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누구의 것인가?”…또 시작된 야간 해루질 갈등

입력 2022.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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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주로 밤에, 얕은 바다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이른바 '해루질'을 둘러싸고 제주에선 해녀와 레저 동호인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양측이 몸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 깜깜한 밤바다로 추락하는 아찔한 상황까지 빚었는데요.

제주에서 야간 해루질이 금지된 마을어장이 아닌 '어항 구역'을 놓고, 어촌계와 해루질 동호인들이 폭행 시비와 고소전을 벌이는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입니다.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나고 자라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레저 행위"라는 해루질 동호인의 주장에 대해 지역 해녀들은 "생계를 위해 수산자원을 키우고, 가꾸는 생업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 "우리 바당에 들어오지 마!"…몸싸움 벌이다 바다에 빠지기도

해루질 동호인과 어촌계 해녀들이 처음 충돌을 빚은 건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제주해경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저녁 7시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어항 구역'에서 해루질하고 뭍으로 나온 남성 동호인 4명을 지역 해녀들이 발견해, 즉각 항의에 나섰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수산물을 무단 채취했다"며 이를 돌려내라는 해녀들과 "야간 해루질이 금지된 '마을어장'에서 잡은 게 아니"라는 동호인들의 말다툼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양측의 언성이 높아지는 사이 해녀들은 남성 동호인들에게 다가가, 이들이 입고 있던 잠수복에 매달린 그물망에서 문어 등 수산물 10마리를 꺼내 바다로 다시 내보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은 "해녀들이 우리가 잡은 재산을 강탈하고, 몸에 손을 댔다"며 이날 해경에 어촌계장 등을 형사 고소했습니다.

물리적 충돌은 그다음 날 밤에도 이어졌습니다.

해당 동호회원들은 이튿날 밤 같은 장소로 해루질에 나섰고, 이를 인지한 지역 해녀 수십 명이 미리 현장으로 모여들어 입수하려는 동호인들을 막아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녀 1명이 남성 동호인을 잡아당기면서, 두 사람이 함께 바다로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빚기도 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당시 바다로 빠지는 사고를 당한 해루질 동호회원 최현우 씨는 "해녀 한 분이 제게 다가오더니 벨트를 잡고 '너랑 나랑 같이 빠져 죽자'며 밀쳤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면서 "썰물 때라서 다행히 물이 아주 깊지 않았지만, 공포심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순간"이라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위험하다, 올라오라"는 주변의 만류에 최 씨가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자, 주변에 서 있던 해녀가 최 씨를 다시 바다로 밀면서 재차 물에 빠지는 사고도 벌어졌습니다.

해경까지 출동해 제지에 나섰지만,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으며 충돌은 수십 분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동호인이 다치고 어촌계장이 119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은 잡은 문어와 오징어를 빼앗기고 물안경 등 각종 장비가 분실되거나 부서졌다며, 일부 해녀를 폭행 등 혐의로 해경에 또다시 고소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이틀간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곳은 마을어장이 아닌 '어항 구역'으로, 해루질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은 아닙니다.

지난해 제주도의 '신고어업(맨손어업)의 제한 및 조건 고시' 시행 이후, 마을어장 내에서의 조업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로 한정됐습니다.

즉, 해루질 동호인 등 비어업인은 마을어장에서는 야간에 수산물을 포획할 수 없게 된 겁니다.

■ "해루질 가능 해역, 제주 바다 극히 일부분…해녀 생계와 무관"

제주도에 따르면 530㎞에 이르는 제주지역 해안선을 따라 90% 이상이, 이처럼 해루질을 못 하는 '마을어장(1만 4,256㏊)'에 해당합니다.

일부 '개방 마을어장'이 있으나 제주 전역에서 24개소에 불과하고, 면적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해루질 동호인들은 "제주 전체 바다에서 1%조차 되지 않는 매우 작은 어항 구역 내에서의 합법적이고 건전한 레저활동까지 어민들이 과도하게 막아서고 있다"며 부당함을 주장합니다.

평일과 주말 저녁을 활용해 취미로 해루질하러 다니고 있다는 최 씨는 "해루질 관련 법이 없을 땐 수십 마리 마구잡이식으로 사진 찍어 자랑하는 일부 비양심 해루질 동호인들도 있었지만, 근래 자정을 통해 많이 개선됐다"면서 "가족들과 집에서 몇 마리 삶아 먹는 재미를 즐기려고, 퇴근 후 저녁에 합법적인 구역에서만 취미로 문어나 오징어를 잡는 것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 "마을어업권 갖고 직접 가꾸는 바다…해루질 탓, 악영향 받아"

하지만 철마다 각종 수산자원을 방류하고 키우며 '생업의 터'로써 바다에 공을 들이는 해녀와 마을 주민들은 이 같은 해루질 활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해녀들은 어촌계와 수산물을 채취·관리하는 이른바 '행사 계약'을 맺고 마을어업권을 가져와 합법적으로 조업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바다에 대한 배타적 사용 권리를 주장합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현직 해녀이기도 한 장영미 귀덕1리 어촌계장은 "바다가 원래 해녀들 바다는 아니다. 나라 바다이지, 개인의 것은 아니"라면서도 "1년에 한 번씩, '바다를 관리해서 쓰겠다'는 행사 계약을 맺고 홍해삼과 전복 등 각종 수산물 씨를 뿌리고, 불가사리 제거 작업과 쓰레기 줍기를 하는 등 어민들이 직접 가꾸고 관리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해루질하러 오는 이들도 이처럼 마을 바다를 보전하고 있느냐"며 반문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이 들어간 지역이 어항 구역은 맞지만, 수산 종자를 방류하고 키우는 마을어장과 바로 맞붙어 있으므로, 사실상 어촌계가 가꾸는 똑같은 바다라는 겁니다.

이어 그는 "각종 장비를 갖추고 수산물을 잡는 남성 해루질 동호회원들을, 맨손으로 잡는 해녀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술안주' 삼기 위해 잡으러 가는 그들에겐 취미이지만, 우리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라면서 제주도 등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등,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 2년간 제주 해루질 신고 400건↑…법 개정은 요원?

비슷한 충돌은 올해 초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3월에도 서귀포시의 한 어항 구역에서 해루질 동호인과 지역 해녀 간에 폭행 시비가 붙어, 고소전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제주해경에 접수된 해루질 관련 신고는 250여 건. 올해도 190여 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제주도는 지난해 4월부터 야간에 마을어장에서 수산동식물을 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비어업인의 포획 채취 제한 및 조건'을 고시했습니다.

고시 이후, 올해 현재까지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과태료(80만 원)를 부과한 실적은 40여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해루질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 시도도 이어지고 있지만, 해루질 허용 시간과 포획 기준 등을 정하는 관련 법 개정안들은 몇 달째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주무관청인 해양수산부도, 제주도도 우선은 입법 상황을 지켜보며 하위 법령과 조례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해수부는 이 같은 해루질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지난해 관련 연구 용역까지 실시한 바 있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 등이 현재 계류 중이어서, 입법부 법안 발의 과정에 따라, 하위 법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 늘어나는 해양 레저 인구 VS 고갈되는 수산 자원…갈등을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통통한 제주 돌문어, 갯바위나 돌 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보말(바다고둥)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게, 갯벌 속에 숨어있는 조개…. 각종 해산물을 보물찾기하듯 내 손으로 직접 잡아다가 가족들과 오손도손 삶아 맛보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바닷가를 찾아 해루질을 즐깁니다.

해루질을 둘러싸고 어촌계와 도민 등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 대해, 관련 업무 담당자들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공유재 성격의 바다를 둘러싼 문제이다 보니 갈등도 더 복잡하고, 많다는 겁니다.

어항 구역 담당, 해녀 업무 담당, 고시 등 정책 담당까지, 제주도에만 해루질 민원으로 연관된 부서는 3개에 달합니다.

예전보다 바다로의 접근성이 더 좋아지면서, 어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각종 해양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난 영향도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어업인이 아닌 사람이 바다에서 할 수 있는 행위에는 해수욕과 여객선 승선 정도에 불과했지만, 각종 레저 활동과 장비가 발달하면서 오락과 취미로도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반면,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등으로 제주 마을어장의 수산 자원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입니다.

"약탈하듯 너무 많이 수산물을 잡아서 밴드나 온라인 공간에 자랑하듯 게시하는 일부 해루질 동호인들도 여전히 문제이지만, '어항구역'과 같은 합법적인 해루질 가능 해역에서까지 입수를 제지하는 지역 어촌계 해녀들도 과하게 대응하면서 감정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역 어업인은 현행법상, 모든 해루질을 규제할 순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취미로 해루질하는 분들은 '나만 바다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수산자원 보호 차원에서 정도를 조절해주는 게 가장 지혜롭겠죠. 양쪽 다 한 발씩 물러서 준다면…."

[연관 기사]
‘밀치고 빠뜨리고’…‘야간 해루질’ 동호회·해녀 충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3046
‘해루질 제한’ 해수부 용역에 정책 마련 진통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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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또 시작된 야간 해루질 갈등
    • 입력 2022-11-18 06:00:01
    취재K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주로 밤에, 얕은 바다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이른바 '해루질'을 둘러싸고 제주에선 해녀와 레저 동호인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양측이 몸싸움을 벌이다가 급기야 깜깜한 밤바다로 추락하는 아찔한 상황까지 빚었는데요.

제주에서 야간 해루질이 금지된 마을어장이 아닌 '어항 구역'을 놓고, 어촌계와 해루질 동호인들이 폭행 시비와 고소전을 벌이는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입니다.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나고 자라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레저 행위"라는 해루질 동호인의 주장에 대해 지역 해녀들은 "생계를 위해 수산자원을 키우고, 가꾸는 생업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 "우리 바당에 들어오지 마!"…몸싸움 벌이다 바다에 빠지기도

해루질 동호인과 어촌계 해녀들이 처음 충돌을 빚은 건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제주해경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저녁 7시쯤,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 '어항 구역'에서 해루질하고 뭍으로 나온 남성 동호인 4명을 지역 해녀들이 발견해, 즉각 항의에 나섰습니다.

"우리 바다에서 수산물을 무단 채취했다"며 이를 돌려내라는 해녀들과 "야간 해루질이 금지된 '마을어장'에서 잡은 게 아니"라는 동호인들의 말다툼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양측의 언성이 높아지는 사이 해녀들은 남성 동호인들에게 다가가, 이들이 입고 있던 잠수복에 매달린 그물망에서 문어 등 수산물 10마리를 꺼내 바다로 다시 내보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은 "해녀들이 우리가 잡은 재산을 강탈하고, 몸에 손을 댔다"며 이날 해경에 어촌계장 등을 형사 고소했습니다.

물리적 충돌은 그다음 날 밤에도 이어졌습니다.

해당 동호회원들은 이튿날 밤 같은 장소로 해루질에 나섰고, 이를 인지한 지역 해녀 수십 명이 미리 현장으로 모여들어 입수하려는 동호인들을 막아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녀 1명이 남성 동호인을 잡아당기면서, 두 사람이 함께 바다로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빚기도 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당시 바다로 빠지는 사고를 당한 해루질 동호회원 최현우 씨는 "해녀 한 분이 제게 다가오더니 벨트를 잡고 '너랑 나랑 같이 빠져 죽자'며 밀쳤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면서 "썰물 때라서 다행히 물이 아주 깊지 않았지만, 공포심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순간"이라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위험하다, 올라오라"는 주변의 만류에 최 씨가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자, 주변에 서 있던 해녀가 최 씨를 다시 바다로 밀면서 재차 물에 빠지는 사고도 벌어졌습니다.

해경까지 출동해 제지에 나섰지만,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으며 충돌은 수십 분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동호인이 다치고 어촌계장이 119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은 잡은 문어와 오징어를 빼앗기고 물안경 등 각종 장비가 분실되거나 부서졌다며, 일부 해녀를 폭행 등 혐의로 해경에 또다시 고소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이틀간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곳은 마을어장이 아닌 '어항 구역'으로, 해루질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은 아닙니다.

지난해 제주도의 '신고어업(맨손어업)의 제한 및 조건 고시' 시행 이후, 마을어장 내에서의 조업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로 한정됐습니다.

즉, 해루질 동호인 등 비어업인은 마을어장에서는 야간에 수산물을 포획할 수 없게 된 겁니다.

■ "해루질 가능 해역, 제주 바다 극히 일부분…해녀 생계와 무관"

제주도에 따르면 530㎞에 이르는 제주지역 해안선을 따라 90% 이상이, 이처럼 해루질을 못 하는 '마을어장(1만 4,256㏊)'에 해당합니다.

일부 '개방 마을어장'이 있으나 제주 전역에서 24개소에 불과하고, 면적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해루질 동호인들은 "제주 전체 바다에서 1%조차 되지 않는 매우 작은 어항 구역 내에서의 합법적이고 건전한 레저활동까지 어민들이 과도하게 막아서고 있다"며 부당함을 주장합니다.

평일과 주말 저녁을 활용해 취미로 해루질하러 다니고 있다는 최 씨는 "해루질 관련 법이 없을 땐 수십 마리 마구잡이식으로 사진 찍어 자랑하는 일부 비양심 해루질 동호인들도 있었지만, 근래 자정을 통해 많이 개선됐다"면서 "가족들과 집에서 몇 마리 삶아 먹는 재미를 즐기려고, 퇴근 후 저녁에 합법적인 구역에서만 취미로 문어나 오징어를 잡는 것뿐"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 "마을어업권 갖고 직접 가꾸는 바다…해루질 탓, 악영향 받아"

하지만 철마다 각종 수산자원을 방류하고 키우며 '생업의 터'로써 바다에 공을 들이는 해녀와 마을 주민들은 이 같은 해루질 활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해녀들은 어촌계와 수산물을 채취·관리하는 이른바 '행사 계약'을 맺고 마을어업권을 가져와 합법적으로 조업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바다에 대한 배타적 사용 권리를 주장합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현직 해녀이기도 한 장영미 귀덕1리 어촌계장은 "바다가 원래 해녀들 바다는 아니다. 나라 바다이지, 개인의 것은 아니"라면서도 "1년에 한 번씩, '바다를 관리해서 쓰겠다'는 행사 계약을 맺고 홍해삼과 전복 등 각종 수산물 씨를 뿌리고, 불가사리 제거 작업과 쓰레기 줍기를 하는 등 어민들이 직접 가꾸고 관리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해루질하러 오는 이들도 이처럼 마을 바다를 보전하고 있느냐"며 반문했습니다.

해루질 동호인들이 들어간 지역이 어항 구역은 맞지만, 수산 종자를 방류하고 키우는 마을어장과 바로 맞붙어 있으므로, 사실상 어촌계가 가꾸는 똑같은 바다라는 겁니다.

이어 그는 "각종 장비를 갖추고 수산물을 잡는 남성 해루질 동호회원들을, 맨손으로 잡는 해녀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술안주' 삼기 위해 잡으러 가는 그들에겐 취미이지만, 우리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라면서 제주도 등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등,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 2년간 제주 해루질 신고 400건↑…법 개정은 요원?

비슷한 충돌은 올해 초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3월에도 서귀포시의 한 어항 구역에서 해루질 동호인과 지역 해녀 간에 폭행 시비가 붙어, 고소전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제주해경에 접수된 해루질 관련 신고는 250여 건. 올해도 190여 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2022.11.16. KBS 뉴스7 제주 갈무리
제주도는 지난해 4월부터 야간에 마을어장에서 수산동식물을 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비어업인의 포획 채취 제한 및 조건'을 고시했습니다.

고시 이후, 올해 현재까지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과태료(80만 원)를 부과한 실적은 40여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해루질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 시도도 이어지고 있지만, 해루질 허용 시간과 포획 기준 등을 정하는 관련 법 개정안들은 몇 달째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주무관청인 해양수산부도, 제주도도 우선은 입법 상황을 지켜보며 하위 법령과 조례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해수부는 이 같은 해루질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지난해 관련 연구 용역까지 실시한 바 있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 등이 현재 계류 중이어서, 입법부 법안 발의 과정에 따라, 하위 법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 늘어나는 해양 레저 인구 VS 고갈되는 수산 자원…갈등을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통통한 제주 돌문어, 갯바위나 돌 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보말(바다고둥)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게, 갯벌 속에 숨어있는 조개…. 각종 해산물을 보물찾기하듯 내 손으로 직접 잡아다가 가족들과 오손도손 삶아 맛보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바닷가를 찾아 해루질을 즐깁니다.

해루질을 둘러싸고 어촌계와 도민 등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 대해, 관련 업무 담당자들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공유재 성격의 바다를 둘러싼 문제이다 보니 갈등도 더 복잡하고, 많다는 겁니다.

어항 구역 담당, 해녀 업무 담당, 고시 등 정책 담당까지, 제주도에만 해루질 민원으로 연관된 부서는 3개에 달합니다.

예전보다 바다로의 접근성이 더 좋아지면서, 어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각종 해양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난 영향도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어업인이 아닌 사람이 바다에서 할 수 있는 행위에는 해수욕과 여객선 승선 정도에 불과했지만, 각종 레저 활동과 장비가 발달하면서 오락과 취미로도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반면,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등으로 제주 마을어장의 수산 자원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입니다.

"약탈하듯 너무 많이 수산물을 잡아서 밴드나 온라인 공간에 자랑하듯 게시하는 일부 해루질 동호인들도 여전히 문제이지만, '어항구역'과 같은 합법적인 해루질 가능 해역에서까지 입수를 제지하는 지역 어촌계 해녀들도 과하게 대응하면서 감정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역 어업인은 현행법상, 모든 해루질을 규제할 순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취미로 해루질하는 분들은 '나만 바다에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수산자원 보호 차원에서 정도를 조절해주는 게 가장 지혜롭겠죠. 양쪽 다 한 발씩 물러서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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