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前 총리, 민주화 운동에서 골프까지

입력 2006.03.20 (13:56) 수정 2006.04.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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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 그는 민주화 운동권 출신의 첫 총리로서, 이 정부 실세중의 실세였습니다.

그 동안 흔히 보아왔던 고위공직자와는 달리 허리 굽히지 않고, 할말은 하고, 할 일은 하는 독특한 캐릭터도 선보였습니다. 운동권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면을 강조했고, 보수야당에게도 강경하게 맞서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으로는 성공했으나, 고위 공직자로서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 총리로서, 누구보다도 도덕성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그는 왜 국무총리로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의 정치 역정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회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그럴 정도로 제가 경험이 없고, 미숙한 총리가 아닙니다.”

때로는 당당함이 지나쳐 공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정책 답변을 드리러 나온 사람이지, 의원님한테 제가 훈계 들으러 나온 사람이 나입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적절치 못한 처신을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3.1절 골프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공식.비공식에 걸쳐 다섯차례나 연이어 머리를 숙였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지 못하고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20개월 만에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공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물러나면서까지 끝까지 당당했던 총리. 업무능력이 뛰어났다는 평을 들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했다고 끝까지 자신하는 ‘첫 운동권 실세 총리’는 왜 물러나야만 했을까?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두 번이나 감옥행을 했던 민주투사 이해찬은, 지난 88년 재야단체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에 입당합니다.

곧바로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해찬은 첫 국회 본회의에서 특유의 당돌함을 선보였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8년 7월 4일): “평화민주당의 이해찬 의원입니다. 여러 존경하는 선배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 앞에서 이제 국회 처음 나온 사람이 이런 의사진행발언을 하게 된 것을 대단히 외람되게 생각하고, 한편으로 여러분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가부를 묻는 동의안과 선출 선거를 묻는 의제를 구분 못할 정도의 선배의원님들께서 그런 정도의 저열함이라고 한다면 이 국회가 과연 국민의 권리를 올바로 대변하고 보호할 수 있을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국회 노동위원회에 배속됐던 이해찬 의원은 노동 쟁의 현장을 누비며, 당시 노무현,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렸습니다. 당시 경찰에 구속된 현대중공업 노조 간부들을 면담하는 자리, 수갑을 차고 나오는 노조 간부를 보고선 경찰서장을 몰아세웁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9년 4월9일): “가만 있어. 서장, 여기 수갑 풀고 얘기하라고 그러세요. 꼭 국회에서 나와서(조사하는데 수갑)채워 갖고 데리고 나오고 그래야 되겠어요. 정말”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광주특위’에서도 스타의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의원은 질문지도 없이 유창한 말과 날카로운 질문으로 증인들을 요리합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8년 11월 19일 ):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계엄확대를 결의해서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합동수사본부장은 사람을 연행을 시작하고, 군부대에서는 이동을 시작하는 이것이 국가 변란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5.20일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는 그런 행위를 군대가 한 뒤부터는 이 계엄군은 반란군이죠?”


이후, 이해찬 의원은 평민당 당무실장과 97년과 2002년 대선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당내 전략 기획통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 공신인 이해찬 의원은 지난 2004년 6월 말,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참여정부의 2번째 국무총리에 임명됩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역대 총리와는 달랐습니다.

2004년 10월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독일에 들른 이 전 총리는, ‘동아.조선일보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 더 이상 까불지 마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며 보수언론과 야당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발언을 문제 삼는 야당에는 더 직설적인 공격을 퍼붓습니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안택수 의원: "이 오만하고 독선적인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당신 총리 맞습니까?"

<녹취>이해찬 (전 총리): "제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이 아니고, 가볍게 한 말인데.."

<녹취>안택수 의원: "가볍게 한 말이라도, 기자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없잖습니까? 총리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녹취>이해찬 전 총리: "한나라당은 여러분들이 아시고 국민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을 들여온 정권이 아닙니까?(고함) “


이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이 총리의 파면을 요구하는 등 국회가 2주간 파행 운영되는 등 정국대치가 심해지자, 이 전 총리는 어쩔 수 없이 2주 만에 사과했습니다. 1년 뒤, 이 전 총리는 다시 한나라당과 격론을 벌였습니다. 이른바 정체성 공방이었습니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안택수 의원: “노무현 정권은 이 나라를 진정 어디로 끌고 가고자 하는지 총리,진지하게 답변하세요

<녹취>이해찬 前총리: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변하면 바로 의원님이 얘기하는 이런 정체성 논란을 가지고 국민들을 자꾸 이간을 시키고 분열을 시키는 전술에 제가 말려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특히 색깔론을 제기하는 야당에는 직설적 언어를 구사하며 공세적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해찬 前 국무총리-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녹취>“당시에 학생들을 탄압하고 빨갱이로 몰고 가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이념적인 문제를 가지고, 주장하는 걸 보면서, 참 사람이 살면서 별꼴 다 본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브로커 윤상림씨와 어울린 문제로 야당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이해찬 前 총리: “홍의원님은 전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도 자격 박탈된 적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장관들은 그런 짓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녹취> 홍준표 의원: "총리 저는 총리처럼 그런 브로커하고 놀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리처럼 그런 브로커들로부터 정치헌금 받아본 일 없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총리: "인신모욕하지 마십시요."

<녹취>홍준표 의원: "인신모욕이라뇨.지금 총리께서 말씀하신 게 잘못하신 게 아닌가요?"

<녹취>이해찬 前 총리: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단 말입니까?”


이처럼 모든 문제에 당당하던 이 전 총리는 어찌보면 사소한 것 같은 골프문제로 연이어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4월 5일, 낙산사가 불에 타는 등 강원도 동해안에 대형산불이 번졌습니다.

이날 오후 이 전 총리 일행은 골프를 치다가 불이 번진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중단하고 돌아왔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총리의 안이한 행동을 질타했습니다. 이 전 총리는 곧바로 국회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20045.4.11 국회 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질의>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식목일날 골프를 친 것에 대해선 이 자리를 빌어서 국민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머리를 숙인 지 석 달도 안돼 또 한차례 골프 파문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7월 2일.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졌지만 그날 이 전 총리는 제주도에서 취임 1주년 골프를 즐겼습니다.

재해업무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장이 자리를 비우고 골프를 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또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이 총리는 일주일 뒤(7.11) 장마철인 7월에는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뒤, 국회에서 브로커 윤상림과의 골프문제로 다시 야당과 설전을 벌였던 바로 뒷날인, 3.1절에 골프를 즐겼다가 급기야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총리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에 휴일에 골프를 쳤다는 것만으로 문제 삼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철도파업이라는 비상사태 때 자리를 비웠고, 여기에다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비리 기업인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렸다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녹취>이재명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공직자라는 건 국민들로부터 신뢰가 생명입니다. 그 신뢰라고 하는 건 본인이 직접적으로 무슨 청탁을 받았다거나, 뇌물을 받았다거나 하는 또 부적절한 행동에 연루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의심을 갖게 하는 것 자체도 금지해야 되는 게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이라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골프파동이 총리경질을 몰고 온 가장 큰 요인은 연이은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입니다.

<녹취>이기우 前 교육부 차관: “(내기골프는 하셨나요?)아니요.(차관님이 따로 개인적으로 계산하신 것은 얼마죠?) 그건 뭐 제가 분명히 했습니다.”

<인터뷰>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러 가지 형태의 거짓말을 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총리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됐고, 뭔가 커다란 잘못을 감추고 있다라는 의혹을 계속적으로 불러 일으켰고, 그런 의혹들이 계속된 폭로로 인해서 부적절한 행동들이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확인이 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교훈, 굉장히 중요한 교훈 중에 하나라면, 그런 공직자의 거짓말이 사회적으로 이제 용납되기 어렵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기, 이해찬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노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을 강하게 비난하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2003.10.17,국회>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오랜 인연을 가졌던 비서였다고 하더라도, 음참마속하는 심정으로 엄정하게 처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도 이해찬은 적과 동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강한 투사의 이미지로 비쳐져 왔습니다.

<인터뷰>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전통적인 정치인의 통념보다는 적과 아군이 상당히 명확하게 전선을 긋는 이런 사람이거든요. 때때로 보면 정치인이라기 보단, 전투에 날 수 있는 장군과 같은 그런 느낌, 완전히 대장군은 아니고, 적이 분명하고, 적을 때려 부술 때 때려 부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독야청청, 이제 이런 느낌을 주는 그런 정치인이니까, 상당히 한편으로 보면 야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남았나? ”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는 20개월 동안 강력한 추진력으로 탁월한 업무능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노혜경 (前 국정홍보비서관): "얼마만큼 노력을 하면 저는 총리만큼 할 수 있을까? 이에 그렇게 굉장히 감탄을 하고 지켜 볼만큼 아주 명석하고 분명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일을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잘 하는 건 아닌데, 이해찬 총리께서는 핵심이 뭔지를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군더더기 없이 일을 하셨어요.”

그러나 강한 성격은 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야당과 다른 사람에게 들이댔던 강한 도덕을 자신에게는 그대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신 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과거 운동하셨으면서 정부에 들어가신 분들이 생각은 상당히 진보적입니다. 이 사회에 필요한 생각인데, 그 분위기에서 그럴지 모르지만 상당히 행동은 보수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이 사고와 행동의 괴리에서 그런 문제가 전 나올 수 있다라고 봅니다.

그렇게 때문에 현실에 좀 적응할 필요가 있고, 세상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위험성, 그건 반드시 본인들이 정치하는 과정에서 정부를 이끄는 과정에서 또 한번 큰 타격, 별거 아닌 거 가지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 이해찬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인기만을 관리하는 기존의 정치인과는 달리, 전략이나 기획 쪽 능력을 살려 5선에 이를 만큼 성공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한 이해찬은, 고위공직자로서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사고와 처신이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고 몇차례 골프 파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한 도덕적 잣대에 여론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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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찬 前 총리, 민주화 운동에서 골프까지
    • 입력 2006-03-20 11:25:49
    • 수정2006-04-17 12: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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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 그는 민주화 운동권 출신의 첫 총리로서, 이 정부 실세중의 실세였습니다. 그 동안 흔히 보아왔던 고위공직자와는 달리 허리 굽히지 않고, 할말은 하고, 할 일은 하는 독특한 캐릭터도 선보였습니다. 운동권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면을 강조했고, 보수야당에게도 강경하게 맞서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으로는 성공했으나, 고위 공직자로서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 총리로서, 누구보다도 도덕성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그는 왜 국무총리로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의 정치 역정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회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그럴 정도로 제가 경험이 없고, 미숙한 총리가 아닙니다.” 때로는 당당함이 지나쳐 공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정책 답변을 드리러 나온 사람이지, 의원님한테 제가 훈계 들으러 나온 사람이 나입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적절치 못한 처신을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3.1절 골프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공식.비공식에 걸쳐 다섯차례나 연이어 머리를 숙였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지 못하고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20개월 만에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공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물러나면서까지 끝까지 당당했던 총리. 업무능력이 뛰어났다는 평을 들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했다고 끝까지 자신하는 ‘첫 운동권 실세 총리’는 왜 물러나야만 했을까?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두 번이나 감옥행을 했던 민주투사 이해찬은, 지난 88년 재야단체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에 입당합니다. 곧바로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해찬은 첫 국회 본회의에서 특유의 당돌함을 선보였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8년 7월 4일): “평화민주당의 이해찬 의원입니다. 여러 존경하는 선배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 앞에서 이제 국회 처음 나온 사람이 이런 의사진행발언을 하게 된 것을 대단히 외람되게 생각하고, 한편으로 여러분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가부를 묻는 동의안과 선출 선거를 묻는 의제를 구분 못할 정도의 선배의원님들께서 그런 정도의 저열함이라고 한다면 이 국회가 과연 국민의 권리를 올바로 대변하고 보호할 수 있을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국회 노동위원회에 배속됐던 이해찬 의원은 노동 쟁의 현장을 누비며, 당시 노무현,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렸습니다. 당시 경찰에 구속된 현대중공업 노조 간부들을 면담하는 자리, 수갑을 차고 나오는 노조 간부를 보고선 경찰서장을 몰아세웁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9년 4월9일): “가만 있어. 서장, 여기 수갑 풀고 얘기하라고 그러세요. 꼭 국회에서 나와서(조사하는데 수갑)채워 갖고 데리고 나오고 그래야 되겠어요. 정말”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광주특위’에서도 스타의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의원은 질문지도 없이 유창한 말과 날카로운 질문으로 증인들을 요리합니다. <녹취>이해찬 (前 평화민주당 의원/1988년 11월 19일 ):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계엄확대를 결의해서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합동수사본부장은 사람을 연행을 시작하고, 군부대에서는 이동을 시작하는 이것이 국가 변란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5.20일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는 그런 행위를 군대가 한 뒤부터는 이 계엄군은 반란군이죠?” 이후, 이해찬 의원은 평민당 당무실장과 97년과 2002년 대선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당내 전략 기획통으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 공신인 이해찬 의원은 지난 2004년 6월 말,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참여정부의 2번째 국무총리에 임명됩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역대 총리와는 달랐습니다. 2004년 10월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독일에 들른 이 전 총리는, ‘동아.조선일보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 더 이상 까불지 마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며 보수언론과 야당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발언을 문제 삼는 야당에는 더 직설적인 공격을 퍼붓습니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안택수 의원: "이 오만하고 독선적인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당신 총리 맞습니까?" <녹취>이해찬 (전 총리): "제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이 아니고, 가볍게 한 말인데.." <녹취>안택수 의원: "가볍게 한 말이라도, 기자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없잖습니까? 총리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녹취>이해찬 전 총리: "한나라당은 여러분들이 아시고 국민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을 들여온 정권이 아닙니까?(고함) “ 이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이 총리의 파면을 요구하는 등 국회가 2주간 파행 운영되는 등 정국대치가 심해지자, 이 전 총리는 어쩔 수 없이 2주 만에 사과했습니다. 1년 뒤, 이 전 총리는 다시 한나라당과 격론을 벌였습니다. 이른바 정체성 공방이었습니다.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안택수 의원: “노무현 정권은 이 나라를 진정 어디로 끌고 가고자 하는지 총리,진지하게 답변하세요 <녹취>이해찬 前총리: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변하면 바로 의원님이 얘기하는 이런 정체성 논란을 가지고 국민들을 자꾸 이간을 시키고 분열을 시키는 전술에 제가 말려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특히 색깔론을 제기하는 야당에는 직설적 언어를 구사하며 공세적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해찬 前 국무총리-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녹취>“당시에 학생들을 탄압하고 빨갱이로 몰고 가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이념적인 문제를 가지고, 주장하는 걸 보면서, 참 사람이 살면서 별꼴 다 본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브로커 윤상림씨와 어울린 문제로 야당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해찬 前 국무총리> <녹취>이해찬 前 총리: “홍의원님은 전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도 자격 박탈된 적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장관들은 그런 짓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녹취> 홍준표 의원: "총리 저는 총리처럼 그런 브로커하고 놀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리처럼 그런 브로커들로부터 정치헌금 받아본 일 없습니다." <녹취>이해찬 前 총리: "인신모욕하지 마십시요." <녹취>홍준표 의원: "인신모욕이라뇨.지금 총리께서 말씀하신 게 잘못하신 게 아닌가요?" <녹취>이해찬 前 총리: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단 말입니까?” 이처럼 모든 문제에 당당하던 이 전 총리는 어찌보면 사소한 것 같은 골프문제로 연이어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4월 5일, 낙산사가 불에 타는 등 강원도 동해안에 대형산불이 번졌습니다. 이날 오후 이 전 총리 일행은 골프를 치다가 불이 번진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중단하고 돌아왔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총리의 안이한 행동을 질타했습니다. 이 전 총리는 곧바로 국회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20045.4.11 국회 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질의>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식목일날 골프를 친 것에 대해선 이 자리를 빌어서 국민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머리를 숙인 지 석 달도 안돼 또 한차례 골프 파문에 휩싸였습니다. 지난해 7월 2일.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졌지만 그날 이 전 총리는 제주도에서 취임 1주년 골프를 즐겼습니다. 재해업무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장이 자리를 비우고 골프를 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또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이 총리는 일주일 뒤(7.11) 장마철인 7월에는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뒤, 국회에서 브로커 윤상림과의 골프문제로 다시 야당과 설전을 벌였던 바로 뒷날인, 3.1절에 골프를 즐겼다가 급기야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총리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에 휴일에 골프를 쳤다는 것만으로 문제 삼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철도파업이라는 비상사태 때 자리를 비웠고, 여기에다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비리 기업인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렸다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녹취>이재명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공직자라는 건 국민들로부터 신뢰가 생명입니다. 그 신뢰라고 하는 건 본인이 직접적으로 무슨 청탁을 받았다거나, 뇌물을 받았다거나 하는 또 부적절한 행동에 연루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의심을 갖게 하는 것 자체도 금지해야 되는 게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이라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골프파동이 총리경질을 몰고 온 가장 큰 요인은 연이은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입니다. <녹취>이기우 前 교육부 차관: “(내기골프는 하셨나요?)아니요.(차관님이 따로 개인적으로 계산하신 것은 얼마죠?) 그건 뭐 제가 분명히 했습니다.” <인터뷰>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러 가지 형태의 거짓말을 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총리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됐고, 뭔가 커다란 잘못을 감추고 있다라는 의혹을 계속적으로 불러 일으켰고, 그런 의혹들이 계속된 폭로로 인해서 부적절한 행동들이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확인이 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교훈, 굉장히 중요한 교훈 중에 하나라면, 그런 공직자의 거짓말이 사회적으로 이제 용납되기 어렵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기, 이해찬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노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을 강하게 비난하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2003.10.17,국회> <녹취>이해찬 (前 국무총리): “오랜 인연을 가졌던 비서였다고 하더라도, 음참마속하는 심정으로 엄정하게 처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도 이해찬은 적과 동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강한 투사의 이미지로 비쳐져 왔습니다. <인터뷰>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전통적인 정치인의 통념보다는 적과 아군이 상당히 명확하게 전선을 긋는 이런 사람이거든요. 때때로 보면 정치인이라기 보단, 전투에 날 수 있는 장군과 같은 그런 느낌, 완전히 대장군은 아니고, 적이 분명하고, 적을 때려 부술 때 때려 부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독야청청, 이제 이런 느낌을 주는 그런 정치인이니까, 상당히 한편으로 보면 야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남았나? ”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는 20개월 동안 강력한 추진력으로 탁월한 업무능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노혜경 (前 국정홍보비서관): "얼마만큼 노력을 하면 저는 총리만큼 할 수 있을까? 이에 그렇게 굉장히 감탄을 하고 지켜 볼만큼 아주 명석하고 분명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일을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잘 하는 건 아닌데, 이해찬 총리께서는 핵심이 뭔지를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군더더기 없이 일을 하셨어요.” 그러나 강한 성격은 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야당과 다른 사람에게 들이댔던 강한 도덕을 자신에게는 그대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신 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과거 운동하셨으면서 정부에 들어가신 분들이 생각은 상당히 진보적입니다. 이 사회에 필요한 생각인데, 그 분위기에서 그럴지 모르지만 상당히 행동은 보수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이 사고와 행동의 괴리에서 그런 문제가 전 나올 수 있다라고 봅니다. 그렇게 때문에 현실에 좀 적응할 필요가 있고, 세상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위험성, 그건 반드시 본인들이 정치하는 과정에서 정부를 이끄는 과정에서 또 한번 큰 타격, 별거 아닌 거 가지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 이해찬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인기만을 관리하는 기존의 정치인과는 달리, 전략이나 기획 쪽 능력을 살려 5선에 이를 만큼 성공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한 이해찬은, 고위공직자로서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사고와 처신이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고 몇차례 골프 파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한 도덕적 잣대에 여론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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