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 폭발 피해자 이찬호 병장 “아직도 극심한 공포가…”

입력 2018.10.27 (08:02) 수정 2018.10.27 (08: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병실에서 만난 이찬호 예비역 병장은 그리 '안녕'하지 못해 보였습니다.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겁먹어 날이 곤두선 맹수 같았습니다. 25살의 이찬호 씨는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이목구비와는 어울리지 않게 잔뜩 움츠려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보았던 우호적인 반응이나 응원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세상 얘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가 겪고 있는 현실은 훨씬 차가워 보였습니다.

사고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이나 제대로 된 보상이 없었다는 그의 사연을 다룬 기사는 채 하루를 넘기기 전에 포털사이트 기준 140만 번이 넘게 읽혔고, 7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를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사고 후 이찬호 씨가 SNS에 올린 사진사고 후 이찬호 씨가 SNS에 올린 사진

[연관기사]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찬호 예비역 병장 “K-9자주포 폭발, 진상규명·보상 없어”

기사가 나가고 이튿날 만난 이찬호 씨는 병원 4인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4인실을 함께 쓰는 환자 일행의 커다란 목소리가 자꾸 병실을 울렸습니다. 폭발 사고로 작은 소음에도 흠칫 대는 그에게는 이곳이 적절치 않은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국가의 부름으로 병역을 이행하다 당한 불의의 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청년을 대하는 나라의 처우로서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찬호 예비역 병장은 지금도 죽은 전우들이 꿈에 나타나고 폭발 당시의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악몽을 꾼다고 말합니다. 2017년 8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자주포(전차처럼 생긴 이동식 포) 폭발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7명 중 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찬호 씨는 생존자 4명 중 1명입니다.

K-9 자주포K-9 자주포

기자가 만난 이찬호 병장의 온몸은 화상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후유 장해 판정을 받은 오른손은 손가락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좁은 차내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정신적 트라우마는 물론 폐소공포증까지 호소했습니다.

아래는 어제(26일) 오후 4시,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그와 만나 30분가량 나눈 대화 전문입니다.

※ 이찬호 씨의 의사에 따라 현장에 카메라는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 라디오 출연하는 것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됐는데 많이 놀랐다고 들었어요.
"사실 이전에도 기사화됐었고, 방송된 적도 있기 때문에 라디오 출연이 그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어요. 우선 많은 분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그날의 사고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원인 규명이나 책임 소재,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반향이 커서 많이 놀랐고 또 두려웠습니다. 응원도 있었지만 기사 댓글에는 '(사진이)혐오스럽다' '혐짤(혐오게시물) 표시 좀 하시지….' 같은 말도 있었어요. 재활치료 중이고 몸이 성치 않아서 제 몸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는데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도 많이 불안하고요. 어제 라디오 출연 이후 사람들 반응을 보곤 무서워져서 전화를 걸어 (친)형에게 와달라고도 했습니다."

- 이 사연이 많이 알려지면서 주변으로부터 비슷한 경우를 많이 접하셨을 거 같아요. 어떤 사례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연락을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례를 이야기하면 그분들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어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지금 밝히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 군부대 사고로 인한 치료와 보상 문제가 있습니다. 또 치료는 회복이 가능한 부분이 있고 영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청와대 국민청원 덕분에 9월에 국가유공자로 상대적으로 일찍(다른 사례보다)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보훈처로부터 장해등급을 받았고 지금은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예요. 하지만 흉터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 여전히 막막해요. 중학교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서 예고로 진학했고 대학도 연극영화과로 갔었는데 지금은... 보상문제는 K-9 제조사인 한화 측이 결함을 인정치 않고 있어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재학 시절 단편영화를 찍던 모습재학 시절 단편영화를 찍던 모습

- 대개 군 복무 중 사고를 당할 경우 치료도 전역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비로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전역을 미루는 정돈데 그것도 6개월까지만 가능해요.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으면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사고를 당한 모두가 국가유공자가 되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 여쭤보기 조심스럽지만, 사고가 났던 그 날 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신지요?
"다음날 외박을 쓰고 가족들과 외식할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K-9 자주포의 측정사격훈련을 하던 도중 기계결함으로 차내 폭발사고가 났어요. 1평(3.3㎡)도 안 되는 실내에 7명이 있었는데 3명이 사망했습니다. 40톤(t)짜리 화포가 완전히 조각났고 불 속에서 네발로 기어서 겨우 나왔어요."

K-9 자주포 내부K-9 자주포 내부

- 엄청난 규모의 사고였을 거 같은데, 트라우마도 있을 거 같습니다.
"몸도 그렇지만 사고 난 이후 1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어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요. 사고 초기에는 정말 매일 같이 악몽을 꿨었어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요. 폭발 당시의 상황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기도 하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서 주변에서 뭔가 부서지거나 깨지는 소리가 나면 긴장하게 돼요."

- 또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나요?
"낯선 곳을 가게 되면 꼭 안전한지 비상구나 주변에 있는 소화기가 있는지 확인하게 돼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워서.. 폭발사고가 난 곳이 굉장히 좁은 공간이어서 폐소공포증도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그렇고요.."

-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하신 걸 봤습니다. 혹시 못다 한 얘기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사고가 발생한 K-9 자주포의 기계적 결함이 상대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명피해만 없었지 사고가 나기 몇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거든요. K-9 자주포는 여전히 군부대 곳곳에 가동 중이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있습니다. 제조사인 한화 측(한화지상방산)으로부터 사고 원인 제공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건요약>
전역을 8개월 앞둔 2017년 8월 18일, 이찬호 상병은 강원도 철원의 전차 사격 훈련장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K-9 자주포 내부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사고를 겪었습니다. 올해 5월, 전역과 함께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된 이찬호 씨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지고 지난달에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보훈처의 장해 등급 판정으로 평생 월 170만 원 남짓한 연금 결정이 내려졌지만,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놓고 K-9 자주포 제조사인 한화 측과 군 당국과의 책임공방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연관기사]
[취재후] 2년 만에 사고 원인 뒤바꾼 ADD…K-9 폭발사고 여전히 ‘쉬쉬’
“K-9 폭발사고 2년 전에도 발생”…‘원인 미상’ 종결
K-9 자주포 훈련 중 폭발…7명 사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K9 폭발 피해자 이찬호 병장 “아직도 극심한 공포가…”
    • 입력 2018-10-27 08:02:21
    • 수정2018-10-27 08:32:31
    취재K
병실에서 만난 이찬호 예비역 병장은 그리 '안녕'하지 못해 보였습니다.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겁먹어 날이 곤두선 맹수 같았습니다. 25살의 이찬호 씨는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이목구비와는 어울리지 않게 잔뜩 움츠려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보았던 우호적인 반응이나 응원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세상 얘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가 겪고 있는 현실은 훨씬 차가워 보였습니다.

사고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이나 제대로 된 보상이 없었다는 그의 사연을 다룬 기사는 채 하루를 넘기기 전에 포털사이트 기준 140만 번이 넘게 읽혔고, 7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를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사고 후 이찬호 씨가 SNS에 올린 사진
[연관기사]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찬호 예비역 병장 “K-9자주포 폭발, 진상규명·보상 없어”

기사가 나가고 이튿날 만난 이찬호 씨는 병원 4인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4인실을 함께 쓰는 환자 일행의 커다란 목소리가 자꾸 병실을 울렸습니다. 폭발 사고로 작은 소음에도 흠칫 대는 그에게는 이곳이 적절치 않은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국가의 부름으로 병역을 이행하다 당한 불의의 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청년을 대하는 나라의 처우로서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찬호 예비역 병장은 지금도 죽은 전우들이 꿈에 나타나고 폭발 당시의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악몽을 꾼다고 말합니다. 2017년 8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자주포(전차처럼 생긴 이동식 포) 폭발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7명 중 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찬호 씨는 생존자 4명 중 1명입니다.

K-9 자주포
기자가 만난 이찬호 병장의 온몸은 화상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후유 장해 판정을 받은 오른손은 손가락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좁은 차내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정신적 트라우마는 물론 폐소공포증까지 호소했습니다.

아래는 어제(26일) 오후 4시,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그와 만나 30분가량 나눈 대화 전문입니다.

※ 이찬호 씨의 의사에 따라 현장에 카메라는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 라디오 출연하는 것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됐는데 많이 놀랐다고 들었어요.
"사실 이전에도 기사화됐었고, 방송된 적도 있기 때문에 라디오 출연이 그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어요. 우선 많은 분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그날의 사고도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원인 규명이나 책임 소재,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반향이 커서 많이 놀랐고 또 두려웠습니다. 응원도 있었지만 기사 댓글에는 '(사진이)혐오스럽다' '혐짤(혐오게시물) 표시 좀 하시지….' 같은 말도 있었어요. 재활치료 중이고 몸이 성치 않아서 제 몸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는데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도 많이 불안하고요. 어제 라디오 출연 이후 사람들 반응을 보곤 무서워져서 전화를 걸어 (친)형에게 와달라고도 했습니다."

- 이 사연이 많이 알려지면서 주변으로부터 비슷한 경우를 많이 접하셨을 거 같아요. 어떤 사례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연락을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례를 이야기하면 그분들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어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지금 밝히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 군부대 사고로 인한 치료와 보상 문제가 있습니다. 또 치료는 회복이 가능한 부분이 있고 영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청와대 국민청원 덕분에 9월에 국가유공자로 상대적으로 일찍(다른 사례보다)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보훈처로부터 장해등급을 받았고 지금은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예요. 하지만 흉터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 여전히 막막해요. 중학교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서 예고로 진학했고 대학도 연극영화과로 갔었는데 지금은... 보상문제는 K-9 제조사인 한화 측이 결함을 인정치 않고 있어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재학 시절 단편영화를 찍던 모습
- 대개 군 복무 중 사고를 당할 경우 치료도 전역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비로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전역을 미루는 정돈데 그것도 6개월까지만 가능해요.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으면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사고를 당한 모두가 국가유공자가 되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 여쭤보기 조심스럽지만, 사고가 났던 그 날 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신지요?
"다음날 외박을 쓰고 가족들과 외식할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K-9 자주포의 측정사격훈련을 하던 도중 기계결함으로 차내 폭발사고가 났어요. 1평(3.3㎡)도 안 되는 실내에 7명이 있었는데 3명이 사망했습니다. 40톤(t)짜리 화포가 완전히 조각났고 불 속에서 네발로 기어서 겨우 나왔어요."

K-9 자주포 내부
- 엄청난 규모의 사고였을 거 같은데, 트라우마도 있을 거 같습니다.
"몸도 그렇지만 사고 난 이후 1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어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요. 사고 초기에는 정말 매일 같이 악몽을 꿨었어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요. 폭발 당시의 상황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기도 하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서 주변에서 뭔가 부서지거나 깨지는 소리가 나면 긴장하게 돼요."

- 또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나요?
"낯선 곳을 가게 되면 꼭 안전한지 비상구나 주변에 있는 소화기가 있는지 확인하게 돼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워서.. 폭발사고가 난 곳이 굉장히 좁은 공간이어서 폐소공포증도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그렇고요.."

-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하신 걸 봤습니다. 혹시 못다 한 얘기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사고가 발생한 K-9 자주포의 기계적 결함이 상대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명피해만 없었지 사고가 나기 몇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거든요. K-9 자주포는 여전히 군부대 곳곳에 가동 중이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있습니다. 제조사인 한화 측(한화지상방산)으로부터 사고 원인 제공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건요약>
전역을 8개월 앞둔 2017년 8월 18일, 이찬호 상병은 강원도 철원의 전차 사격 훈련장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K-9 자주포 내부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사고를 겪었습니다. 올해 5월, 전역과 함께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된 이찬호 씨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지고 지난달에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보훈처의 장해 등급 판정으로 평생 월 170만 원 남짓한 연금 결정이 내려졌지만,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놓고 K-9 자주포 제조사인 한화 측과 군 당국과의 책임공방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연관기사]
[취재후] 2년 만에 사고 원인 뒤바꾼 ADD…K-9 폭발사고 여전히 ‘쉬쉬’
“K-9 폭발사고 2년 전에도 발생”…‘원인 미상’ 종결
K-9 자주포 훈련 중 폭발…7명 사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