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혁당 피해자 ‘빚고문’에 법원 화해권고…구제 길 열릴까?

입력 2022.05.04 (21:23) 수정 2022.05.0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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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신에 반대했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또 처형하고...

1974년 있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입니다.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돼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피해자들은 30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너무 많다며 피해자 76명에게 받은 돈의 절반 가까이를 반환하라고 했습니다.

제때 안 돌려주면 이자율이 연 20%나 되는데요.

그러다보니 상당 수가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은 빚 고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안을 마련해 화해를 권고했는데, 정부가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황현규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8년간 감옥살이를 한 이창복 씨.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됐고, 2009년 정부로부터 손해 배상금과 이자를 더해서 10억 9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년 뒤, 이 씨는 그 돈의 절반 가량을 반환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대법원이, 지급된 배상금의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재단 기부금 등으로 배상금을 쓴 이 씨는, 당장 돌려줄 돈을 마련하지 못해 난데없는 빚쟁이 신세가 됐습니다.

[이창복/인혁당 사건 피해자 : "그 것(빚)을 생각만 하면 잠도 못 자고, 그냥 죽는 거에요."]

연체 이자까지 매년 20%씩 붙어 갚을 돈은 눈덩이가 됐습니다.

반환할 원금이 4억 9천여만 원이었는데, 이제 이자만 10억 원에 육박합니다.

결국 집까지 경매에 넘어간 이 씨는, 2019년 법원에 이의소송을 냈는데, 1심에선 패소했고 최근 2심에서 '화해 권고'가 나왔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말까지 일단 5천만 원, 내년 상반기까지 4억 5000만 원을 상환하라"며 나머지 이자에 대해선 사실상 내지 않는 걸로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5억 원도 갚지 않을 경우 화해권고를 무효화하고, 원래대로 15억 원을 갚게끔 명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재판부는 2주의 시간을 더 주고, 정부와 이창복 씨가 다시 합의를 보도록, 오늘(4일) 재권고했습니다.

이 씨처럼, 배상금을 반환해야 할 인혁당 피해자는 총 76명. 이 중 39명이 아직 빚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혁당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뜻하지 않은 2차 고통을 떠안게 된 상황.

이창복 씨 사례가 과연 구제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결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 조원준/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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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인혁당 피해자 ‘빚고문’에 법원 화해권고…구제 길 열릴까?
    • 입력 2022-05-04 21:23:50
    • 수정2022-05-04 22:11:26
    뉴스 9
[앵커]

유신에 반대했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또 처형하고...

1974년 있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입니다.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돼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피해자들은 30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너무 많다며 피해자 76명에게 받은 돈의 절반 가까이를 반환하라고 했습니다.

제때 안 돌려주면 이자율이 연 20%나 되는데요.

그러다보니 상당 수가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은 빚 고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안을 마련해 화해를 권고했는데, 정부가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황현규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8년간 감옥살이를 한 이창복 씨.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됐고, 2009년 정부로부터 손해 배상금과 이자를 더해서 10억 9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년 뒤, 이 씨는 그 돈의 절반 가량을 반환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대법원이, 지급된 배상금의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재단 기부금 등으로 배상금을 쓴 이 씨는, 당장 돌려줄 돈을 마련하지 못해 난데없는 빚쟁이 신세가 됐습니다.

[이창복/인혁당 사건 피해자 : "그 것(빚)을 생각만 하면 잠도 못 자고, 그냥 죽는 거에요."]

연체 이자까지 매년 20%씩 붙어 갚을 돈은 눈덩이가 됐습니다.

반환할 원금이 4억 9천여만 원이었는데, 이제 이자만 10억 원에 육박합니다.

결국 집까지 경매에 넘어간 이 씨는, 2019년 법원에 이의소송을 냈는데, 1심에선 패소했고 최근 2심에서 '화해 권고'가 나왔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말까지 일단 5천만 원, 내년 상반기까지 4억 5000만 원을 상환하라"며 나머지 이자에 대해선 사실상 내지 않는 걸로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5억 원도 갚지 않을 경우 화해권고를 무효화하고, 원래대로 15억 원을 갚게끔 명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재판부는 2주의 시간을 더 주고, 정부와 이창복 씨가 다시 합의를 보도록, 오늘(4일) 재권고했습니다.

이 씨처럼, 배상금을 반환해야 할 인혁당 피해자는 총 76명. 이 중 39명이 아직 빚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혁당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뜻하지 않은 2차 고통을 떠안게 된 상황.

이창복 씨 사례가 과연 구제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결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 조원준/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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