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좁혀가기

입력 2005.10.27 (22:16)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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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은 과거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들도 한번쯤 앓았던 홍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은 어떻게 이념갈등을 극복했을까요? 비결은 서로 차이를 좁혀가는 관용과 포용이었습니다.
안문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손에 손을 잡아 인간띠를 만든 수천명의 사람들.

역사왜곡 중단을 외치는 양심세력의 항의는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있고, 이에 대한 우익들의 선전전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순화된 형태지만 나타나고 있지만 1960년대, 일본은 좌.우 심각한 대결을 경험했습니다.

1968년 겨울부터 1년간 계속된 도교대 강당 점거농성은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와 부패한 보수세력의 청산을 외치는 좌파의 극한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적군파등에 의한 과격한 폭력 사태가 70년대초까지 계속됐지만 이후 이들은 입지를 잃었습니다.

<인터뷰>후사카 (세종대 일문과 교수): “사회주의 세력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있지않습니까 그런 것을 많이 수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력들이 존재하는 의지차체가 없어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 소르본느 대학도 한때 좌파 학생들에 의해 점령됐고, 이는 천만명의 노동자의 파업과 경찰과의 유혈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이같은 사회적 갈등은 프랑스 정부가 좌파의 요구를 조금씩 수용하면서 차츰 해소됐습니다.

<인터뷰>피에르 히굴로 (파리 사회역사학연구소 연구부장): "좌파들의 요구인 하루 8시간 근로, 유급휴무제 등이 관철됐고,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도 수용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일어난 신좌파의 과격한 투쟁도 오래가지는 못했고, 평화와 복지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사회단체 등 시민운동세력이 흡수했습니다.

사회가 성숙해가면서 그만큼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포용력을 키웠갔고, 그러면서 극단적인 이념투쟁은 비로소 쇠퇴해갔음을 세계주요국가의 현대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뉴스 안문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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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0-27 21:13:53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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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은 과거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들도 한번쯤 앓았던 홍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은 어떻게 이념갈등을 극복했을까요? 비결은 서로 차이를 좁혀가는 관용과 포용이었습니다. 안문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손에 손을 잡아 인간띠를 만든 수천명의 사람들. 역사왜곡 중단을 외치는 양심세력의 항의는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있고, 이에 대한 우익들의 선전전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순화된 형태지만 나타나고 있지만 1960년대, 일본은 좌.우 심각한 대결을 경험했습니다. 1968년 겨울부터 1년간 계속된 도교대 강당 점거농성은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와 부패한 보수세력의 청산을 외치는 좌파의 극한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적군파등에 의한 과격한 폭력 사태가 70년대초까지 계속됐지만 이후 이들은 입지를 잃었습니다. <인터뷰>후사카 (세종대 일문과 교수): “사회주의 세력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있지않습니까 그런 것을 많이 수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력들이 존재하는 의지차체가 없어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 소르본느 대학도 한때 좌파 학생들에 의해 점령됐고, 이는 천만명의 노동자의 파업과 경찰과의 유혈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이같은 사회적 갈등은 프랑스 정부가 좌파의 요구를 조금씩 수용하면서 차츰 해소됐습니다. <인터뷰>피에르 히굴로 (파리 사회역사학연구소 연구부장): "좌파들의 요구인 하루 8시간 근로, 유급휴무제 등이 관철됐고,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도 수용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일어난 신좌파의 과격한 투쟁도 오래가지는 못했고, 평화와 복지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사회단체 등 시민운동세력이 흡수했습니다. 사회가 성숙해가면서 그만큼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포용력을 키웠갔고, 그러면서 극단적인 이념투쟁은 비로소 쇠퇴해갔음을 세계주요국가의 현대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뉴스 안문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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