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은 되고 이천은 안 되고”…특별재난지역, 어떻게 지정하길래

입력 2020.08.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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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득 담겨있어야 할 저수지는 맨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일 오전 7시 30분쯤 밤새 내린 비로 경기도 이천시 산양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10m 높이의 저수지 제방은 V자 모양으로 뻥 뚫렸습니다. 그 사이로 저수지에 있던 6만여 톤의 물은 그대로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천 산양저수지 가보니...도로 무너지고 가로등 쓰러지고

수마가 할퀴고 간 지 10여 일 흐른 13일 오전. 산양1리에는 그 날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던 창고가 떠내려가 지금은 복구하러 온 차들이 주차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표지판은 여전히 복숭아밭에 누워있고 뿌리째 뽑힌 가로등도 흙이 잔뜩 묻은 채 쓰러져있습니다. 마을을 관통했던 산양천 인근 도로도 무너져 그 잔해물들이 하천 여기저기에 쌓여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구제역 방역초소는 200~300m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간 뒤 방치돼있습니다.

농작물 상황도 처참합니다. 하천 인근에서 시금치 등을 키우던 비닐하우스 10여 개는 범람한 물과 토사에 비닐이 찢기고 철골이 휘어진 채 쓰러져있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있던 벼들도 논바닥에 한 방향으로 쓰러져있습니다. 논 곳곳에는 물에 휩쓸려 온 상자들이 박혀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던 샤인머스캣 밭은 진흙과 돌뿐인 공터로 변했습니다.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 세 그루로 이곳이 황무지가 아닌 포도밭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종진 산양1리 이장은 "올해 농사는 끝났다"면서 "묘목 사다 심고 하려면 수천만 원이 들고 돌투성이라 바로 심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이장은 "마을 전체가 쓰레기투성이라 쓰레기 치우는 데만 1주일 넘게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천시 내 다른 동네 상황도 비슷합니다. 이천시 서경저수지가 있는 모가면은 도로가 파손돼 그 아래에 있던 상수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물에 쓸려온 나무들도 한 곳에 쌓여있습니다. 모가면에서 6년근 인삼을 기르는 권영호 씨는 "두 달 뒤면 캐는 거였는데 토사가 밀려와 다 묻혀버렸다"며 "함께 밀려온 쓰레기들을 어디서부터 손 돼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저수지 둑 무너지고 산사태나도...특별재난지역은 '제외'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이천은 산사태로 12.84ha, 도로 18곳, 국가·지방·소하천 등 60여 곳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산양저수지 한 곳은 무너지고 사면이 유실된 저수지도 3곳이나 됩니다. 비닐하우스는 7,000동 가까이 피해를 보았고 침수된 농작물만 1,010ha에 달합니다.

몇 년간 자식같이 기르던 농작물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주민들은 또 한 번 분통이 터졌습니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특별재난지역'에서 이천이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피해를 본 바로 옆 안성시나 충북 음성군은 포함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더 커졌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지자체가 써야 할 복구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해줍니다.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엔 단비 같은 존재이고 피해주민들도 복구가 신속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 피해 주민들은 국세·지방세·건강보험료·통신요금·전기요금 등의 감면, 면제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주는 심리적, 경제적 보상입니다.

그런데 왜 이천시는 안 됐을까요. 행안부가 이천의 피해액이 기준액을 초과할 것이란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려면 통상 2주의 기간이 걸립니다. 기초자치단체가 7일간 현장 조사를 벌여 국가재난관리업무시스템에 피해액을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중앙합동조사반이 7일간 현장 조사를 통해 피해액을 확정해, 선포기준액을 넘긴 지자체들을 선정하는 구조입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기준이 되는 선포기준액은 지자체 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안부는 최근 3년간 평균 재정력 지수에 따라 국고 지원금을 최소 18억~42억을 설정하고 피해 규모가 지원금의 2.5배를 넘으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합니다. 가장 적은 45억 원부터 105억 원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사 과정이 달랐습니다. 행안부는 신속한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조사 기간을 2주에서 3~4일로 단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초자치단체가 피해액을 다 집계하기도 전에 행안부가 현장에 나가 조사를 했습니다. 피해 규모가 기준액을 초과할 것이 확실해 보이면 피해액 확정 이전에도 서둘러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 겁니다. 그 와중에 이천에서 올린 자료에서 '오류'가 발견됐고 그것을 제외하고 나니 피해액이 기준액을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입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토사가 유실된 건지 석축이 유실된 건지에 따라 피해액이 천차만별인데 현장에 나가보니 그게 불확실했다"며 "피해 상황이 100% 입력이 안 된 상황인 데다 그런 불확실한 부분을 제외하다 보니 (이천시의 선포기준액인) 105억을 넘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안성시의 '선포기준액'은 90억 원입니다.

행안부는 "지금은 지자체가 피해액을 전부 올렸기 때문에 이전(1차 선정 당시)과 상황은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앙합동조사 결과는 행안부 사전 조사와 다를 수 있다며 여지를 뒀습니다.


2차 지정도 제외...이천시민들 "이럴 거면 총리, 장관 왜 왔냐" 울분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2차 특별재난지역이 추가 지정됐습니다. 이천시는 또 제외됐습니다. 행안부가 2차 지정은 호남지역에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천시 관계자는 "초기엔 응급 복구에 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자료를 다 올리지 못했다"면서도 "2차 전엔 집계를 완료해 기대했는데 안 됐다"며 또 한 번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이천시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비슷한 시기 피해를 본 인근 지역인 경기 안성, 충북 음성 등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된 데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3일 각각 이천 서경저수지와 산양저수지 수해 현장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산양1리 주민 이 모 씨는 "(수해를 입은) 안성시 일죽면은 여기서 10분 거리이고 음성군도 5분 거리"라며 "피해는 다 같이 입었는데 이천만 빠져서 막막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특별재난지역이 돼서 인력이나 예산 등 지원이 될 줄 알았는데 막막하다"며 "(총리, 장관이) 보고만 가실 거면 왜 왔냐"라고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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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은 되고 이천은 안 되고”…특별재난지역, 어떻게 지정하길래
    • 입력 2020-08-19 07:00:59
    취재K
물이 가득 담겨있어야 할 저수지는 맨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일 오전 7시 30분쯤 밤새 내린 비로 경기도 이천시 산양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10m 높이의 저수지 제방은 V자 모양으로 뻥 뚫렸습니다. 그 사이로 저수지에 있던 6만여 톤의 물은 그대로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천 산양저수지 가보니...도로 무너지고 가로등 쓰러지고

수마가 할퀴고 간 지 10여 일 흐른 13일 오전. 산양1리에는 그 날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던 창고가 떠내려가 지금은 복구하러 온 차들이 주차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표지판은 여전히 복숭아밭에 누워있고 뿌리째 뽑힌 가로등도 흙이 잔뜩 묻은 채 쓰러져있습니다. 마을을 관통했던 산양천 인근 도로도 무너져 그 잔해물들이 하천 여기저기에 쌓여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구제역 방역초소는 200~300m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간 뒤 방치돼있습니다.

농작물 상황도 처참합니다. 하천 인근에서 시금치 등을 키우던 비닐하우스 10여 개는 범람한 물과 토사에 비닐이 찢기고 철골이 휘어진 채 쓰러져있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있던 벼들도 논바닥에 한 방향으로 쓰러져있습니다. 논 곳곳에는 물에 휩쓸려 온 상자들이 박혀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던 샤인머스캣 밭은 진흙과 돌뿐인 공터로 변했습니다.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 세 그루로 이곳이 황무지가 아닌 포도밭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종진 산양1리 이장은 "올해 농사는 끝났다"면서 "묘목 사다 심고 하려면 수천만 원이 들고 돌투성이라 바로 심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 이장은 "마을 전체가 쓰레기투성이라 쓰레기 치우는 데만 1주일 넘게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천시 내 다른 동네 상황도 비슷합니다. 이천시 서경저수지가 있는 모가면은 도로가 파손돼 그 아래에 있던 상수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물에 쓸려온 나무들도 한 곳에 쌓여있습니다. 모가면에서 6년근 인삼을 기르는 권영호 씨는 "두 달 뒤면 캐는 거였는데 토사가 밀려와 다 묻혀버렸다"며 "함께 밀려온 쓰레기들을 어디서부터 손 돼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저수지 둑 무너지고 산사태나도...특별재난지역은 '제외'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이천은 산사태로 12.84ha, 도로 18곳, 국가·지방·소하천 등 60여 곳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산양저수지 한 곳은 무너지고 사면이 유실된 저수지도 3곳이나 됩니다. 비닐하우스는 7,000동 가까이 피해를 보았고 침수된 농작물만 1,010ha에 달합니다.

몇 년간 자식같이 기르던 농작물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주민들은 또 한 번 분통이 터졌습니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특별재난지역'에서 이천이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피해를 본 바로 옆 안성시나 충북 음성군은 포함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더 커졌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지자체가 써야 할 복구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해줍니다.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엔 단비 같은 존재이고 피해주민들도 복구가 신속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 피해 주민들은 국세·지방세·건강보험료·통신요금·전기요금 등의 감면, 면제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주는 심리적, 경제적 보상입니다.

그런데 왜 이천시는 안 됐을까요. 행안부가 이천의 피해액이 기준액을 초과할 것이란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려면 통상 2주의 기간이 걸립니다. 기초자치단체가 7일간 현장 조사를 벌여 국가재난관리업무시스템에 피해액을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중앙합동조사반이 7일간 현장 조사를 통해 피해액을 확정해, 선포기준액을 넘긴 지자체들을 선정하는 구조입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기준이 되는 선포기준액은 지자체 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안부는 최근 3년간 평균 재정력 지수에 따라 국고 지원금을 최소 18억~42억을 설정하고 피해 규모가 지원금의 2.5배를 넘으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합니다. 가장 적은 45억 원부터 105억 원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사 과정이 달랐습니다. 행안부는 신속한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조사 기간을 2주에서 3~4일로 단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초자치단체가 피해액을 다 집계하기도 전에 행안부가 현장에 나가 조사를 했습니다. 피해 규모가 기준액을 초과할 것이 확실해 보이면 피해액 확정 이전에도 서둘러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 겁니다. 그 와중에 이천에서 올린 자료에서 '오류'가 발견됐고 그것을 제외하고 나니 피해액이 기준액을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입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토사가 유실된 건지 석축이 유실된 건지에 따라 피해액이 천차만별인데 현장에 나가보니 그게 불확실했다"며 "피해 상황이 100% 입력이 안 된 상황인 데다 그런 불확실한 부분을 제외하다 보니 (이천시의 선포기준액인) 105억을 넘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안성시의 '선포기준액'은 90억 원입니다.

행안부는 "지금은 지자체가 피해액을 전부 올렸기 때문에 이전(1차 선정 당시)과 상황은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앙합동조사 결과는 행안부 사전 조사와 다를 수 있다며 여지를 뒀습니다.


2차 지정도 제외...이천시민들 "이럴 거면 총리, 장관 왜 왔냐" 울분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2차 특별재난지역이 추가 지정됐습니다. 이천시는 또 제외됐습니다. 행안부가 2차 지정은 호남지역에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천시 관계자는 "초기엔 응급 복구에 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자료를 다 올리지 못했다"면서도 "2차 전엔 집계를 완료해 기대했는데 안 됐다"며 또 한 번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이천시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비슷한 시기 피해를 본 인근 지역인 경기 안성, 충북 음성 등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된 데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3일 각각 이천 서경저수지와 산양저수지 수해 현장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산양1리 주민 이 모 씨는 "(수해를 입은) 안성시 일죽면은 여기서 10분 거리이고 음성군도 5분 거리"라며 "피해는 다 같이 입었는데 이천만 빠져서 막막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특별재난지역이 돼서 인력이나 예산 등 지원이 될 줄 알았는데 막막하다"며 "(총리, 장관이) 보고만 가실 거면 왜 왔냐"라고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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