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만행 속속 드러나…1년 남은 조사위의 한계

입력 2021.12.27 (21:32) 수정 2021.12.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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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건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당시 계엄군에 이른바 '시체처리팀'이란 게 있었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조사위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김애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신고된 행방불명자는 2백 42명에 달합니다.

5·18 진상조사위는 시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동안 계엄군의 시체처리팀 운용과 구체적인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광주교도소 인근에 암매장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광주를 찾았다는 계엄군 2명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상관인 소령에게 매장 장소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연식/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 과장 : "광주에 보병 복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시체의 매장 장소, 숫자를 정확하게 지정을 해줬고, 그 현장에 전교사 소령으로 보이는 사람이 현장에 와 있었다고 합니다."]

조사위는 또 계엄군이 시신을 추가 훼손하는 등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비무장 시민을 더 참혹하게 사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송선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1980년 5월 광주 등지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와 왜곡 은폐된 진실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5·18 조사위의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미진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진태/5·18기념재단 상임이사 : "발포 책임자를 밝히는 문제. 그 구체적인 실체를 아직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채 1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5·18의 숨겨진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앵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

태극기로 덮인 두 구의 시신이 손수레에 실려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사실상 처음 사망자를 목격했고, 도청 앞 시위와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누구인지 그 뒤에 시신은 어떻게 됐는지, 41년 동안 알 길이 없었습니다.

5.18 조사위원회가 지난 10월부터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붙이고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 건 정도 제보가 들어왔다는데, 진실을 밝히는 또 다른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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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계엄군 만행 속속 드러나…1년 남은 조사위의 한계
    • 입력 2021-12-27 21:32:43
    • 수정2021-12-27 22:02:51
    뉴스 9
[앵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건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당시 계엄군에 이른바 '시체처리팀'이란 게 있었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조사위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김애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신고된 행방불명자는 2백 42명에 달합니다.

5·18 진상조사위는 시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동안 계엄군의 시체처리팀 운용과 구체적인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광주교도소 인근에 암매장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광주를 찾았다는 계엄군 2명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상관인 소령에게 매장 장소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연식/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 과장 : "광주에 보병 복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시체의 매장 장소, 숫자를 정확하게 지정을 해줬고, 그 현장에 전교사 소령으로 보이는 사람이 현장에 와 있었다고 합니다."]

조사위는 또 계엄군이 시신을 추가 훼손하는 등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비무장 시민을 더 참혹하게 사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송선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1980년 5월 광주 등지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와 왜곡 은폐된 진실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5·18 조사위의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미진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진태/5·18기념재단 상임이사 : "발포 책임자를 밝히는 문제. 그 구체적인 실체를 아직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채 1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5·18의 숨겨진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앵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

태극기로 덮인 두 구의 시신이 손수레에 실려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사실상 처음 사망자를 목격했고, 도청 앞 시위와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누구인지 그 뒤에 시신은 어떻게 됐는지, 41년 동안 알 길이 없었습니다.

5.18 조사위원회가 지난 10월부터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붙이고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 건 정도 제보가 들어왔다는데, 진실을 밝히는 또 다른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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