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브로치 외교의 대가’…미 최초 女 국무장관 역사 속으로
입력 2022.03.24 (18:02)
수정 2022.03.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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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콕입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신문 지면을 연일 장식했던 인물입니다.
북한 미사일 위기가 진행중이던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한 모습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2000년 : "김정일 위원장은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의지를 보여 줬습니다."]
올브라이트가 현지 시간으로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사인은 암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외교 수장에 오른 건 1997년 빌 클린턴 정부 시절입니다.
그녀의 전매특허는 '직설화법'.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말투는 국제 외교가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이른바 '브로치 외교'로 속뜻을 전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자 똬리를 튼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등장합니다.
상대에게 톡 쏘는 말을 하고 싶을 땐 벌 모양 러시아와 국방 문제를 따질 때는 미사일 모양으로 응수했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전 미 국무장관/2009년 : "러시아 장관이 그게 당신네 요격 미사일 중 하나냐고 물어서 "맞다,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든다. 그러니 협상하는 게 나을 거다"라고 응수했죠."]
미 외교가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였습니다.
나토 확대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며 맹장들의 가슴을 서늘케 했습니다.
이같은 개입주의 노선은 조국 체코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유년시절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시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내 사고의 밑바탕은 뮌헨이다.” 그녀가 자주 되내이던 말입니다.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로 공개된 개인사가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 2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고 현모양처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국무장관이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남편보다는 국무장관을 하는 쪽이 더 좋다"고 털어놨습니다.
고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3일, 푸틴을 향해 마지막 사자후를 날립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 실수"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올브라이트를 처음 발탁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고인을 향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마지막까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지지했다"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신문 지면을 연일 장식했던 인물입니다.
북한 미사일 위기가 진행중이던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한 모습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2000년 : "김정일 위원장은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의지를 보여 줬습니다."]
올브라이트가 현지 시간으로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사인은 암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외교 수장에 오른 건 1997년 빌 클린턴 정부 시절입니다.
그녀의 전매특허는 '직설화법'.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말투는 국제 외교가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이른바 '브로치 외교'로 속뜻을 전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자 똬리를 튼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등장합니다.
상대에게 톡 쏘는 말을 하고 싶을 땐 벌 모양 러시아와 국방 문제를 따질 때는 미사일 모양으로 응수했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전 미 국무장관/2009년 : "러시아 장관이 그게 당신네 요격 미사일 중 하나냐고 물어서 "맞다,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든다. 그러니 협상하는 게 나을 거다"라고 응수했죠."]
미 외교가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였습니다.
나토 확대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며 맹장들의 가슴을 서늘케 했습니다.
이같은 개입주의 노선은 조국 체코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유년시절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시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내 사고의 밑바탕은 뮌헨이다.” 그녀가 자주 되내이던 말입니다.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로 공개된 개인사가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 2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고 현모양처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국무장관이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남편보다는 국무장관을 하는 쪽이 더 좋다"고 털어놨습니다.
고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3일, 푸틴을 향해 마지막 사자후를 날립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 실수"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올브라이트를 처음 발탁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고인을 향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마지막까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지지했다"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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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3-24 18:02:12
- 수정2022-03-24 18: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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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콕입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신문 지면을 연일 장식했던 인물입니다.
북한 미사일 위기가 진행중이던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한 모습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2000년 : "김정일 위원장은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의지를 보여 줬습니다."]
올브라이트가 현지 시간으로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사인은 암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외교 수장에 오른 건 1997년 빌 클린턴 정부 시절입니다.
그녀의 전매특허는 '직설화법'.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말투는 국제 외교가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이른바 '브로치 외교'로 속뜻을 전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자 똬리를 튼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등장합니다.
상대에게 톡 쏘는 말을 하고 싶을 땐 벌 모양 러시아와 국방 문제를 따질 때는 미사일 모양으로 응수했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전 미 국무장관/2009년 : "러시아 장관이 그게 당신네 요격 미사일 중 하나냐고 물어서 "맞다,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든다. 그러니 협상하는 게 나을 거다"라고 응수했죠."]
미 외교가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였습니다.
나토 확대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며 맹장들의 가슴을 서늘케 했습니다.
이같은 개입주의 노선은 조국 체코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유년시절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시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내 사고의 밑바탕은 뮌헨이다.” 그녀가 자주 되내이던 말입니다.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로 공개된 개인사가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 2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고 현모양처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국무장관이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남편보다는 국무장관을 하는 쪽이 더 좋다"고 털어놨습니다.
고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3일, 푸틴을 향해 마지막 사자후를 날립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 실수"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올브라이트를 처음 발탁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고인을 향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마지막까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지지했다"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신문 지면을 연일 장식했던 인물입니다.
북한 미사일 위기가 진행중이던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한 모습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2000년 : "김정일 위원장은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의지를 보여 줬습니다."]
올브라이트가 현지 시간으로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사인은 암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외교 수장에 오른 건 1997년 빌 클린턴 정부 시절입니다.
그녀의 전매특허는 '직설화법'.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말투는 국제 외교가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이른바 '브로치 외교'로 속뜻을 전달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으로부터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자 똬리를 튼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등장합니다.
상대에게 톡 쏘는 말을 하고 싶을 땐 벌 모양 러시아와 국방 문제를 따질 때는 미사일 모양으로 응수했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전 미 국무장관/2009년 : "러시아 장관이 그게 당신네 요격 미사일 중 하나냐고 물어서 "맞다,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든다. 그러니 협상하는 게 나을 거다"라고 응수했죠."]
미 외교가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였습니다.
나토 확대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며 맹장들의 가슴을 서늘케 했습니다.
이같은 개입주의 노선은 조국 체코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유년시절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시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내 사고의 밑바탕은 뮌헨이다.” 그녀가 자주 되내이던 말입니다.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로 공개된 개인사가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 23년만에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고 현모양처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국무장관이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남편보다는 국무장관을 하는 쪽이 더 좋다"고 털어놨습니다.
고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3일, 푸틴을 향해 마지막 사자후를 날립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 실수"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올브라이트를 처음 발탁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고인을 향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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