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K] 여순 10·19 해원의 길은?

입력 2022.10.27 (19:30) 수정 2022.10.31 (16: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죠.

여수·순천 10.19 사건이 올해로 74주년을 맞았습니다.

1948년, 여수에 주둔해있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다수의 민간인 희생으로 이어졌는데요.

지난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처음 맞는, 그 어느 해보다 특별했던 추념의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여순 10.19사건 74주년이 되는 해.

지난해 특별법이 통과되고 올해 처음으로 열린 정부 주최의 추념식과는 별도로, 구례에서 그날의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여순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쫓겨서 온 곳이 지리산이었고, 지리산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구례 군민들에게 음식을 강탈해간다든지, 또 짐을 지게 한다든지 해서 여수 순천에 비해서 (구례)인구 수는 10분의 1도 못 되지만, 조사한 숫자로는 거의 여수와 순천과 같은 정도의 520명이 (피해)신고를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피해를 봤던 곳이죠. 아무래도 우리 구례 지역 희생자에게 위령제로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어렵게 살다 가신 부모님들을 위해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고 술 한 잔 따라 올리는 그런 행사로 진행을 합니다."]

74년 전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은 넋을 위로하는 자리...

지나온 시간은 남은 가족들에게도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신영식/여순10·19 유족 : "한이 맺힌 것이 이 집 저 집 전전하다가 살다가 나가라면 또 다른 데로 이사를 가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어머님이 나를 업고 바가지 동냥을 했어. 고생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우리 순천·여수·구례·광양·보성 너무나 많아요. 너무나 일찍이 부모를 잃어버리니까..."]

여순사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생명평화포럼의 자리는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 시간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더욱 사무치고 그리운 이름, 아버지...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그전에는 아버지 묘를 그냥 밤나무를 깎아서 가묘를 만들어 두고 있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서 아버님이 스물 일곱살에 돌아가셨으니까 젊은 시절에 아버님이 쓰셨던 유품들을 다 모아서 어머님 돌아가실 때 여기다 같이 묻어 드리고."]

무참히 아버지를 잃은 두 살배기에게 남겨진 것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차가운 세상의 시선은 남겨진 가족의 인생마저 송두리째 빼앗았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학교에서도 저 자식은 아버지가 빨갱이인 사람이었어. 그런 식으로 놀림감의 대상이었고, 교육도 받지를 못하고, 유족들이 아버지 한 사람이 없어짐으로써 굉장히 일생을 가난이 대물림이 되고 어려움이 대물림이 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평생 짊어져야 했던 삶의 멍에.

그 깊은 절망과 고통의 시간에 살아갈 용기를 준 것은 어머니의 한없는 희생과 사랑이었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흘러간 나날들이 수없이 보태져도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산소에 들러 절을 올립니다. 이 세상 살아계실 때 마음 다해 효도한 적 있었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도 숨죽여 살아야 했던 통한의 세월.

아픈 역사, 해원의 그날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이제는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봅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 유족들이 80세, 90세거든요. 이분들이 살아계실 때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서 진실이 규명되고 명예가 회복되는 그날 우리들은 지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는 그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찾아가는K] 여순 10·19 해원의 길은?
    • 입력 2022-10-27 19:30:27
    • 수정2022-10-31 16:39:58
    뉴스7(광주)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죠.

여수·순천 10.19 사건이 올해로 74주년을 맞았습니다.

1948년, 여수에 주둔해있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다수의 민간인 희생으로 이어졌는데요.

지난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처음 맞는, 그 어느 해보다 특별했던 추념의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여순 10.19사건 74주년이 되는 해.

지난해 특별법이 통과되고 올해 처음으로 열린 정부 주최의 추념식과는 별도로, 구례에서 그날의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여순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쫓겨서 온 곳이 지리산이었고, 지리산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구례 군민들에게 음식을 강탈해간다든지, 또 짐을 지게 한다든지 해서 여수 순천에 비해서 (구례)인구 수는 10분의 1도 못 되지만, 조사한 숫자로는 거의 여수와 순천과 같은 정도의 520명이 (피해)신고를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피해를 봤던 곳이죠. 아무래도 우리 구례 지역 희생자에게 위령제로 술 한 잔 따라 올리고 어렵게 살다 가신 부모님들을 위해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고 술 한 잔 따라 올리는 그런 행사로 진행을 합니다."]

74년 전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은 넋을 위로하는 자리...

지나온 시간은 남은 가족들에게도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신영식/여순10·19 유족 : "한이 맺힌 것이 이 집 저 집 전전하다가 살다가 나가라면 또 다른 데로 이사를 가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어머님이 나를 업고 바가지 동냥을 했어. 고생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우리 순천·여수·구례·광양·보성 너무나 많아요. 너무나 일찍이 부모를 잃어버리니까..."]

여순사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생명평화포럼의 자리는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 시간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더욱 사무치고 그리운 이름, 아버지...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그전에는 아버지 묘를 그냥 밤나무를 깎아서 가묘를 만들어 두고 있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서 아버님이 스물 일곱살에 돌아가셨으니까 젊은 시절에 아버님이 쓰셨던 유품들을 다 모아서 어머님 돌아가실 때 여기다 같이 묻어 드리고."]

무참히 아버지를 잃은 두 살배기에게 남겨진 것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차가운 세상의 시선은 남겨진 가족의 인생마저 송두리째 빼앗았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학교에서도 저 자식은 아버지가 빨갱이인 사람이었어. 그런 식으로 놀림감의 대상이었고, 교육도 받지를 못하고, 유족들이 아버지 한 사람이 없어짐으로써 굉장히 일생을 가난이 대물림이 되고 어려움이 대물림이 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평생 짊어져야 했던 삶의 멍에.

그 깊은 절망과 고통의 시간에 살아갈 용기를 준 것은 어머니의 한없는 희생과 사랑이었습니다.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흘러간 나날들이 수없이 보태져도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산소에 들러 절을 올립니다. 이 세상 살아계실 때 마음 다해 효도한 적 있었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도 숨죽여 살아야 했던 통한의 세월.

아픈 역사, 해원의 그날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규종/여순10·19항쟁 전국유족총연합 회장 : "이제는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봅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 유족들이 80세, 90세거든요. 이분들이 살아계실 때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서 진실이 규명되고 명예가 회복되는 그날 우리들은 지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는 그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광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