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힘들게 알 깨고 나오자마자 분쇄기로 떠밀리는 수평아리

입력 2021.04.10 (09:01) 수정 2021.04.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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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동물권 단체 ‘Farm transparency project’가 2016년 공개한 호주 수평아리 분쇄 영상. 알에서 막 나온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분쇄기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산란계 농장에선 수평아리들이 산 채로 분쇄되고 있다.호주 동물권 단체 ‘Farm transparency project’가 2016년 공개한 호주 수평아리 분쇄 영상. 알에서 막 나온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분쇄기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산란계 농장에선 수평아리들이 산 채로 분쇄되고 있다.

병아리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안간힘을 씁니다. 제 몸 전체를 덮고 있는 껍질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빛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나와도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있습니다. 산란계 농장의 수평아리들이 그렇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질식당해 분쇄기로 빨려 들어갑니다. 질식당하면 그나마 낫습니다. 많은 수평아리가 맨정신에 분쇄기로 들어가 삶을 마감합니다.

맨정신에 고통받는 동물은 또 있습니다. 바로 수퇘지들입니다. 갓 태어난 축산용 수퇘지들은 마취 없이 거세당합니다. 송곳니도 잘리고, 꼬리도 잘립니다. 물론, 진통제는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수퇘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날것의 고통부터 느끼고 삶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또 전 세계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취재팀이 이번 연속보도를 준비한 이유입니다.

■ "성장 속도가 더디다"

수평아리와 수퇘지가 이런 비극을 맞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경제성'과 '생산성' 때문입니다. 결국 육류 등 상품으로 팔려나가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산란계 수평아리는 체중 증가가 더디다"라며 "육계는 사료 1킬로그램을 먹으면 30일 만에 1.5킬로그램으로 크는데, 산란계 수컷과 암컷은 1킬로그램을 먹어도 1킬로그램이 될까 말까다"라고 설명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 퇴비장에 넣게 되면 분해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잘게 분쇄해서 분해시키는 거다"라며 "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곳도 있지만,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어려운) 중규모 미만은 그냥 (분쇄해)처분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수퇘지도 수평아리와 상황은 비슷합니다. 양돈 관계자들은 거세를 하지 않으면 고기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 고기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또, 꼬리 역시 내비둔다면 다른 돼지가 또 다른돼지의 꼬리를 물어 돼지들이 다친다고 설명합니다. 송곳니도 어미 돼지 젖에 상처를 낼까봐 잘라버린다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마취 없이 진행된다는 것. 한 양돈농장 관계자는 "농장주가 직접 마취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다"라며 "돼지가 쇼크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십만 원 이상의 돈이 드는 수의사 출장 비용도 부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유럽에선 마취하거나 진통제 투약"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일부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유럽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수퇘지와 수평아리도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동물복지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먼저, 스위스가 속도를 냈습니다. 스위스는 지난해부터 병아리의 분쇄 도살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지난해 프랑스 농림부 장관은 올해 말부터 병아리 도살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22년부터 병아리 도살을 금지하는 법안 초안을 최근 통과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달걀 상태에서부터 병아리의 암수를 구분하는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수퇘지에 대한 생각도 유럽이 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럽연합은 2010년 브뤼셀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선언에는 2012년부터 마취제 등을 사용하자는 내용, 2018년부터는 수퇘지의 외과적 거세를 하지 말자는 내용 등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선언이자 촉구에 불과해 아직 유럽에서는 돼지의 외과적 거세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마취제나 진통제 둘 중 하나는 사용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외과적 거세에 대한 대체 방안이 마련되면 가장 좋지만 현재는 없다"라며 "동물들이 겪는 고통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부분마취, 진통제 투약이 있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관련 대안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모든 동물, 도살 과정서 불필요한 고통 주면 안 돼"

동물보호법 제10조는 동물의 도살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선 안 되고, 도살 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축산동물들도 고통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또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지금 주로 사용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질식도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질소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질소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전에 기절해 고통이 최소화된다는 겁니다.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거세나 꼬리 자르기는 어떨까요. 사실 수의사법은 수의사가 아니면 동물 진료 등을 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축산 동물에 한하여 농장주가 진료 등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론 농장주가 국소 마취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1994년 3월 9일 KBS 9시 뉴스에서 보도된 ‘수평아리의 비극’.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평아리들은 비극적인 삶을 맞고 있다.

■ "소비자도 고민해야"

수평아리와 수퇘지도 다른 동물들처럼 고통을 느낍니다. 언제까지 '축산'동물이란 이유로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줘야 하는지는 생각해봐야 될 문제입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우선 산업계와 축산업계가 변해야 한다"라며 "동물을 가혹한 방식으로 사육하는 등 관행적인 틀을 깨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산업계와 축산업계가 모든 변화를 짊어지고 가면 안 된다"라며 "정부와 우리 사회, 소비자가 같이 그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갈 것인가 대화를 하고 고민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수평아리와 수퇘지의 고통,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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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힘들게 알 깨고 나오자마자 분쇄기로 떠밀리는 수평아리
    • 입력 2021-04-10 09:01:57
    • 수정2021-04-10 14:29:01
    취재후·사건후
호주 동물권 단체 ‘Farm transparency project’가 2016년 공개한 호주 수평아리 분쇄 영상. 알에서 막 나온 병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분쇄기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산란계 농장에선 수평아리들이 산 채로 분쇄되고 있다.
병아리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안간힘을 씁니다. 제 몸 전체를 덮고 있는 껍질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빛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나와도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있습니다. 산란계 농장의 수평아리들이 그렇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질식당해 분쇄기로 빨려 들어갑니다. 질식당하면 그나마 낫습니다. 많은 수평아리가 맨정신에 분쇄기로 들어가 삶을 마감합니다.

맨정신에 고통받는 동물은 또 있습니다. 바로 수퇘지들입니다. 갓 태어난 축산용 수퇘지들은 마취 없이 거세당합니다. 송곳니도 잘리고, 꼬리도 잘립니다. 물론, 진통제는 없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수퇘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날것의 고통부터 느끼고 삶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또 전 세계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취재팀이 이번 연속보도를 준비한 이유입니다.

■ "성장 속도가 더디다"

수평아리와 수퇘지가 이런 비극을 맞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경제성'과 '생산성' 때문입니다. 결국 육류 등 상품으로 팔려나가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산란계 수평아리는 체중 증가가 더디다"라며 "육계는 사료 1킬로그램을 먹으면 30일 만에 1.5킬로그램으로 크는데, 산란계 수컷과 암컷은 1킬로그램을 먹어도 1킬로그램이 될까 말까다"라고 설명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 퇴비장에 넣게 되면 분해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잘게 분쇄해서 분해시키는 거다"라며 "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곳도 있지만,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어려운) 중규모 미만은 그냥 (분쇄해)처분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수퇘지도 수평아리와 상황은 비슷합니다. 양돈 관계자들은 거세를 하지 않으면 고기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 고기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또, 꼬리 역시 내비둔다면 다른 돼지가 또 다른돼지의 꼬리를 물어 돼지들이 다친다고 설명합니다. 송곳니도 어미 돼지 젖에 상처를 낼까봐 잘라버린다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마취 없이 진행된다는 것. 한 양돈농장 관계자는 "농장주가 직접 마취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다"라며 "돼지가 쇼크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십만 원 이상의 돈이 드는 수의사 출장 비용도 부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유럽에선 마취하거나 진통제 투약"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일부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유럽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수퇘지와 수평아리도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동물복지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먼저, 스위스가 속도를 냈습니다. 스위스는 지난해부터 병아리의 분쇄 도살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지난해 프랑스 농림부 장관은 올해 말부터 병아리 도살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22년부터 병아리 도살을 금지하는 법안 초안을 최근 통과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달걀 상태에서부터 병아리의 암수를 구분하는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수퇘지에 대한 생각도 유럽이 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럽연합은 2010년 브뤼셀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선언에는 2012년부터 마취제 등을 사용하자는 내용, 2018년부터는 수퇘지의 외과적 거세를 하지 말자는 내용 등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선언이자 촉구에 불과해 아직 유럽에서는 돼지의 외과적 거세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마취제나 진통제 둘 중 하나는 사용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외과적 거세에 대한 대체 방안이 마련되면 가장 좋지만 현재는 없다"라며 "동물들이 겪는 고통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부분마취, 진통제 투약이 있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관련 대안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모든 동물, 도살 과정서 불필요한 고통 주면 안 돼"

동물보호법 제10조는 동물의 도살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선 안 되고, 도살 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축산동물들도 고통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또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지금 주로 사용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질식도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질소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질소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전에 기절해 고통이 최소화된다는 겁니다.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거세나 꼬리 자르기는 어떨까요. 사실 수의사법은 수의사가 아니면 동물 진료 등을 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축산 동물에 한하여 농장주가 진료 등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론 농장주가 국소 마취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1994년 3월 9일 KBS 9시 뉴스에서 보도된 ‘수평아리의 비극’.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평아리들은 비극적인 삶을 맞고 있다.

■ "소비자도 고민해야"

수평아리와 수퇘지도 다른 동물들처럼 고통을 느낍니다. 언제까지 '축산'동물이란 이유로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줘야 하는지는 생각해봐야 될 문제입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우선 산업계와 축산업계가 변해야 한다"라며 "동물을 가혹한 방식으로 사육하는 등 관행적인 틀을 깨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산업계와 축산업계가 모든 변화를 짊어지고 가면 안 된다"라며 "정부와 우리 사회, 소비자가 같이 그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갈 것인가 대화를 하고 고민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수평아리와 수퇘지의 고통,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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