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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조세포탈, 나쁜 짓은 맞지만 감옥행은 빼줄게요’…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입력 2020.03.31 (07:00) 수정 2020.03.31 (07:00) 취재후
[취재후] ‘조세포탈, 나쁜 짓은 맞지만 감옥행은 빼줄게요’…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침에 정혜사의 승려 덕수가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래도 따라다니면서 여러 차례 졸라 댔다.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고는 그를 보냈는데, 미투리를 정원명에게 주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미투리는 일종의 짚신이니까 지금으로 치면 해군 제독에게 감사의 뜻으로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로 드린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미투리 한 켤레, 비싼 물건도 아니었을 텐데 이순신 장군은 이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청탁금지법도 없었을 시절에 말입니다. 승려 덕수가 ‘받으십시오’, 여러 차례 졸라 댔다고 한 것을 보면, 승려도 나라를 지키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 장군에게 미투리 한 켤레라도 전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까지 미투리 한 켤레라도 바치려는 승려의 고집도 대단했는지 장군은 결국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냥 받지는 않고 돈을 건네주고서야 받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주고 구입한 미투리도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원치 않던 선물을 받았다고 느꼈는지, 자신이 신지도 않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미투리를 고생하는 부하에게 줬습니다. 이때는 사실 장군이 장군의 자리에 있지도 않을 때였습니다. 1597년 5월의 일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장군은 8월이 되어서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한 달 뒤인 9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끕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깐깐한 모습을 보였던 이순신 장군은 늘 원칙을 지키던 무인답게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도 엄격했습니다. 법대로 처리했습니다. 이리 봐주고 저리 봐주고 하다 보면 기강이 서지 않고 공동체에 해악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에는 죄를 저지른 사람을 벌했다는 문장이 쉼 없이 등장합니다. 한자로는 결죄(決罪) 등으로 표기돼 있는데, 한글로 풀어쓴 난중일기에는 흔히 처벌했다고 표현됩니다. 전쟁 방비를 못한 죄를 묻고, 군대 장비를 관리 못 한 죄도 묻습니다. 꼼꼼하게 죄를 묻습니다. 특히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엄히 물어 처벌했습니다.

‘1592년 1월: 군관과 색리들이 군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1592년 2월: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1592년 3월: 활, 갑옷, 투구, 화살통, 환도 등이 깨어지고 낡아서 볼품없이 된 것이 많았다. 담당 색리와 활을 만드는 장인, 감고(監考) 등을 처벌하였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

이순신 장군은 날짜를 어긴 자, 도둑질을 한 자, 정해진 날짜를 맞추지 못한 자, 모두 다 처벌했다고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서해문집의 난중일기(송찬섭 옮김)를 기준으로 보면 처벌이란 단어만 삼십여 차례 등장하는데 처벌과 함께 형벌을 내렸다는 표현도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실제 형을 집행한 기록은 이보다도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군량미를 훔친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왜군과의 전투가 시작되며 연전연승을 한 이순신 장군은 부대 운영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군량미 확보와 관리에도 힘을 기울였는데요. 난중일기를 보면 군량미를 모았다, 조달했다, 확인했다, 관리했다 등의 표현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그리고 군량미를 훔치다 잡힌 사람들, 그러니까 나랏돈을 빼돌리다 잡힌 도적들에게는 당연히도 엄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1594년 9월, 군량을 세 번이나 훔친 자를 처벌하였다.

1595년 6월, 군량미를 훔친 자를 가두도록 하였다.

1597년 8월, 군량을 담당하는 감관과 색리가 군량을 모두 훔쳐서 다른 곳으로 숨겨 놓았기 때문에 붙들어다가 곤장을 쳤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

하지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나랏돈의 무게는 다르지 않을 텐데 지금은 나랏돈을 빼돌려도 감옥행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사연인가 하면 조세포탈범들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차명계좌를 만들어 소득을 숨기며 조세포탈을 저지른 장 아무개 씨는 4년 동안 16억 원이 넘는 세금을 포탈했습니다. 조세포탈은 세금체납과 다릅니다. 체납이 부과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라면, 포탈은 세금을 내지 않을 작정으로 정부를 속인 행위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세포탈범들은 죄가 확정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장 아무개 씨는 16억 원이 넘는 세금을 포탈했는데도 결국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감옥행을 면한 것이죠. 재판부는 장 씨가 장기간 범죄를 저질렀고 포탈세액이 고액인 점은 맞지만, 반성을 하고 있고 세무당국과 협의 뒤 포탈세액 분납계획서를 작성했고, 포탈세액도 일부 납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고액의 조세포탈을 해서 명단이 공개된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 취재를 해보니 절반이 넘었습니다. 열 명 가운데 여섯 명꼴이었습니다.



[조세포탈 보고서]① 그들은 법을 두려워할까?…‘포탈세액 평균 29억, 열에 여섯은 집행유예’

[조세포탈 보고서]② 거액 조세포탈 어떻게?…‘무자료·폭탄업체·차명 거래’

수억, 수십억의 조세를 포탈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옥행을 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취재를 더 해보니, 대부분이 양형기준이 정한 권고형의 하한 이하 형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쉽게 말해, 양형기준이 3년에서 5년이라 돼 있으면, 대부분 3년이나 또는 그 이하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양형기준은 ‘형량은 기본으로 이렇게 결정하되, 경우에 따라 형량을 조금 더 낮춰주거나 또는 조금 더 높여준다’는 의미로 정한 것인데, 조세포탈범들의 경우 대부분 가장 낮은 형량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③ 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5년형 권고에 3년형 선고?’

얘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사례로 나왔던 장 씨의 경우, 더 들어가 봤습니다. 39억여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어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재판받을 때는 포탈세액도 일부 납부하고 분납계획서도 만들고, 이런 일들로 ‘점수’를 따 실형을 면했는데,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밀린 세금 수십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월급 받아 꼬박꼬박 세금 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합니다. 판결문을 입수해서 따져보니,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와 있는 조세포탈범들만 64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열람제한 등으로 판결문 입수가 불가능한 3명을 제외한 61명의 포탈세액은 평균 34억 5천백만 원으로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30명은 재판부의 선처로 집행유예를 받아 실형을 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형량을 낮게 선고해 감옥행은 피했으나, ‘반성합니다’ 말을 해놓고는 여전히 수억, 수십억의 세금은 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④ ‘반성합니다’로 감옥행 면했는데…‘지금도 체납이 수십억’

[KBS 뉴스9] 조세포탈이란?

[KBS 뉴스9] 회장님 형량은 기준 미달?

[KBS 뉴스9] 조세포탈범 처벌 솜방망이…양형기준과 재판은 따로따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사실상 나랏돈 ‘떼어먹은’ 조세포탈범들, 보통 거액의 벌금형도 함께 부과받는데요. 벌금은 제대로 내고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집행된 벌금 가운데 제대로 납부한 건 4.5%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95.5%는 노역장 유치로 대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벌금 액수가 커서 평균 노역 일당이 770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하루 노역을 하면 770만 원의 벌금을 없던 것으로 해주는 것이고, 한 달 노역을 하면 2억 3천만 원의 벌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1년 노역을 하면 30억 원에 가까운 벌금이 사라지게 되는 셈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대부분의 고액 조세포탈범들은 벌금을 내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⑤ ‘일당 7천만 원’…황제노역이 가능한 이유는?

[KBS 뉴스9] 세금 포탈해도 벌금 대신 황제노역... 일당 7천만원도

국회입법조사처 문은희 조사관은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은 최근 5년(2013~2017년)간 조세범죄에 대한 징역형 비율이 80.1%에 이른다고 강조했는데요. 백혜원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조세포탈범들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 다른 범죄보다 낮기 때문이라며, 양형기준의 근간이 되는 법정형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조세포탈 보고서]⑥ 조세포탈 천국 코리아?…미국은 징역형 80%

[KBS 뉴스9] 조세포탈은 중범죄... 빠져나갈 구멍 막아야

다시 난중일기로 돌아가서, 난중일기가 그려내는 이순신 장군은 늘 원칙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두통에, 복통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직전, 활과 갑옷, 투구 등을 담당하는 관리와 기술자, 감독관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면 잘못은 시정되지 않았을 테고, 왜군과 벌인 수많은 전투는 더 힘들어졌을 겁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형량을 무겁게 매기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범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법이 허용하는 가장 약한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나간다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닐 겁니다. 조세포탈죄는 사기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나라 곳간을 비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판결문이 말하고 있듯이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이 반복되면서 ‘혹시 걸려도 감옥행만은 피할 수 있다’, ‘벌금이 많기는 하지만 몸으로 때우면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자리 잡아 나가게 된다면, 조세포탈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되풀이될수록 그만큼 비게 되는 국고는 성실한 납세자들이 떠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취재후] ‘조세포탈, 나쁜 짓은 맞지만 감옥행은 빼줄게요’…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입력 2020.03.31 (07:00)
    • 수정 2020.03.31 (07:00)
    취재후
[취재후] ‘조세포탈, 나쁜 짓은 맞지만 감옥행은 빼줄게요’…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침에 정혜사의 승려 덕수가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래도 따라다니면서 여러 차례 졸라 댔다.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고는 그를 보냈는데, 미투리를 정원명에게 주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미투리는 일종의 짚신이니까 지금으로 치면 해군 제독에게 감사의 뜻으로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로 드린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미투리 한 켤레, 비싼 물건도 아니었을 텐데 이순신 장군은 이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청탁금지법도 없었을 시절에 말입니다. 승려 덕수가 ‘받으십시오’, 여러 차례 졸라 댔다고 한 것을 보면, 승려도 나라를 지키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 장군에게 미투리 한 켤레라도 전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까지 미투리 한 켤레라도 바치려는 승려의 고집도 대단했는지 장군은 결국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냥 받지는 않고 돈을 건네주고서야 받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주고 구입한 미투리도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원치 않던 선물을 받았다고 느꼈는지, 자신이 신지도 않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미투리를 고생하는 부하에게 줬습니다. 이때는 사실 장군이 장군의 자리에 있지도 않을 때였습니다. 1597년 5월의 일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장군은 8월이 되어서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한 달 뒤인 9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끕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깐깐한 모습을 보였던 이순신 장군은 늘 원칙을 지키던 무인답게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도 엄격했습니다. 법대로 처리했습니다. 이리 봐주고 저리 봐주고 하다 보면 기강이 서지 않고 공동체에 해악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에는 죄를 저지른 사람을 벌했다는 문장이 쉼 없이 등장합니다. 한자로는 결죄(決罪) 등으로 표기돼 있는데, 한글로 풀어쓴 난중일기에는 흔히 처벌했다고 표현됩니다. 전쟁 방비를 못한 죄를 묻고, 군대 장비를 관리 못 한 죄도 묻습니다. 꼼꼼하게 죄를 묻습니다. 특히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엄히 물어 처벌했습니다.

‘1592년 1월: 군관과 색리들이 군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1592년 2월: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1592년 3월: 활, 갑옷, 투구, 화살통, 환도 등이 깨어지고 낡아서 볼품없이 된 것이 많았다. 담당 색리와 활을 만드는 장인, 감고(監考) 등을 처벌하였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

이순신 장군은 날짜를 어긴 자, 도둑질을 한 자, 정해진 날짜를 맞추지 못한 자, 모두 다 처벌했다고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서해문집의 난중일기(송찬섭 옮김)를 기준으로 보면 처벌이란 단어만 삼십여 차례 등장하는데 처벌과 함께 형벌을 내렸다는 표현도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실제 형을 집행한 기록은 이보다도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군량미를 훔친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왜군과의 전투가 시작되며 연전연승을 한 이순신 장군은 부대 운영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군량미 확보와 관리에도 힘을 기울였는데요. 난중일기를 보면 군량미를 모았다, 조달했다, 확인했다, 관리했다 등의 표현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그리고 군량미를 훔치다 잡힌 사람들, 그러니까 나랏돈을 빼돌리다 잡힌 도적들에게는 당연히도 엄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1594년 9월, 군량을 세 번이나 훔친 자를 처벌하였다.

1595년 6월, 군량미를 훔친 자를 가두도록 하였다.

1597년 8월, 군량을 담당하는 감관과 색리가 군량을 모두 훔쳐서 다른 곳으로 숨겨 놓았기 때문에 붙들어다가 곤장을 쳤다.

난중일기(송찬섭 옮김, 서해문집)

하지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나랏돈의 무게는 다르지 않을 텐데 지금은 나랏돈을 빼돌려도 감옥행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사연인가 하면 조세포탈범들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차명계좌를 만들어 소득을 숨기며 조세포탈을 저지른 장 아무개 씨는 4년 동안 16억 원이 넘는 세금을 포탈했습니다. 조세포탈은 세금체납과 다릅니다. 체납이 부과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라면, 포탈은 세금을 내지 않을 작정으로 정부를 속인 행위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세포탈범들은 죄가 확정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장 아무개 씨는 16억 원이 넘는 세금을 포탈했는데도 결국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감옥행을 면한 것이죠. 재판부는 장 씨가 장기간 범죄를 저질렀고 포탈세액이 고액인 점은 맞지만, 반성을 하고 있고 세무당국과 협의 뒤 포탈세액 분납계획서를 작성했고, 포탈세액도 일부 납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고액의 조세포탈을 해서 명단이 공개된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 취재를 해보니 절반이 넘었습니다. 열 명 가운데 여섯 명꼴이었습니다.



[조세포탈 보고서]① 그들은 법을 두려워할까?…‘포탈세액 평균 29억, 열에 여섯은 집행유예’

[조세포탈 보고서]② 거액 조세포탈 어떻게?…‘무자료·폭탄업체·차명 거래’

수억, 수십억의 조세를 포탈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옥행을 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취재를 더 해보니, 대부분이 양형기준이 정한 권고형의 하한 이하 형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쉽게 말해, 양형기준이 3년에서 5년이라 돼 있으면, 대부분 3년이나 또는 그 이하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양형기준은 ‘형량은 기본으로 이렇게 결정하되, 경우에 따라 형량을 조금 더 낮춰주거나 또는 조금 더 높여준다’는 의미로 정한 것인데, 조세포탈범들의 경우 대부분 가장 낮은 형량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③ 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5년형 권고에 3년형 선고?’

얘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사례로 나왔던 장 씨의 경우, 더 들어가 봤습니다. 39억여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어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재판받을 때는 포탈세액도 일부 납부하고 분납계획서도 만들고, 이런 일들로 ‘점수’를 따 실형을 면했는데,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밀린 세금 수십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월급 받아 꼬박꼬박 세금 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합니다. 판결문을 입수해서 따져보니,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와 있는 조세포탈범들만 64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열람제한 등으로 판결문 입수가 불가능한 3명을 제외한 61명의 포탈세액은 평균 34억 5천백만 원으로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30명은 재판부의 선처로 집행유예를 받아 실형을 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형량을 낮게 선고해 감옥행은 피했으나, ‘반성합니다’ 말을 해놓고는 여전히 수억, 수십억의 세금은 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④ ‘반성합니다’로 감옥행 면했는데…‘지금도 체납이 수십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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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9] 조세포탈범 처벌 솜방망이…양형기준과 재판은 따로따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사실상 나랏돈 ‘떼어먹은’ 조세포탈범들, 보통 거액의 벌금형도 함께 부과받는데요. 벌금은 제대로 내고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집행된 벌금 가운데 제대로 납부한 건 4.5%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95.5%는 노역장 유치로 대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벌금 액수가 커서 평균 노역 일당이 770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하루 노역을 하면 770만 원의 벌금을 없던 것으로 해주는 것이고, 한 달 노역을 하면 2억 3천만 원의 벌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1년 노역을 하면 30억 원에 가까운 벌금이 사라지게 되는 셈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대부분의 고액 조세포탈범들은 벌금을 내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죠.

[조세포탈 보고서]⑤ ‘일당 7천만 원’…황제노역이 가능한 이유는?

[KBS 뉴스9] 세금 포탈해도 벌금 대신 황제노역... 일당 7천만원도

국회입법조사처 문은희 조사관은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은 최근 5년(2013~2017년)간 조세범죄에 대한 징역형 비율이 80.1%에 이른다고 강조했는데요. 백혜원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조세포탈범들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 다른 범죄보다 낮기 때문이라며, 양형기준의 근간이 되는 법정형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조세포탈 보고서]⑥ 조세포탈 천국 코리아?…미국은 징역형 80%

[KBS 뉴스9] 조세포탈은 중범죄... 빠져나갈 구멍 막아야

다시 난중일기로 돌아가서, 난중일기가 그려내는 이순신 장군은 늘 원칙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두통에, 복통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직전, 활과 갑옷, 투구 등을 담당하는 관리와 기술자, 감독관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면 잘못은 시정되지 않았을 테고, 왜군과 벌인 수많은 전투는 더 힘들어졌을 겁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형량을 무겁게 매기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범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법이 허용하는 가장 약한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나간다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닐 겁니다. 조세포탈죄는 사기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나라 곳간을 비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판결문이 말하고 있듯이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이 반복되면서 ‘혹시 걸려도 감옥행만은 피할 수 있다’, ‘벌금이 많기는 하지만 몸으로 때우면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자리 잡아 나가게 된다면, 조세포탈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되풀이될수록 그만큼 비게 되는 국고는 성실한 납세자들이 떠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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