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마약 끊으려 사투”…“약 끊어내자 매일 비명”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입력 2023.07.01 (10:00) 수정 2023.07.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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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3개월째.
50대 김 모 씨는 식당 일을 마무리하면 매일 자전거에 오릅니다. 하루 4시간씩 페달을 밟습니다.
온몸이 땀범벅 된 채, 그 날 목표한 장소에 도달합니다. 거기서 오는 희열과 성취감이 그가 하루하루 위태로운 단약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입니다.


김 씨는 단약 3개월 차입니다. 교도소에서는 약을 못 했을 뿐. 출소한 뒤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약을 끊어내는 게 단약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OO /단약 3개월 차
"(자전거로) 도착했을 때 성취감도 생기고요. 다른 부분(단약)에 대해서도 끈기가 좀 생기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약을 안 한) 하루 하루가 쌓여야지 그게 1년도 되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 스무 살 때 시작한 마약, 어느새 30년…"언제든 끊어낼 수 있다 착각"

김 씨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스무살 때 였습니다. 대마로 시작해 싸구려 코카인을 하다 케타민, 필로폰까지 이어졌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것일 뿐,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지인이 마약과다 투약으로 사망해도, 마약에 취한 채 수없이 검거돼도 약을 끊어내기 어려웠습니다.

말투가 어눌해지고 아이큐가 130 후반에서 100 초반으로 떨어져도,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망상이 수없이 찾아와 길을 걸을 땐 자동차 번호판들을 일일이 보고 다닐 정도여도 마약을 끊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투약량은 필로폰 주사기 한 칸에서 한 칸 반으로, 세 칸까지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레 기소유예에서 징역 10월, 징역 1년, 징역 1년 6개월로 형은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교도소를 10번 넘게 오간 사이 어느새 50대가 됐습니다.

김 OO /단약 3개월 차
"필로폰 같은 경우에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그런 것보다는 안 하면 계속 생각나요. 마약을 했던 장소에 간다든가, 그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듣는다던가 하면 갑자기 확 (갈망이) 올라오죠. 거기서 벗어나지 못 하다 보니 반복적으로 다시 손을 댔고 평소에는 전화하지 않았던 중독자들한테 전화해서 약을 구해달라고 하고..."

이번에야말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약과 관련해 알던 사람의 번호를 다 지우고 가끔 마약 중독자들이 전화를 하면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르크 같은 재활 공동체에 들어갈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단약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일 자전거에 오르고 불쑥 불쑥 갈망이 찾아올 땐 치료 감호소 의료진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를 하고, 보호관찰소 심리상담도 받으며 버티는 중입니다.

■ 약 끊어내자 매일 비명

김 OO/단약 1년 차
"제가 저지른 일이니까 책임 져야죠. 이 지경까지 되기 전에 끊었으면 좋았을 텐데..그런 생각이 들죠. 후회하죠. 딸이 경찰 조사받는 것에 대해 부모님들이 힘들어하시니까요. 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못 세워서 많이 힘들고 그래요"

단약 1년차이자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20대 김 모 씨 역시 어렵게 약을 끊어냈습니다. 수년 동안 펜타닐 등 마약에 빠져 지낸 몸은 약을 끊자 매일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당시의 고통은 '단약 노트'에 생생히 적혀있습니다.

김 OO/단약 1년 차
"발가락 손가락 오그라들고 있고 몸도 슬슬 아파 오고. 관절을 그냥 꺾어서 부러뜨리고 싶은 느낌..."

요즘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갈망'에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예전에 약을 했던 장소는 웬만해선 가지 않고 마약중독치료병원에서 처방받은 항갈망제 등 후유증을 줄여주는 약도 먹습니다.


아예 재활 공동체 인근으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다르크 같은 재활 공동체는 남성용 시설 뿐이다 보니 5분 거리에 살며 상담을 받고, '약물 중독자 자조모임' 등에 참석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겨우 얻어낸 평범한 삶과 일상을 또다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마약 중독은 질병...치료 필요"

이들처럼 중독을 인정하고 '이제 약을 그만하겠다'고 굳게 결심해도 마약을 끊는 일은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닙니다.

KBS 취재진이 지난 2년간의 마약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마약 범죄 재범률은 38%에 달합니다. 여기에 기소유예를 받았던 전력이 있거나 마약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마약에 손을 댄 사실이 나중에야 드러나 재판에 넘겨지는 등 실질적 재범인 경우를 더하면 재범률은 42%로 증가합니다. 마약 범죄로 처벌받은 10명 중 4명 이상이 마약에 다시 손을 대고 있는 겁니다.

일단 마약에 중독되면 금단은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뇌에 생긴 명백한 병이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딱 맞닥뜨리게 되면 뇌는 강박적으로 그걸 찾게 만드는 거거든요."

힘겹게 단약을 이어나가다가도 나도 모르게, 어쩌다, 어느새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는 겁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개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치료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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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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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마약 끊으려 사투”…“약 끊어내자 매일 비명”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 입력 2023-07-01 10:00:53
    • 수정2023-07-01 10:31:37
    탐사K

마약사범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3개월째.
50대 김 모 씨는 식당 일을 마무리하면 매일 자전거에 오릅니다. 하루 4시간씩 페달을 밟습니다.
온몸이 땀범벅 된 채, 그 날 목표한 장소에 도달합니다. 거기서 오는 희열과 성취감이 그가 하루하루 위태로운 단약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입니다.


김 씨는 단약 3개월 차입니다. 교도소에서는 약을 못 했을 뿐. 출소한 뒤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약을 끊어내는 게 단약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OO /단약 3개월 차
"(자전거로) 도착했을 때 성취감도 생기고요. 다른 부분(단약)에 대해서도 끈기가 좀 생기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약을 안 한) 하루 하루가 쌓여야지 그게 1년도 되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 스무 살 때 시작한 마약, 어느새 30년…"언제든 끊어낼 수 있다 착각"

김 씨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댄 건 스무살 때 였습니다. 대마로 시작해 싸구려 코카인을 하다 케타민, 필로폰까지 이어졌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것일 뿐,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지인이 마약과다 투약으로 사망해도, 마약에 취한 채 수없이 검거돼도 약을 끊어내기 어려웠습니다.

말투가 어눌해지고 아이큐가 130 후반에서 100 초반으로 떨어져도,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망상이 수없이 찾아와 길을 걸을 땐 자동차 번호판들을 일일이 보고 다닐 정도여도 마약을 끊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투약량은 필로폰 주사기 한 칸에서 한 칸 반으로, 세 칸까지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레 기소유예에서 징역 10월, 징역 1년, 징역 1년 6개월로 형은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교도소를 10번 넘게 오간 사이 어느새 50대가 됐습니다.

김 OO /단약 3개월 차
"필로폰 같은 경우에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그런 것보다는 안 하면 계속 생각나요. 마약을 했던 장소에 간다든가, 그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듣는다던가 하면 갑자기 확 (갈망이) 올라오죠. 거기서 벗어나지 못 하다 보니 반복적으로 다시 손을 댔고 평소에는 전화하지 않았던 중독자들한테 전화해서 약을 구해달라고 하고..."

이번에야말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약과 관련해 알던 사람의 번호를 다 지우고 가끔 마약 중독자들이 전화를 하면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르크 같은 재활 공동체에 들어갈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단약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일 자전거에 오르고 불쑥 불쑥 갈망이 찾아올 땐 치료 감호소 의료진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를 하고, 보호관찰소 심리상담도 받으며 버티는 중입니다.

■ 약 끊어내자 매일 비명

김 OO/단약 1년 차
"제가 저지른 일이니까 책임 져야죠. 이 지경까지 되기 전에 끊었으면 좋았을 텐데..그런 생각이 들죠. 후회하죠. 딸이 경찰 조사받는 것에 대해 부모님들이 힘들어하시니까요. 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못 세워서 많이 힘들고 그래요"

단약 1년차이자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20대 김 모 씨 역시 어렵게 약을 끊어냈습니다. 수년 동안 펜타닐 등 마약에 빠져 지낸 몸은 약을 끊자 매일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당시의 고통은 '단약 노트'에 생생히 적혀있습니다.

김 OO/단약 1년 차
"발가락 손가락 오그라들고 있고 몸도 슬슬 아파 오고. 관절을 그냥 꺾어서 부러뜨리고 싶은 느낌..."

요즘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갈망'에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예전에 약을 했던 장소는 웬만해선 가지 않고 마약중독치료병원에서 처방받은 항갈망제 등 후유증을 줄여주는 약도 먹습니다.


아예 재활 공동체 인근으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다르크 같은 재활 공동체는 남성용 시설 뿐이다 보니 5분 거리에 살며 상담을 받고, '약물 중독자 자조모임' 등에 참석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겨우 얻어낸 평범한 삶과 일상을 또다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마약 중독은 질병...치료 필요"

이들처럼 중독을 인정하고 '이제 약을 그만하겠다'고 굳게 결심해도 마약을 끊는 일은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닙니다.

KBS 취재진이 지난 2년간의 마약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마약 범죄 재범률은 38%에 달합니다. 여기에 기소유예를 받았던 전력이 있거나 마약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마약에 손을 댄 사실이 나중에야 드러나 재판에 넘겨지는 등 실질적 재범인 경우를 더하면 재범률은 42%로 증가합니다. 마약 범죄로 처벌받은 10명 중 4명 이상이 마약에 다시 손을 대고 있는 겁니다.

일단 마약에 중독되면 금단은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뇌에 생긴 명백한 병이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딱 맞닥뜨리게 되면 뇌는 강박적으로 그걸 찾게 만드는 거거든요."

힘겹게 단약을 이어나가다가도 나도 모르게, 어쩌다, 어느새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는 겁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개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치료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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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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