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끊지 못하니 ‘마약’”…치료·재활 ‘없는’ 마약 정책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⑦

입력 2023.07.07 (11:00) 수정 2023.07.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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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사범으로 출소한 지 9개월째, 30대 A 씨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그런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병원과 경찰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치료를 받아서라도 약을 끊어내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숨졌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 "치료받고 싶다"던 남편,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A 씨는 지난 4월 18일 오후 4시쯤 서울 강북구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마약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은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도 아니었고, 정신건강의학과도 없어 마약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A 씨 아내
"나 치료받고 싶다고 나 자수하고 싶다고 돌연 그렇게 얘기를 하길래 그러면 알겠다, 치료하고 자수하자."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A 씨는 그 길로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마약 투약으로 처벌은 받겠지만 그렇게라도 치료를 받아 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구하기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경찰도 그를 입원 시키려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 있는 병원 세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던 겁니다.

경찰 관계자
"(병원) 한 군데는 입원실이 없다고 그랬고요. (병원) 한 군데는 마약 투약한 사람은 못 받겠다. 그러고 또 (병원) 한 군데는 다음 날 오라고 그랬어요."

결국, 그는 병원을 가지 못하고 오후 7시쯤 유치장에 입감됐는데 3시간 만인 밤 10시 20분쯤 숨졌습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메트암페타민 중독 상태에서 급성행동장애 관련 사망'으로 추정됐습니다. 필로폰 중독 상태에서 신체적·정신적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 유치장 입감 중 동반된 신체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추정입니다.

유가족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황망해 하고 있습니다. A 씨의 동생은 "(갈 수 있는) 병원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아내도 "정말 단약을 하고 싶고,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 "마약 중독은 질병이지만…치료는 소수만"

마약 중독은 질병이다 보니 의지만으로 끊어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아야 재활, 단약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중독에서 치료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사실상 끊겨있습니다.

우선, 마약류 중독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정부 지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2022년 기준 전국에 21곳뿐이고 전체 병상 수도 314개입니다. 지난해 마약 사범이 1만 8천 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거기다 지난해 마약 중독 환자 치료의 97%를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 두 곳이 전담했습니다. 21곳 중 실제 운영되는 곳은 2곳이고 나머지 19곳은 유명무실한 겁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지난달에만 간호팀에서 직원이 8명 나갔거든요. 도저히 못하겠다고...마약 중독 환자들은 진짜 진료하기 힘든데다가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마약 환자를 치료한다고 국가에서 치료비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니 민간 입장에서는 지속하는게 한계가 있죠. 직원들과 치료팀이 뼈를 갈아 넣어서 이 체제를 그냥 버티고 있는 건데 이렇게는 오래 못 버팁니다."

"마약은 다른 정신과 질환에 비해 자살률도 훨씬 높고, 급성 중독 상태에서 사고를 내는 등 응급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빠르게 입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전국에 치료할 수 있는 민간 병원이 사실상 저희 병원 한 군데이다보니 어림도 없죠."

마약 중독은 다른 질병에 비해 치료 강도는 높은데, 치료 수가가 낮고 숙련된 전문의를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인 겁니다. 거기다 정부의 치료보호 지원 예산도 국비와 지방비를 다 더해 8억 여 원으로 넉넉하지 않다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마약 중독 환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그나마 올해 지정 병원이 3곳 추가돼 24곳으로 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 차원에서 치료를 강제하는 '제도'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은 처벌보다는 치료가 재범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마약류 중독자에게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는데, 지난해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사람은 14명에 불과했습니다. 1년 전(2021년)에 비해 8명 줄어든 수치입니다.

법원이 마약사범들에게 치료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2016년 개정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은 집행유예를 내린 마약사범에게 마약치료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4월까지 내려진 집행유예 1만 2,011건 중 치료명령이 부과된 사례는 173건입니다. 1.4%에 불과했습니다.

■ 치료만큼 중요한 '재활'…현실은 '태부족'

중독자들이 온전히 마약을 끊고,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재활입니다. 단약에 있어 재활이 중요한 건 마약 중독이 일종의 뇌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른바 '갈망'인데, 이건 단순히 의지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사람들은 의지나 결심으로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마약 중독은) 뇌에 생긴 명백한 병이고. 병리 기전이 다 밝혀진 병이에요, 중독이라는 건. 엔돌핀, 도파민 쾌감을 주는 물질을 미친 듯이 치솟게 만드는 것(마약)을 뇌가 맛을 보고 이게 각인 돼 버리고 나면 그 이후에 삶에 있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고통스러운 감정이 딱 맞닥뜨리게 되면 뇌는 강박적으로 그걸(마약)을 찾게 만드는 거거든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마약 중독에서의 재활은 기본적으로 '삶의 태도'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함께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전문가들이 '재활 공동체'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활 공동체는 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중독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는 곳입니다. 한국에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마약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서로가 단약의 의지를 다지면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여기(다르크) 있는 사람들만큼은 저한테 약도 안 주고, 약 하자고도 안 하고, 제가 진짜로 약 하고 싶어 하면 안 된다고 막아주고 그런 사람들이니까. 같은 마약 중독자이지만 같이 어떻게든 끊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안전한 거 같아요."
인천 다르크 입소자(익명)

이 '다르크'의 핵심에는 마약 중독에서 회복한 경험자들이 있습니다. 단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독자들에게 자신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료들을 만남으로써 보편주의라는 치료적 기재가 작동해요.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게 아니구나.' 약간은 위로가 되고요. 두 번째는 재활 공동체 같은 곳에서 나보다 조금 더 회복한 사람을 만나요. 회복한 사람을 통해서 '나도 회복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과 용기가 또 생겨요. 회복자의 길을 따라가면서 '이것이 치료구나'라는 개념적 전환이 생기는 거죠."
김영호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일본 다르크 이용자 단약률 87.4%

실제로 '다르크'가 시작된 일본의 경우, 다르크 이용자의 단약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거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국립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의 「다르크 추적조사 2018 이용자 데이터북」을 보면, 다르크 이용자의 6개월간 단약률87.4%에 이릅니다. 일본 정신보건복지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한 약물 의존증 환자의 6개월간 단약률이 54.5%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는 교도소나 병원과 연계한 다르크가 90여 곳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자도 2천여 명이 넘습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마약 문제가 심각한 미국도 전국적으로 만여개가 넘는 치료재활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 경기와 인천, 대구, 경남 김해 등 네 곳에서 30여 명 남짓이 재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병원에 입원시켜서 해독 치료하고 어느 정도 '아 내가 변해야겠어.'라는 동기를 갖고 퇴원시키면 받아주는 데가 없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 지역사회에 재활 프로그램이나 센터가 되게 촘촘하게 박혀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퇴원하고) 당장 집으로 가기보다는 치료 공동체 같은 데서 6개월이나 1년 동안 일상 생활 훈련하고, 회복이 지속 되는 나름의 프로그램들을 쭉 수행하고. 중간집이라고 하프웨이하우스 같은 데도 있고, 낮에는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와서 자는 시스템도 있고, 되게 다양하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것도 전무하거든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조금 더 회복자를 만들고, 이 사람들이 또 중독자를 도울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지금 네 군데 있는 곳이 10곳, 20곳만 돼도 우리나라는 모든 마약 중독자를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본보다는 인구도 적고 마약 사범이 적어요. 이런 시스템도 잘 연구해서 관심을 가지면 좋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임상현 목사/경기도 다르크 센터장

■"단약의 꽃은 사회로 돌아가는 것"

"마약을 끊는 것의 꽃은 사회로 돌아가는 거예요. 가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직장으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감당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임상현 목사/경기도 다르크 센터장

마약 문제를 우리 사회가 중하게 봐야 하는 건, 중독자 한 명 한 명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약 중독 실태 기사를 쓰면서 가장 많이 봤던 댓글이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처벌만으로 마약을 끊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중독자들이 구치소, 교도소에서 만난 또 다른 마약사범들과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얘기합니다. 투약 사범은 조금 더 쉽고 저렴하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판매상을 만나고, 반대로 판매 사범은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는 셈입니다. 그래서 마약사범들에게 무조건 징역형의 실형을 부과하고 엄하게 벌하는 게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2018년 자료를 보면, 마약 중독자 한 명의 1년 치료 비용은 평균 4,700달러인 반면 1년간 구금 비용은 2만 4천 달러였습니다. 또, 중독자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1달러를 투자할 때 마약 관련 범죄, 형사사법 비용 등이 최대 7달러 감소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치료와 재활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인 셈입니다.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다면 마약에 대한 수요는 당연히 줄어들 겁니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고 재활할 수 있도로 돕는 일이 의외로 마약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지 모릅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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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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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끊지 못하니 ‘마약’”…치료·재활 ‘없는’ 마약 정책 [탐사K][‘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⑦
    • 입력 2023-07-07 11:00:29
    • 수정2023-07-07 16:10:28
    탐사K

마약 사범으로 출소한 지 9개월째, 30대 A 씨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그런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병원과 경찰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치료를 받아서라도 약을 끊어내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숨졌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 "치료받고 싶다"던 남편,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A 씨는 지난 4월 18일 오후 4시쯤 서울 강북구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마약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은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도 아니었고, 정신건강의학과도 없어 마약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A 씨 아내
"나 치료받고 싶다고 나 자수하고 싶다고 돌연 그렇게 얘기를 하길래 그러면 알겠다, 치료하고 자수하자."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A 씨는 그 길로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마약 투약으로 처벌은 받겠지만 그렇게라도 치료를 받아 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구하기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경찰도 그를 입원 시키려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 있는 병원 세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던 겁니다.

경찰 관계자
"(병원) 한 군데는 입원실이 없다고 그랬고요. (병원) 한 군데는 마약 투약한 사람은 못 받겠다. 그러고 또 (병원) 한 군데는 다음 날 오라고 그랬어요."

결국, 그는 병원을 가지 못하고 오후 7시쯤 유치장에 입감됐는데 3시간 만인 밤 10시 20분쯤 숨졌습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메트암페타민 중독 상태에서 급성행동장애 관련 사망'으로 추정됐습니다. 필로폰 중독 상태에서 신체적·정신적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 유치장 입감 중 동반된 신체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추정입니다.

유가족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황망해 하고 있습니다. A 씨의 동생은 "(갈 수 있는) 병원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아내도 "정말 단약을 하고 싶고,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습니다.

■ "마약 중독은 질병이지만…치료는 소수만"

마약 중독은 질병이다 보니 의지만으로 끊어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아야 재활, 단약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중독에서 치료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사실상 끊겨있습니다.

우선, 마약류 중독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정부 지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2022년 기준 전국에 21곳뿐이고 전체 병상 수도 314개입니다. 지난해 마약 사범이 1만 8천 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거기다 지난해 마약 중독 환자 치료의 97%를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 두 곳이 전담했습니다. 21곳 중 실제 운영되는 곳은 2곳이고 나머지 19곳은 유명무실한 겁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지난달에만 간호팀에서 직원이 8명 나갔거든요. 도저히 못하겠다고...마약 중독 환자들은 진짜 진료하기 힘든데다가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마약 환자를 치료한다고 국가에서 치료비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니 민간 입장에서는 지속하는게 한계가 있죠. 직원들과 치료팀이 뼈를 갈아 넣어서 이 체제를 그냥 버티고 있는 건데 이렇게는 오래 못 버팁니다."

"마약은 다른 정신과 질환에 비해 자살률도 훨씬 높고, 급성 중독 상태에서 사고를 내는 등 응급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빠르게 입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전국에 치료할 수 있는 민간 병원이 사실상 저희 병원 한 군데이다보니 어림도 없죠."

마약 중독은 다른 질병에 비해 치료 강도는 높은데, 치료 수가가 낮고 숙련된 전문의를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인 겁니다. 거기다 정부의 치료보호 지원 예산도 국비와 지방비를 다 더해 8억 여 원으로 넉넉하지 않다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마약 중독 환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그나마 올해 지정 병원이 3곳 추가돼 24곳으로 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 차원에서 치료를 강제하는 '제도'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은 처벌보다는 치료가 재범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마약류 중독자에게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는데, 지난해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사람은 14명에 불과했습니다. 1년 전(2021년)에 비해 8명 줄어든 수치입니다.

법원이 마약사범들에게 치료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2016년 개정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은 집행유예를 내린 마약사범에게 마약치료도 명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4월까지 내려진 집행유예 1만 2,011건 중 치료명령이 부과된 사례는 173건입니다. 1.4%에 불과했습니다.

■ 치료만큼 중요한 '재활'…현실은 '태부족'

중독자들이 온전히 마약을 끊고,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재활입니다. 단약에 있어 재활이 중요한 건 마약 중독이 일종의 뇌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른바 '갈망'인데, 이건 단순히 의지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사람들은 의지나 결심으로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마약 중독은) 뇌에 생긴 명백한 병이고. 병리 기전이 다 밝혀진 병이에요, 중독이라는 건. 엔돌핀, 도파민 쾌감을 주는 물질을 미친 듯이 치솟게 만드는 것(마약)을 뇌가 맛을 보고 이게 각인 돼 버리고 나면 그 이후에 삶에 있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고통스러운 감정이 딱 맞닥뜨리게 되면 뇌는 강박적으로 그걸(마약)을 찾게 만드는 거거든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마약 중독에서의 재활은 기본적으로 '삶의 태도'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함께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전문가들이 '재활 공동체'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활 공동체는 중독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중독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는 곳입니다. 한국에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마약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서로가 단약의 의지를 다지면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여기(다르크) 있는 사람들만큼은 저한테 약도 안 주고, 약 하자고도 안 하고, 제가 진짜로 약 하고 싶어 하면 안 된다고 막아주고 그런 사람들이니까. 같은 마약 중독자이지만 같이 어떻게든 끊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안전한 거 같아요."
인천 다르크 입소자(익명)

이 '다르크'의 핵심에는 마약 중독에서 회복한 경험자들이 있습니다. 단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독자들에게 자신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료들을 만남으로써 보편주의라는 치료적 기재가 작동해요.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게 아니구나.' 약간은 위로가 되고요. 두 번째는 재활 공동체 같은 곳에서 나보다 조금 더 회복한 사람을 만나요. 회복한 사람을 통해서 '나도 회복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과 용기가 또 생겨요. 회복자의 길을 따라가면서 '이것이 치료구나'라는 개념적 전환이 생기는 거죠."
김영호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일본 다르크 이용자 단약률 87.4%

실제로 '다르크'가 시작된 일본의 경우, 다르크 이용자의 단약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거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국립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의 「다르크 추적조사 2018 이용자 데이터북」을 보면, 다르크 이용자의 6개월간 단약률87.4%에 이릅니다. 일본 정신보건복지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한 약물 의존증 환자의 6개월간 단약률이 54.5%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는 교도소나 병원과 연계한 다르크가 90여 곳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자도 2천여 명이 넘습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마약 문제가 심각한 미국도 전국적으로 만여개가 넘는 치료재활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 경기와 인천, 대구, 경남 김해 등 네 곳에서 30여 명 남짓이 재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병원에 입원시켜서 해독 치료하고 어느 정도 '아 내가 변해야겠어.'라는 동기를 갖고 퇴원시키면 받아주는 데가 없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 지역사회에 재활 프로그램이나 센터가 되게 촘촘하게 박혀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퇴원하고) 당장 집으로 가기보다는 치료 공동체 같은 데서 6개월이나 1년 동안 일상 생활 훈련하고, 회복이 지속 되는 나름의 프로그램들을 쭉 수행하고. 중간집이라고 하프웨이하우스 같은 데도 있고, 낮에는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와서 자는 시스템도 있고, 되게 다양하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것도 전무하거든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조금 더 회복자를 만들고, 이 사람들이 또 중독자를 도울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지금 네 군데 있는 곳이 10곳, 20곳만 돼도 우리나라는 모든 마약 중독자를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본보다는 인구도 적고 마약 사범이 적어요. 이런 시스템도 잘 연구해서 관심을 가지면 좋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임상현 목사/경기도 다르크 센터장

■"단약의 꽃은 사회로 돌아가는 것"

"마약을 끊는 것의 꽃은 사회로 돌아가는 거예요. 가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직장으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감당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임상현 목사/경기도 다르크 센터장

마약 문제를 우리 사회가 중하게 봐야 하는 건, 중독자 한 명 한 명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약 중독 실태 기사를 쓰면서 가장 많이 봤던 댓글이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처벌만으로 마약을 끊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중독자들이 구치소, 교도소에서 만난 또 다른 마약사범들과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얘기합니다. 투약 사범은 조금 더 쉽고 저렴하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판매상을 만나고, 반대로 판매 사범은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는 셈입니다. 그래서 마약사범들에게 무조건 징역형의 실형을 부과하고 엄하게 벌하는 게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2018년 자료를 보면, 마약 중독자 한 명의 1년 치료 비용은 평균 4,700달러인 반면 1년간 구금 비용은 2만 4천 달러였습니다. 또, 중독자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1달러를 투자할 때 마약 관련 범죄, 형사사법 비용 등이 최대 7달러 감소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치료와 재활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인 셈입니다.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다면 마약에 대한 수요는 당연히 줄어들 겁니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고 재활할 수 있도로 돕는 일이 의외로 마약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지 모릅니다.

마약류 중독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마약류 중독 상담 전화 ☎1899-0893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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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용덕, 최준혁, 신지수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자료 조사 : 이미쁨
인포그래픽 : 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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