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18사건 2차공판; 대통령재가 관계없이 정승화총장 연행

입력 1996.03.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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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찬 앵커 :

오늘 열린 2차 공판에서 전두환 피고인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반란혐의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예견된 공격적인 답변이었습니다. 특히 이 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오늘 신문에서는 당시 정식 군 지휘계통이 과연 어디에 있었느냐를 두고 격렬한 공방이 계속 됐습니다.


계속해서 이준희 기자가 이 신문 내용 정리해 드립니다.


⊙이준희 기자 :

전두환 피고인은 먼저 하나회를 아느냐고 묻자 큰소리로 하나회 회장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부정축재자 처리 문제 등과 관련해 정승화 총장과 잦은 의견대립이 있었느냐고 하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12.12사건 이전에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승화 총장 연행문제를 보고한적이 있느냐고 하자 건의했지만 노재현 장관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에서 지난 79년 11월에 황영시 등과 함께 정승화 총장 연행 문제를 논의했다고 증언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국회 증언을 번복했습니다. 거사일을 개각 전날인 12월12일로 정한 것은 단지 짝수가 좋아서 그렇게 정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임장소를 보안사에서 30경비단으로 변경한 것은 보안 유지가 쉽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거사에 앞서 아들 재국씨에게 불미스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한 것은 단지 교육목적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학봉이 장태완 사령관 등을 연희동 요정으로 초청한 것은 병력동원을 막기 위한 것이고 했다는데 라고 묻자 그것은 이학봉씨가 입이 가벼워 그런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육본의 정식 지휘계통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하려 했느냐고 묻자 병력출동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여러부대를 출동시킨 것은 피고인이 지시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출동시킨 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하자 전 피고인은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정식 계통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육본측의 병력동원이 반란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육본에서 내린 원대복귀 명령은 정당한 것이었는데 왜 불응했느냐고 추궁하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진압군측 병력은 출동도 못했는데 전방 병력까지 동원한 것은 구국의 일념으로 청와대 부근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의 승인 없이 국방부 등을 점령한 것은 당시에는 불가피했다고 말했습니다. 연합사의 승인 없이 9사단과 2기갑여단을 빼내는 바람에 한미간 안보공백이 있었지 않느냐고 하자 한동안 알력이 있었지만 미국이 적극 협조했다고 답했습니다. 정승화 총장 연행을 대통령이 사후재가를 했는데 사후든 사전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했습니다. 변호인들은 사후재가도 필요없는 절차라고 했는데 라고 하자 사태수습을 위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승화 총장 연행과 병력 동원 등 12.12의 모든 것을 총지휘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두환 피고인은 자신이 모든 것을 구상하고 명령했다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털어놨습니다.


KBS 뉴스, 이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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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5.18사건 2차공판; 대통령재가 관계없이 정승화총장 연행
    • 입력 1996-03-18 21:00:00
    뉴스 9

⊙류근찬 앵커 :

오늘 열린 2차 공판에서 전두환 피고인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반란혐의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예견된 공격적인 답변이었습니다. 특히 이 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오늘 신문에서는 당시 정식 군 지휘계통이 과연 어디에 있었느냐를 두고 격렬한 공방이 계속 됐습니다.


계속해서 이준희 기자가 이 신문 내용 정리해 드립니다.


⊙이준희 기자 :

전두환 피고인은 먼저 하나회를 아느냐고 묻자 큰소리로 하나회 회장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부정축재자 처리 문제 등과 관련해 정승화 총장과 잦은 의견대립이 있었느냐고 하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12.12사건 이전에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승화 총장 연행문제를 보고한적이 있느냐고 하자 건의했지만 노재현 장관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에서 지난 79년 11월에 황영시 등과 함께 정승화 총장 연행 문제를 논의했다고 증언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국회 증언을 번복했습니다. 거사일을 개각 전날인 12월12일로 정한 것은 단지 짝수가 좋아서 그렇게 정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임장소를 보안사에서 30경비단으로 변경한 것은 보안 유지가 쉽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거사에 앞서 아들 재국씨에게 불미스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한 것은 단지 교육목적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학봉이 장태완 사령관 등을 연희동 요정으로 초청한 것은 병력동원을 막기 위한 것이고 했다는데 라고 묻자 그것은 이학봉씨가 입이 가벼워 그런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육본의 정식 지휘계통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하려 했느냐고 묻자 병력출동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여러부대를 출동시킨 것은 피고인이 지시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출동시킨 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하자 전 피고인은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정식 계통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육본측의 병력동원이 반란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육본에서 내린 원대복귀 명령은 정당한 것이었는데 왜 불응했느냐고 추궁하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진압군측 병력은 출동도 못했는데 전방 병력까지 동원한 것은 구국의 일념으로 청와대 부근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의 승인 없이 국방부 등을 점령한 것은 당시에는 불가피했다고 말했습니다. 연합사의 승인 없이 9사단과 2기갑여단을 빼내는 바람에 한미간 안보공백이 있었지 않느냐고 하자 한동안 알력이 있었지만 미국이 적극 협조했다고 답했습니다. 정승화 총장 연행을 대통령이 사후재가를 했는데 사후든 사전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했습니다. 변호인들은 사후재가도 필요없는 절차라고 했는데 라고 하자 사태수습을 위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승화 총장 연행과 병력 동원 등 12.12의 모든 것을 총지휘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두환 피고인은 자신이 모든 것을 구상하고 명령했다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털어놨습니다.


KBS 뉴스, 이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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