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임시정부⑥] 고종 비자금이 임시정부로?…켜켜이 쌓인 오해를 풀려면

입력 2019.04.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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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됐습니다. 임정은 중국에 있었지만, 국내에 통치망을 구축하려 부단히 애썼습니다. 이를 일제는 끈질기게 추적했습니다. 그 쫓고 쫓긴 흔적은 일제 법원의 판결문으로 남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판결문 250여 건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KBS는 이를 발굴해 『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상』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지난해 방송된 tvN <미스터 선샤인>은 고종 황제의 비밀 정치자금, 이른바 '고종 비자금'을 다룹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흥미를 위해 사실과 허구를 뒤섞습니다. 비자금의 행방을 각색합니다. 하지만, 고종이 비자금을 뒀다는 팩트 자체는 확인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망국(亡國)의 군주가 관리했던 거액의 비자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이증복의 「한국야담사화」에 따르면, 고종 비자금 중 일부가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의 손을 거쳐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에 쓰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종 비자금이 임시정부로? 사실이라면, 놀라운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설립 자금은 '깜깜이'…통째로 잃어버린 임시정부 기록물

임시정부 연구자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고종 비자금과 임시정부가 관련이 있냐고. 이해를 돕기 위해 한시준 교수와 나눈 취재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대한민국의 출발로 보고 있는 임시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립됐는지에 대해 지금도 규명되지 못한 사실들이 상당하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11일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지만, 화려한 기념식 이면엔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셈입니다.

임시정부 수립 경위뿐 아닙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임시정부의 정책과 법률안, 예산과 인사 등 구체적인 활동상도 대부분 '깜깜이'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임정이라는 정부가 있었던 것은 아는데, 그 정부의 일일 활동 등 디테일은 아직 모르는 상태인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임시정부의 정부 기록물을 통째로 잃어버린 뒤,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정이 뼈아프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기록물이 없는 정부” 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속사정

■ 중국에 치우친 임정 연구…'국내 활동'은 논문 단 2편

그나마 임시정부의 중국 활동상은 연구 실적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상하이 시절에는 무엇을 했고, 충칭 시절에는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이동 경로는 어떠했는지 등 많은 부분이 이미 확인됐고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국 중심의 연구가 상대적으로 강조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상입니다. 사실상 '연구의 황무지,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학술정보사이트에 '임시정부' & '국내 활동'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검색되는 연구 결과물은 논문 단 2편에 불과합니다.

앞서 예로 든 '고종 비자금' 관련 야사는 촌극 정도로 웃어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1일이 아닌 4월 13일로 잘못 기념해왔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정부가, 무려 30년 동안 그랬습니다. 일본의 자료를 잘 못 참고 해왔던 겁니다. 임시정부에 대한 오해는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몰이해는 저평가를 낳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활동」을 발간했다. 그간 보관해 온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 법원의 판결문을 정리한 것이다.국가기록원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활동」을 발간했다. 그간 보관해 온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 법원의 판결문을 정리한 것이다.

KBS는 앞선 5편의 기사에서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일제 판결문을 토대로 임시정부의 다양한 국내 활동상을 전했습니다. 보도된 내용은 실제 활동상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국가기록원의 판결문 250여 건은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판결문에 대한 해설집을 집필한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 본 기사는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일제 판결문과 해설집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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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 임시정부⑥] 고종 비자금이 임시정부로?…켜켜이 쌓인 오해를 풀려면
    • 입력 2019-04-29 07:00:04
    정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됐습니다. 임정은 중국에 있었지만, 국내에 통치망을 구축하려 부단히 애썼습니다. 이를 일제는 끈질기게 추적했습니다. 그 쫓고 쫓긴 흔적은 일제 법원의 판결문으로 남았습니다. 국가기록원은 당시 판결문 250여 건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KBS는 이를 발굴해 『우리가 몰랐던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상』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지난해 방송된 tvN <미스터 선샤인>은 고종 황제의 비밀 정치자금, 이른바 '고종 비자금'을 다룹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흥미를 위해 사실과 허구를 뒤섞습니다. 비자금의 행방을 각색합니다. 하지만, 고종이 비자금을 뒀다는 팩트 자체는 확인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망국(亡國)의 군주가 관리했던 거액의 비자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이증복의 「한국야담사화」에 따르면, 고종 비자금 중 일부가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의 손을 거쳐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에 쓰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고종 비자금이 임시정부로? 사실이라면, 놀라운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설립 자금은 '깜깜이'…통째로 잃어버린 임시정부 기록물

임시정부 연구자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고종 비자금과 임시정부가 관련이 있냐고. 이해를 돕기 위해 한시준 교수와 나눈 취재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대한민국의 출발로 보고 있는 임시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립됐는지에 대해 지금도 규명되지 못한 사실들이 상당하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11일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지만, 화려한 기념식 이면엔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셈입니다.

임시정부 수립 경위뿐 아닙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임시정부의 정책과 법률안, 예산과 인사 등 구체적인 활동상도 대부분 '깜깜이'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임정이라는 정부가 있었던 것은 아는데, 그 정부의 일일 활동 등 디테일은 아직 모르는 상태인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임시정부의 정부 기록물을 통째로 잃어버린 뒤,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정이 뼈아프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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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치우친 임정 연구…'국내 활동'은 논문 단 2편

그나마 임시정부의 중국 활동상은 연구 실적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상하이 시절에는 무엇을 했고, 충칭 시절에는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이동 경로는 어떠했는지 등 많은 부분이 이미 확인됐고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국 중심의 연구가 상대적으로 강조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상입니다. 사실상 '연구의 황무지,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학술정보사이트에 '임시정부' & '국내 활동'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검색되는 연구 결과물은 논문 단 2편에 불과합니다.

앞서 예로 든 '고종 비자금' 관련 야사는 촌극 정도로 웃어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1일이 아닌 4월 13일로 잘못 기념해왔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정부가, 무려 30년 동안 그랬습니다. 일본의 자료를 잘 못 참고 해왔던 겁니다. 임시정부에 대한 오해는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몰이해는 저평가를 낳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활동」을 발간했다. 그간 보관해 온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 법원의 판결문을 정리한 것이다.
KBS는 앞선 5편의 기사에서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일제 판결문을 토대로 임시정부의 다양한 국내 활동상을 전했습니다. 보도된 내용은 실제 활동상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국가기록원의 판결문 250여 건은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판결문에 대한 해설집을 집필한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 본 기사는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일제 판결문과 해설집 「판결문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활동」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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