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0억 들인 ‘모바일 상황실’…이태원 참사 때 ‘무용지물’

입력 2023.02.06 (16:02) 수정 2023.05.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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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최근 '이태원 참사' 당시 경기 구급차들의 출동지가 이태원이 아닌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이었고, 그 배경에는 119상황실 신고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경기 소방본부 119상황실 신고 상황판에는 경기 지역 지도만 나오기 때문에 서울 주소지로 출동 지령을 내릴 수 없었던 겁니다.

서울이 아닌 타 지역 구급차들은 무전으로 정확한 목적지를 확인한 뒤에야 이태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경기 구급차 출동지, 왜 ‘이태원’이 아니었을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299638

소방청은 이미 시스템 개선이 진행 중이라고 했지만, 구축 기간이 4~5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향후 4~5년 동안은 사고 지역 소방본부 소속이 아닌 구급 인력이 지원 출동할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소방청은 이미 수십억 원을 들여 대형 재난 상황에서 모든 소방 인력이 출동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바일 상황실'을 구축해놓고도 거의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지난해 '모바일 상황실' 시스템 구축

소방청은 지난해 5월 '119현장지원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재와 구조·구급 등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대원들에게 스마트기기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지난해 5월 소방청 보도자료지난해 5월 소방청 보도자료

소방청은 이 시스템으로 "현장 출동 대원들은 재난 정보와 현장 건축물 정보, 출동 인력 등을 119 종합상황실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 기기로 실시간 확인하며, 신속하고 효과적인 현장 대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대형 재난 발생 시 전국 동원령에 의해 다른 시·도 소방본부에서 동원되는 소방대원들도 재난 상황을 공유하고, 동원 소방 자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재난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19종합상황실에 집결하는 각종 정보를 휴대기기로 볼 수 있는 일종의 '모바일 상황실'인 셈입니다.

119 현장지원시스템 구현 예시, 소방청 제공119 현장지원시스템 구현 예시, 소방청 제공

실제 지난해 3월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 당시 활용한 화면을 보면, 반복된 신고 내역과 출동 소방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접속해 '임무 참여'를 하게 되면 곧바로 재난 위치가 표시되고, 현장 경로까지 표시됩니다. 네비게이션을 켜 주소를 찍지 않고도 바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119현장지원시스템 화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제공119현장지원시스템 화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제공

'이태원 참사' 당시 출동했던 타 지역 구급대원들이 이 시스템에 접속했다면 출동지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압사 관련 신고 내용, 출동 소방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실제 출동지가 이태원이 맞는지 수차례 확인하며 반복 무전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시 현장 대원들은 이 시스템을 얼마나 활용했을까요?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윤건영 위원(더불어민주당)실을 통해 참사 이틀 동안 시스템 접속 현황을 확보해 살펴봤습니다.

■ 접속자 살펴보니…서울본부 소속 현장 대원은 '1'명

소방청에서는 2022년 10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접속·열람자가 모두 316명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동원된 소방 인력 906명의 3분의 1가량입니다.

꽤 많은 인원이 시스템을 활용한 것처럼 보였지만, KBS가 추가로 세부 내역을 확보해 분석했더니 실상은 달랐습니다.

소방청이 제공한 접속자 명단에서 경남·북과 전남·북 등 현장에 가지 않았던 대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의 명단과 구급차 운행 일지, 병원 이송 기록, 다수 사상자 관리 시스템 입력 내역 등을 대조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실제 현장 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9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현장 출동 여부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일단 관여한 것으로 가정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결과입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소방청 소속 5명을 제외하면 현장 소방대원 접속자는 서울 강서소방서 소속 소방관 1명뿐이었습니다.

■ 대원간 채팅도 가능 …내역은 '없음'

119현장 지원시스템은 상황실과 대원, 대원과 대원 간 채팅도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KBS가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10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의 채팅 내역을 요청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채팅 내역 없음'이었습니다.

참사 당시 예산 1조 원이 투입된 '재난안전통신망'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수십억 원을 들여 구축한 현장지원시스템도 의사 소통에 전혀 활용되지 않은 겁니다.

■ 서울소방 "활용 안 해…향후 교육 등 강화할 것"

서울 소방본부는 '119현장지원시스템을 활용했느냐'는 질의에 "이태원 현장에서 소방안전지도를 활용했으며, 119현장지원시스템은 활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방안전지도는 건축물·교통·지리·차량 위치·출동 영상·기상·취약 시설 정보 등 재난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출동대에 실시간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면서 "2014년부터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참사 당시 119현장지원시스템을 활용하라는 안내나 지시가 있었는지 묻자 "별도의 안내는 없었으며, 향후 소방청은 사용자 교육 및 기능 보강 등을 강화해 원활한 사용을 추진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소방관은 "소방안전지도는 차량이나 소화전 위치 등을 확인할 때 주로 쓴다"면서 "119현장지원시스템은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소방청은 119현장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이미 지금까지 25차례 사용자 교육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소방본부는 참사 6개월 전인 지난해 4월 교육을 받았습니다.

■ 개발과 구축에 7년…국가 예산 60억 원 투입

119현장 지원시스템은 2016년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개발과 구축에 7년이 걸렸고, 60억여 원이 투입됐습니다.

소방청은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신속 정확한 현장 대응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첨단기술 기반 대응 시스템을 또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십억 원을 들여 구축해놓은 재난 대응 시스템의 활용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소방청, 2023년 업무계획 발표 보도자료소방청, 2023년 업무계획 발표 보도자료

이에 윤건영 위원은 "이미 구축된 119 현장지원시스템이 당일 제대로 활용되었다면 현장 출동 인력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확하고 신속한 구조와 병원 이송 등 체계적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구축된 시스템의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한 보완책을 꼼꼼하게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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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60억 들인 ‘모바일 상황실’…이태원 참사 때 ‘무용지물’
    • 입력 2023-02-06 16:02:15
    • 수정2023-05-04 11:43:32
    취재K

KBS는 최근 '이태원 참사' 당시 경기 구급차들의 출동지가 이태원이 아닌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이었고, 그 배경에는 119상황실 신고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경기 소방본부 119상황실 신고 상황판에는 경기 지역 지도만 나오기 때문에 서울 주소지로 출동 지령을 내릴 수 없었던 겁니다.

서울이 아닌 타 지역 구급차들은 무전으로 정확한 목적지를 확인한 뒤에야 이태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경기 구급차 출동지, 왜 ‘이태원’이 아니었을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299638

소방청은 이미 시스템 개선이 진행 중이라고 했지만, 구축 기간이 4~5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향후 4~5년 동안은 사고 지역 소방본부 소속이 아닌 구급 인력이 지원 출동할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소방청은 이미 수십억 원을 들여 대형 재난 상황에서 모든 소방 인력이 출동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바일 상황실'을 구축해놓고도 거의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지난해 '모바일 상황실' 시스템 구축

소방청은 지난해 5월 '119현장지원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재와 구조·구급 등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대원들에게 스마트기기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지난해 5월 소방청 보도자료
소방청은 이 시스템으로 "현장 출동 대원들은 재난 정보와 현장 건축물 정보, 출동 인력 등을 119 종합상황실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 기기로 실시간 확인하며, 신속하고 효과적인 현장 대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대형 재난 발생 시 전국 동원령에 의해 다른 시·도 소방본부에서 동원되는 소방대원들도 재난 상황을 공유하고, 동원 소방 자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재난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19종합상황실에 집결하는 각종 정보를 휴대기기로 볼 수 있는 일종의 '모바일 상황실'인 셈입니다.

119 현장지원시스템 구현 예시, 소방청 제공
실제 지난해 3월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 당시 활용한 화면을 보면, 반복된 신고 내역과 출동 소방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접속해 '임무 참여'를 하게 되면 곧바로 재난 위치가 표시되고, 현장 경로까지 표시됩니다. 네비게이션을 켜 주소를 찍지 않고도 바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119현장지원시스템 화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제공
'이태원 참사' 당시 출동했던 타 지역 구급대원들이 이 시스템에 접속했다면 출동지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압사 관련 신고 내용, 출동 소방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실제 출동지가 이태원이 맞는지 수차례 확인하며 반복 무전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시 현장 대원들은 이 시스템을 얼마나 활용했을까요?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윤건영 위원(더불어민주당)실을 통해 참사 이틀 동안 시스템 접속 현황을 확보해 살펴봤습니다.

■ 접속자 살펴보니…서울본부 소속 현장 대원은 '1'명

소방청에서는 2022년 10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접속·열람자가 모두 316명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동원된 소방 인력 906명의 3분의 1가량입니다.

꽤 많은 인원이 시스템을 활용한 것처럼 보였지만, KBS가 추가로 세부 내역을 확보해 분석했더니 실상은 달랐습니다.

소방청이 제공한 접속자 명단에서 경남·북과 전남·북 등 현장에 가지 않았던 대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의 명단과 구급차 운행 일지, 병원 이송 기록, 다수 사상자 관리 시스템 입력 내역 등을 대조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실제 현장 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9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현장 출동 여부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일단 관여한 것으로 가정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결과입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소방청 소속 5명을 제외하면 현장 소방대원 접속자는 서울 강서소방서 소속 소방관 1명뿐이었습니다.

■ 대원간 채팅도 가능 …내역은 '없음'

119현장 지원시스템은 상황실과 대원, 대원과 대원 간 채팅도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KBS가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10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의 채팅 내역을 요청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채팅 내역 없음'이었습니다.

참사 당시 예산 1조 원이 투입된 '재난안전통신망'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수십억 원을 들여 구축한 현장지원시스템도 의사 소통에 전혀 활용되지 않은 겁니다.

■ 서울소방 "활용 안 해…향후 교육 등 강화할 것"

서울 소방본부는 '119현장지원시스템을 활용했느냐'는 질의에 "이태원 현장에서 소방안전지도를 활용했으며, 119현장지원시스템은 활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방안전지도는 건축물·교통·지리·차량 위치·출동 영상·기상·취약 시설 정보 등 재난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출동대에 실시간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면서 "2014년부터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참사 당시 119현장지원시스템을 활용하라는 안내나 지시가 있었는지 묻자 "별도의 안내는 없었으며, 향후 소방청은 사용자 교육 및 기능 보강 등을 강화해 원활한 사용을 추진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소방관은 "소방안전지도는 차량이나 소화전 위치 등을 확인할 때 주로 쓴다"면서 "119현장지원시스템은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소방청은 119현장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이미 지금까지 25차례 사용자 교육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소방본부는 참사 6개월 전인 지난해 4월 교육을 받았습니다.

■ 개발과 구축에 7년…국가 예산 60억 원 투입

119현장 지원시스템은 2016년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개발과 구축에 7년이 걸렸고, 60억여 원이 투입됐습니다.

소방청은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신속 정확한 현장 대응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첨단기술 기반 대응 시스템을 또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십억 원을 들여 구축해놓은 재난 대응 시스템의 활용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소방청, 2023년 업무계획 발표 보도자료
이에 윤건영 위원은 "이미 구축된 119 현장지원시스템이 당일 제대로 활용되었다면 현장 출동 인력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확하고 신속한 구조와 병원 이송 등 체계적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구축된 시스템의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한 보완책을 꼼꼼하게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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