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 보도는 ‘강 건너 불구경 저널리즘’?

입력 2019.04.14 (10:00) 수정 2019.04.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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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불의 경우 수도권은 피해가 없었지만, 지방은 피해가 컸다. 그런데 KBS의 시각이 대단히 수도권적이었다. 재난 피해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관찰자주의 형식으로 가고 있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번 강원도 고성 산불에 대처하는 언론의 대응이 미숙했던 근본적인 이유로 '수도권 중심주의'가 지적됐다.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 고정 패널인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정준희 겸임교수는 14일 방송되는 J에 참여해 고성 산불에 대처하는 K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대응이 미숙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정 교수는 또 "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눈으로 봤기 때문에 특보 내용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송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 저널리즘'으로 흘렀다"고 꼬집었다.


이번 재난 방송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더 구체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이유에서다. KBS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우선 지난 4일 산불 신고가 들어온 건 밤 7시 17분이었는데 본격적인 특보 체제가 가동된 건 밤 11시 25분이었다. 밤 10시대에 특보가 시작된 YTN이나 연합뉴스TV 보다, 다른 지상파인 MBC보다도 늦었다. 산림청이 산불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시간이 4일 밤 10시인 점을 감안하면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특보가 시작된 것이다. 특보의 내용 역시 사건 사고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특히 KBS가 우리나라 유일의 재난주관방송사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는 MBC나 SBS 같은 다른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도 재난 발생 시 재난보도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오로지 KBS만을 재난주관방송사로 정하고 있다. 지난 5일 하루에만 KBS 시청자 상담실로 100건이 넘는 시청자들의 쓴소리가 접수됐고 다른 언론들의 비판 기사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 9일 J 취재진이 만난 피해 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KBS가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초 발화 지점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 주민들은 밤새 대피하는 과정에서도, 화재 발생 초기에 산불 발생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도 KBS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비판과 지적에 대해 재난 특보 여부를 결정하고 제작하는 KBS 보도국은 과연 어떤 입장일까. KBS 보도국은 J 취재진에게 아래와 같은 설명을 내놨다.

고성속초 지역에 첫 산불 신고가 들어 온 밤 7시 17분 이후
①밤 8시 53분에 첫 스크롤을 내보냈고
②9시 뉴스 진행 중에 세 차례에 걸쳐 산불 현장을 연결해 소식을 전했으며
③9시 뉴스가 끝난 뒤에도 2차로 스크롤을 송출했고
④밤 10시 53분에 지상파 3사(KBS·MBC·SBS) 가운데 가장 먼저 특보를 했으며
⑤첫 특보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밤 11시 25분부터 본격적인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한마디로 KBS는 재난방송 매뉴얼에 근거해 재난방송을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KBS 보도국이 말하는 재난방송 매뉴얼은 2017년 6월 개정됐는데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폭발이나 붕괴, 산불 같은 사회재난에서 KBS의 재난 방송 절차와 내용 등을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난방송 1단계에서는 ①정규 뉴스에서 해당 뉴스를 다루고 ②재난 정보를 화면 하단에 자막 형태 내보내는 '스크롤'을 방송한다. 2·3단계에서는 스크롤은 물론 ③뉴스 특보를 내보낸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J에 출연해서 "'국민의 지지'라는 토대 위에 공영방송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번 고성 산불처럼 가장 공영방송 역할을 기대하는 시점에 KBS가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저버렸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KBS가 주는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지금 엄청나게 큰 산불이 났고 굉장히 많은 시민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너무 일상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배신감을 갖게 했다. 최소한 '오늘밤 김제동'을 시작하지 말고 바로 특보에 들어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KBS 보도국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라는 입장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김 사무처장은 "국민들 입장에선 매뉴얼 2단계나 3단계,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위급하다', '빨리 대피하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그 순간 예능이나 드라마,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성토했다.


J 고정 패널인 정준희 교수도 "KBS 보도국의 해명은 전형적인 관료의 답변으로, 메뉴얼에 근거해 재난 방송을 했기 때문에 면책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면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해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없다. 국민들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특보로 상시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뉴스전문채널이 이미 여러 개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뚜렷한 대비가 나타났다. KBS가 아무리 온라인으로 24시간 뉴스를 하더라도 메인 채널에서 필요할 때 뉴스전문채널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14일 밤 10시 반 KBS 1TV에서 방송되는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세월호 5년(2014.4.16 발생) 특집으로 <'세월호'5년, 그리고 '기레기'>라는 주제로 방송된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이번 고성 산불에 대한 KBS의 늑장 대응 사태를 짚어보고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본다. 산불 보도와 관련해서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KBS 송수진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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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 산불 보도는 ‘강 건너 불구경 저널리즘’?
    • 입력 2019-04-14 10:00:37
    • 수정2019-04-14 10:06:44
    저널리즘 토크쇼 J
"이번 산불의 경우 수도권은 피해가 없었지만, 지방은 피해가 컸다. 그런데 KBS의 시각이 대단히 수도권적이었다. 재난 피해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관찰자주의 형식으로 가고 있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번 강원도 고성 산불에 대처하는 언론의 대응이 미숙했던 근본적인 이유로 '수도권 중심주의'가 지적됐다.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이하 J)' 고정 패널인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정준희 겸임교수는 14일 방송되는 J에 참여해 고성 산불에 대처하는 K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대응이 미숙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정 교수는 또 "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눈으로 봤기 때문에 특보 내용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송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 저널리즘'으로 흘렀다"고 꼬집었다.


이번 재난 방송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더 구체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이유에서다. KBS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우선 지난 4일 산불 신고가 들어온 건 밤 7시 17분이었는데 본격적인 특보 체제가 가동된 건 밤 11시 25분이었다. 밤 10시대에 특보가 시작된 YTN이나 연합뉴스TV 보다, 다른 지상파인 MBC보다도 늦었다. 산림청이 산불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시간이 4일 밤 10시인 점을 감안하면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특보가 시작된 것이다. 특보의 내용 역시 사건 사고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특히 KBS가 우리나라 유일의 재난주관방송사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는 MBC나 SBS 같은 다른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도 재난 발생 시 재난보도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오로지 KBS만을 재난주관방송사로 정하고 있다. 지난 5일 하루에만 KBS 시청자 상담실로 100건이 넘는 시청자들의 쓴소리가 접수됐고 다른 언론들의 비판 기사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 9일 J 취재진이 만난 피해 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KBS가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초 발화 지점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 주민들은 밤새 대피하는 과정에서도, 화재 발생 초기에 산불 발생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도 KBS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비판과 지적에 대해 재난 특보 여부를 결정하고 제작하는 KBS 보도국은 과연 어떤 입장일까. KBS 보도국은 J 취재진에게 아래와 같은 설명을 내놨다.

고성속초 지역에 첫 산불 신고가 들어 온 밤 7시 17분 이후
①밤 8시 53분에 첫 스크롤을 내보냈고
②9시 뉴스 진행 중에 세 차례에 걸쳐 산불 현장을 연결해 소식을 전했으며
③9시 뉴스가 끝난 뒤에도 2차로 스크롤을 송출했고
④밤 10시 53분에 지상파 3사(KBS·MBC·SBS) 가운데 가장 먼저 특보를 했으며
⑤첫 특보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밤 11시 25분부터 본격적인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한마디로 KBS는 재난방송 매뉴얼에 근거해 재난방송을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KBS 보도국이 말하는 재난방송 매뉴얼은 2017년 6월 개정됐는데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폭발이나 붕괴, 산불 같은 사회재난에서 KBS의 재난 방송 절차와 내용 등을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난방송 1단계에서는 ①정규 뉴스에서 해당 뉴스를 다루고 ②재난 정보를 화면 하단에 자막 형태 내보내는 '스크롤'을 방송한다. 2·3단계에서는 스크롤은 물론 ③뉴스 특보를 내보낸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J에 출연해서 "'국민의 지지'라는 토대 위에 공영방송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번 고성 산불처럼 가장 공영방송 역할을 기대하는 시점에 KBS가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저버렸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KBS가 주는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지금 엄청나게 큰 산불이 났고 굉장히 많은 시민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너무 일상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배신감을 갖게 했다. 최소한 '오늘밤 김제동'을 시작하지 말고 바로 특보에 들어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KBS 보도국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라는 입장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김 사무처장은 "국민들 입장에선 매뉴얼 2단계나 3단계,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위급하다', '빨리 대피하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그 순간 예능이나 드라마,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성토했다.


J 고정 패널인 정준희 교수도 "KBS 보도국의 해명은 전형적인 관료의 답변으로, 메뉴얼에 근거해 재난 방송을 했기 때문에 면책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면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해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없다. 국민들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특보로 상시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뉴스전문채널이 이미 여러 개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뚜렷한 대비가 나타났다. KBS가 아무리 온라인으로 24시간 뉴스를 하더라도 메인 채널에서 필요할 때 뉴스전문채널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14일 밤 10시 반 KBS 1TV에서 방송되는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세월호 5년(2014.4.16 발생) 특집으로 <'세월호'5년, 그리고 '기레기'>라는 주제로 방송된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이번 고성 산불에 대한 KBS의 늑장 대응 사태를 짚어보고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본다. 산불 보도와 관련해서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KBS 송수진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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