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내 차례 끝나길”…‘박사방’ 피해자가 겪은 ‘지옥’

입력 2020.04.19 (08:03) 수정 2020.04.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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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최초 신고자인 대학생 '추적단 불꽃'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연속 기획을 보도합니다. 'n번방', '박사방' 등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당했거나 이 과정에서 금전적 사기나 신상정보 유출 등 피해를 당한 사례 등 성범죄 피해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를 받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신원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KBS X 불꽃 ⑤] "빨리 내 차례 끝나길"…'박사방' 피해자가 말한 '지옥'

KBS는 '추적단 불꽃'이 제공한 '고담방' 약 1년치 대화 내역을 키워드 분석 기법으로 분석해 보도해드렸습니다. 그 결과 대화방 참여자들의 여성에 대한 왜곡된 피해의식이 적개심으로 나타나, 성범죄에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됐다는 의식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고담방’ 대화 15만 건 분석…“누가 노예라고요?”(2020.4.14. KBS 뉴스 홈페이지)

오늘도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다루는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기사에 나오는 단지 '착취'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KBS 취재진과 '불꽃'이 이른바 '박사방'의 피해 여성 A 씨를 만나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제보를 결심했다는 A 씨를 오랜 설득 끝에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A 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단순한 '착취' 아니었다"'나를 죽일 것 같았던' 공포

지난해 12월 어느 날 A 씨는 트위터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글을 봤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A 씨는 글에 적힌 텔레그램 ID로 연락을 했습니다. 연결이 된 남성은 A 씨에게 현금 다발과 통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회유한 뒤, 다른 남성과 A 씨를 '매칭'시켜줬습니다. A 씨와 연결된 남성은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나온 사진을 10장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얼굴 사진이니까 보냈죠. 그랬더니 '손을 한 번 찍어봐'라는 식의 요구가 하나씩 늘어 갔고, 대화를 한 지 1시간 정도 됐을 때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막 '나체 사진 보내...' 제가 못 하겠다고 했더니 트위터에 제 사진들을 올리겠다고 협박했어요."

협박뿐만 아니라 이 남성은 A 씨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것 아니냐며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A 씨와 자신을 연결시켜준 대화방에 본인이 돈을 이미 보냈는데, 해당 대화방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A 씨가 대화방 사람들과 짜고 자기 돈만 빼돌리려 사기치려는 것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너도 공범이지' 이러면서 제 사진들을 다시 다 저한테 보내면서 '인생 종치고 싶냐'는 식의 욕과 협박이 1초마다 계속 왔어요. 메시지를 확인 안 하면 욕을 보내면서 '바로바로 답장해', '눈 떼지 마'라고 했어요. 막 당장 무슨 일이라고 생길 것처럼 진짜... 제 사진에 낙서를 해서 보내기도 했고요."

이 남성은 결국 신분증 사진도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A 씨가 공범이 아니라면 믿음을 달라는 요구였죠.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습니다.

"(영상을 촬영할 때) 항상 '박사장'을 언급하라고 저한테 얘기를 했었거든요. 1분 안에 특정 포즈를 취해서 마이크에 대고 '박사장님 잘못했어요'라고 하라고 대사까지 다 적어서 줬어요."

이 남성은 만나자고도 요구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서울 00로 오면 내가 직원을 보낼 테니, 만나서 합의를 봐라. 네가 공범이 아니라면 그 정도 성의를 보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어요. 제가 못 가겠다고 하니까, '그럼 (사진) 다 올릴게' 이러면서 웃기 시작하더니, '잘 죽어라, 미친X' 이러고 전화를 끊었어요."

‘박사방’ 피해자라고 밝힌 A 씨는 취재팀과 만나 “빨리 내 차례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박사방’ 피해자라고 밝힌 A 씨는 취재팀과 만나 “빨리 내 차례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남성이 전화를 끊고 나자 A 씨는 신고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가기 전 새벽 내내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자신의 사진이 올라온 텔레그램방을 찾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화방의 이름은 '박사 자료 모음', '박사 샘플 공유방'이었습니다.

"이미 제 사진이 다 올라와 있던 상황이었고... 방에 몇 명이 있는지 뜨잖아요. 2,600명, 이렇게 떠 있었고요. 그 방에서 그렇게 피해를 당한 사람한테 별명을 붙이거든요? '○○녀', 저한테도 그렇게 닉네임이 붙었어요."

트위터를 통해 남성에게 처음 연락을 한 이후 남성이 전화를 끊기까지, 욕설과 협박 메시지가 매 순간 올라와 A 씨를 공포에 떨게 한 시간은 단 3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은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고, 언제까지 떠돌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A 씨는 극도로 불안해했습니다.

차분히 취재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던 A 씨는 텔레그램방 성착취 기사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습니다. 본인의 피해를 단순히 '착취'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착취가 아니었어요. 그건... 이대로 안 하면 나를 죽일 것만 같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그런 게 전혀 (기사엔)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냥 '고수익 알바' 이 단어들만 보고 '피해자들도 이상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시작은 그랬을 수 있죠. 저도 바보 같다고 생각도 해요. 근데 솔직히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만 들어가도, '룸 술집 알바 구한다' 이런 글 많잖아요. 저는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가장 고통…내 차례 끝나기만 바랐다"

그런데 A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대화방에 올라온 자신의 사진을 보거나, 협박을 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를 한 이후에도, 자신의 사진이 텔레그램방에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앞서 말한 '박사 자료 모음', '박사 샘플 공유방'에 들어가 일반 이용자인 것처럼 지켜봤습니다.

"어느 날 대화방 관리자가 '저녁 시간이고 날씨도 좋은데, 저희 투표 한번 할까요?' 그러더니 저랑 다른 피해자 세 분의 이름을 보내면서 '4명 중 투표수가 제일 많은 한 명의 자료를 뿌려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2등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다른 피해자의 자료가 공유되는 걸 보면서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A 씨는 털어놨습니다.

"대화방의 대표 사진이 제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이 바뀌던 날이었어요. 그 날도 제가 안도하고 있는 거죠. 저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애 얼굴로 바뀌었는데, 제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빨리 내 차례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A 씨는 '박사방' 운영진들이 조직적으로 피해자들을 착취한 정황에 대해서도 증언했습니다.

"누군가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는 사진을 올렸어요. 본인이 만든 것 같아요. 그걸 보내면서 '나는 박사가 보내서 얘도 XX했다', '너네도 박사한테 잘해'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자기가 박사의 직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못해도 4~5명 있었어요. '나 이번 달에 월급을 얼마 받는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앞서 A 씨를 위협한 남성도 '박사' 조주빈의 직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A 씨는 서울 모처로 나오라는 그 '직원'의 요구를 자신은 거절했지만, 협박에 못 이겨 요구하는 장소로 나왔다가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여럿 있을 거라며 괴로워했습니다.

■ "날 좋은 날 해 받고 비 오는 날 비 맞듯…다들 버텼으면"

A 씨는 차츰 일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기억은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A 씨는 용기를 내 취재팀에 피해 사실과 생각을 전했습니다. 피해 여성들이 "다 괜찮은지 궁금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A 씨가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드립니다. 포기하지 말 것, 꼭 버텨내 줄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거실 바닥에 앉았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햇빛이 너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예요. 갑자기 그때 막 눈물이 엄청 나기 시작했어요. 그날 정말 오랜만에 하늘을 본 느낌? 진짜 오랜만에 뭔가 살로 느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걸...

솔직히 앞으로 뭐가 얼마나 바뀌고, 범인이 더 잡힐 거라는 것 기대 안 해요. 제 자료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되길 바라는 것도 이젠 못 하겠어요. 잊을 만하면 올라오고, 잊을 만하면 올라오고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또다시 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살아야 되니까. 그러니까... 정말 다 버티셨으면. 저도 매일이 너무너무 힘들지만요. 그냥 날씨 좋은 날 해 한 번 받고, 비 오는 날 비 한 번 맞고... 그냥 그렇게, 다들 버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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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리 내 차례 끝나길”…‘박사방’ 피해자가 겪은 ‘지옥’
    • 입력 2020-04-19 08:03:59
    • 수정2020-04-19 11:22:43
    취재K
KBS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최초 신고자인 대학생 '추적단 불꽃'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연속 기획을 보도합니다. 'n번방', '박사방' 등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당했거나 이 과정에서 금전적 사기나 신상정보 유출 등 피해를 당한 사례 등 성범죄 피해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를 받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신원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KBS X 불꽃 ⑤] "빨리 내 차례 끝나길"…'박사방' 피해자가 말한 '지옥'

KBS는 '추적단 불꽃'이 제공한 '고담방' 약 1년치 대화 내역을 키워드 분석 기법으로 분석해 보도해드렸습니다. 그 결과 대화방 참여자들의 여성에 대한 왜곡된 피해의식이 적개심으로 나타나, 성범죄에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됐다는 의식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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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다루는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기사에 나오는 단지 '착취'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KBS 취재진과 '불꽃'이 이른바 '박사방'의 피해 여성 A 씨를 만나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제보를 결심했다는 A 씨를 오랜 설득 끝에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A 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단순한 '착취' 아니었다"'나를 죽일 것 같았던' 공포

지난해 12월 어느 날 A 씨는 트위터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글을 봤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A 씨는 글에 적힌 텔레그램 ID로 연락을 했습니다. 연결이 된 남성은 A 씨에게 현금 다발과 통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회유한 뒤, 다른 남성과 A 씨를 '매칭'시켜줬습니다. A 씨와 연결된 남성은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나온 사진을 10장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얼굴 사진이니까 보냈죠. 그랬더니 '손을 한 번 찍어봐'라는 식의 요구가 하나씩 늘어 갔고, 대화를 한 지 1시간 정도 됐을 때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막 '나체 사진 보내...' 제가 못 하겠다고 했더니 트위터에 제 사진들을 올리겠다고 협박했어요."

협박뿐만 아니라 이 남성은 A 씨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것 아니냐며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A 씨와 자신을 연결시켜준 대화방에 본인이 돈을 이미 보냈는데, 해당 대화방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A 씨가 대화방 사람들과 짜고 자기 돈만 빼돌리려 사기치려는 것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너도 공범이지' 이러면서 제 사진들을 다시 다 저한테 보내면서 '인생 종치고 싶냐'는 식의 욕과 협박이 1초마다 계속 왔어요. 메시지를 확인 안 하면 욕을 보내면서 '바로바로 답장해', '눈 떼지 마'라고 했어요. 막 당장 무슨 일이라고 생길 것처럼 진짜... 제 사진에 낙서를 해서 보내기도 했고요."

이 남성은 결국 신분증 사진도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A 씨가 공범이 아니라면 믿음을 달라는 요구였죠.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습니다.

"(영상을 촬영할 때) 항상 '박사장'을 언급하라고 저한테 얘기를 했었거든요. 1분 안에 특정 포즈를 취해서 마이크에 대고 '박사장님 잘못했어요'라고 하라고 대사까지 다 적어서 줬어요."

이 남성은 만나자고도 요구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서울 00로 오면 내가 직원을 보낼 테니, 만나서 합의를 봐라. 네가 공범이 아니라면 그 정도 성의를 보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어요. 제가 못 가겠다고 하니까, '그럼 (사진) 다 올릴게' 이러면서 웃기 시작하더니, '잘 죽어라, 미친X' 이러고 전화를 끊었어요."

‘박사방’ 피해자라고 밝힌 A 씨는 취재팀과 만나 “빨리 내 차례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남성이 전화를 끊고 나자 A 씨는 신고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가기 전 새벽 내내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자신의 사진이 올라온 텔레그램방을 찾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화방의 이름은 '박사 자료 모음', '박사 샘플 공유방'이었습니다.

"이미 제 사진이 다 올라와 있던 상황이었고... 방에 몇 명이 있는지 뜨잖아요. 2,600명, 이렇게 떠 있었고요. 그 방에서 그렇게 피해를 당한 사람한테 별명을 붙이거든요? '○○녀', 저한테도 그렇게 닉네임이 붙었어요."

트위터를 통해 남성에게 처음 연락을 한 이후 남성이 전화를 끊기까지, 욕설과 협박 메시지가 매 순간 올라와 A 씨를 공포에 떨게 한 시간은 단 3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은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고, 언제까지 떠돌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A 씨는 극도로 불안해했습니다.

차분히 취재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던 A 씨는 텔레그램방 성착취 기사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습니다. 본인의 피해를 단순히 '착취'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착취가 아니었어요. 그건... 이대로 안 하면 나를 죽일 것만 같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그런 게 전혀 (기사엔)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냥 '고수익 알바' 이 단어들만 보고 '피해자들도 이상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시작은 그랬을 수 있죠. 저도 바보 같다고 생각도 해요. 근데 솔직히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만 들어가도, '룸 술집 알바 구한다' 이런 글 많잖아요. 저는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가장 고통…내 차례 끝나기만 바랐다"

그런데 A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대화방에 올라온 자신의 사진을 보거나, 협박을 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를 한 이후에도, 자신의 사진이 텔레그램방에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앞서 말한 '박사 자료 모음', '박사 샘플 공유방'에 들어가 일반 이용자인 것처럼 지켜봤습니다.

"어느 날 대화방 관리자가 '저녁 시간이고 날씨도 좋은데, 저희 투표 한번 할까요?' 그러더니 저랑 다른 피해자 세 분의 이름을 보내면서 '4명 중 투표수가 제일 많은 한 명의 자료를 뿌려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2등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다른 피해자의 자료가 공유되는 걸 보면서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A 씨는 털어놨습니다.

"대화방의 대표 사진이 제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이 바뀌던 날이었어요. 그 날도 제가 안도하고 있는 거죠. 저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애 얼굴로 바뀌었는데, 제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빨리 내 차례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A 씨는 '박사방' 운영진들이 조직적으로 피해자들을 착취한 정황에 대해서도 증언했습니다.

"누군가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는 사진을 올렸어요. 본인이 만든 것 같아요. 그걸 보내면서 '나는 박사가 보내서 얘도 XX했다', '너네도 박사한테 잘해'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자기가 박사의 직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못해도 4~5명 있었어요. '나 이번 달에 월급을 얼마 받는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앞서 A 씨를 위협한 남성도 '박사' 조주빈의 직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A 씨는 서울 모처로 나오라는 그 '직원'의 요구를 자신은 거절했지만, 협박에 못 이겨 요구하는 장소로 나왔다가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여럿 있을 거라며 괴로워했습니다.

■ "날 좋은 날 해 받고 비 오는 날 비 맞듯…다들 버텼으면"

A 씨는 차츰 일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기억은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A 씨는 용기를 내 취재팀에 피해 사실과 생각을 전했습니다. 피해 여성들이 "다 괜찮은지 궁금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A 씨가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드립니다. 포기하지 말 것, 꼭 버텨내 줄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거실 바닥에 앉았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햇빛이 너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예요. 갑자기 그때 막 눈물이 엄청 나기 시작했어요. 그날 정말 오랜만에 하늘을 본 느낌? 진짜 오랜만에 뭔가 살로 느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걸...

솔직히 앞으로 뭐가 얼마나 바뀌고, 범인이 더 잡힐 거라는 것 기대 안 해요. 제 자료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되길 바라는 것도 이젠 못 하겠어요. 잊을 만하면 올라오고, 잊을 만하면 올라오고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또다시 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살아야 되니까. 그러니까... 정말 다 버티셨으면. 저도 매일이 너무너무 힘들지만요. 그냥 날씨 좋은 날 해 한 번 받고, 비 오는 날 비 한 번 맞고... 그냥 그렇게, 다들 버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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