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를 ‘양식의 메카’로?…애물단지 될라

입력 2020.09.23 (14:23) 수정 2020.09.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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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북서쪽으로 45km 떨어진 작은 섬, 추자도.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추자도를 '양식의 메카'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바로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입니다.

2013년 시작돼 8년째에 접어든 이 사업. 추자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공 사례 없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양식업자들 사이 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양식장이 생긴 뒤로부터 낚시 어선들이 잇따라 사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KBS 뉴스 ‘제주 멍게 양식…새 소득원 기대’ 中2009년 5월 13일 KBS 뉴스 ‘제주 멍게 양식…새 소득원 기대’ 中

■ 제주 최초 멍게 양식 '성공'…양식섬 프로젝트의 시작

밧줄마다 다홍빛 멍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11년 전인 2009년도 모습입니다. 당시 추자도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멍게 양식에 성공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양식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까요. 그로부터 4년 뒤, 제주도는 양식 지원 사업인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1차 5개년 계획을, 그리고 2018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2차 5개년 계획을 세워 현재 종료 2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 지난해까지 무려 40억 원 규모입니다.


보조금 6억 원 투입했지만 멍게 모조리 '폐사'

지금까지의 성과는 어떨까? KBS 취재진이 제주도와 제주시로부터 보조금 내역과 지금까지의 실적 자료 등을 받아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동안 추자도 멍게와 모자반 양식장 4곳에 투입된 보조금은 모두 6억 원. 하지만 실제로 양식한 수산물을 수확해, 판매한 실적은 1억 3천만 원에 그쳤습니다. 보조금의 20% 수준으로 이마저도 대부분 모자반 양식장 1곳의 실적이었습니다.

멍게 양식장의 운영 실적표. 멍게가 폐사해 소량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다.멍게 양식장의 운영 실적표. 멍게가 폐사해 소량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다.

한때 기대감을 갖게 했던 멍게 양식장 실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멍게 양식장 두 곳 모두 사실상 '폐업' 상태였습니다.

양식업자들은 멍게들이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1년에 100만 마리 안팎의 멍게를 보조금으로 사들였지만, 통영에서 가져온 종자들이 모두 병들어 죽어버렸다는 겁니다.

양식업자 A 씨는 "멍게는 보통 1월에서 2월쯤 입식해야 하지만, 3월이 지나야 보조금 대상자로 선정돼 돈을 쓸 수 있다"며 "(멍게가 걸리는) 물렁병이 한창 유행할 때 종자를 가져오다 보니, 멍게들이 죽어 나가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추자도 주민들 사이에선 양식장이 해양 쓰레기만 낳는 애물단지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황상일 추자도 어선주협의회장은 "양식할 때마다 전부 다 성공을 못 하고, 계속 다른 품목으로 바꾸는데 그 많은 양식 자재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모두 추자도 쓰레기는 아니겠지만,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러 갈 때마다 양식장 쓰레기들을 한 아름 갖고 올 때면 답답한 심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한 멍게 양식장 수면 아래. KBS 취재진이 전문 잠수부와 바닷속을 확인해보니, 엉키고 설켜 빽빽한 멍겟줄이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한 멍게 양식장 수면 아래. KBS 취재진이 전문 잠수부와 바닷속을 확인해보니, 엉키고 설켜 빽빽한 멍겟줄이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양식업자들 사이 분쟁에 낚시 어선 사고까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던 양식 사업. 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다 보니 양식업자들 사이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양식업자가 자신의 멍게 양식장에 또 다른 양식업자가 불쑥 들어와 멍겟줄을 잘라 버렸다며, 해경에 해당 양식업자를 고발한 겁니다. 이 양식업자는 멍게 양식장을 내년에 넘겨받기로 했고, 양식장이 오랜 기간 방치돼있다 보니 멍겟줄이 꼬일 대로 꼬여 일부는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맞섰습니다.

낚시 어선 사고가 잇따르는 추자도 묵리 해상 양식장.낚시 어선 사고가 잇따르는 추자도 묵리 해상 양식장.

헐거워진 양식장 줄에 걸려 낚시 어선들이 전복될뻔하기도 했습니다. KBS 취재진이 만난 사고 낚시 어선 2척의 선장들 말은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늦은 밤, 양식장의 위치를 알리는 '등부표'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양식장 관리도 잘 돼 있지 않다 보니 조류에 양식장 줄이 떠밀려 와 프로펠러에 걸리면서 사고를 당했다는 겁니다.

남은 시간은 2년, 이대로 실패?

지금까지의 양식섬 프로젝트 상황을 점검해볼 제주도의 해당 예산조차 코로나19 여파에 전액 삭감된 상황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2년뿐. 이대로 실패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추자도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양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추자도 밖에서 종자를 갖고 올 게 아니라, 추자도에서 나는 품목으로 양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좌민석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추자도에 참모자반 등 다양한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는 추자도의 해양 환경이 해조류 서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며 "추자도의 신 소득원을 창출하기 위해선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추자도수협과 제주도해양수산연구원 역시 추자도에서 나는 모자반에 주목해 이달 말부터 실제 양식과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추자도 마을 주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담겼던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 이들의 바람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해, 행정당국과 양식업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현장K] 애물단지 된 양식장…추자 바닷속 폐어구에 ‘몸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05909
[현장K] 해상 사고 위험…마을 주민 분쟁까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06973
[심층취재] 추자 양식섬 프로젝트 8년…애물단지 될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07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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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자도를 ‘양식의 메카’로?…애물단지 될라
    • 입력 2020-09-23 14:23:07
    • 수정2020-09-23 14:47:28
    취재K
제주에서 북서쪽으로 45km 떨어진 작은 섬, 추자도.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추자도를 '양식의 메카'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바로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입니다.

2013년 시작돼 8년째에 접어든 이 사업. 추자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공 사례 없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양식업자들 사이 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양식장이 생긴 뒤로부터 낚시 어선들이 잇따라 사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KBS 뉴스 ‘제주 멍게 양식…새 소득원 기대’ 中
■ 제주 최초 멍게 양식 '성공'…양식섬 프로젝트의 시작

밧줄마다 다홍빛 멍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11년 전인 2009년도 모습입니다. 당시 추자도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멍게 양식에 성공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양식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까요. 그로부터 4년 뒤, 제주도는 양식 지원 사업인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1차 5개년 계획을, 그리고 2018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2차 5개년 계획을 세워 현재 종료 2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 지난해까지 무려 40억 원 규모입니다.


보조금 6억 원 투입했지만 멍게 모조리 '폐사'

지금까지의 성과는 어떨까? KBS 취재진이 제주도와 제주시로부터 보조금 내역과 지금까지의 실적 자료 등을 받아 분석해봤습니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동안 추자도 멍게와 모자반 양식장 4곳에 투입된 보조금은 모두 6억 원. 하지만 실제로 양식한 수산물을 수확해, 판매한 실적은 1억 3천만 원에 그쳤습니다. 보조금의 20% 수준으로 이마저도 대부분 모자반 양식장 1곳의 실적이었습니다.

멍게 양식장의 운영 실적표. 멍게가 폐사해 소량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다.
한때 기대감을 갖게 했던 멍게 양식장 실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멍게 양식장 두 곳 모두 사실상 '폐업' 상태였습니다.

양식업자들은 멍게들이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1년에 100만 마리 안팎의 멍게를 보조금으로 사들였지만, 통영에서 가져온 종자들이 모두 병들어 죽어버렸다는 겁니다.

양식업자 A 씨는 "멍게는 보통 1월에서 2월쯤 입식해야 하지만, 3월이 지나야 보조금 대상자로 선정돼 돈을 쓸 수 있다"며 "(멍게가 걸리는) 물렁병이 한창 유행할 때 종자를 가져오다 보니, 멍게들이 죽어 나가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추자도 주민들 사이에선 양식장이 해양 쓰레기만 낳는 애물단지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황상일 추자도 어선주협의회장은 "양식할 때마다 전부 다 성공을 못 하고, 계속 다른 품목으로 바꾸는데 그 많은 양식 자재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모두 추자도 쓰레기는 아니겠지만,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러 갈 때마다 양식장 쓰레기들을 한 아름 갖고 올 때면 답답한 심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한 멍게 양식장 수면 아래. KBS 취재진이 전문 잠수부와 바닷속을 확인해보니, 엉키고 설켜 빽빽한 멍겟줄이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양식업자들 사이 분쟁에 낚시 어선 사고까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던 양식 사업. 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다 보니 양식업자들 사이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양식업자가 자신의 멍게 양식장에 또 다른 양식업자가 불쑥 들어와 멍겟줄을 잘라 버렸다며, 해경에 해당 양식업자를 고발한 겁니다. 이 양식업자는 멍게 양식장을 내년에 넘겨받기로 했고, 양식장이 오랜 기간 방치돼있다 보니 멍겟줄이 꼬일 대로 꼬여 일부는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맞섰습니다.

낚시 어선 사고가 잇따르는 추자도 묵리 해상 양식장.
헐거워진 양식장 줄에 걸려 낚시 어선들이 전복될뻔하기도 했습니다. KBS 취재진이 만난 사고 낚시 어선 2척의 선장들 말은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늦은 밤, 양식장의 위치를 알리는 '등부표'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양식장 관리도 잘 돼 있지 않다 보니 조류에 양식장 줄이 떠밀려 와 프로펠러에 걸리면서 사고를 당했다는 겁니다.

남은 시간은 2년, 이대로 실패?

지금까지의 양식섬 프로젝트 상황을 점검해볼 제주도의 해당 예산조차 코로나19 여파에 전액 삭감된 상황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2년뿐. 이대로 실패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추자도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양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추자도 밖에서 종자를 갖고 올 게 아니라, 추자도에서 나는 품목으로 양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좌민석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추자도에 참모자반 등 다양한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는 추자도의 해양 환경이 해조류 서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며 "추자도의 신 소득원을 창출하기 위해선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추자도수협과 제주도해양수산연구원 역시 추자도에서 나는 모자반에 주목해 이달 말부터 실제 양식과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추자도 마을 주민들의 기대와 바람이 담겼던 추자도 양식섬 프로젝트. 이들의 바람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해, 행정당국과 양식업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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