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서울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시민들의 통행이 제한됐던 숙정문이 이달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지난 68년 1.21사태 이후 38년 만의 개방입니다.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숙정문의 모습과 숙정문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난 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합니다.
이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선택했던 침투로는 바로 청와대 뒷편 북악산.
일명 1.21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던 북악산과 숙정문 일대는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됩니다.
<인터뷰> 정운숙(서울시 연남동): “활짝 열어서 북한에서 청와대를 향해서 왔으니깐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숙정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이 논란은 숙정문의 역사와 함께 계속돼 왔습니다.
서울 4대문 가운데 북대문으로 숙정문이 창건된 것은 조선 건국 5년 뒤인 1396년, 이로부터 17년 뒤인 태종 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숙정문을 닫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사람들이 이 문을 통행하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숙정문 통행을 금지시킨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인터뷰> 나각순(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문을 열려서 바람이 불면 음기가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도성 부녀자들에게 바람이 분다는 얘기가 있었죠...”
도성의 부녀자들의 품행이 음란해지기 때문에 숙정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정숙(서울시 신내동): “옛날 그 시절에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 없지 않나요?”
숙정문은 그 뒤 연산군 10년에 동쪽으로 옮겨지고 석문만 서 있었지만 지난 1976년 서울시가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숙정문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홍련사 입구에서부터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길을 1.1킬로미터 오르자 마침내 촛대바위가 나옵니다.
경복궁 앞으로 곧게 뚫린 세종로에서부터 멀리 여의도 63빌딩까지,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뷰> 송석봉(서울시 가락동): “너무 좋습니다. 그 동안 폐쇄됐다가 오랜만에 개방돼서 와보니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영욕을 거듭했던 숙정문.
시민들은 이제 숙정문과 북악산이 도심 속의 소중한 휴식 공간으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서울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시민들의 통행이 제한됐던 숙정문이 이달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지난 68년 1.21사태 이후 38년 만의 개방입니다.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숙정문의 모습과 숙정문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난 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합니다.
이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선택했던 침투로는 바로 청와대 뒷편 북악산.
일명 1.21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던 북악산과 숙정문 일대는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됩니다.
<인터뷰> 정운숙(서울시 연남동): “활짝 열어서 북한에서 청와대를 향해서 왔으니깐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숙정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이 논란은 숙정문의 역사와 함께 계속돼 왔습니다.
서울 4대문 가운데 북대문으로 숙정문이 창건된 것은 조선 건국 5년 뒤인 1396년, 이로부터 17년 뒤인 태종 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숙정문을 닫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사람들이 이 문을 통행하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숙정문 통행을 금지시킨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인터뷰> 나각순(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문을 열려서 바람이 불면 음기가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도성 부녀자들에게 바람이 분다는 얘기가 있었죠...”
도성의 부녀자들의 품행이 음란해지기 때문에 숙정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정숙(서울시 신내동): “옛날 그 시절에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 없지 않나요?”
숙정문은 그 뒤 연산군 10년에 동쪽으로 옮겨지고 석문만 서 있었지만 지난 1976년 서울시가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숙정문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홍련사 입구에서부터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길을 1.1킬로미터 오르자 마침내 촛대바위가 나옵니다.
경복궁 앞으로 곧게 뚫린 세종로에서부터 멀리 여의도 63빌딩까지,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뷰> 송석봉(서울시 가락동): “너무 좋습니다. 그 동안 폐쇄됐다가 오랜만에 개방돼서 와보니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영욕을 거듭했던 숙정문.
시민들은 이제 숙정문과 북악산이 도심 속의 소중한 휴식 공간으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숙정문 38년 만에 개방
-
- 입력 2006-04-05 20:14:00

<앵커 멘트>
서울의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시민들의 통행이 제한됐던 숙정문이 이달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습니다. 지난 68년 1.21사태 이후 38년 만의 개방입니다.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숙정문의 모습과 숙정문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난 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합니다.
이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선택했던 침투로는 바로 청와대 뒷편 북악산.
일명 1.21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던 북악산과 숙정문 일대는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됩니다.
<인터뷰> 정운숙(서울시 연남동): “활짝 열어서 북한에서 청와대를 향해서 왔으니깐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숙정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이 논란은 숙정문의 역사와 함께 계속돼 왔습니다.
서울 4대문 가운데 북대문으로 숙정문이 창건된 것은 조선 건국 5년 뒤인 1396년, 이로부터 17년 뒤인 태종 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숙정문을 닫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사람들이 이 문을 통행하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숙정문 통행을 금지시킨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인터뷰> 나각순(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문을 열려서 바람이 불면 음기가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도성 부녀자들에게 바람이 분다는 얘기가 있었죠...”
도성의 부녀자들의 품행이 음란해지기 때문에 숙정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정숙(서울시 신내동): “옛날 그 시절에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 상관 없지 않나요?”
숙정문은 그 뒤 연산군 10년에 동쪽으로 옮겨지고 석문만 서 있었지만 지난 1976년 서울시가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숙정문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홍련사 입구에서부터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길을 1.1킬로미터 오르자 마침내 촛대바위가 나옵니다.
경복궁 앞으로 곧게 뚫린 세종로에서부터 멀리 여의도 63빌딩까지,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뷰> 송석봉(서울시 가락동): “너무 좋습니다. 그 동안 폐쇄됐다가 오랜만에 개방돼서 와보니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영욕을 거듭했던 숙정문.
시민들은 이제 숙정문과 북악산이 도심 속의 소중한 휴식 공간으로 영원히 남아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