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의 아름다운 희생

입력 2009.03.29 (22:47) 수정 2009.03.2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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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 3월은 WBC 야구대회에서 들려온 기적같은 한국팀의 선전소식에 온 국민들이 환호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감독 선출부터 선수단 구성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어렵게 꾸려진 팀은 지난번 팀에 비해 전력이 훨씬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준우승, 한국팀이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놀라운 성적을 얻기 까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선수단을 지휘한 노장 김인식 감독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야구와 김인식 감독의 아름답고 용기있는 희생과 도전의 여정을 정리해봤습니다.

<리포트>

LA 다저스 스타디움.

경기장에는 이번 대회 최다인 5만4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3대3 동점, 이범호의 안타로 우리나라에 패색이 짙었던 경기는 다시 연장전 승부로 이어집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야구, 우리 선수들의 땀과 노력, 눈물이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계 야구의 최강을 가리는 제2회 WBC 결승전 무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우리 선수들은 순간순간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고비 때마다 시원한 한 방을 터뜨려 준 젊은 해결사 김태균, 결승전 동점 적시타로 야구는 9회말 부터라는 말을 입증한 이범호, 일본전 2승의 주역 봉중근 ‘이치로의 굴욕’이란 유행어를 남긴 봉중근의 견제 동작은 4대 1의 완벽한 승리와 함께 통쾌함을 더했습니다.

23살의 윤석민은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베네수엘라의 강타선을 휘어잡았고 한국팀은 이번 베네수엘라 전에서 승리한 것뿐만 아니라 22살의 승리투수 윤석민이라는 보석을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용규는 발야구의 진수를 보여줫습니다. 이들의 투혼과 집중력은
연습 때조차 주목을 끌었습니다.

<녹취> 현지 해설 : "저 에너지를 좀 보세요 100%의 노력을 다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중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팀의 놀라운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28명의 젊은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완벽하게 엮어낸 김인식 감독이 저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절묘했습니다. 9경기를 치르면서 경기마다 다양한 타순 조정과 교체카드를 선보였습니다. 덕아웃 지키던 고영민을 대타로 출전시켜 홈런을 뽑아냈고, 부진한 추신수를 끝까지 믿었더니 준결승과 결승에서 잇달아 홈런포를 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상황에서 투수 운용도 돋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능력을 이끌어낸 ‘믿음의 야구’가 이번에도 통한 것입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선수들 조금 못했을 때 자주 바꾸면 선수 스스로가 잘 안되는데 바뀌겠구나 주눅이 들어서 더 안된다고 볼 수가 있다. 못했을때라도 계속하면 어떻게든 잘 해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

<녹취> ESPN 중계 현지해설자 : “김인식 감독은 한국팀이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 또 반복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김인식감독은 어떻게 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된 것일까?

사실 대표팀의 여정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령탑 선정부터 난항이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올림픽 금메달 감독도, 프로야구 우승감독도 모두 손을 내저었습니다.

결국 다급해진 야구위원회 관계자들은 첫 WBC 대회를 맡았던 김인식 감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절박한 통사정은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일성(KBO사무총장) : “죽기살기로 김인식 감독한테 간청하는 수밖에 없다. 김경문 감독도 고사했고, 그래서 쇼를 좀 했죠.. 술을 따라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김인식 감독이 들어올 때 한 세잔을 먹었어요. 놀라서 너 왜 그러냐, 아이~ 못살겠다, 뭐 이제 죽는 소리부터 시작을 했죠.”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내가 쳐다볼때마다 술을 글라스에 양주를 꼴딱꼴딱 삼키는 거예요. 저 사람이 분명히 두 번씩 수술하고 술 그렇게 먹으면 안되는데..저거 큰일 나겠네 이렇게 생각했어요.”

4년 전 뇌혈관 일부가 막히는 뇌경색 진단을 받아 한 때 신체 오른쪽 마비까지 왔었던 그에게 세계 대회 출전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2006년도에 WBC끝나고 다시는 감독을 안하겠다 한 그 이유는 제가 다리도 좀 절고 이러니까 이런거 보여주기 싫다 국제적으로.. 그 앞에서 다리 절고 하는 것 보여주기 싫고 그래서.”

김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는 바람에 WBC 대회 기간 동안에는 재활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노숙영(분당제생병원 신경과장) : “진행성 풍이었기 때문에 완전마비로 진행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굉장히 불안해하시고 그러실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전혀 눈하나 깜짝 안하실 정도로 흔들림이 없으셨고.. 항상 침대 옆에는 성경책이 있고..속으로 보통 분이 아니구나.”

감독직 수락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선수단 구성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최고의 멤버들로 구성하겠다던 감독의 의욕과 달리 간판선수로 점찍었던 박찬호와 이승엽은 잇따라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인터뷰>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 “나라를 위해서라면 꼭 뛰어야 되겠지만 이제는 이 팀(소속팀)을 위해서, 2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팀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지 않나...”

<인터뷰> 박찬호(1월 13일 기자회견) : “팬들, 국민들이나 WBC출전을 희망하셨던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고(눈물)... 그리고...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이 이제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국내 선수들 중에서도 포수 진갑용과 유격수 박진만이 부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되면서 팀 구성에 치명적인 허점이 될 수 있는 상황. 감독으로선 두렵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하와이에서 훈련하면서 특히 투수들이 좀 진도가 늦게 나가더라고요. 예선만 통과하면 결국 8강인데 8강에서 끝나는 거 아닌가 사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잘못되는 거 아닌가 그런 두려움도 없지 않았고..아시아대회나 올림픽하고 다르게 메이저리거들이 나오니까 이게 상당한 거 아닌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대표팀 선수 28명의 평균나이는 27세, 현역 메이저리거는 단 한명 뿐이고 선수 평균 연봉은 3억 원이 채 되지 않아 16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습니다.

해외파도, 원하던 코치진도 뽑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선수들을 다독였습니다.

<인터뷰> 김인식(WBC 대표팀감독) : “4개월을 굉장히 고민도 많이 했고 코칭 스텝 구성부터 선수들 구성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야구선수로서 성공한 케이스들 아니냐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까 우리가 잘해서 나중에 웃으면서 헤어지자...”

걱정 반, 희망 반을 떠안은 28명의 선수들과 코치단은 그렇게 WBC 무대를 향해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임창용 선수 실투.. 연장전 접전 끝에 아쉽게 패..“

결과는 3대 5 분패,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은 아쉽게 준우승으로 끝을 맺었지만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는 국가와 대표팀을 먼저 생각한 김 감독의 희생과 도전정신은 젊은 선수들의 열정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고 세계는 그 결과에 놀라워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던진 첫 마디.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국가가 있어서 야구가 있고 팬이 있어서 선수, 코치, 감독이 있다는 걸 생각해달라...”

이 말을 가슴, 가슴에 아로새긴 선수단은 한국 야구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우리 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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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식의 아름다운 희생
    • 입력 2009-03-29 17:36:21
    • 수정2009-03-29 23:45:53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올 3월은 WBC 야구대회에서 들려온 기적같은 한국팀의 선전소식에 온 국민들이 환호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감독 선출부터 선수단 구성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어렵게 꾸려진 팀은 지난번 팀에 비해 전력이 훨씬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준우승, 한국팀이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놀라운 성적을 얻기 까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선수단을 지휘한 노장 김인식 감독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야구와 김인식 감독의 아름답고 용기있는 희생과 도전의 여정을 정리해봤습니다. <리포트> LA 다저스 스타디움. 경기장에는 이번 대회 최다인 5만4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3대3 동점, 이범호의 안타로 우리나라에 패색이 짙었던 경기는 다시 연장전 승부로 이어집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야구, 우리 선수들의 땀과 노력, 눈물이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계 야구의 최강을 가리는 제2회 WBC 결승전 무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우리 선수들은 순간순간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고비 때마다 시원한 한 방을 터뜨려 준 젊은 해결사 김태균, 결승전 동점 적시타로 야구는 9회말 부터라는 말을 입증한 이범호, 일본전 2승의 주역 봉중근 ‘이치로의 굴욕’이란 유행어를 남긴 봉중근의 견제 동작은 4대 1의 완벽한 승리와 함께 통쾌함을 더했습니다. 23살의 윤석민은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베네수엘라의 강타선을 휘어잡았고 한국팀은 이번 베네수엘라 전에서 승리한 것뿐만 아니라 22살의 승리투수 윤석민이라는 보석을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용규는 발야구의 진수를 보여줫습니다. 이들의 투혼과 집중력은 연습 때조차 주목을 끌었습니다. <녹취> 현지 해설 : "저 에너지를 좀 보세요 100%의 노력을 다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중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팀의 놀라운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28명의 젊은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완벽하게 엮어낸 김인식 감독이 저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절묘했습니다. 9경기를 치르면서 경기마다 다양한 타순 조정과 교체카드를 선보였습니다. 덕아웃 지키던 고영민을 대타로 출전시켜 홈런을 뽑아냈고, 부진한 추신수를 끝까지 믿었더니 준결승과 결승에서 잇달아 홈런포를 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상황에서 투수 운용도 돋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능력을 이끌어낸 ‘믿음의 야구’가 이번에도 통한 것입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선수들 조금 못했을 때 자주 바꾸면 선수 스스로가 잘 안되는데 바뀌겠구나 주눅이 들어서 더 안된다고 볼 수가 있다. 못했을때라도 계속하면 어떻게든 잘 해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 <녹취> ESPN 중계 현지해설자 : “김인식 감독은 한국팀이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 또 반복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김인식감독은 어떻게 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된 것일까? 사실 대표팀의 여정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령탑 선정부터 난항이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올림픽 금메달 감독도, 프로야구 우승감독도 모두 손을 내저었습니다. 결국 다급해진 야구위원회 관계자들은 첫 WBC 대회를 맡았던 김인식 감독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절박한 통사정은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일성(KBO사무총장) : “죽기살기로 김인식 감독한테 간청하는 수밖에 없다. 김경문 감독도 고사했고, 그래서 쇼를 좀 했죠.. 술을 따라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김인식 감독이 들어올 때 한 세잔을 먹었어요. 놀라서 너 왜 그러냐, 아이~ 못살겠다, 뭐 이제 죽는 소리부터 시작을 했죠.”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내가 쳐다볼때마다 술을 글라스에 양주를 꼴딱꼴딱 삼키는 거예요. 저 사람이 분명히 두 번씩 수술하고 술 그렇게 먹으면 안되는데..저거 큰일 나겠네 이렇게 생각했어요.” 4년 전 뇌혈관 일부가 막히는 뇌경색 진단을 받아 한 때 신체 오른쪽 마비까지 왔었던 그에게 세계 대회 출전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2006년도에 WBC끝나고 다시는 감독을 안하겠다 한 그 이유는 제가 다리도 좀 절고 이러니까 이런거 보여주기 싫다 국제적으로.. 그 앞에서 다리 절고 하는 것 보여주기 싫고 그래서.” 김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는 바람에 WBC 대회 기간 동안에는 재활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노숙영(분당제생병원 신경과장) : “진행성 풍이었기 때문에 완전마비로 진행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굉장히 불안해하시고 그러실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전혀 눈하나 깜짝 안하실 정도로 흔들림이 없으셨고.. 항상 침대 옆에는 성경책이 있고..속으로 보통 분이 아니구나.” 감독직 수락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선수단 구성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최고의 멤버들로 구성하겠다던 감독의 의욕과 달리 간판선수로 점찍었던 박찬호와 이승엽은 잇따라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인터뷰>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 “나라를 위해서라면 꼭 뛰어야 되겠지만 이제는 이 팀(소속팀)을 위해서, 2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팀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지 않나...” <인터뷰> 박찬호(1월 13일 기자회견) : “팬들, 국민들이나 WBC출전을 희망하셨던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고(눈물)... 그리고...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이 이제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국내 선수들 중에서도 포수 진갑용과 유격수 박진만이 부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되면서 팀 구성에 치명적인 허점이 될 수 있는 상황. 감독으로선 두렵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하와이에서 훈련하면서 특히 투수들이 좀 진도가 늦게 나가더라고요. 예선만 통과하면 결국 8강인데 8강에서 끝나는 거 아닌가 사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잘못되는 거 아닌가 그런 두려움도 없지 않았고..아시아대회나 올림픽하고 다르게 메이저리거들이 나오니까 이게 상당한 거 아닌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대표팀 선수 28명의 평균나이는 27세, 현역 메이저리거는 단 한명 뿐이고 선수 평균 연봉은 3억 원이 채 되지 않아 16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습니다. 해외파도, 원하던 코치진도 뽑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선수들을 다독였습니다. <인터뷰> 김인식(WBC 대표팀감독) : “4개월을 굉장히 고민도 많이 했고 코칭 스텝 구성부터 선수들 구성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야구선수로서 성공한 케이스들 아니냐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까 우리가 잘해서 나중에 웃으면서 헤어지자...” 걱정 반, 희망 반을 떠안은 28명의 선수들과 코치단은 그렇게 WBC 무대를 향해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임창용 선수 실투.. 연장전 접전 끝에 아쉽게 패..“ 결과는 3대 5 분패,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은 아쉽게 준우승으로 끝을 맺었지만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는 국가와 대표팀을 먼저 생각한 김 감독의 희생과 도전정신은 젊은 선수들의 열정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고 세계는 그 결과에 놀라워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던진 첫 마디. <인터뷰> 김인식(야구 대표팀 감독) : “국가가 있어서 야구가 있고 팬이 있어서 선수, 코치, 감독이 있다는 걸 생각해달라...” 이 말을 가슴, 가슴에 아로새긴 선수단은 한국 야구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우리 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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