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③ 1,406명의 가해자들, 학대이유 ‘너무도 사소했다’

입력 2022.02.14 (08:00) 수정 2022.0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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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창원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대안을 살핀 다큐멘터리를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한 데 이어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를 전해드립니다.

세 번째 순서로 판결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아동학대의 실체를 팩트 체크합니다. 판결문 인터넷 열람으로 ‘아동’, ‘학대’를 검색해 2019년 7월~2021년 7월 전국 1심 형사 판결문 1,406건(피고인 기준)을 분석했습니다. 피고인은 1,406명, 피해 아동은 2,367명이었습니다. 신체학대와 성학대가 39%, 31.7%로 가장 많았고 상해 222건, 사망 35건입니다. 피고인은 가족‧동거인이 46.2%, 선생님 등이 25.3%, 제3자 24.8%였고 피해 아동은 중‧고교생 44.5%, 초등생 32.4%, 영유아‧미취학 20.4%였습니다. 형량은 집행유예가 48.9%, 실형 27.8%, 벌금형 21.6%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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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1. 아동학대 공식 통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까?
A : 그렇지 않다.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가 많을뿐더러, 드러난 학대조차 통계에 모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주요 통계’, 해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통계다. 아동학대 현황을 드러내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이기도 하다. 2020년 아동학대 신고는 4만 2,251건, 이 중 아동학대 사례는 3만 905건이었는데, 36.2%인 1만 1,209건이 수사가 진행되거나 사건이 처리됐다. 재판을 마친 경우는 2,600건, 이 중 1,635건은 보호처분을 받았고 276건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마저 드러난 아동학대 실태를 모두 반영하지는 못한다. 경찰이나 자치단체, 지역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안 위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으로 신고됐다가 이후 아동학대 혐의가 확인된 사건은 경찰에서 통보해주지 않으면 통계에 합산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2020년 국내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4%, 지난 2019년 미국 8.9%, 호주 10.1%인 것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인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근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국과수가 2016년 아동 변사사건 부검 기록 341건을 전수 조사해 학대와의 연관성을 살핀 결과, 학대로 인한 사망이 ‘확실’한 아동은 84명이었고, ‘거의 확실’은 13명, ‘강한 학대 의심’이 드는 경우는 51명이었다.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이 아동학대로 숨졌다는 결론이다. 2016년 정부 공식 통계상 학대로 숨진 아이는 36명,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실장은 확실한 증거뿐만 아니라 부검결과와 수사 자료를 종합해 아이의 관점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은 경우를 모두 분석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나 고의적 살해는 물론, 사인불명인 ‘영아급사증후군’도 방임 정황이 있으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과수는 연구를 확대해 2015년~2017년의 아동 변사 949건을 분석해 417건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김희송/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실장
“현재의 (공식 통계상) 관점은 가해자의 고의성이 입증됐을 경우에만 아마 (아동학대로) 나온 거고요. 저희는 명확한 물리적 증거가 없어도 환경적으로 방임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명히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공식 통계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 통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아동의 죽음 자체를 굉장히 면밀하게 봐야 한다는 견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학대가) 상당히 많을 거예요. 은밀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동학대 관련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드러난 아동학대의 일부지만, 판결문에는 공식 통계만으로 알기 힘든 학대의 실상이 낱낱이 담겼다. 최근까지도 자행된 아동학대 범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아이들의 시각에서 면밀히 살펴 아동학대의 실체를 가늠하고, 가해자는 물론 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려 한다. 지금부터 마주할 것은 아동학대의 숨겨진 얼굴이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팩트체크2. 아동학대는 드러나지 않는 ‘암수 범죄’이다?
□ A : 그렇다. 아동학대는 ‘암수범죄’였다.

드러난 사건인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6건에도 ‘암수성’이 나타난다. 사건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은폐된 곳에서, 아이와 가까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피해가 커지고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난 장소는 어디였을까? 절반 정도는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교육 보육’ 공간과 공공장소가 뒤를 이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 교육 보육 공간은 교사 등이, 공공장소는 주로 제3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거나 숨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났다. 상해와 사망사건의 68.9%가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었다.

사망사건은 더 심각했다. 열에 아홉이 부모의 범행이었고, 주거지나 숙박시설 등 주변 시선이 가려진 곳에서 일어났다. ‘가정’은 피해 아동이 다치거나 숨지기 전까지는 학대가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공간인 것이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정에서의 학대는 은폐된 경우들이 많거든요. 돌봄 기관 등은 금방 발견될 경우가 아주 많아요. (학대) 수준도 경미한 경우들도 많고요. 가정에서 벌어지는 건 오랫동안 감춰져 있고 지속적이고 아주 심각한 경우에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장소보다) 학대 지속 기간이나 강도의 차이가 굉장히 크지 않을까.”

오랫동안 감춰진 학대들…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최소 1년에서 최대 15년 동안 반복되고서야 뒤늦게 드러난 아동학대는 201건, 68명의 아이가 다쳤고 2명은 숨지고서야 드러났다. 81.6%는 가족이나 동거인이 범행했고, 12.4%는 예체능 코치나 교사 등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들이 저질렀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가까운 어른이 학대할수록,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박주영/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암수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듯이, 실제 문제는 벌어졌지만, 사건화된 것은 극히 일부인 범죄를 말합니다.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 아동이 어리거나 가해자로부터 억압을 당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정확하게 외부에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팩트체크3. 아동학대는 대부분 ‘훈육’에서 비롯된다?
□ A: 아니다. 형사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주장한 ‘아동학대의 이유’가 이를 보여준다.

KBS 아동학대 기획팀은 판결문 1,406건에 적힌 피고인의 학대 이유 1,152가지를 분석했다. 86.1%가 아이들의 행동과 관련됐고, 나머지는 아이들과 관련조차 없었다.


피고인들은 아이들의 어떤 행동을 두고 아동학대를 변명했을까?
‘낮잠을 안 자서’, ‘밥을 안 먹어서’, ‘배변을 못 가려서’… 아이가 성장하며 당연히 겪는 행동을 탓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친구나 형제와 다퉜거나, 심부름이나 청소, 숙제를 안 해서 등이었는데, 전체의 82.6%가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이었다. 가출이나 절도, 술‧담배 등 아이의 일탈과 관련된 이유는 고작 3.5%뿐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학대 이유 159건은 더욱 황당하다. 이 중 59건은 가해자의 가정폭력과 연관됐는데, 아이가 이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한다는 이유로 학대했다. 나머지도 피고인이 육아나 가정생활이 힘들거나 홧김에 학대하는 등 갖은 황당한 이유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는 결국 ‘학대의 이유’가 아닌, 학대에 대한 피고인의 ‘인식’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김영미/변호사·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
“보호자가 아동학대로 수사기관에 입건되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해서 한 대 때렸습니다.’라고 꼭 변명해요. 성인이면 상대가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 때리지 않잖아요. 교육적으로 타일러야 하는데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못 참고 징벌한단 말이에요. 본인 탓인데 아이 탓으로 돌리는 거죠.”


■팩트체크4. ‘아동학대 죄’는 대부분 아동을 때리는 ‘신체학대’일 것이다?
□ A : 그렇지 않다. 형사 판결문 속 학대 유형을 여러 학대가 함께 일어난 중복학대를 포함해 분류한 결과, 신체학대가 39%, 성학대가 31.7%로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21%, 유기방임이 5.7%를 차지했다.

아이를 때리는 신체학대뿐만 아니라, SNS나 어플 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많아져 성학대 비율도 높았고, 정서학대도 사건 다섯 중 하나꼴로 흔히 일어났다.


피해 아동들의 성별에 따라 학대 유형도 달리 나타났다.

여자 피해 아동의 경우, 성학대가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학대, 정서학대, 유기방임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남자 피해 아동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유기방임, 성학대 순으로 분석됐다.


사망사건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지만, 방임도 37%에 달했다. 방임 사망의 피해 아동은 대부분 0~2살의 영아였다.

그렇다면, 형사 판결문에 드러난 정서학대와 방임 죄는 어떤 것일까? 일부 사건 내용을 옮겨온다.

‘아이 앞에서 배우자 폭행’
‘아이가 계부에게 학대당하는 것 알면서도 친모가 방임’
‘교사가 수업시간에 초등학생에게 1시간 폭언’
‘어린이집 교사가 우는 원아에게 강제로 음식 먹이고 혼자 수십 분 의자에 앉혀둠’
‘친모가 갓난아기를 주택가에 유기’
‘3살, 8살 자녀들만 집에 두고 수차례 심야에 10시간 외출’

주변에서 오늘도 일상적으로 벌어질지 모를 학대들, 모두 ‘유죄’였다.

김민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신체학대는 줄고 있지만, 정서학대나 방임은 증가 추세예요.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일을 갔다 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미국에선 그러지 않잖아요. 학대에 대해 인식 개선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유형은 각각 달랐지만,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후유증은 모두 같았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아동학대는 유형을 불문하고 후유증은 거의 비슷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정서학대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정서장애나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방임은 정서적 자극이나 물리적 자극들을 제때 주지 않아 2차적인 지적 장애가 올 수 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전반적으로 학대는 뇌 발달에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줘서 청소년기, 성인기 정신적 후유증, 우울증, 자살과도 연관이 많을 수 있어요.”

이어지는 다음 기사를 통해, 아동학대 '죄'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과 처벌이 어떠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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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③ 1,406명의 가해자들, 학대이유 ‘너무도 사소했다’
    • 입력 2022-02-14 08:00:51
    • 수정2022-02-14 16:21:16
    취재K
KBS창원 특별취재팀(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은 최근 2년간의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아동학대 범죄의 실태와 특수성, 대안을 살핀 다큐멘터리를 KBS '시사기획 창'(2월 6일)으로 보도한 데 이어 인터넷판 특별기사 시리즈를 전해드립니다.<br /> <br />세 번째 순서로 판결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아동학대의 실체를 팩트 체크합니다. 판결문 인터넷 열람으로 ‘아동’, ‘학대’를 검색해 2019년 7월~2021년 7월 전국 1심 형사 판결문 1,406건(피고인 기준)을 분석했습니다. 피고인은 1,406명, 피해 아동은 2,367명이었습니다. 신체학대와 성학대가 39%, 31.7%로 가장 많았고 상해 222건, 사망 35건입니다. 피고인은 가족‧동거인이 46.2%, 선생님 등이 25.3%, 제3자 24.8%였고 피해 아동은 중‧고교생 44.5%, 초등생 32.4%, 영유아‧미취학 20.4%였습니다. 형량은 집행유예가 48.9%, 실형 27.8%, 벌금형 21.6%였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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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주요 통계’, 해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통계다. 아동학대 현황을 드러내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이기도 하다. 2020년 아동학대 신고는 4만 2,251건, 이 중 아동학대 사례는 3만 905건이었는데, 36.2%인 1만 1,209건이 수사가 진행되거나 사건이 처리됐다. 재판을 마친 경우는 2,600건, 이 중 1,635건은 보호처분을 받았고 276건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마저 드러난 아동학대 실태를 모두 반영하지는 못한다. 경찰이나 자치단체, 지역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안 위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으로 신고됐다가 이후 아동학대 혐의가 확인된 사건은 경찰에서 통보해주지 않으면 통계에 합산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2020년 국내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4%, 지난 2019년 미국 8.9%, 호주 10.1%인 것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인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근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국과수가 2016년 아동 변사사건 부검 기록 341건을 전수 조사해 학대와의 연관성을 살핀 결과, 학대로 인한 사망이 ‘확실’한 아동은 84명이었고, ‘거의 확실’은 13명, ‘강한 학대 의심’이 드는 경우는 51명이었다.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이 아동학대로 숨졌다는 결론이다. 2016년 정부 공식 통계상 학대로 숨진 아이는 36명,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실장은 확실한 증거뿐만 아니라 부검결과와 수사 자료를 종합해 아이의 관점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은 경우를 모두 분석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나 고의적 살해는 물론, 사인불명인 ‘영아급사증후군’도 방임 정황이 있으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과수는 연구를 확대해 2015년~2017년의 아동 변사 949건을 분석해 417건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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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관련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드러난 아동학대의 일부지만, 판결문에는 공식 통계만으로 알기 힘든 학대의 실상이 낱낱이 담겼다. 최근까지도 자행된 아동학대 범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아이들의 시각에서 면밀히 살펴 아동학대의 실체를 가늠하고, 가해자는 물론 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려 한다. 지금부터 마주할 것은 아동학대의 숨겨진 얼굴이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팩트체크2. 아동학대는 드러나지 않는 ‘암수 범죄’이다?
□ A : 그렇다. 아동학대는 ‘암수범죄’였다.

드러난 사건인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6건에도 ‘암수성’이 나타난다. 사건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은폐된 곳에서, 아이와 가까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피해가 커지고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난 장소는 어디였을까? 절반 정도는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교육 보육’ 공간과 공공장소가 뒤를 이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 교육 보육 공간은 교사 등이, 공공장소는 주로 제3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거나 숨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났다. 상해와 사망사건의 68.9%가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었다.

사망사건은 더 심각했다. 열에 아홉이 부모의 범행이었고, 주거지나 숙박시설 등 주변 시선이 가려진 곳에서 일어났다. ‘가정’은 피해 아동이 다치거나 숨지기 전까지는 학대가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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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년에서 최대 15년 동안 반복되고서야 뒤늦게 드러난 아동학대는 201건, 68명의 아이가 다쳤고 2명은 숨지고서야 드러났다. 81.6%는 가족이나 동거인이 범행했고, 12.4%는 예체능 코치나 교사 등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들이 저질렀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가까운 어른이 학대할수록,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박주영/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암수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듯이, 실제 문제는 벌어졌지만, 사건화된 것은 극히 일부인 범죄를 말합니다.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 아동이 어리거나 가해자로부터 억압을 당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정확하게 외부에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팩트체크3. 아동학대는 대부분 ‘훈육’에서 비롯된다?
□ A: 아니다. 형사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주장한 ‘아동학대의 이유’가 이를 보여준다.

KBS 아동학대 기획팀은 판결문 1,406건에 적힌 피고인의 학대 이유 1,152가지를 분석했다. 86.1%가 아이들의 행동과 관련됐고, 나머지는 아이들과 관련조차 없었다.


피고인들은 아이들의 어떤 행동을 두고 아동학대를 변명했을까?
‘낮잠을 안 자서’, ‘밥을 안 먹어서’, ‘배변을 못 가려서’… 아이가 성장하며 당연히 겪는 행동을 탓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친구나 형제와 다퉜거나, 심부름이나 청소, 숙제를 안 해서 등이었는데, 전체의 82.6%가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이었다. 가출이나 절도, 술‧담배 등 아이의 일탈과 관련된 이유는 고작 3.5%뿐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학대 이유 159건은 더욱 황당하다. 이 중 59건은 가해자의 가정폭력과 연관됐는데, 아이가 이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한다는 이유로 학대했다. 나머지도 피고인이 육아나 가정생활이 힘들거나 홧김에 학대하는 등 갖은 황당한 이유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는 결국 ‘학대의 이유’가 아닌, 학대에 대한 피고인의 ‘인식’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김영미/변호사·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
“보호자가 아동학대로 수사기관에 입건되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해서 한 대 때렸습니다.’라고 꼭 변명해요. 성인이면 상대가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 때리지 않잖아요. 교육적으로 타일러야 하는데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못 참고 징벌한단 말이에요. 본인 탓인데 아이 탓으로 돌리는 거죠.”


■팩트체크4. ‘아동학대 죄’는 대부분 아동을 때리는 ‘신체학대’일 것이다?
□ A : 그렇지 않다. 형사 판결문 속 학대 유형을 여러 학대가 함께 일어난 중복학대를 포함해 분류한 결과, 신체학대가 39%, 성학대가 31.7%로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21%, 유기방임이 5.7%를 차지했다.

아이를 때리는 신체학대뿐만 아니라, SNS나 어플 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많아져 성학대 비율도 높았고, 정서학대도 사건 다섯 중 하나꼴로 흔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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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피해 아동의 경우, 성학대가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학대, 정서학대, 유기방임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남자 피해 아동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유기방임, 성학대 순으로 분석됐다.


사망사건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지만, 방임도 37%에 달했다. 방임 사망의 피해 아동은 대부분 0~2살의 영아였다.

그렇다면, 형사 판결문에 드러난 정서학대와 방임 죄는 어떤 것일까? 일부 사건 내용을 옮겨온다.

‘아이 앞에서 배우자 폭행’
‘아이가 계부에게 학대당하는 것 알면서도 친모가 방임’
‘교사가 수업시간에 초등학생에게 1시간 폭언’
‘어린이집 교사가 우는 원아에게 강제로 음식 먹이고 혼자 수십 분 의자에 앉혀둠’
‘친모가 갓난아기를 주택가에 유기’
‘3살, 8살 자녀들만 집에 두고 수차례 심야에 10시간 외출’

주변에서 오늘도 일상적으로 벌어질지 모를 학대들, 모두 ‘유죄’였다.

김민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신체학대는 줄고 있지만, 정서학대나 방임은 증가 추세예요.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일을 갔다 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미국에선 그러지 않잖아요. 학대에 대해 인식 개선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유형은 각각 달랐지만,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후유증은 모두 같았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아동학대는 유형을 불문하고 후유증은 거의 비슷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정서학대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정서장애나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방임은 정서적 자극이나 물리적 자극들을 제때 주지 않아 2차적인 지적 장애가 올 수 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전반적으로 학대는 뇌 발달에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줘서 청소년기, 성인기 정신적 후유증, 우울증, 자살과도 연관이 많을 수 있어요.”

이어지는 다음 기사를 통해, 아동학대 '죄'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과 처벌이 어떠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7Qp3Lb0G60

아동학대 심층취재 인터랙티브 페이지 보기
https://news.KBS.co.kr/special/childabuse/index.html

아동학대 판결문 전수분석 아카이브 보기
http://lab.KBS.co.kr/2022/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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