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한 판 값에서 ‘파산’의 늪으로 [탐사K] [‘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입력 2023.06.29 (11:00) 수정 2023.06.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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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한 판 값이면 마약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죠. 사실일까요?

실제 마약을 거래하다 검거된 사람들은 마약을 얼마에 샀을까? KBS 탐사보도부가 따져봤습니다.

■ 거래된 마약 가격 따져보니…평균 '2만 천 원' 거래

KBS 취재진은 지난 2년간의 마약 사건 1심 판결문 중 무작위로 3천 20건을 추출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마약인 필로폰 거래를 추려봤더니, 필로폰을 매수한 피고인들의 거래 내역은 2천 245건이었습니다.

이를 하나하나 분석해봤더니 필로폰 1회 투약량(0.03g)은 평균 2만 천 원 선에 거래됐습니다.

간혹 돈을 받지 않고 필로폰을 건네 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평균 2만 5천 원 수준이었습니다.

브랜드 피자 한 판 값이 보통 3~4만 원 하는 것과 비교하면, 피자보다 더 싸게 마약이 거래된 겁니다.

■ 피자 한 판 값에서 '파산'의 늪으로

마약 사범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이 같은 가격 하락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가격도 저렴한데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는 호기심에 손을 댔다가는 금세 '투약'과 '중독'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중독 경험자와 전문가는 강조합니다.

김 OO / 마약 중독 경험자
"마약 하면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할 거 다 끝내놓고 (마약) 하러 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임이 무슨 화장실을 3분에 한 번씩 가냐고 하더라고요. 마약 때문에 생긴 빚이 6백만 원이에요. 빌릴 사람도 없어지면 부모님한테 빌리고…. (살 돈이 없어지니까) 물건을 팔았어요. 물건 팔고 옷 팔고 그러다가 약을 팔고…."

박진실 / 마약 전문 변호사
"중독되면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하고, 파산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요. 내성이 생기니까 훨씬 더 많은 양을 해야 하거든요. 월급을 받아도 충당이 안 되는 거에요. 월급을 받아서 약을 하고, 약을 한다고 일을 못 하고, 이러다 보니까 파산을 하게 되는 거에요."

'마약 초승달' 지역 깨졌다 …일상 곳곳 침투

마약 거래와 투약은 유흥가가 밀집한 홍대나 이태원, 강남. 이른바 '초승달 지역'에서 많이 이뤄진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분석해봤습니다.

마약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서울 강남구로 집계됐습니다. 그 다음이 서울 서초구, 경기 수원시, 서울 영등포구, 경기 시흥시 등의 순이었습니다.

마약 투약은 어땠을까요. 역시 서울 강남구가 가장 높았고, 경기 수원시, 인천 미추홀구 순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를 제외하고 홍대와 이태원이 있는 서울 마포구, 서울 용산구는 거래와 투약에서 모두 10위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마약 거래와 투약이 대도시 유흥가뿐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 침투했음을 뜻합니다.

■ 화단의 흙 속 ·주차장 입구 차단봉 속 등 …기상천외한 '던지기'

마약 거래를 위한 접촉은 텔레그램이 가장 많았습니다. 텔레그램이나 SNS, 다크웹 같이 비대면 방식으로만 접촉이 이뤄진 경우도 전체의 64%로, 대면 거래 32.4%의 두 배에 가까웠습니다.

접촉은 물론 거래도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마약사범들은 지정된 장소에 마약을 가져다 두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도 많이 사용했는데요.

한 남성이 지난 2월 주택 통신 단자함에 필로폰을 ‘던지기’하는 모습. 자료 제공 : 수원서부경찰서한 남성이 지난 2월 주택 통신 단자함에 필로폰을 ‘던지기’하는 모습. 자료 제공 : 수원서부경찰서

던지기 방식으로 거래한 956명의 거래 장소를 분석해 봤더니, 에어컨 실외기와 우편함, 계단, 계량기, 화단 등 우리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소들이 망라돼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화단의 흙 속'이나 '지하주차장 입구 차단봉 속', '화장실 휴지 걸이 안' 같은 온갖 기상천외한 장소들도 등장합니다.

단속을 피하려는 목적과 코로나 시대 비대면 문화가 마약에도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 텔레그램 마약 딜러 접촉해보니…"억은 벌어본 것 같아"

텔레그램에서 비대면으로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한 판매상과 접촉해봤습니다.


이 판매상이 관리하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만 천7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판매상이 직접 만든 대화방은 아닙니다. 본인도 판매상으로 들어왔다가, 대화방에 있던 다른 판매상들이 하나 둘씩 검거되면서 관리자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마약을 판매한 지 3년쯤 됐다는 이 판매상은 아직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구매자를 나름 검증해서 팔고, 구매자와 직접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약 판매상
"기존에 하시던 분이냐고 물어보고 기존에 하던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 했냐, 주사기 사진 보내달라, 자국 사진 찍어 보내달라, 이런 식으로 인증을 하죠. 처음 하시는 분한테는 판매를 안 하고 있어요. 양심 이런 걸 떠나서 (초보들은) 사고를 쳐요. 고객을 실제 만나서 사고 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만나지 않는 원칙만 잘 지켜도 좀 안전하죠."

고객 중에 10대 청소년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기존 고객 위주로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걸러내고는 있지만, 마약을 판매하면서 신분증 검사까지 할 수 없지 않냐는 겁니다.

이렇게 마약을 팔면 얼마나 벌까.

마약 판매상
"돈 때문에 하기 시작했죠. 다른 노동하는 것보다는 쉽게 버니까. 하기 나름인데 그래도 (한 달에) 억은 벌어본 것 같아요."

마약이 예전보다 저렴해졌다고는 해도 한 번 투약만으로도 중독될 수 있고 중독되면 투약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판매자들의 억대 수익이 이런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최근 이 판매상은 잠시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마약 단속을 강화해 잠시 숨죽이고 있다는 겁니다.

마약 판매상
"아는 형사님이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언질을 주셔서 안 하고 있어요. CCTV 자동화라고 해서 동선을 AI로 추적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좀 확인될 때까지는 장사를 안 할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 잡는 건 한계가 없다고 봐요. 잡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잡히는 것 같고."

하지만 텔레그램에는 여전히 많은 판매상이 '마약 가격표'까지 제시하며 활발히 거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의 굴레를 끊는 길은 결국 이 같은 마약 공급을 틀어막는 데서 시작할 겁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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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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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자 한 판 값에서 ‘파산’의 늪으로 [탐사K] [‘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 입력 2023-06-29 11:00:14
    • 수정2023-06-29 16:36:04
    탐사K

'피자 한 판 값이면 마약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죠. 사실일까요?

실제 마약을 거래하다 검거된 사람들은 마약을 얼마에 샀을까? KBS 탐사보도부가 따져봤습니다.

■ 거래된 마약 가격 따져보니…평균 '2만 천 원' 거래

KBS 취재진은 지난 2년간의 마약 사건 1심 판결문 중 무작위로 3천 20건을 추출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마약인 필로폰 거래를 추려봤더니, 필로폰을 매수한 피고인들의 거래 내역은 2천 245건이었습니다.

이를 하나하나 분석해봤더니 필로폰 1회 투약량(0.03g)은 평균 2만 천 원 선에 거래됐습니다.

간혹 돈을 받지 않고 필로폰을 건네 준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평균 2만 5천 원 수준이었습니다.

브랜드 피자 한 판 값이 보통 3~4만 원 하는 것과 비교하면, 피자보다 더 싸게 마약이 거래된 겁니다.

■ 피자 한 판 값에서 '파산'의 늪으로

마약 사범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이 같은 가격 하락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가격도 저렴한데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는 호기심에 손을 댔다가는 금세 '투약'과 '중독'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중독 경험자와 전문가는 강조합니다.

김 OO / 마약 중독 경험자
"마약 하면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할 거 다 끝내놓고 (마약) 하러 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임이 무슨 화장실을 3분에 한 번씩 가냐고 하더라고요. 마약 때문에 생긴 빚이 6백만 원이에요. 빌릴 사람도 없어지면 부모님한테 빌리고…. (살 돈이 없어지니까) 물건을 팔았어요. 물건 팔고 옷 팔고 그러다가 약을 팔고…."

박진실 / 마약 전문 변호사
"중독되면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하고, 파산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요. 내성이 생기니까 훨씬 더 많은 양을 해야 하거든요. 월급을 받아도 충당이 안 되는 거에요. 월급을 받아서 약을 하고, 약을 한다고 일을 못 하고, 이러다 보니까 파산을 하게 되는 거에요."

'마약 초승달' 지역 깨졌다 …일상 곳곳 침투

마약 거래와 투약은 유흥가가 밀집한 홍대나 이태원, 강남. 이른바 '초승달 지역'에서 많이 이뤄진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분석해봤습니다.

마약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서울 강남구로 집계됐습니다. 그 다음이 서울 서초구, 경기 수원시, 서울 영등포구, 경기 시흥시 등의 순이었습니다.

마약 투약은 어땠을까요. 역시 서울 강남구가 가장 높았고, 경기 수원시, 인천 미추홀구 순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를 제외하고 홍대와 이태원이 있는 서울 마포구, 서울 용산구는 거래와 투약에서 모두 10위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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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은 물론 거래도 은밀하게 이뤄졌습니다. 마약사범들은 지정된 장소에 마약을 가져다 두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도 많이 사용했는데요.

한 남성이 지난 2월 주택 통신 단자함에 필로폰을 ‘던지기’하는 모습. 자료 제공 : 수원서부경찰서
던지기 방식으로 거래한 956명의 거래 장소를 분석해 봤더니, 에어컨 실외기와 우편함, 계단, 계량기, 화단 등 우리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소들이 망라돼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화단의 흙 속'이나 '지하주차장 입구 차단봉 속', '화장실 휴지 걸이 안' 같은 온갖 기상천외한 장소들도 등장합니다.

단속을 피하려는 목적과 코로나 시대 비대면 문화가 마약에도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 텔레그램 마약 딜러 접촉해보니…"억은 벌어본 것 같아"

텔레그램에서 비대면으로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한 판매상과 접촉해봤습니다.


이 판매상이 관리하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만 천7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판매상이 직접 만든 대화방은 아닙니다. 본인도 판매상으로 들어왔다가, 대화방에 있던 다른 판매상들이 하나 둘씩 검거되면서 관리자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마약을 판매한 지 3년쯤 됐다는 이 판매상은 아직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구매자를 나름 검증해서 팔고, 구매자와 직접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약 판매상
"기존에 하시던 분이냐고 물어보고 기존에 하던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 했냐, 주사기 사진 보내달라, 자국 사진 찍어 보내달라, 이런 식으로 인증을 하죠. 처음 하시는 분한테는 판매를 안 하고 있어요. 양심 이런 걸 떠나서 (초보들은) 사고를 쳐요. 고객을 실제 만나서 사고 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만나지 않는 원칙만 잘 지켜도 좀 안전하죠."

고객 중에 10대 청소년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기존 고객 위주로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걸러내고는 있지만, 마약을 판매하면서 신분증 검사까지 할 수 없지 않냐는 겁니다.

이렇게 마약을 팔면 얼마나 벌까.

마약 판매상
"돈 때문에 하기 시작했죠. 다른 노동하는 것보다는 쉽게 버니까. 하기 나름인데 그래도 (한 달에) 억은 벌어본 것 같아요."

마약이 예전보다 저렴해졌다고는 해도 한 번 투약만으로도 중독될 수 있고 중독되면 투약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판매자들의 억대 수익이 이런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최근 이 판매상은 잠시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마약 단속을 강화해 잠시 숨죽이고 있다는 겁니다.

마약 판매상
"아는 형사님이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언질을 주셔서 안 하고 있어요. CCTV 자동화라고 해서 동선을 AI로 추적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좀 확인될 때까지는 장사를 안 할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 잡는 건 한계가 없다고 봐요. 잡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잡히는 것 같고."

하지만 텔레그램에는 여전히 많은 판매상이 '마약 가격표'까지 제시하며 활발히 거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의 굴레를 끊는 길은 결국 이 같은 마약 공급을 틀어막는 데서 시작할 겁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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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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