…방안은? (2018.06.11.)
[뉴스9] 美 “남북미 3자 종전 선언·연락 사무소 설치 가능” (2018.06.11.)


11일 오전 협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성 김 대사와 앨리슨 후커 보좌관11일 오전 협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성 김 대사와 앨리슨 후커 보좌관

이날 새벽까지만 해도 미국 측은 실무 협상에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저녁 싱가포르에 도착했기 때문에, 북측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오전 10시, 리츠 칼튼 호텔에서 열린 실무 협상 이후 분위기는 돌변했습니다. 북한이 판문점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CVID'라는 용어를 넣을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한 겁니다. 오전 협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던 성 김 대사와 앨리슨 후커 NSC 한반도보좌관의 표정은 전날과 달리 매우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세기의 담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비핵화를 수식하는 단어로 무엇을 넣을지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을 압박했고, 실무 회담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3일째 : D-day "북한 비핵화로 가는 큰 그림을 보세요"

12일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12일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당일, 두 정상은 단독 회담과 확대 회담, 그리고 오찬까지 한 뒤 공동 성명(joint statement)에 서명했습니다. 공동 성명은 4개 항으로 구성된 짧은 문서였습니다. 합의문엔 제가 핵심 관계자에게 들었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대부분 빠져 있었습니다. 아주 단출한 문건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두 나라가 합의점을 찾아서 문서로 명문화 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두 정상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가 있었고,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란 점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샹그릴라 호텔에서 본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협상단 샹그릴라 호텔에서 본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협상단

11일 새벽에 만난 이 핵심 관계자는 "세부 협상 하나 하나에 몰두하지 마세요. 숲을 보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하나씩 주고 받는 세부 협상보다는 북한 비핵화로 가는 큰 그림을 보라는 뜻입니다. 한 수 한 수 두는 '오목'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야 포석을 이해하는 '바둑'처럼, 아주 정교한 수 싸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샹그릴라 호텔은 싱가포르 호텔 중에서도 아주 비싼 편에 속합니다. 저희가 묵은 방은 가장 좁은 곳이었는데도 1박에 70만 원이 넘었습니다. 선뜻 결제하기 어려운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호텔에 머무며 취재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보진 못했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쪽 협상 핵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값이 아깝지 않은 2박 3일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트럼프와 함께한 샹그릴라 2박3일 숙박 취재기
    • 입력 2018-06-15 15:55:31
    • 수정2018-06-16 15:49:50
    취재후·사건후
KBS 취재진 숙소에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숙소 건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협상단이 묵은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저희 KBS 취재진도 이 호텔 타워윙(tower wing) 22층에 방을 잡았습니다. 숙박객이 아니면 취재원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저렴한 방이라 좁긴 했지만,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별도의 건물인 밸리윙(valley wing)이 제법 잘 보였습니다.

1일째: D-2 철통 경호 속 협상단을 만나라!

철통 경호 중인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는 날. 그가 묵는 별도의 건물 밸리윙은 내부가 텅텅 비워진 채 접근이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숙박객이라고 말했지만, 무장 경호원들이 출입을 막았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협상단은 제가 묵던 타워윙 한 층 아래인 21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경호 인력이 지키고 있어서 접근은 불가능했습니다. 하루 종일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협상단을 찾았습니다.

KBS 취재진이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호텔을 헤집고 다닌지 5시간째, 드디어 북한과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를 만났습니다. 김 대사는 라운지 가장 끝쪽 자리에 등을 돌린 채 앉아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놓여있던 두꺼운 국무부 파일이 아니었다면 성 김 대사인지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김 대사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표정이 아주 밝았습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다만 협상 상황을 묻는 질문에 "오늘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않았어요."라고 짧게 답변했습니다. 내일은 만날 거란 얘기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미 협상은 제법 잘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2일째: D-1 롤러코스터 협상…핵심 관계자를 만나다

협상을 하루 앞둔 6월 11일 새벽 5시. 뉴스 중계에 참여 하려고 로비로 내려왔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로비 바깥쪽 끝에서 등 돌린 채 담배를 태우는 한 사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 시각까지 잠들지 못하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라면 협상단일 거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누군지 살펴보고는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미국 측 협상을 주도하는 핵심 관계자였습니다.

전날엔 마주쳐도 경호원이 따라다니며 취재를 막았었는데, 새벽 시간이라서인지 혼자였습니다. 재빨리 다가가서 KBS 기자라고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강경하게 거부했지만, 끝까지 쫓아가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약 10분, 저는 그에게서 북미 간 협상의 속사정을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마친 뒤, 자신의 실명과 영상, 녹취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단독] “북한 체제보장·비핵화 시간표 오늘 최종 결론” (2018.06.11.)
[뉴스9/단독] 합의문 윤곽…북미 정상 결단만 남았다 (2018.06.11.)
[뉴스9] ‘완전한 비핵화’ 명문화 의견 접근…난제 풀릴까? (2018.06.11.)
[뉴스9] “北, 지원보다 관계 개선이 우선”…방안은? (2018.06.11.)
[뉴스9] 美 “남북미 3자 종전 선언·연락 사무소 설치 가능” (2018.06.11.)


11일 오전 협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성 김 대사와 앨리슨 후커 보좌관
이날 새벽까지만 해도 미국 측은 실무 협상에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저녁 싱가포르에 도착했기 때문에, 북측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오전 10시, 리츠 칼튼 호텔에서 열린 실무 협상 이후 분위기는 돌변했습니다. 북한이 판문점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CVID'라는 용어를 넣을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한 겁니다. 오전 협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던 성 김 대사와 앨리슨 후커 NSC 한반도보좌관의 표정은 전날과 달리 매우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세기의 담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비핵화를 수식하는 단어로 무엇을 넣을지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을 압박했고, 실무 회담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3일째 : D-day "북한 비핵화로 가는 큰 그림을 보세요"

12일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당일, 두 정상은 단독 회담과 확대 회담, 그리고 오찬까지 한 뒤 공동 성명(joint statement)에 서명했습니다. 공동 성명은 4개 항으로 구성된 짧은 문서였습니다. 합의문엔 제가 핵심 관계자에게 들었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대부분 빠져 있었습니다. 아주 단출한 문건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두 나라가 합의점을 찾아서 문서로 명문화 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두 정상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가 있었고,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란 점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샹그릴라 호텔에서 본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협상단
11일 새벽에 만난 이 핵심 관계자는 "세부 협상 하나 하나에 몰두하지 마세요. 숲을 보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하나씩 주고 받는 세부 협상보다는 북한 비핵화로 가는 큰 그림을 보라는 뜻입니다. 한 수 한 수 두는 '오목'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야 포석을 이해하는 '바둑'처럼, 아주 정교한 수 싸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샹그릴라 호텔은 싱가포르 호텔 중에서도 아주 비싼 편에 속합니다. 저희가 묵은 방은 가장 좁은 곳이었는데도 1박에 70만 원이 넘었습니다. 선뜻 결제하기 어려운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호텔에 머무며 취재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보진 못했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쪽 협상 핵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값이 아깝지 않은 2박 3일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