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아베와 악연 北…피살 소식에 ‘침묵’

입력 2022.07.16 (08:06) 수정 2022.07.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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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8일,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현직에서 물러나고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었는데요.

그래서 그의 사망은 일본 정치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네, 아베 전 총리는 생전에 납북 일본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행보를 보였던 대표적 우파 정치인이었는데요.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망에 대해 북한은 조의는 물론이고 아예 사망 소식조차 전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북일 관계,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클로즈 업 북한'에서 짚어봅니다.

[리포트]

강단에 올라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갑자기 뒤에서 흰 연기가 퍼지더니, 두 차례 총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아베 전 총리는 피격 직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기시다 후미오/일본 총리 : "참으로 안타까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의 사망.

일본 열도는 물론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애도의 물결도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고,

[윤석열 대통령 : "유족과 일본 국민들께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조화를 들고 주미 일본대사 관저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본과 대립각을 세웠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조의를 전했다.

[조선중앙TV/7월 8일 :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의 사망 당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28주기를 맞아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공교롭게도 김일성 주석과 같은 날 아베 전 총리는 숨졌는데, 북한은 그의 사망 소식도 전하지 않고 공식 비공식 반응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현재 북한이 생각하는 주변 정세의 인식 혹은 북일 관계라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당장 관계개선의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하고 북한에게도 커다란 메리트가 현재는 없습니다. 때문에 아베 총리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명하거나 혹은 비판하거나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아베 전 총리와의 악연은 2002년, 제1차 북일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평양을 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

대북 강경파였던 아베 전 총리도 관방장관 자격으로 동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교 수교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며 과거사 보상을 약속했다.

[2002년 9월 : "(일본 측은) 통렬한 반성과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다."]

북한 역시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약속과 함께 납치자 문제를 시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당시 일본 총리/2002년 9월 : "(김정일 위원장은) 과거에 북한 관계자가 행한 일을 솔직히 시인하고 유감이며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납북됐던 일본인 다섯 명이 24년 만에 귀국했고, 수교회담도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하마모토 후키에/납북 일본인/2002년 10월 :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일시 귀국이라는 조건을 돌연 파기하고, 납치 생존자 다섯 명을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그 중심엔 아베 전 총리가 있었다.

[아베 신조/당시 일본 관방장관/2002년 10월 : "(일본 정부는 생존자의) 가족을 포함한 영구 귀국과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신뢰를 깨는 ‘요코다 메구미 사건’이 터진다.

[호소다 히로유키/당시 일본 관방장관/2004년 : "북한의 조사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북한이 건네준 납북 피해자 메구미의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요코다 다쿠야/요코다 메구미 동생/2004년 : "이렇게까지 가족과 일본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국민 모두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고, 아베 전 총리는 수교 이전에 납치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리고 2006년, 일본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기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아베 총리가 정치적 선거 승리를 위해서 납치자 문제를 계속해서 주장해왔고요. 한때는 국난극복이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이것으로 인해 인기가 올라갔고요. 그리고 자기가 총리가 된 이후에도 정권 지지를 위해선 언제나 처음부터 내세웠던 것이 납치자 문제 해결을 내세웠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퇴임 전까지도 ‘아베 3원칙’을 내세워 납북자의 전원 생환 없이는 국교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고, 북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북핵 역시 일본인 납북 문제 못지않게 북일 관계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전 총리/2006년 10월/北 1차 핵실험 직후 : "만약 핵실험에 실패했더라도 핵실험을 하려고 시도했던 만큼 죄는 똑같습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아베 총리는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결정했고, 이후에도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아베/전 총리/2016년 9월/北 5차 핵실험 직후 : "절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강하게 항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는 대북 강경노선 외에도 침략의 역사마저 부정하는 극단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아베 신조/일본 총리/2013년 4월 :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정권의 정통성으로 삼는 북한도 아베 전 총리를 향해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2015년 8월 : "담화를 발표한 아베는 패전국의 수장으로서 짓수그린(깊숙이 잔뜩 수그린) 몰골이 아니라 마치 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독을 내뿜는 일본산 독사 그대로였다."]

아베 전 총리의 극우 발언엔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계속해서 방위비를 증강했거든요. 그때 구실로 내세웠던 게 물론 중국도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력 증강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베 총리와 북한 혹은 북일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 사망 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을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기시다 후미오/일본 총리 :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아베 전 총리가 열정을 쏟은 납치 문제나 헌법 개정 등 아베 자신의 손으로 완수하지 못한 난제를 풀어가겠습니다."]

일본인 납북 문제 해결 의지는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향상으로 일본 내 안보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군사력 강화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이기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결국엔 평화헌법의 개정까지도 갈 수 있는 문제인데 주변국들은 역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서 상당히 우려하고 있고요.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한국이나 북한 중국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의 군비확대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명분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북중러 결속을 통한 신냉전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한미일의 안보협력이라는 건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아시아판 나토를 구성하기 위한 서막이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으로선 한미일의 안보협력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 갈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가까이 냉각 상태인 북일 관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숨졌지만 북일 관계는 돌파구는커녕 더더욱 표류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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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07-16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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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현직에서 물러나고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었는데요.

그래서 그의 사망은 일본 정치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네, 아베 전 총리는 생전에 납북 일본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행보를 보였던 대표적 우파 정치인이었는데요.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망에 대해 북한은 조의는 물론이고 아예 사망 소식조차 전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북일 관계,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클로즈 업 북한'에서 짚어봅니다.

[리포트]

강단에 올라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갑자기 뒤에서 흰 연기가 퍼지더니, 두 차례 총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아베 전 총리는 피격 직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기시다 후미오/일본 총리 : "참으로 안타까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의 사망.

일본 열도는 물론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애도의 물결도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의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고,

[윤석열 대통령 : "유족과 일본 국민들께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조화를 들고 주미 일본대사 관저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본과 대립각을 세웠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조의를 전했다.

[조선중앙TV/7월 8일 : "김정은 동지께서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의 사망 당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28주기를 맞아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공교롭게도 김일성 주석과 같은 날 아베 전 총리는 숨졌는데, 북한은 그의 사망 소식도 전하지 않고 공식 비공식 반응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현재 북한이 생각하는 주변 정세의 인식 혹은 북일 관계라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당장 관계개선의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하고 북한에게도 커다란 메리트가 현재는 없습니다. 때문에 아베 총리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명하거나 혹은 비판하거나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아베 전 총리와의 악연은 2002년, 제1차 북일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평양을 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

대북 강경파였던 아베 전 총리도 관방장관 자격으로 동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교 수교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며 과거사 보상을 약속했다.

[2002년 9월 : "(일본 측은) 통렬한 반성과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다."]

북한 역시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약속과 함께 납치자 문제를 시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당시 일본 총리/2002년 9월 : "(김정일 위원장은) 과거에 북한 관계자가 행한 일을 솔직히 시인하고 유감이며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납북됐던 일본인 다섯 명이 24년 만에 귀국했고, 수교회담도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하마모토 후키에/납북 일본인/2002년 10월 :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일시 귀국이라는 조건을 돌연 파기하고, 납치 생존자 다섯 명을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그 중심엔 아베 전 총리가 있었다.

[아베 신조/당시 일본 관방장관/2002년 10월 : "(일본 정부는 생존자의) 가족을 포함한 영구 귀국과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신뢰를 깨는 ‘요코다 메구미 사건’이 터진다.

[호소다 히로유키/당시 일본 관방장관/2004년 : "북한의 조사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북한이 건네준 납북 피해자 메구미의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요코다 다쿠야/요코다 메구미 동생/2004년 : "이렇게까지 가족과 일본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국민 모두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고, 아베 전 총리는 수교 이전에 납치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리고 2006년, 일본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기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아베 총리가 정치적 선거 승리를 위해서 납치자 문제를 계속해서 주장해왔고요. 한때는 국난극복이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이것으로 인해 인기가 올라갔고요. 그리고 자기가 총리가 된 이후에도 정권 지지를 위해선 언제나 처음부터 내세웠던 것이 납치자 문제 해결을 내세웠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퇴임 전까지도 ‘아베 3원칙’을 내세워 납북자의 전원 생환 없이는 국교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고, 북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북핵 역시 일본인 납북 문제 못지않게 북일 관계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전 총리/2006년 10월/北 1차 핵실험 직후 : "만약 핵실험에 실패했더라도 핵실험을 하려고 시도했던 만큼 죄는 똑같습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아베 총리는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결정했고, 이후에도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아베/전 총리/2016년 9월/北 5차 핵실험 직후 : "절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강하게 항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는 대북 강경노선 외에도 침략의 역사마저 부정하는 극단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아베 신조/일본 총리/2013년 4월 :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정권의 정통성으로 삼는 북한도 아베 전 총리를 향해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2015년 8월 : "담화를 발표한 아베는 패전국의 수장으로서 짓수그린(깊숙이 잔뜩 수그린) 몰골이 아니라 마치 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독을 내뿜는 일본산 독사 그대로였다."]

아베 전 총리의 극우 발언엔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계속해서 방위비를 증강했거든요. 그때 구실로 내세웠던 게 물론 중국도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력 증강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베 총리와 북한 혹은 북일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 사망 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을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기시다 후미오/일본 총리 :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아베 전 총리가 열정을 쏟은 납치 문제나 헌법 개정 등 아베 자신의 손으로 완수하지 못한 난제를 풀어가겠습니다."]

일본인 납북 문제 해결 의지는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향상으로 일본 내 안보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군사력 강화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이기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결국엔 평화헌법의 개정까지도 갈 수 있는 문제인데 주변국들은 역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서 상당히 우려하고 있고요.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한국이나 북한 중국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의 군비확대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명분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북중러 결속을 통한 신냉전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진구/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 "한미일의 안보협력이라는 건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아시아판 나토를 구성하기 위한 서막이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으로선 한미일의 안보협력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 갈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가까이 냉각 상태인 북일 관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숨졌지만 북일 관계는 돌파구는커녕 더더욱 표류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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