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판결문 5천여 건 분석…게이트웨이 드러그(Gateway Drug) ‘마약류 의약품’ [탐사K] [‘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②

입력 2023.06.28 (10:46) 수정 2023.06.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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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경험해봤다"는 인구 3.2%.

KBS가 실시한 '마약류 이용 실태조사'의 결과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마약에 노출됐다는 뜻인데, 우리 사법체계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KBS 탐사보도부가 마약 사범 판결문을 분석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마약 사범 판결문 2년 치 전수분석

한해 검거되는 마약사범의 숫자, 지난 2019년 이후 매년 만 6천 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만 8천 명을 넘었는데, 올해엔 2만 명이 넘을 거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통상 검찰에서 처리하는 마약 사건의 30% 정도, 5천~6천 건이 재판에 넘겨집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재판에 넘겨진 마약 사범들이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배경에서 그런 판결을 받게 됐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대상은 2021년과 2022년에 확정된 판결 가운데 대법원 인터넷 판결서 열람 서비스에 공개된 1심 판결문 5천백86건입니다. 한 재판에 여러 명의 피고인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실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6천3백23명입니다. 같은 기간 1심 판결이 내려졌지만, 항소, 상고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판결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분석 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 판결문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첨부된 증거목록과 기록목록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판결문에 담기지 않은 정보들이 증거목록이나 기록목록에 포함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살펴봐야 했던 문서는 만 9천4백56건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일단 판결문에 나타난 피고인별 선고된 형량과 부과된 명령, 재범 여부 등 기초 사실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또, 전체 판결문 가운데 임의로 추출한 3천20건, 피고인 3천6백53명에 대해서는 투약, 소지, 매수, 매도 정보를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투약의 경우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또 매매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얼마나 주고 거래했는지가 대상이었습니다.

■실형 48.5%, 집행유예 47.4%...판매자의 55.7%는 실형

가장 궁금한 건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겠죠. 분석대상 마약사범 6천323명의 형량을 분석해봤더니, 징역형의 실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율이 엇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 경우가 48.5%,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건 47.4%였습니다. 벌금형이 3.6%, 형이 면제된 경우도 0.3% 정도 됐습니다.

마약사범이라 하더라도 다 같은 수준의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겠죠. 특히, 마약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단순 투약자인지, 아니면 판매자인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기준으로 나눠서 분석해봤더니, 단순 투약 사범(투약, 매수+투약, 소지+투약)일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율이 59.5%로 가장 많았습니다. 징역형의 실형은 35.4%, 벌금형은 4.8%였습니다. 반대로 공급 사범(매도)징역형의 실형55.7%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28.8%, 벌금형은 13.2%였습니다. 단순 투약자에게는 단약의 기회를 주고, 판매자는 엄벌하는 경향이 확인된 겁니다.

■사용된 마약 1위는 필로폰…'마약류 의약품'은 3.5% 불과

무작위로 추출한 3천여 건의 판결문을 분석해 재판에 넘겨진 마약사범들이 어떤 마약을 사용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한 피고인이 여러 마약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중복으로 집계했습니다. 결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위는 필로폰으로, 전체 마약 사범의 69%가 필로폰을 사용한 거로 집계됐습니다. 대마23.7%2위였고, 클럽에서 주로 사용되는 마약인 엑스터시 7.7%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된 마약을 순서대로 줄 세워놓고 보니 눈에 띄는 약물들이 발견됐습니다. 8위에 진정제인 졸피뎀, 10위에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류', 11위에 프로포폴, 12위에 마취제 마약인 펜타닐 등 병원 혹은 의원에서 처방받아야만 하는 '마약류 의약품'들이 등장한 겁니다. 집계해 보니, 이런 '마약류 의약품' 사용자는 전체 투약 사범의 3.5% 였습니다.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취재진이 주목한 건 앞서 보도해드린 KBS의 '마약 이용 실태조사 결과'에서 이런 마약류 의약품의 사용 비율이 높게 나왔다는 점입니다. 이 조사에서 마약을 경험해 봤다는 응답자들에게 '평생 사용해 본 마약'을 모두 골라달라는 질문을 했는데,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대마(28.8%)를 빼면, 졸피뎀 같은 진정제(25.2%)프로포폴(22.8%), 살 빼는 약(20.8%) 등 향정신성의약품의 비율이 모두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필로폰(7.8%), 코카인(6.3%), 아편제(6.1%) 같은 소위 '하드 드러그(Hard Drug)'의 비율보다 크게 높았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이 오남용되고 있다면, 판결에서 드러난 3.5%의 비율은 너무 적게 잡힌 겁니다.

■'단순 오남용'은 마약류 의약품 투약 사범의 22.5%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이 왜 이렇게 적게 적발된 건지 그 이유를 이 사람들의 판결문에서 찾았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을 사용한 투약 사범 102명 가운데, 절도나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다른 범죄와 함께 적발된 경우가 44명(43.1%), 필로폰, 대마 등 다른 마약과 함께 '마약류 의약품'을 투약했다가 적발된 경우가 35명(34.3%)으로 대부분 비교적 적발이 용이한 사례들이었습니다. 단순히 '마약류 의약품'만 오남용한 경우는 23명(22.5%)에 불과했던 겁니다.


필로폰, 코카인, 케타민 같은 '불법 마약류'와 달리 '마약류 의약품'의 특성상 병·의원의 처방이라는 합법적 절차로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범죄나 다른 마약류 사용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그만큼 잡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마약 수사를 하는 경찰관 역시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 적발에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혼자서 단독으로 '마약류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입증하기가 쉽지 않죠. 자기가 처방받아서 먹은 거기 때문에. 제3 자한테 받거나, 타인의 주민등록번호, 인적사항을 가지고 병원에 가서 처방받아서 추가로 복용하는 경우 등은 걸릴 수 있을지언정, 혼자서 처방받은 것을 혼자서 오남용할 경우에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조승현 경위(경기남부경찰청 마약수사계)

■식약처 수사 의뢰 연평균 178명…의료쇼핑방지정보망 이용률은 0.04%

수사당국이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완전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인지해서 적발하기가 어려울 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의심사례를 적발해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는 경우에는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식약처가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의심사례로 수사 의뢰한 건 환자와 의사를 포함해 연평균 178명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수사기관이 모두 혐의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실제로 기소되는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은 있습니다. 마약 혹은 마약류로 분류된 의약품을 처방할 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하면 됩니다. 시스템도 마련돼 있습니다. '의료쇼핑방지정보망'입니다. 환자의 최근 1년간 '마약류 의약품'의 처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잘 쓰이지 않습니다. 2021년 3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후 2년간의 평균 이용률은 0.04%에 불과합니다. 연간 1억 건 안팎의 마약류가 처방되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숫자만이 오남용 여부가 사전에 체크되는 셈입니다.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진료비를 많이 벌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지난 2월 기준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이용한 의사의 비율이 전체 마약류 처방 의사의 0.34%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게이트웨이 드러그(Gateway Drug) '마약류 의약품'

최근 국회가 환자에게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할 때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다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전면시행하려던 계획을 바꿔, 많이 처방되고 오남용의 빈도가 높은 의약품 품목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식약처도 마약류 오남용 감시 인원을 늘려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일 겁니다. 다만, 지금껏 '마약'하면 떠올렸던 고정관념을 이제는 바꿔야 하는 시기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마약류 의약품'을 '게이트웨이 드러그(Gateway Drug)'라고 불렀습니다. 강도가 낮은 마약류 의약품이 필로폰 같은 강도가 높은 '하드 드러그'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초기 입문용 마약이라는 겁니다. 마약 청정국으로의 복귀가 우리 사회의 목표라면, 이제는 '마약류 의약품' 문제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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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09680

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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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8 10:46:19
    • 수정2023-06-28 11:14:38
    탐사K

"마약을 경험해봤다"는 인구 3.2%.

KBS가 실시한 '마약류 이용 실태조사'의 결과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마약에 노출됐다는 뜻인데, 우리 사법체계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KBS 탐사보도부가 마약 사범 판결문을 분석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마약 사범 판결문 2년 치 전수분석

한해 검거되는 마약사범의 숫자, 지난 2019년 이후 매년 만 6천 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만 8천 명을 넘었는데, 올해엔 2만 명이 넘을 거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통상 검찰에서 처리하는 마약 사건의 30% 정도, 5천~6천 건이 재판에 넘겨집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재판에 넘겨진 마약 사범들이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배경에서 그런 판결을 받게 됐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대상은 2021년과 2022년에 확정된 판결 가운데 대법원 인터넷 판결서 열람 서비스에 공개된 1심 판결문 5천백86건입니다. 한 재판에 여러 명의 피고인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실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6천3백23명입니다. 같은 기간 1심 판결이 내려졌지만, 항소, 상고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판결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분석 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 판결문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첨부된 증거목록과 기록목록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판결문에 담기지 않은 정보들이 증거목록이나 기록목록에 포함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살펴봐야 했던 문서는 만 9천4백56건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일단 판결문에 나타난 피고인별 선고된 형량과 부과된 명령, 재범 여부 등 기초 사실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또, 전체 판결문 가운데 임의로 추출한 3천20건, 피고인 3천6백53명에 대해서는 투약, 소지, 매수, 매도 정보를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투약의 경우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또 매매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얼마나 주고 거래했는지가 대상이었습니다.

■실형 48.5%, 집행유예 47.4%...판매자의 55.7%는 실형

가장 궁금한 건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겠죠. 분석대상 마약사범 6천323명의 형량을 분석해봤더니, 징역형의 실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율이 엇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 경우가 48.5%,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건 47.4%였습니다. 벌금형이 3.6%, 형이 면제된 경우도 0.3% 정도 됐습니다.

마약사범이라 하더라도 다 같은 수준의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겠죠. 특히, 마약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단순 투약자인지, 아니면 판매자인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기준으로 나눠서 분석해봤더니, 단순 투약 사범(투약, 매수+투약, 소지+투약)일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율이 59.5%로 가장 많았습니다. 징역형의 실형은 35.4%, 벌금형은 4.8%였습니다. 반대로 공급 사범(매도)징역형의 실형55.7%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28.8%, 벌금형은 13.2%였습니다. 단순 투약자에게는 단약의 기회를 주고, 판매자는 엄벌하는 경향이 확인된 겁니다.

■사용된 마약 1위는 필로폰…'마약류 의약품'은 3.5% 불과

무작위로 추출한 3천여 건의 판결문을 분석해 재판에 넘겨진 마약사범들이 어떤 마약을 사용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한 피고인이 여러 마약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중복으로 집계했습니다. 결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위는 필로폰으로, 전체 마약 사범의 69%가 필로폰을 사용한 거로 집계됐습니다. 대마23.7%2위였고, 클럽에서 주로 사용되는 마약인 엑스터시 7.7%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된 마약을 순서대로 줄 세워놓고 보니 눈에 띄는 약물들이 발견됐습니다. 8위에 진정제인 졸피뎀, 10위에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류', 11위에 프로포폴, 12위에 마취제 마약인 펜타닐 등 병원 혹은 의원에서 처방받아야만 하는 '마약류 의약품'들이 등장한 겁니다. 집계해 보니, 이런 '마약류 의약품' 사용자는 전체 투약 사범의 3.5% 였습니다.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취재진이 주목한 건 앞서 보도해드린 KBS의 '마약 이용 실태조사 결과'에서 이런 마약류 의약품의 사용 비율이 높게 나왔다는 점입니다. 이 조사에서 마약을 경험해 봤다는 응답자들에게 '평생 사용해 본 마약'을 모두 골라달라는 질문을 했는데,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대마(28.8%)를 빼면, 졸피뎀 같은 진정제(25.2%)프로포폴(22.8%), 살 빼는 약(20.8%) 등 향정신성의약품의 비율이 모두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필로폰(7.8%), 코카인(6.3%), 아편제(6.1%) 같은 소위 '하드 드러그(Hard Drug)'의 비율보다 크게 높았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이 오남용되고 있다면, 판결에서 드러난 3.5%의 비율은 너무 적게 잡힌 겁니다.

■'단순 오남용'은 마약류 의약품 투약 사범의 22.5%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이 왜 이렇게 적게 적발된 건지 그 이유를 이 사람들의 판결문에서 찾았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을 사용한 투약 사범 102명 가운데, 절도나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다른 범죄와 함께 적발된 경우가 44명(43.1%), 필로폰, 대마 등 다른 마약과 함께 '마약류 의약품'을 투약했다가 적발된 경우가 35명(34.3%)으로 대부분 비교적 적발이 용이한 사례들이었습니다. 단순히 '마약류 의약품'만 오남용한 경우는 23명(22.5%)에 불과했던 겁니다.


필로폰, 코카인, 케타민 같은 '불법 마약류'와 달리 '마약류 의약품'의 특성상 병·의원의 처방이라는 합법적 절차로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범죄나 다른 마약류 사용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그만큼 잡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마약 수사를 하는 경찰관 역시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 적발에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혼자서 단독으로 '마약류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입증하기가 쉽지 않죠. 자기가 처방받아서 먹은 거기 때문에. 제3 자한테 받거나, 타인의 주민등록번호, 인적사항을 가지고 병원에 가서 처방받아서 추가로 복용하는 경우 등은 걸릴 수 있을지언정, 혼자서 처방받은 것을 혼자서 오남용할 경우에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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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수사 의뢰 연평균 178명…의료쇼핑방지정보망 이용률은 0.04%

수사당국이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완전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인지해서 적발하기가 어려울 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의심사례를 적발해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는 경우에는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식약처가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의심사례로 수사 의뢰한 건 환자와 의사를 포함해 연평균 178명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수사기관이 모두 혐의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실제로 기소되는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마약류 의약품'의 오남용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은 있습니다. 마약 혹은 마약류로 분류된 의약품을 처방할 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하면 됩니다. 시스템도 마련돼 있습니다. '의료쇼핑방지정보망'입니다. 환자의 최근 1년간 '마약류 의약품'의 처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잘 쓰이지 않습니다. 2021년 3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후 2년간의 평균 이용률은 0.04%에 불과합니다. 연간 1억 건 안팎의 마약류가 처방되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숫자만이 오남용 여부가 사전에 체크되는 셈입니다.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진료비를 많이 벌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지난 2월 기준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이용한 의사의 비율이 전체 마약류 처방 의사의 0.34%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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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가 환자에게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할 때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다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전면시행하려던 계획을 바꿔, 많이 처방되고 오남용의 빈도가 높은 의약품 품목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식약처도 마약류 오남용 감시 인원을 늘려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일 겁니다. 다만, 지금껏 '마약'하면 떠올렸던 고정관념을 이제는 바꿔야 하는 시기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마약류 의약품'을 '게이트웨이 드러그(Gateway Drug)'라고 불렀습니다. 강도가 낮은 마약류 의약품이 필로폰 같은 강도가 높은 '하드 드러그'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초기 입문용 마약이라는 겁니다. 마약 청정국으로의 복귀가 우리 사회의 목표라면, 이제는 '마약류 의약품' 문제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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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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