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60년 만에 이제야 보금자리

입력 2005.10.28 (22:18)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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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후 60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을 옮겨다녔습니다.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한 수난의 세월 장혜윤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광복 1945년, 광복의 기쁨 위에 국립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정부 조직보다 한 발 앞서 체계를 세울 만큼 '문화의 힘'을 상징하는 박물관의 의미는 컸습니다.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으로 유물 역시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나야했습니다.

서울로 귀환해 경복궁에서 남산으로, 다시 덕수궁 석조전으로, 더부살이가 계속됐습니다.

1972년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꿔 경복궁에 다시 둥지를 틀었습니다.

86년 또다시 옛 중앙청 건물로 재이전됐으나 그 건물이 옛 조선총독부였다는것인 논란이 돼 철거가 결정됩니다.

광복 60년 동안 일곱번의 대이동을 거쳐 1997년, 용산벌에서 박물관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떴습니다.

그로부터 8년, 대역사 끝에 초대형 박물관이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인터뷰>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이제 더이상의 수난과 이전 없이 우리 국보들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의 유물 들을 편안히 관람할 수 있다. "

'영욕의 세월'을 딛고 국립중앙박물관이 한민족 문화와 역사를 응집한 동아시아 대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혜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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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돌이 60년 만에 이제야 보금자리
    • 입력 2005-10-28 21:08:39
    • 수정2018-08-29 15:00:00
    뉴스 9
<앵커 멘트>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후 60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을 옮겨다녔습니다.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한 수난의 세월 장혜윤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광복 1945년, 광복의 기쁨 위에 국립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정부 조직보다 한 발 앞서 체계를 세울 만큼 '문화의 힘'을 상징하는 박물관의 의미는 컸습니다.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으로 유물 역시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나야했습니다. 서울로 귀환해 경복궁에서 남산으로, 다시 덕수궁 석조전으로, 더부살이가 계속됐습니다. 1972년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꿔 경복궁에 다시 둥지를 틀었습니다. 86년 또다시 옛 중앙청 건물로 재이전됐으나 그 건물이 옛 조선총독부였다는것인 논란이 돼 철거가 결정됩니다. 광복 60년 동안 일곱번의 대이동을 거쳐 1997년, 용산벌에서 박물관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떴습니다. 그로부터 8년, 대역사 끝에 초대형 박물관이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인터뷰>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이제 더이상의 수난과 이전 없이 우리 국보들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의 유물 들을 편안히 관람할 수 있다. " '영욕의 세월'을 딛고 국립중앙박물관이 한민족 문화와 역사를 응집한 동아시아 대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혜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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