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주년] 통한어린 한국.일본 항로

입력 1995.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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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앵커 :

일제 때 수탈선 또한 징용선으로 불리던 부관연락선. 이 배가 왕래하던 우리 쪽 항구는 부산항이었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오늘은 눈물과 한이 서린 부산항의 50년 역사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조한제 기자입니다.


조한제 기자 :

관부 연락선. 50년 전 당시로서는 한.일 항로를 오가는 유일한 무역선이었습니다. 이 배가 바로 우리에게서 사랑과 물자를 빼앗아간 눈물이 맺힌 수탈선입니다.


김영오 (징병 한국인) :

되살아올 기약도 없고 상당히 그 석별의 정이랄까 서로가 눈물바다가 되도록 울었던 그 기억을 생각하면 항구 연락선이 상당히 원망스럽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한제 기자 :

해방이 되자 한.일 항로는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포들의 기쁨과 환희에 찬 귀항수송선이 오가는 만남의 항로로 변했습니다. 이어 6.25가 터지면서 원조물자와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보급항로로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최해군 (향토사학자) :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항로로 해서 상륙을 했고 그러면서 또한 군사물자 또한 이 항로로 해서 양륙이 되어서...


조한제 기자 :

민족과 애환을 같이 했던 한.일 항로는 이제는 이렇게 5만톤급 무역선이 오가는 관광 무역항로로 크게 변모했습니다. 이제는 쾌속선이 3시간 만에 다니는 한.일 항로. 그러나 부산항에서 바라보는 한.일 항로는 과거의 통한을 잊기에는 아직도 많은 아픈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조한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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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50주년] 통한어린 한국.일본 항로
    • 입력 1995-08-07 21:00:00
    뉴스 9

유정아 앵커 :

일제 때 수탈선 또한 징용선으로 불리던 부관연락선. 이 배가 왕래하던 우리 쪽 항구는 부산항이었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오늘은 눈물과 한이 서린 부산항의 50년 역사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조한제 기자입니다.


조한제 기자 :

관부 연락선. 50년 전 당시로서는 한.일 항로를 오가는 유일한 무역선이었습니다. 이 배가 바로 우리에게서 사랑과 물자를 빼앗아간 눈물이 맺힌 수탈선입니다.


김영오 (징병 한국인) :

되살아올 기약도 없고 상당히 그 석별의 정이랄까 서로가 눈물바다가 되도록 울었던 그 기억을 생각하면 항구 연락선이 상당히 원망스럽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한제 기자 :

해방이 되자 한.일 항로는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포들의 기쁨과 환희에 찬 귀항수송선이 오가는 만남의 항로로 변했습니다. 이어 6.25가 터지면서 원조물자와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보급항로로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최해군 (향토사학자) :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항로로 해서 상륙을 했고 그러면서 또한 군사물자 또한 이 항로로 해서 양륙이 되어서...


조한제 기자 :

민족과 애환을 같이 했던 한.일 항로는 이제는 이렇게 5만톤급 무역선이 오가는 관광 무역항로로 크게 변모했습니다. 이제는 쾌속선이 3시간 만에 다니는 한.일 항로. 그러나 부산항에서 바라보는 한.일 항로는 과거의 통한을 잊기에는 아직도 많은 아픈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조한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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