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야간 산불진화 헬기 뜰 수 있을까, 못 뜰까?

입력 2019.04.11 (13:29) 수정 2019.04.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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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헬기가 뜨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밤에는 헬기가 뜨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행기와 달리 상대적으로 저공비행을 하는데, 철탑이나 전깃줄 등 장애물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밤이라도 비행장과 비행장을 오가면서 기계에 의존하는 운항(계기비행)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산불을 끄는 것처럼 눈으로 보고 비행을 해야 하는 운항(시계비행)은 밤 비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산불진화처럼 낮은 고도(150m 기준) 운항은 더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습니다.

야간 산불진화 헬기는 이런 '시야'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헬기 동체에 서치라이트를 달고, 물을 담는 탱크에도 조명을 달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조종사는 영화에서나 보던 야간투시경(나이트비전고글)을 착용합니다. 우리나라 헬기 조종사 대부분이 군 출신이고, 군에서 야간조종 훈련을 거친 점을 고려하면 숙달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다지 혹독한 운항 조건은 아닙니다. 국토교통부도 회전익 항공기 운항기술기준에서 야간운행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며 야간투시경 착용으로 밤 비행의 시야 문제는 거의 해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산림청 산불진화 헬기 대부분이 동체에 물탱크가 달린 '벨리탱크형' 헬기인 반면 야간 산불진화 헬기는 동체에 물을 담는 '바스켓'을 매다는 '슬링형'입니다. '벨리탱크형' 헬기는 물을 담을 때 수면 5m 가까이 접근해 호스를 통해 물을 담기 때문에 물보라가 심해져 앞이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슬링형'은 30m 높이에서 '바스켓'을 물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물을 담아 시야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반면에 '슬링형'은 동체에 물건을 매다는 형태여서 '벨리탱크형'보다 운행에 어려운 단점은 있습니다.


태풍급 강풍이었다는데, 조종사 죽이려느냐?

첫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이 지적해 주신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산불진화 산림청 헬기 '날 수 없는데 날았다'"란 기사입니다. 기사는 지난 2005년 강원도 양양·고성 산불에서 산림청 헬기들이 강풍 속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산불진화에 나섰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왜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비행에 나섰을까요? 기사에서 지목한 '사명감'만으로 설명이 될까요? 저는 해당 기사에 언급된 '풍부한 경험'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취재한 민간 산불진화 헬기 기장은 헬기 상태와 운행 가능 여부는 기장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산불진화 헬기 기장들이 불나방도 아니고, 기장들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본인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당연합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게 기장들의 '풍부한 경험'인 겁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기장들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운행 여부를 결정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강원 산불 현장에서 야간 산불진화 헬기가 있었다면 기장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강풍이 산불 확산 원인이라고 지적한 보도들('도깨비 불'이 피해 키웠다…초유의 강풍에 산불진화 난항)에서 언급한 지난 4일 강원지역(미시령) 최고 풍속은 초속 34.1m입니다. 하지만 기상청 자료를 보면 산불이 시작됐을 당시인 4일 저녁 7시 20분 기준으로 10분 동안 강원 고성군지역 평균 풍속은 초속 5m에서 20m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에 야간 산불헬기는 뜰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뜨지 못했을까요? 바람이 거세지고 불길이 크게 번지던 한밤에는 뜨지 못했더라도 초기에 불길이 번지는 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확신은 못 하지만 '사명감'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야간 산불진화 헬기 기장들이 있었다면, 재난상황인 산불 확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상황은 안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분노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규제 때문에 사람생명 살리는 '닥터헬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고 통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취재부문이 아니어서 잘 몰랐는데, 이번 야간 산불진화 헬기를 취재하며 왜 이국종 교수가 분노했는지 알 듯했습니다. 재난상황이라는 긴급 상황에 투입되는 장비임에도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야간 산불진화 헬기인데도 주간에 진화를 시작했을 때만 야간까지 운항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4일 강원 고성지역의 일몰은 오후 7시, 불이 난 건 7시 20분. 그렇다면 다른 기상상황이 괜찮다고 했을 때, 헬기는 출동해야 할까요, 하면 안 될까요? 또 '바스켓'에 물을 담기 때문에 호수나 하천에서 물을 담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만, 지금 규정은 소방차를 이용해서 급수형태로 탱크에 물을 담아야 합니다. 만약 저수지나 하천에서 물을 담으려면 출동할 수 있는 지역의 모든 담수지역에 대한 안전성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두 안전을 위한 규정입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안전을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규정이 실전에서 적용되며 재난 현장이라는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안전한 운항만을 위한 규정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국종 교수가 닥터헬기 규정에 분노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이유입니다.


야간 산불진화, 이제는 대책을 찾아야 할 때

강원도는 지난해 야간 산불진화 헬기를 한 달 임차해 투입했지만, 올해는 경제성을 이유로 도입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대형 산불을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야간 산불진화 헬기의 비행장이 이번 고성지역 산불 발화지점에서 약 4km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올해도 투입이 됐더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야간 산불진화 헬기 효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 속에서도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장비는 개발된 지 이미 6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야간 산불진화 장비 필요성을 인정하는 산림청은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에 섭니다.

그렇다면 신뢰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토론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비 개량 못지 않게 관련 규정 정비와 조종사 훈련 시스템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관련 논의가 몇 년째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회전익 항공기 운항기술기준에 야간 산불진화에 대한 규정이 생긴 건 민간 업체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반면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좀 더 관련 장비와 규정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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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야간 산불진화 헬기 뜰 수 있을까, 못 뜰까?
    • 입력 2019-04-11 13:29:00
    • 수정2019-04-12 15:24:16
    취재후·사건후
밤에는 헬기가 뜨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밤에는 헬기가 뜨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행기와 달리 상대적으로 저공비행을 하는데, 철탑이나 전깃줄 등 장애물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밤이라도 비행장과 비행장을 오가면서 기계에 의존하는 운항(계기비행)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산불을 끄는 것처럼 눈으로 보고 비행을 해야 하는 운항(시계비행)은 밤 비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산불진화처럼 낮은 고도(150m 기준) 운항은 더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습니다.

야간 산불진화 헬기는 이런 '시야'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헬기 동체에 서치라이트를 달고, 물을 담는 탱크에도 조명을 달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조종사는 영화에서나 보던 야간투시경(나이트비전고글)을 착용합니다. 우리나라 헬기 조종사 대부분이 군 출신이고, 군에서 야간조종 훈련을 거친 점을 고려하면 숙달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다지 혹독한 운항 조건은 아닙니다. 국토교통부도 회전익 항공기 운항기술기준에서 야간운행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며 야간투시경 착용으로 밤 비행의 시야 문제는 거의 해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산림청 산불진화 헬기 대부분이 동체에 물탱크가 달린 '벨리탱크형' 헬기인 반면 야간 산불진화 헬기는 동체에 물을 담는 '바스켓'을 매다는 '슬링형'입니다. '벨리탱크형' 헬기는 물을 담을 때 수면 5m 가까이 접근해 호스를 통해 물을 담기 때문에 물보라가 심해져 앞이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슬링형'은 30m 높이에서 '바스켓'을 물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물을 담아 시야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반면에 '슬링형'은 동체에 물건을 매다는 형태여서 '벨리탱크형'보다 운행에 어려운 단점은 있습니다.


태풍급 강풍이었다는데, 조종사 죽이려느냐?

첫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이 지적해 주신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산불진화 산림청 헬기 '날 수 없는데 날았다'"란 기사입니다. 기사는 지난 2005년 강원도 양양·고성 산불에서 산림청 헬기들이 강풍 속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산불진화에 나섰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왜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비행에 나섰을까요? 기사에서 지목한 '사명감'만으로 설명이 될까요? 저는 해당 기사에 언급된 '풍부한 경험'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취재한 민간 산불진화 헬기 기장은 헬기 상태와 운행 가능 여부는 기장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산불진화 헬기 기장들이 불나방도 아니고, 기장들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본인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당연합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게 기장들의 '풍부한 경험'인 겁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기장들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운행 여부를 결정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강원 산불 현장에서 야간 산불진화 헬기가 있었다면 기장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강풍이 산불 확산 원인이라고 지적한 보도들('도깨비 불'이 피해 키웠다…초유의 강풍에 산불진화 난항)에서 언급한 지난 4일 강원지역(미시령) 최고 풍속은 초속 34.1m입니다. 하지만 기상청 자료를 보면 산불이 시작됐을 당시인 4일 저녁 7시 20분 기준으로 10분 동안 강원 고성군지역 평균 풍속은 초속 5m에서 20m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에 야간 산불헬기는 뜰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뜨지 못했을까요? 바람이 거세지고 불길이 크게 번지던 한밤에는 뜨지 못했더라도 초기에 불길이 번지는 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확신은 못 하지만 '사명감'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야간 산불진화 헬기 기장들이 있었다면, 재난상황인 산불 확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상황은 안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분노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규제 때문에 사람생명 살리는 '닥터헬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고 통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취재부문이 아니어서 잘 몰랐는데, 이번 야간 산불진화 헬기를 취재하며 왜 이국종 교수가 분노했는지 알 듯했습니다. 재난상황이라는 긴급 상황에 투입되는 장비임에도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야간 산불진화 헬기인데도 주간에 진화를 시작했을 때만 야간까지 운항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4일 강원 고성지역의 일몰은 오후 7시, 불이 난 건 7시 20분. 그렇다면 다른 기상상황이 괜찮다고 했을 때, 헬기는 출동해야 할까요, 하면 안 될까요? 또 '바스켓'에 물을 담기 때문에 호수나 하천에서 물을 담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만, 지금 규정은 소방차를 이용해서 급수형태로 탱크에 물을 담아야 합니다. 만약 저수지나 하천에서 물을 담으려면 출동할 수 있는 지역의 모든 담수지역에 대한 안전성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두 안전을 위한 규정입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안전을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규정이 실전에서 적용되며 재난 현장이라는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안전한 운항만을 위한 규정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국종 교수가 닥터헬기 규정에 분노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이유입니다.


야간 산불진화, 이제는 대책을 찾아야 할 때

강원도는 지난해 야간 산불진화 헬기를 한 달 임차해 투입했지만, 올해는 경제성을 이유로 도입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대형 산불을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야간 산불진화 헬기의 비행장이 이번 고성지역 산불 발화지점에서 약 4km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올해도 투입이 됐더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야간 산불진화 헬기 효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 속에서도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장비는 개발된 지 이미 6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야간 산불진화 장비 필요성을 인정하는 산림청은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이유에 섭니다.

그렇다면 신뢰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토론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비 개량 못지 않게 관련 규정 정비와 조종사 훈련 시스템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관련 논의가 몇 년째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회전익 항공기 운항기술기준에 야간 산불진화에 대한 규정이 생긴 건 민간 업체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반면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좀 더 관련 장비와 규정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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