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뉴스K] ‘바늘구멍’ 난민의 길…인정돼도 난관 ‘수두룩’

입력 2023.02.21 (12:43) 수정 2023.02.2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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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고국에서 박해를 받고 해외를 떠도는 난민들.

우리나라는 이런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인색한 국가 중 하납니다.

더욱이 수년간 난민 면접이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정부가 그 피해자로 규정한 50여 명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화경 기자가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종과 종교, 정치적 견해 등 5가지 이유로 박해를 받고 출신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난민법'을 만든 지 11년이 지났는데요.

하지만 난민 지위를 얻는 과정은 '첩첩산중'입니다.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난민 신청자들이 억울하게 대거 탈락한 면접 조서 조작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흐른 뒤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A 씨는 끝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 과정은 폭압적이었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면접 영상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난민 심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사건으로 55명이 피해를 봤는데 이 가운데 지금까지 7명 만이 난민 자격을 얻었습니다.

난민 자격을 얻은 7명 가운데 1명인 무삽 씨는 이집트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 2016년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난민 면접 당시 "돈을 벌려고 난민 신청을 했다" "고국에 못 돌아갈 이유가 없다" 같은 하지도 않은 말들이 조서에 기록돼,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부당 심사였단 사실이 드러나 재심사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는데요.

이런 '난민 심사' 기회가 앞으로 더 줄어들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금은 탈락해도 다시 신청하면 재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법무부가 추진 중인 난민법 개정안을 보면 탈락자들은 별도의 적격심사를 또 거쳐야, 난민 재심사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전체 신청 건수의 1%대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그만큼 까다로운 심사를 사실상 '두 번'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자녀들의 국적도 문제입니다.

무삽 씨 부부는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 한국에서 두 딸을 낳았지만 아직도 '무국적자'로 방치돼 있습니다.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 출생신고를 하게 돼 있는데, 이집트 당국의 위협을 피해 온 상황에서, 이집트 대사관을 찾아가라는 건,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딸은 스스로 한국인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딸은 한국에 속하지 못하고, 한국 여권이 없어 다른 나라로 못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따르면 난민 아동도 교육받을 권리 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차별에 노출되고 있는 건데요.

믿을 수 있는 난민 심사 시스템과 더불어 난민 인정자들이 사회보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난민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홍화경입니다.

영상편집:신선미/그래픽:민세홍/리서처:민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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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1 12:43:51
    • 수정2023-02-21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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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고국에서 박해를 받고 해외를 떠도는 난민들.

우리나라는 이런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인색한 국가 중 하납니다.

더욱이 수년간 난민 면접이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요.

정부가 그 피해자로 규정한 50여 명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화경 기자가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종과 종교, 정치적 견해 등 5가지 이유로 박해를 받고 출신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난민법'을 만든 지 11년이 지났는데요.

하지만 난민 지위를 얻는 과정은 '첩첩산중'입니다.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난민 신청자들이 억울하게 대거 탈락한 면접 조서 조작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흐른 뒤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A 씨는 끝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 과정은 폭압적이었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면접 영상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난민 심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사건으로 55명이 피해를 봤는데 이 가운데 지금까지 7명 만이 난민 자격을 얻었습니다.

난민 자격을 얻은 7명 가운데 1명인 무삽 씨는 이집트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 2016년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난민 면접 당시 "돈을 벌려고 난민 신청을 했다" "고국에 못 돌아갈 이유가 없다" 같은 하지도 않은 말들이 조서에 기록돼,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부당 심사였단 사실이 드러나 재심사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는데요.

이런 '난민 심사' 기회가 앞으로 더 줄어들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금은 탈락해도 다시 신청하면 재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법무부가 추진 중인 난민법 개정안을 보면 탈락자들은 별도의 적격심사를 또 거쳐야, 난민 재심사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전체 신청 건수의 1%대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그만큼 까다로운 심사를 사실상 '두 번'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자녀들의 국적도 문제입니다.

무삽 씨 부부는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 한국에서 두 딸을 낳았지만 아직도 '무국적자'로 방치돼 있습니다.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 출생신고를 하게 돼 있는데, 이집트 당국의 위협을 피해 온 상황에서, 이집트 대사관을 찾아가라는 건,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딸은 스스로 한국인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딸은 한국에 속하지 못하고, 한국 여권이 없어 다른 나라로 못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따르면 난민 아동도 교육받을 권리 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차별에 노출되고 있는 건데요.

믿을 수 있는 난민 심사 시스템과 더불어 난민 인정자들이 사회보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난민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홍화경입니다.

영상편집:신선미/그래픽:민세홍/리서처:민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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