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암호를 풀다]③ 투자 유도해놓고…뚜껑 여니 ‘파산 직전’

입력 2022.06.05 (07:02) 수정 2022.06.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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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테라·루나 사태, 전세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은 사건입니다.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첫 수사 대상으로도 삼았습니다. 그런데 루나가 무엇인지, 왜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인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KBS는 이 암호 같은 '테라·루나'를 A부터 Z까지 찬찬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Korea runs on Terra."

한국은 테라로 달리게 될 거라던 권도형 테라 대표의 야심 찬 말입니다. 테라의 목표는 탈중앙화된 금융 거래, 즉 디파이를 주도하고 그 생태계까지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 "디파이 역사상 최고 이율" 홍보했지만…

탄탄한 생태계를 위해선 이용자가 많아야겠죠. 테라는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앵커 프로토콜의 연이율을 20%로 설정하고 홍보합니다. 권도형 대표도 "디파이 역사상 가장 높은 연이율"이라고 트위터에 올렸죠.

테라의 투자자들의 면면도 화려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암호화폐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 판테라 캐피탈 등이 투자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안정성에, 높은 수익까지 담보되고 대표와 투자자들의 '스펙'도 탄탄해 보였죠.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될 만했습니다.

실제 투자자는 급격히 불었습니다. 시가 총액 55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견고해 보였던 테라.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부실 그 자체였습니다.

■ 은행으로 치면 1년 내내 '적자' 기록

앵커 프로토콜을 이렇게 생각해보죠.

테라가 <블록체인 은행>을 열었습니다. 모든 은행이 그렇듯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줬습니다. 다만, 실제 원화나 달러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화폐, 즉 UST가 오갔습니다.

<블록체인 은행>은 이용자들에게 UST를 예금으로 받았습니다. 연이율 20%를 약속했습니다. 동시에 UST를 대출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담보는 자매 가상화폐, 루나였습니다.

대부분의 은행은 대출이 예금보다 금리가 높습니다. 그래야 이득이 나죠. 그걸 '예대 마진'이라고 부르고, 은행 수익성의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블록체인 은행>의 예대 마진은 어땠을까요. 지난 1년 내내, 항상 '마이너스'였습니다. 예금 금리를 20%나 쳐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 그래프는 앵커 프로토콜의 예치액과 담보액을 보여줍니다. 빨간 줄이 대출, 파란 줄이 예금입니다.

이용자들이 루나를 맡기고 대출받아간 UST보다 이용자들이 20% 금리를 받으러 예치한 UST가 항상 많았습니다. 앵커 프로토콜, 즉 <블록체인 은행> 입장에서는 늘 '받을 돈'보다 '줄 돈'이 많았다는 의미죠.

'마이너스 마진'보다 심각한 건 예치액 대비 담보 비율입니다. 예치액과 담보액의 정점을 볼까요? 예치액은 지난 5월 6일 약 140억 달러를 찍었습니다. 반면 앵커에 묶인 담보물은 최대가 약 35억 달러였습니다. 대출액과 예금액 간 차이가 최대 4배까지 벌어진 겁니다.

■ 영업할수록 빚만 쌓여…은행이었다면?

받을 돈보다 주어야 할 돈이 최대 4배가 컸던 상황. 앵커의 빚은 갚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앵커의 부채 규모를 보여줍니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앵커의 예치액이 늘어갈수록, 앵커의 빚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영업할수록 빚만 쌓였습니다.

앵커 프로토콜 이용자들에게 줄 이자를 저장해놓은 '이자 저장소'도 늘 적자였습니다.

테라가 인위적으로 잔액을 늘린 2021년 7월과 2022년 2월을 제외하면, 잔액이 늘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잔액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행위는 은행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유하면, 특정 은행이 원화를 마음대로 찍어서 금고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앵커는 연 20%라는 엄청난 이자를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부실 덩어리'였던 겁니다.

이런 상품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으니 페그 붕괴 일주일 만에 가치가 99.999% 하락할 수밖에요. 그렇게 견고한 듯 보였던 테라 생태계는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 테라·루나 용어 해설

☞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 정부나 기업 등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 블록체인 기술로 가동되는 금융 서비스.
☞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 : 테라의 디파이 서비스. 테라를 예금하면 연리 20%를 주고, 다른 가상화폐를 담보삼아 테라를 대출해주기도 함.
☞ 페깅(pegging) : 통화나 상품의 가치를 안정적인 자산에 고정하는 것. 테라의 UST는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됨. 1 UST가 1달러 가치에서 벗어난 상태는 '디페깅'이라고 함.
☞ 스테이킹(staking)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상화폐를 특정 플랫폼에 넣고, 플랫폼 운영에 참여하는 행위. 테라의 경우, 자매 가상화폐인 루나로 앵커 프로토콜에 참여하는 걸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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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라·루나, 암호를 풀다]③ 투자 유도해놓고…뚜껑 여니 ‘파산 직전’
    • 입력 2022-06-05 07:02:30
    • 수정2022-06-06 15:19:49
    취재K
<strong>테라·루나 사태, 전세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은 사건입니다.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첫 수사 대상으로도 삼았습니다. 그런데 루나가 무엇인지, 왜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인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KBS는 이 암호 같은 '테라·루나'를 A부터 Z까지 찬찬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strong>

"Korea runs on Terra."

한국은 테라로 달리게 될 거라던 권도형 테라 대표의 야심 찬 말입니다. 테라의 목표는 탈중앙화된 금융 거래, 즉 디파이를 주도하고 그 생태계까지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 "디파이 역사상 최고 이율" 홍보했지만…

탄탄한 생태계를 위해선 이용자가 많아야겠죠. 테라는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앵커 프로토콜의 연이율을 20%로 설정하고 홍보합니다. 권도형 대표도 "디파이 역사상 가장 높은 연이율"이라고 트위터에 올렸죠.

테라의 투자자들의 면면도 화려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암호화폐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 판테라 캐피탈 등이 투자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안정성에, 높은 수익까지 담보되고 대표와 투자자들의 '스펙'도 탄탄해 보였죠.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될 만했습니다.

실제 투자자는 급격히 불었습니다. 시가 총액 55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견고해 보였던 테라.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부실 그 자체였습니다.

■ 은행으로 치면 1년 내내 '적자' 기록

앵커 프로토콜을 이렇게 생각해보죠.

테라가 <블록체인 은행>을 열었습니다. 모든 은행이 그렇듯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줬습니다. 다만, 실제 원화나 달러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발행한 가상화폐, 즉 UST가 오갔습니다.

<블록체인 은행>은 이용자들에게 UST를 예금으로 받았습니다. 연이율 20%를 약속했습니다. 동시에 UST를 대출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담보는 자매 가상화폐, 루나였습니다.

대부분의 은행은 대출이 예금보다 금리가 높습니다. 그래야 이득이 나죠. 그걸 '예대 마진'이라고 부르고, 은행 수익성의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블록체인 은행>의 예대 마진은 어땠을까요. 지난 1년 내내, 항상 '마이너스'였습니다. 예금 금리를 20%나 쳐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 그래프는 앵커 프로토콜의 예치액과 담보액을 보여줍니다. 빨간 줄이 대출, 파란 줄이 예금입니다.

이용자들이 루나를 맡기고 대출받아간 UST보다 이용자들이 20% 금리를 받으러 예치한 UST가 항상 많았습니다. 앵커 프로토콜, 즉 <블록체인 은행> 입장에서는 늘 '받을 돈'보다 '줄 돈'이 많았다는 의미죠.

'마이너스 마진'보다 심각한 건 예치액 대비 담보 비율입니다. 예치액과 담보액의 정점을 볼까요? 예치액은 지난 5월 6일 약 140억 달러를 찍었습니다. 반면 앵커에 묶인 담보물은 최대가 약 35억 달러였습니다. 대출액과 예금액 간 차이가 최대 4배까지 벌어진 겁니다.

■ 영업할수록 빚만 쌓여…은행이었다면?

받을 돈보다 주어야 할 돈이 최대 4배가 컸던 상황. 앵커의 빚은 갚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앵커의 부채 규모를 보여줍니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앵커의 예치액이 늘어갈수록, 앵커의 빚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영업할수록 빚만 쌓였습니다.

앵커 프로토콜 이용자들에게 줄 이자를 저장해놓은 '이자 저장소'도 늘 적자였습니다.

테라가 인위적으로 잔액을 늘린 2021년 7월과 2022년 2월을 제외하면, 잔액이 늘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잔액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행위는 은행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유하면, 특정 은행이 원화를 마음대로 찍어서 금고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앵커는 연 20%라는 엄청난 이자를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부실 덩어리'였던 겁니다.

이런 상품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으니 페그 붕괴 일주일 만에 가치가 99.999% 하락할 수밖에요. 그렇게 견고한 듯 보였던 테라 생태계는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 테라·루나 용어 해설

☞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 정부나 기업 등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 블록체인 기술로 가동되는 금융 서비스.
☞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 : 테라의 디파이 서비스. 테라를 예금하면 연리 20%를 주고, 다른 가상화폐를 담보삼아 테라를 대출해주기도 함.
☞ 페깅(pegging) : 통화나 상품의 가치를 안정적인 자산에 고정하는 것. 테라의 UST는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됨. 1 UST가 1달러 가치에서 벗어난 상태는 '디페깅'이라고 함.
☞ 스테이킹(staking)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상화폐를 특정 플랫폼에 넣고, 플랫폼 운영에 참여하는 행위. 테라의 경우, 자매 가상화폐인 루나로 앵커 프로토콜에 참여하는 걸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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