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 ‘돈’

입력 2016.06.13 (16:13) 수정 2016.07.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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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돈 없이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자학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마지막 구절은 더욱 서글픕니다. 하루도 돈 없이는 움직일 수 없고,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니, 배알이 뒤틀려 불현듯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팽개쳐버리고도 싶습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지상의 맘몬(Mammon, 부, 부의 신)은 분명 인간을 웃기고 울리고, 들었다 놓았다, 품에 안겼다 달아났다, 그야말로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됐습니다. 어떤 학자는 돈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물건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 무소불위의 절대자인 돈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우리는 불멸의 환상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하는 온갖 힘들에 맞서 자아를 지켜내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선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돈이다.” (김창호, ‘돈의 인문학’)

고달픈 시인의 삶...돈이 절실한 문인들

정말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돈 계산에 따라 부모·형제건, 친구이건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속물들이 된 걸까요? 정말 이익 없이는 오지도 가지도 않는 돈이 노예가 된 걸까요?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돈의 위력을 더욱 실감하는 시인은 믿었던 세상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나 봅니다.

흔히 시인들은 세속의 냄새가 진동하는 돈과 가장 초연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을 '시를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보다 돈에 시달리고 쪼들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정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직업별 소득을 보면 시인들은 최하위에 속해 있습니다. 더 이상 시를 돈 주고 사지도 않고 살 필요도 없는 세상, 인터넷에 들어가면 시가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시대에 시인의 삶도 눈송이처럼 흔들립니다. 한 줄 시를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시인들의 노고는 불행히도 돈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평균 수입은 연간 1,255만 원, 그러니까 한 달에 1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시인은 여기에도 훨씬 못 미쳐 30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시를 전업으로 해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베스트 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시인 최영미 씨. 5월 16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살고 있는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다.베스트 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시인 최영미 씨. 5월 16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살고 있는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1990년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베스트 셀러 시집을 내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최영미 시인은 최근 자신이 살고 있는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연간소득이 1,300만 원이 안되고 집도 없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라지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이 정도니 다른 시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디 시인 뿐일지요? 금수저를 물었거나, 물고 나온 소수의 부자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야말로 돈 걱정을 온몸에 달고 삽니다. 가난하지만 시만을 써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한 시인은 만 원짜리 지폐를 들여다보면서 온갖 상념에 잠깁니다.



만 원짜리를 골똘히 바라보면서 위조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조카딸에게 과자도 사줄 수 있고 잡지도 맘껏 사볼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욕망을 압축해 놓은 돈 앞에서 시인은 그저 할 말을 잃습니다.



우리에게는 '봄봄'이나 '동백꽃' 같은 향토색 짙으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단편소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다 29살에 요절하고 맙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그는 폐결핵에 좋다는 닭을 고아 먹고 싶어 고교 동창생 안회남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망이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이 편지의 답장을 받기도 전에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병마와의 최후 담판을 나 몰라라 한 겨우 몇 푼의 야속한 돈 때문에 비운의 삶을 마감한 김유정을 떠올리면 정말 할 말을 잃습니다.

돈은 최악의 종이면서 최상의 군주

돈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적으로는 상품의 가치를 매기고, 교환과 거래를 매개하며 자산의 축적 수단이 되는 물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는 악마도 천사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물건이라는 말이지요. 자본주의 출현과 돈의 역할, 돈과 영혼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 게오르그 짐멜은 그의 명저 '돈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화(外化)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돈은 모든 것을 그 속성과 관계없이 숫자와 형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징이라는 것이죠.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내재적 가치, 주관적 의미 등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돈은 인간의 영혼을 포함해 모든 것을 객관화, 수치화시키는 동시에, 다시 인간들이 자기만의 개성과 인격을 추구하는 길을 열어주고 지켜주는 수문장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얘기인지요?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인가요? 사랑도, 우정도, 예술도, 상상력도, 주관적 인격적 특성도 무시하고 단순히 수량적 관계로 환원해 평준화시킨 돈이 다시 탈개성화, 탈인격화로 개인이 영혼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니요?

이 알쏭달쏭하지만 정확하게 돈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게오르그 짐멜의 주장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입니다. "돈은 최상의 종이며 최악의 주인" 그러니까 돈을 잘 쓰면 이 몰개성적이고 물질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격과 영혼을 지킬 수 있고, 잘못쓰면 돈에 휘둘리는 몰개성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생을 빚에 시달려 누구보다 돈이 절실했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돈의 본질을 짐멜과 유사하게 파악합니다.

" 돈은 절대적인 힘이다. 동시에 평등의 극치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한다."

사회학자 임석민 씨도 돈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쁘기보다는 활용에 따라 백 가지로 얼굴을 바꾸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돈이 폭군이 아닌 성군이 되고, 악마가 아니고 천사가 되는 방법은 도는 것입니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부자의 지갑에 들어가 좀처럼 나올 줄 모른다면 그 돈은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필경은 가난한 이에게도 주인인 부자에게도 재앙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부자의 곳간을 빠져나와 가난한 집 장롱에도 들어가고, 유럽의 성채에서 빠져나와 칼라하리 사막의 원주민 흙집으로도 들어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이 왕 행세를 하는 정의롭지 못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야만적 자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인류가 이 야만을 벗어나는 길은 더불어 잘 사는 길이고 그 길은 돈이 돌고 도는 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 차원에서 돈의 속박, 돈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요? 이용하기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이용하고 말고 할 돈 자체가 적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한 푼도 없는 절대 빈곤의 빈털터리라기보다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돈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출판업을 하는 다카키 유코씨는 아주 평범하지만 퍽 일리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람들 머리에 늘 붙어 다니는 걱정거리 가운데 가장 밀도가 높고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돈 문제이다. 나는 지금 돈에 대해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돈 문제는 간단하다. 자기가 가진 돈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돈이 없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가진 것만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러한 물건이 없어도 잘만 살았다." -다카키 유코 '즐거운 돈'-

그러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늘 강조했던 '안분지족'과 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눈만 돌리면 사방팔방에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먹거리, 입을 거리, 탈 거리, 보석, 아름다운 집, 가고 싶어 몸살이 나는 여행지..... 세속을 등지고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사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청빈과 수행을 실천하다 돌아가신 법정 큰스님도 무소유의 삶을 강조하시면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필요와 불필요가 그렇게 두부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보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우주의 화폐 나뭇잎

전자 화폐 비트코인.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했다. 요즘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까지 넘쳐나고 있다.전자 화폐 비트코인.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했다. 요즘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까지 넘쳐나고 있다.


돈은 종류에 따라 동전과 지폐로 나뉘기도 하지만 요즘은 눈에 보이는 화폐를 쓰는 일보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심지어 전자화폐라는 비트코인(bitcoin)까지 등장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술장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중에는 돈이 넘친다, 돈줄이 막혔다. 돈이 몰린다고도 하는데 정말 시중에는 얼마나 돈이 풀려 있는 것일까요?

경제학에서는 통화(currency)라는 용어를 쓰는데요, 이 통화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시중에 도는 현금과 은행이 언제라도 내줄 수 있는 예금을 합해 M1이라고 해서 가장 적은 규모의 돈(협의통화)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일정 기간을 은행이 묶어 둘 수 있는 정기적금이나 정기예금, 회사채, 국공채 같은 돈을 더해 M2(광의통화, 총통화)라고 합니다.

여기에다 보험이나 증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예탁금 등을 합하면 (M3) 돈의 규모는 더욱 늘어납니다.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지난 1986년 광의 통화 (M2)는 불과 47조 원이었는데요, 1995년에는 300조 원 정도, 2006년에는 1,000조 원을 넘었고, 올 들어 4월에는 무려 2,300조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0년 만에 무려 50배나 넘게 불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엄청나게 세상의 돈은 불어났는데 내 호주머니의 돈은 왜 줄어들기만 하는 걸까요?

그래서 시인들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아껴쓴다거나, 없는 것에 만족하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종이로 된 화폐 말고 더 소중한 우주의 화폐를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가을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뭇잎을 보면서 정말 화폐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름내 나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땀을 닦아주고 그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비'가 돼주는 송경동 시인의 생각은 더욱 웅숭깊습니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인간의 삶은 거리에 뒹구는 나뭇잎 같은 것이지만, 그 나뭇잎이 역설적으로 화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탐내는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도구로 살면서 정작 자신은 구멍 뚫려 파쇄되는 생을 살아가야 하는 화폐의 운명을, 평생 광합성 노동으로 나무를 살찌우다 속절없이 대지로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환치하고, 다시 시인 자신의 삶으로 환치합니다.

평생 노동자들을 대변하느라 구속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서글플 법도 하지만 그 화폐, 그 나뭇잎들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면 주눅이 드는 세상, 돈이라면 할 말을 잃게 되는 세상,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 돈이라면 영혼이라도 파는 세상,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도 시인을 따라 저 나뭇잎 한 장을 돈보다 소중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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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⑤ 최악의 종이자 최상의 군주 ‘돈’
    • 입력 2016-06-13 16:13:44
    • 수정2016-07-01 09:48:04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어떠신가요? 돈 없이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자학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마지막 구절은 더욱 서글픕니다. 하루도 돈 없이는 움직일 수 없고,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니, 배알이 뒤틀려 불현듯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팽개쳐버리고도 싶습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지상의 맘몬(Mammon, 부, 부의 신)은 분명 인간을 웃기고 울리고, 들었다 놓았다, 품에 안겼다 달아났다, 그야말로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됐습니다. 어떤 학자는 돈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물건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 무소불위의 절대자인 돈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우리는 불멸의 환상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하는 온갖 힘들에 맞서 자아를 지켜내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선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돈이다.” (김창호, ‘돈의 인문학’) 고달픈 시인의 삶...돈이 절실한 문인들 정말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돈 계산에 따라 부모·형제건, 친구이건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속물들이 된 걸까요? 정말 이익 없이는 오지도 가지도 않는 돈이 노예가 된 걸까요?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돈의 위력을 더욱 실감하는 시인은 믿었던 세상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나 봅니다. 흔히 시인들은 세속의 냄새가 진동하는 돈과 가장 초연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을 '시를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보다 돈에 시달리고 쪼들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정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직업별 소득을 보면 시인들은 최하위에 속해 있습니다. 더 이상 시를 돈 주고 사지도 않고 살 필요도 없는 세상, 인터넷에 들어가면 시가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시대에 시인의 삶도 눈송이처럼 흔들립니다. 한 줄 시를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시인들의 노고는 불행히도 돈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평균 수입은 연간 1,255만 원, 그러니까 한 달에 1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시인은 여기에도 훨씬 못 미쳐 30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시를 전업으로 해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베스트 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시인 최영미 씨. 5월 16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살고 있는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난 1990년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베스트 셀러 시집을 내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최영미 시인은 최근 자신이 살고 있는 마포 세무서로부터 근로 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연간소득이 1,300만 원이 안되고 집도 없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라지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이 정도니 다른 시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디 시인 뿐일지요? 금수저를 물었거나, 물고 나온 소수의 부자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야말로 돈 걱정을 온몸에 달고 삽니다. 가난하지만 시만을 써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한 시인은 만 원짜리 지폐를 들여다보면서 온갖 상념에 잠깁니다. 만 원짜리를 골똘히 바라보면서 위조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조카딸에게 과자도 사줄 수 있고 잡지도 맘껏 사볼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욕망을 압축해 놓은 돈 앞에서 시인은 그저 할 말을 잃습니다. 우리에게는 '봄봄'이나 '동백꽃' 같은 향토색 짙으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단편소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다 29살에 요절하고 맙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그는 폐결핵에 좋다는 닭을 고아 먹고 싶어 고교 동창생 안회남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망이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이 편지의 답장을 받기도 전에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병마와의 최후 담판을 나 몰라라 한 겨우 몇 푼의 야속한 돈 때문에 비운의 삶을 마감한 김유정을 떠올리면 정말 할 말을 잃습니다. 돈은 최악의 종이면서 최상의 군주 돈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적으로는 상품의 가치를 매기고, 교환과 거래를 매개하며 자산의 축적 수단이 되는 물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는 악마도 천사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물건이라는 말이지요. 자본주의 출현과 돈의 역할, 돈과 영혼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 게오르그 짐멜은 그의 명저 '돈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화(外化)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돈은 모든 것을 그 속성과 관계없이 숫자와 형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징이라는 것이죠.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내재적 가치, 주관적 의미 등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돈은 인간의 영혼을 포함해 모든 것을 객관화, 수치화시키는 동시에, 다시 인간들이 자기만의 개성과 인격을 추구하는 길을 열어주고 지켜주는 수문장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얘기인지요?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인가요? 사랑도, 우정도, 예술도, 상상력도, 주관적 인격적 특성도 무시하고 단순히 수량적 관계로 환원해 평준화시킨 돈이 다시 탈개성화, 탈인격화로 개인이 영혼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니요? 이 알쏭달쏭하지만 정확하게 돈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게오르그 짐멜의 주장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입니다. "돈은 최상의 종이며 최악의 주인" 그러니까 돈을 잘 쓰면 이 몰개성적이고 물질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격과 영혼을 지킬 수 있고, 잘못쓰면 돈에 휘둘리는 몰개성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생을 빚에 시달려 누구보다 돈이 절실했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돈의 본질을 짐멜과 유사하게 파악합니다. " 돈은 절대적인 힘이다. 동시에 평등의 극치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한다." 사회학자 임석민 씨도 돈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쁘기보다는 활용에 따라 백 가지로 얼굴을 바꾸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돈이 폭군이 아닌 성군이 되고, 악마가 아니고 천사가 되는 방법은 도는 것입니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부자의 지갑에 들어가 좀처럼 나올 줄 모른다면 그 돈은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필경은 가난한 이에게도 주인인 부자에게도 재앙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부자의 곳간을 빠져나와 가난한 집 장롱에도 들어가고, 유럽의 성채에서 빠져나와 칼라하리 사막의 원주민 흙집으로도 들어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이 왕 행세를 하는 정의롭지 못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야만적 자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인류가 이 야만을 벗어나는 길은 더불어 잘 사는 길이고 그 길은 돈이 돌고 도는 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 차원에서 돈의 속박, 돈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요? 이용하기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이용하고 말고 할 돈 자체가 적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한 푼도 없는 절대 빈곤의 빈털터리라기보다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돈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출판업을 하는 다카키 유코씨는 아주 평범하지만 퍽 일리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람들 머리에 늘 붙어 다니는 걱정거리 가운데 가장 밀도가 높고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돈 문제이다. 나는 지금 돈에 대해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돈 문제는 간단하다. 자기가 가진 돈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돈이 없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가진 것만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러한 물건이 없어도 잘만 살았다." -다카키 유코 '즐거운 돈'- 그러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늘 강조했던 '안분지족'과 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눈만 돌리면 사방팔방에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먹거리, 입을 거리, 탈 거리, 보석, 아름다운 집, 가고 싶어 몸살이 나는 여행지..... 세속을 등지고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사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청빈과 수행을 실천하다 돌아가신 법정 큰스님도 무소유의 삶을 강조하시면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필요와 불필요가 그렇게 두부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보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우주의 화폐 나뭇잎 전자 화폐 비트코인.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했다. 요즘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까지 넘쳐나고 있다. 돈은 종류에 따라 동전과 지폐로 나뉘기도 하지만 요즘은 눈에 보이는 화폐를 쓰는 일보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심지어 전자화폐라는 비트코인(bitcoin)까지 등장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술장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중에는 돈이 넘친다, 돈줄이 막혔다. 돈이 몰린다고도 하는데 정말 시중에는 얼마나 돈이 풀려 있는 것일까요? 경제학에서는 통화(currency)라는 용어를 쓰는데요, 이 통화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시중에 도는 현금과 은행이 언제라도 내줄 수 있는 예금을 합해 M1이라고 해서 가장 적은 규모의 돈(협의통화)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일정 기간을 은행이 묶어 둘 수 있는 정기적금이나 정기예금, 회사채, 국공채 같은 돈을 더해 M2(광의통화, 총통화)라고 합니다. 여기에다 보험이나 증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예탁금 등을 합하면 (M3) 돈의 규모는 더욱 늘어납니다.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지난 1986년 광의 통화 (M2)는 불과 47조 원이었는데요, 1995년에는 300조 원 정도, 2006년에는 1,000조 원을 넘었고, 올 들어 4월에는 무려 2,300조 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0년 만에 무려 50배나 넘게 불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엄청나게 세상의 돈은 불어났는데 내 호주머니의 돈은 왜 줄어들기만 하는 걸까요? 그래서 시인들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아껴쓴다거나, 없는 것에 만족하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종이로 된 화폐 말고 더 소중한 우주의 화폐를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가을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뭇잎을 보면서 정말 화폐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름내 나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땀을 닦아주고 그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비'가 돼주는 송경동 시인의 생각은 더욱 웅숭깊습니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인간의 삶은 거리에 뒹구는 나뭇잎 같은 것이지만, 그 나뭇잎이 역설적으로 화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탐내는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도구로 살면서 정작 자신은 구멍 뚫려 파쇄되는 생을 살아가야 하는 화폐의 운명을, 평생 광합성 노동으로 나무를 살찌우다 속절없이 대지로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환치하고, 다시 시인 자신의 삶으로 환치합니다. 평생 노동자들을 대변하느라 구속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서글플 법도 하지만 그 화폐, 그 나뭇잎들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라면 주눅이 드는 세상, 돈이라면 할 말을 잃게 되는 세상,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 돈이라면 영혼이라도 파는 세상,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도 시인을 따라 저 나뭇잎 한 장을 돈보다 소중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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